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K. 비일의 성전 신학]
유대교에서는 아직도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다. 메시아의 도래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산(Temple Mount)에 제3성전이 건립될 것을 믿으며 헤롯 성전의 남은 터인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성전산에는 공교롭게도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인 ‘알 아크사 사원(Al-Aqsa Mosque)'과 ‘바위의 돔(Dome of Rock)'이 자리잡고 있는데, 바위의 돔은 유대교와 이슬람의 공동 조상인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곳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특히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했다고 믿고 있어 무슬림들에게는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거룩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기독교는 어떤가? 특히 세대주의 종말론에서는 제3성전의 건립을 종말의 핵심 징조로 보고 적그리스도가 이곳에 앉아서 자신을 경배하게 할 것이며, 이후 예수의 재림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기독교인들은 그래서 유대인의 성전 재건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기도 하다.
비일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적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있는데, 적그리스도가 제3성전에 앉을 것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한다. 적그리스도는 유형적인 성전이 아니라 바로 교회 안에서 나타날 것이며 배교와 악행을 일삼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것이라고 한다. 비일의 구체적인 설명을 따라가 보도록 하자.
구약의 적그리스도 예언에 대한 바울의 언급
데살로니가후서 2:4에서 바울은 다니엘 11장의 적그리스도 예언을 발전시킨다.
| 다니엘 11:31, 36 | 데살로니가후서 2:3-4 |
| "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단 9:27; 12:11도 마찬가지). "36 그 왕은…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 "3 저 불법의 사람은…4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
그뿐 아니라 "불법의 사람"이라는 표현(anthrōpos tēs anomias)은 다니엘 12:10-11을 반영한다(테오도티온 역). 다니엘서의 이 텍스트는 다니엘 11:29-34과 놀랍도록 유사하며, "불법의 사람들[anomoi]이 불법을 행하고[anomēsōsin] 모든 불법의 사람들[anomoi]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때"(즉, 그들이 미혹하거나 미혹당할 때) 닥쳐올 마지막 날의 시련에 대해 언급한다. 불법 행함에 대한 다니엘서의 이런 언급은 성전 안에 있는 마지막 날의 원수가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단 12:11; 참조. 11:31)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물론 이 부분에 의해 설명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다니엘 11:30-45의 예언에 따르면 하나님의 마지막 원수는 언약 공동체를 공격하는데, 이 공격은 다음과 같은 두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첫째,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고"(30절) "언약을 향하여 악하게 행동하는"(32절; 역자 주-개역개정은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로 번역) 공동체 구성원의 일부를 "부드러운 말"로 속이는 교묘한 공격이 있을 것인데, 이것은 3절에서 바울이 언급하는 "배교"의 배후에 놓여 있다(Vos 1979: 111). 적그리스도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쳐 "불경건한" 자들이 되게 하고(32절; 역자 주-개역개정은 "타락시킬 것"이라고 번역), 다른 사람들 사이에 타협과 속임수를 조장하도록 할 것이다. 다니엘은 "많은 사람들이 위선(역자 주-개역개정은 "속임수"로 번역)으로 그들[신실한 자들]과 결합"함으로써 자기가 신실하다고 주장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34절)고 말한다. 둘째, 마지막 때의 원수는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한 자들을 핍박할 것이다(33-35, 44절). 마지막 때의 대적자는 공동체 앞에 공공연히 나타나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할" 것이요(36절),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수중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45절). 그리하여 바울은 다니엘 11-12장의 예언을 3-4절과 그 후의 내용에서 발전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마지막 때의 원수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남을 속이는 일을 하게 되리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울은 다니엘이 문자적이고 실제적인 성전의 더럽혀짐을 예언한 것이라고 믿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마지막 때에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을 위한 유형적인 성전 구조물이 재건될 것이요, 적그리스도가 사람들을 미혹함으로써 자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 것임을 가리킨다고 믿는다.
배교 문제에 비추어 성전을 유형적 구조물로 보려는 견해의 문제점
미래의 성전 건축물을 "유형적"(有形的)인 것으로 보는 견해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데살로니가후서 2:3은 지리적인 의미에서 실제 이스라엘 안에서 발생할 "배교"를 말하는 것 같지 않다. 다수의 이스라엘은 항상 "배교의 모습"을 보였고, 구약 시대와 그리스도의 시대에도 늘 불신앙에 빠져 있었으며, 이후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그러했다. 하지만 미래 전체를 염두에 두는 시각에 따르면 이 구절을 이스라엘 민족의 배교로 본다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다수의 이스라엘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활동할 때까지 불신앙에 빠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미래 전체를 염두에 둔다면, 다수의 이스라엘은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믿음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또한 3절이 민족들 중에 있는 불신자들—가시적인 교회에 속하지 않은—의 배교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 중 다수는 초림과 재림의 중간 기간 내내 불신자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3절은 장차 전 세계 신앙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이제까지 발생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게 나타날 미래의 대규모 집단 "배교"를 가리키는 것 같다.
확실히 사람에 따라서는 3절이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발생할 배교를 가리킨다는 견해를 선택하면서, 이 책에서 채택된 대안적인 견해(Best 1972: 282-283)를 거부할 수도 있다. 그들이 이런 견해를 선호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당시는 기독교가 이제 막 확산되기 시작하던 매우 이른 시기여서, 바울이 볼 때 초기 교회 안에 불신앙이 이처럼 널리 퍼져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요, 사도가 이본바 자신의 "친필" 편지 중 어느 곳에서도 그처럼 널리 퍼진 배교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반대 견해에는 결함이 있다. 바울이 기독교 공동체를 참된 이스라엘의 연속으로 이해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물론 이 공동체 안에는 거짓으로 언약을 지키는 자들이 존재했을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바울은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들을 자신의 저작 전반에 걸쳐서 적용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종말론적인 배교에 관한 다니엘 11장의 예언을 포함해서 말이다.
복음서에 비추어 성전을 유형적 구조물로 보려는 견해의 문제점
더 나아가서 데살로니가후서 2:3이 역사의 종말 무렵에 이스라엘 내에서가 아니라 교회 내에서 발생할 집단적인 배교 운동을 가리킨다는 점은 4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구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성전”에 대한 이런 언급은 교회 공동체야말로 이스라엘과 성전에 관한 종말의 예언들이 성취될 곳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실제 구절은 데살로니가후서 외에 신약성경에서 열 차례 발견되는데,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교회를 가리킨다. 오직 한 차례만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 과거나 미래의 이스라엘 성전을 가리킨다. 마태복음 26:61은 다음과 같이 예수의 말씀을 인용한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여기에 사용된 표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 표현은 미래의 종말론적인 성전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로부터, 예수가 이런 예언들을 성취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방식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견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수가 유형적인 성전을 언급하신 것은 구속사의 흐름이 종말의 성전을 향해 나아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마태는 물질적인 성전이 파괴되고 난 후에 예수의 부활의 몸에서 그 성전이 재건되리라고 본다.
예수의 부활이 최초의 성전 재건을 표상한다는 점은 요한복음 2장에서 한층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텍스트에 의하면 예수는 마태복음 26:61(2:19-22)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말씀하신다. 복음서 기자는 예수가 성전을 재건한다거나 “일으킨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가 성전 된 자기 육체”와 자신의 부활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추가한다. 예수의 부활은 마지막 날에 있을 “하나님의 성전” 재건 작업이 시작되었음을 나타내는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에 있던 이전의 유형적인 성전은 성전인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의 전조가 되었다. 왜냐하면 성전의 핵심은 그곳이 하나님의 영화로운 임재가 지상의 그의 백성에게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이제 그는 하나님의 임재가 세상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소가 되신다. 이런 이유로 요한복음 2장의 진술 이전에서조차 요한복음 1:14은 이렇게 말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또는 ‘성전이 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바울의 다른 저술에 비추어 성전을 유형적인 구조물로 보려는 견해의 문제점
제7장에서 살핀 것처럼 바울은 다른 곳에서도 신자들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칭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전이신 예수를 믿기 때문이요, 성전이신 그와 연합하여 그의 몸에 속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16-17에서 두 번씩이나 신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고린도후서 6:16은 두 번에 걸쳐 신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확증한다. 고린도후서 1:20은 “하나님의 약속은…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이 약속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통해 성취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성취되기 시작한 예언 중에는, 고린도후서 7:1이 6:16-18을 이어받아 설명을 계속하는 부분에서 보듯, 종말론적인 성전에 관한 예언이 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자신을 깨끗하게 하자”(엡 2:19-21; 벧전 2:4-7; 계 3:12 등도 참조).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언급된 “하나님의 성전”이 교회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일찍이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데살로니가전서 4:8의 표상과 언어로 묘사한 것에서 추가적으로 확인된다(“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 그런데 이 텍스트는 고린도전서 6:19의 제의적인 표상과 평행을 이룬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이런 이해는 이스라엘을 지시하는 구약의 다양한 호칭을 교회에 적용하는 사도 바울의 경향과 일치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 “하나님이 택하사”(골 3:12),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할례파”(빌 3:3) 등이 그런 예다(Findlay 1904: 170).
그레고리 K. 비일, 강성열 역,『성전 신학』(새물결플러스, 2014), pp. 368-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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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코뱅 작성시간 26.06.22 new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눈에 보이는 지상의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세우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참된 성전 삼아 주시고 거룩한 임재 가운데 거하게 하심을 찬양합니다.
마지막 때에 다가올 영적인 미혹과 배교의 거센 파도 앞에서도 우리를 말씀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세워 주시어, 불법의 사람에게 흔들리지 않고 오직 진리만을 분별하는 영적 눈을 밝혀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 모두가 날마다 자신을 성결하게 지키게 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의 영광을 세상에 온전히 드러내는 신실한 등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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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노베 작성시간 26.06.22 new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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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베 작성시간 26.06.22 new
세대주의 종말론에 치우쳐 먼 미래와 제3성전이라는 외형적 건물에만 집착했던 시각을 교정하고, 정작 우리가 지켜내야 할 '교회 내부'를 분별력 있게 돌아보게 만드는 깊이 있는 글입니다.
구약 다니엘서의 예언이 신약의 바울과 복음서를 통해 어떻게 교회를 향해 성취되는지 탄탄한 성경신학적 근거로 풀어주셔서, 성전의 본질이 건물에 있지 않음을 명확히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가 교회 밖이 아닌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대규모 배교를 일으킬 것이라는 경고가 오늘날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거운 영적 경각심을 줍니다.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으로 부름받은 우리 자신이, 안팎의 유혹과 타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얼마나 거룩하게 지켜내고 있는지 무겁게 자문해 보게 됩니다.
성경 전체를 꿰뚫는 귀한 성전 신학의 통찰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눈에 보이는 징조에 현혹되지 않고 날마다 말씀의 반석 위에 깨어 참된 성전 된 교회를 지켜나가겠다고 성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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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베 작성시간 26.06.22 new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눈에 보이는 멋진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 마음과 교회가 진짜 하나님의 성전임을 배우게 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마지막 때에 거짓말과 유혹이 찾아와도 우리를 쏙 빼닮은 참된 성전으로 지켜주시고, 날마다 말씀 위에 깨어 예수님의 사랑과 영광을 씩씩하게 전하는 어린이가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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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코람데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2 new
교회의 집단적인 배교가 있을 것이라는 말에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낍니다. 정말 부드럽고 그럴싸한 말로, 충분히 이성적이고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설득하여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진리에 대한 분명한 분별력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