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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1

어떤 명명(命名)

작성자청석 임병식|작성시간26.06.10|조회수34 목록 댓글 8

어떤 명명(命名)

 

임병식

 

이름은 사물의 바깥에서 붙지만, 붙는 순간 사물의 내부를 재구성한다.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호칭이라 여기지만, 실상은 세계를 미리 구획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에 가깝다. 이름은 사물을 드러내기보다 사물이 머물 자리를 먼저 정한다.

수건이라는 말은 그것을 세면용으로 부르는 순간 하나의 기능을 호출한다. 같은 천이라도 행주라 불리는 순간 다른 세계에 놓인다. 달라진 것은 사물의 성질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언어의 위치다. 우리는 대상을 보기 전에 이미 이름을 통해 그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 순간 인식은 감각의 개방이라기보다 이미 닫힌 체계 안에서의 확인에 가까워진다. 이름은 사물 위에 얇은 막처럼 덧씌워져 그것을 드러내는 동시에 다른 가능성을 가린다. 사물을 보여 주면서도 그 밖의 가능성에는 눈을 감게 한다.

가치는 더욱 그렇다. 가격은 사물에 내재한 속성이 아니라 언어화된 합의의 결과다. 그러나 그 합의는 평등하게 형성되지 않는다. 누가 먼저 이름을 붙이고 정의를 고정했는가에 따라 세계의 윤곽은 달라진다.

한 지인이 수석을 팔기 위해 서울로 올라간 적이 있다. 그에게 그 돌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이 응축된 존재였다. 그러나 시장이라는 언어 체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것은 곧 가격의 대상으로 환원되었다.

누군가 이천만 원을 제시했다.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하나의 선언이었다. ‘이 대상은 이 정도의 세계를 가진다’는 규정이었다. 그 순간부터 모든 시선은 그 선언을 기준으로 배열되었다.

결국 수석은 그 가격에 거래되었다. 그러나 얼마 뒤 또 다른 언어가 도착했다. 오천만 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 붙는 순간 이천만 원의 세계는 힘을 잃었다. 하지만 거래는 이미 끝났고, 세계는 닫힌 뒤였다.

되찾으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그 실패는 단순한 상실이 아니었다. 한 번 타인의 언어로 구성된 세계는 다시 이전의 언어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름을 붙이는 자가 세계를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를 결정한다. 이름은 사물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물이 가능해지는 조건이다.

그렇다면 이름 이전의 세계는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는 언제나 이미 누군가의 명명 속에서만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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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1 읽어주시고 귀한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은진뛰어댕기는고무신 | 작성시간 26.06.11 시간을 내서 찬찬히 음미하면서 감상해야 하는데 일하다 보면 집중이 안되는 날이 더 많습니다. 항상 건강 챙기시면서 작품 활동 하세요.
  • 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1 고맙습니다.
  • 작성자人山 이희순 | 작성시간 26.06.11 이름이 존재의 의미에서도 또는 가치의 척도에서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름 명(名)을 보면 저녁에 부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저녁 석夕+ 입구口) 모든 사물의 이름이 귀하지만 특히 사람의 저녁 무렵에 불리는 이름의 무게가 그 사람 일생의 값어치가 아닐까 하는늦은 깨달음이 깊음을 보여줍니다
  • 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1 이름이 사물의 명분과 가치를 규정한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봅니다.
    그것도 처음 붙어진 이름이나 가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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