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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

마지막 때의 성전의 시작과 끝으로서 교회(그레고리 K. 비일)

작성자코람데오|작성시간26.06.12|조회수181 목록 댓글 17

그레고리 K. 비일 교수(1949-) 사진 출처: 새물결플러스&아카데미

[그레고리 K. 비일의 성전 신학]
 
그레고리 K. 비일 『성전 신학』(pp. 344-348) 내용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좋은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우리가 입은 육체라는 장막은 언젠가 무너지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장차 부활을 통해 덧입게 될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새 성전’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머나먼 미래처럼 느껴지는 그 찬란한 성전의 완성은, 오늘 우리 마음에 ‘보증’으로 오신 성령님을 통해 ‘날마다 새로워지는 속사람’의 모습으로 이미 우리 삶에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교회가 고난 받고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아 보일지라도, 우리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 약함 속에서 오히려 성전의 참된 영광이 눈부시게 자라나고 확장됩니다. 이러한 포인트 중심으로 아래 글을 읽으시면 이해가 잘 될 겁니다.


마지막 때의 성전의 시작과 끝으로서 교회(고후 4:16-5:5)
 
고린도후서 5:1-5에서 바울은 성전으로서의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관한 6장의 명시적인 논의를 예고한다.
 
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땅에 있는 장막 집"(1절)은 죽을 수밖에 없고 그럼으로써 언젠가는 파멸에 이르게 될(무너지면) 신자의 몸을 가리킨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갖게 될 것이다(1절). 이것은 장차 있을 그들의 부활 및 새 "하늘"과 땅을 구성하게 될 그들의 변모를 가리키는데, 이는 앞서 살폈고 또 앞으로 살펴볼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과 동일하다. “덧입는” 것이 마지막 때의 부활을 가리킨다는 점은 4절에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바울이 성전을 염두에 둔다는 점은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라는 구절을 통해 금방 확인된다. 사실상 이 구절은 성경 어디에서나 종말론적인 새 성전에 관해 전문적으로 말하는 방식이다. 그뿐 아니라 "지으신 집"과 "집"(1절), "처소"(2절) 등의 표현은 바울 서신의 다른 곳에서 이스라엘의 성전 또는 성전으로서의 교회와 관련해서 언급된다.
 
고린도후서 5:1-5는 장차 있을 성전의 완전한 형태를 그리고 있지만, 고린도후서 6:16-18이 보여준 것처럼 그것의 현실화는 이미 시작된 것과 같았다. 이 점은 바로 앞 문맥인 4:16-18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며, 그 안에 담긴 사상은 5:1 이하로 계속 이어진다.
 
4:1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16-17절은 이처럼 계속 진행되는 내적인 갱신이 현재의 점증하는 "영원한 영광의 무게"에 상응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영광은 5:1-4에 언급된 마지막 부활의 때에 마침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독자들은 마지막 때에 "[부활의] 생명에 삼킨 바" 되겠지만(고후 5:4), 이런 "생명"은 이미 그들 안에서 "역사"하고 있었다(고후 4:12). 성령은 4:12-13에서 믿음 안에 있는 부활 생명의 기원과 연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차 있을 부활 생명의 절정을 위한 "보증"(5:5)이기도 하다(Hafemann 2000: 186-187).
 
성령 자신은 새 창조의 초기 증거다. 새 창조 안에는 부활의 실존이 있으며, 우주적인 의미를 갖는 성전의 자리도 있다. 고린도후서 5:5는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해" 우리로 하여금 부활 생명을 누리고 영원한 성전에 속한 자들이 되도록 준비하신 하나님이 미래를 위한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한다. 성령은 이런 현실의 예고 또는 약속일 뿐 아니라, 이 현실의 초기 형태이기도 하다. 고린도후서 1:20-22은 이 점을 훨씬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구약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 이것은 이 약속이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을 통해 성취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다"라고 말한다. 달리 말해서 성령은 마지막 날에 있을 약속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안에서 이미 성취되기 시작했음을 나타내는 초기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성령은 장차 있을 "우리 몸의 속량"의 "첫 열매"다(롬 8:23). 마찬가지로 에베소서 1:13-14은 신자들이 마지막 때에 있을 완전한 “기업”의 “보증이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라고 주장한다.
 
부활의 “갱신” 과정(고후 4:16)이 영광을 세우는 과정과 같음은 타당하다. 왜냐하면 역사 전체를 통틀어 볼 때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기에 적절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적절하게도 하나님의 영광은 새 아담이요 새 성전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 사이에 머물게 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19-20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영광은 새 창조의 성전 안에 영원토록 완전하게 반영되어 있는 영광을 일컫는다(예. 계 21:11; 참조. 계 15:8). 이미 이 세상 속으로 들어와 존재하게 된 새 성전은 옛 성전처럼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영광이 성전 안에서 자라가는 방식에는 반어적인 데가 있다. 그것은 신자가 고통을 통해 보전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영화로운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고후 12:9). 실제로 눈에 보이는 참된 교회의 약함을 통한 영광의 증가는 성전 자체의 성장과 같다. 그리스도인들이 시련과 약함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분은 자신의 영광을 우리 안에서 빛나도록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영광의 "보배를 [연약한] 질그릇에 갖게" 하셨다.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고후 4:6b-7).
 
그레고리 K. 비일, 강성열 옮김, 『성전 신학』(새물결플러스, 2014), pp. 34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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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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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장코뱅 | 작성시간 26.06.12 공감합니다!
  • 작성자에이프릴 | 작성시간 26.06.12 주님, 질그릇 같이 연약한 삶의 자리마다 보증으로 오신 성령님을 의지하여, 날마다 속사람이 새로워지며 영원한 새 성전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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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장코뱅 | 작성시간 26.06.12 아멘!
  • 작성자코람데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2 성도들이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요 17장의 예수의 대제사장의 기도가 떠오르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장코뱅 | 작성시간 26.06.12 매우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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