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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1

지붕위의 폐타이어

작성자청석 임병식|작성시간26.06.20|조회수24 목록 댓글 4

지붕 위의 폐타이어

 

임병식

 

아파트 거실에서 내려다보이는 길 건너 스레이트 지붕 위에 폐타이어 두 개가 놓여 있다. 양쪽 가장자리를 하나씩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무심코 올려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바람이 불 때 지붕이 들썩이거나 들리지 않도록 눌러두기 위한 것이다.

평소에는 회색빛을 띠지만 비가 내리면 검은 본색이 드러난다.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마모가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만 킬로미터, 어쩌면 그보다 훨씬 먼 길을 달렸을 것이다.

나는 이따금 그 타이어를 내려다본다.

얼마나 오랫동안 주인을 위해 길 위를 달렸을까.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미친다.

저 타이어는 지금 생의 두 번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때는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던 존재였지만 이제는 지붕을 지키고 있다. 달리는 일을 마친 뒤에는 버티는 일을 맡은 셈이다. 모습은 그대로인데 쓰임만 달라졌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경우가 드문 것만은 아니다.

부둣가에 정박한 배 옆에도 폐타이어가 매달려 있다. 선체끼리 부딪히는 것을 막는 완충 장치다. 길 위를 달리던 타이어가 바다에서는 충돌을 막는 방패가 된다.

지붕 위의 타이어를 바라보다가 오래전 보았던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골목길에 버려진 빈 플라스틱병을 주워 쓰레기통에 넣고 가는 모습이었다. 누가 시킨 일도,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도 아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몫을 다했을 뿐이다.

그 모습이 폐타이어와 겹쳐졌다.

한 번의 역할을 마쳤다고 해서 존재의 가치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첫 임무를 마친 뒤에도 다른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것들이 있다.

지붕 위의 폐타이어는 오늘도 바람을 누르고 있다.

길 위의 생은 끝났지만, 쓰임의 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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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仁齊 김권섭 | 작성시간 26.06.21 "길 위의 생은 끝났지만, 쓰임의 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운이 길게 남는 마무리입니다. 화려하게 달리는 것 못지않게,
    제자리에서 묵묵히 바람을 막아주고 세상을 따뜻하게 누르고 있는 모든 존재에게 깊은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밀도 높은 秀作입니다. 능숙하고 절제된 문장 덕분에 읽는 내내 마음이 차분하고 넉넉해졌습니다.^^
  • 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1 수명을 다한 폐타이어가 다시 쓰음을 찾아 한몫을 하고 있듯이
    사람도 그런 경우를 보니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 작성자人山 이희순 | 작성시간 26.06.21 그렇군요 사람도 나이와 능력에 합당한 또다른 역할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타이어라는 본래의 기능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몸짓이지만 나름 보람스러운 새로운 인생이라 생각해 봅니다
  • 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1 인생 이모작이라는 말이 있듯이 수명을 다한 폐타이어가 다시 쓰임을 받아 역할을 하고있는 것을 보고
    '그렇지 사람도 그래야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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