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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

천리길을 찾아온 병문안

작성자청석 임병식|작성시간22.07.25|조회수46 목록 댓글 2

천리 길을 찾아온 병문안

 

임병식 rbs1144@daum.net

 

 일전에 나와 갑장인 숙부가 집을 다녀갔다. 숙모와 함께 안사람 병문안을 하러온 것어었다. 7년 전 둘째가 결혼을 할 때 다녀간 후로  오랫만에 발걸음을  한 것이다. 전에 다녀갈 때도  아내는 병중이었다. 와서 환자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전보다 많이 여위었다고 한다. 아니 그렇지 않겠는가.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줄곧 침대에만 누워 있으니 나아질 턱이 있겠는가.

“ 안타깝고 마음이 많이 아프네.”

숙부는 짠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 사이 숙모는 준비해온 봉투를 꺼내어 아내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무표정이었다. 전 같으면 어디 그러고 있을 사람인가. 한사코 사양하거나 아니면 못이긴 척 받으며 고맙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를  지켜보는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숙부는 발걸음이 늦어진 것을 미안해했다. 늘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떨쳐나서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하는 일이 있고 거리도 서울에서 남녘 끄트머리인데  오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나는 그런 말씀 마시라고 말했다. 

숙부는 어렸을 적에  한동네에서 같이 자랐다. 그때는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으로 친척지간 인줄도 몰랐다.  서로 너냐 나냐 어울려 놀면서 보면 어른들이 주의를 주던 기억이 난다. 삼촌에게 그리 말하면 안 된다고 나무랐던 것이다. 당시는 그런 주의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면서  어울렸다.

그러다가 어렴풋이 촌수를 가릴 만 하던 때에 이별을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 가시자 할머니께서 두 남매를 데리고 경기도로 이사를 갔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일곱 살적에 돌아가셨다. 꽃상여가 만들어지고 출상 때에 상여에다 지폐를 꽂아두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런 나와 여섯 살 터울이 지는 아우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당연할 것이다. 아직 떡 애기가 무슨 인지 능력이 있어 기억이 나겠는가.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후실을 들어왔다. 남매를 얻었는데, 숙부는 둘째로 태어났다.

나는 할아버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어디를 다니는 건 보지 못하고 병석에 계실 것만 기억이 난다. 홍옥의 사과를 드시고 계셨는데, 그것을 ‘능금’이라고 했다. 내가 먹고 싶어서 보는 줄 알고는 그것을 한 조각 떼어서 주셨다.

할아버지는 두상이 둥글고 크셨다. 그런 면에서 백부님이나 아버지, 숙부는 골상이 다르다. 그렇지만 후손 두 사람이 많이  닮았는데 한 사람은 바로 고모이고  다른 또 한 사람은 형님이다. 대부분이 얼굴이 긴데 두 사람만 동그렇다. 그중에서도 고모는 할아버지의 판박이다.

하면, 판박이라면 얼굴만 닮겠는가. 할아버지는 풍채가 크시고 배가 많이 나오셨는데 고모 역시도  다르지 않다. 그것을 보면 피는 속이지 못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숙부는 어려서 고생을 많이 했다. 홀어머니를 따라 연고도 없는 객지에 나가 살면서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막노동을 전전하다가 나중에 운전을 배워 택시 기사를 했지만, 그것도 허리측만증이 심해 오래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숙모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근검절약한 생활로 집도 마련하여 노후는 그런 데로 걱정 없이 살아간다.

숙부는 이번에 마음먹고 내려온 것 같다. 먼저 고향마을을 들렀다고 한다. 고향에는 유일하게 사촌형님과 형수가 살고 있다. 다녀와서 들려주는 말을 들으니 그곳사정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나보다 네 살이 많은 사촌형은 청력도 많이 어두워진데다 치매 끼가 있어서 온전하지 않더라고 한다. 형수 또한 허리디스크로 휠체어를 끌고 다니더란다. 절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하기는 철부지였던 나와 숙부도 어언 희수(77세)가 되었으니 그럴 법도 하지 않는가. 숙부는 나의 처지를 많이 걱정하며 위로했다. 그러면서 내가 건강해야 한다며 몸을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런 숙부는 내려와 한 하루도 집에서 자지 않고 떠났다.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미리 호텔을 예약해 둔 것이었다. 해서 나는 기껏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서운함을 달랬다.

이날 나는 새삼 친척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누가 나를 위로해 주고 생각해 주는가. 누가 이렇듯 먼 곳에서 찾아와 손을 잡아 주는가. 역시 무심한 듯 보이나 늘 걱정하며 생각해 주면서 손 내미는  사람이 친척이 아닌가 한다.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때에 찾아와 위로하고 손잡아 준 숙부가 고맙기 그지없다. 그래서 나는 차를 돌려서 떠나는 숙부와 숙모에게  차가 꼬리를 감추고 사라질 때가지 흔들던 손을 내려놓지 못했다.(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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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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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人山 이희순 | 작성시간 22.07.25 무심한 새월을 생각합니다 아니 무상한 세월이라 불러야겠어요 사모님께서 많이 쇠약해지셨다는 말씀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먼 길 마다하지 얺고 병문안 오신 숙부님 내외분을 통해 뒤돌아보신 아득한 시절의 추억들도 왠지 무겁게 다가옵니다
    벌써 중복이 다가왔군요 예사롭지 않은 무더위에 부디 건강 챙기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7.25 오랜만에 문병차 찾아온 숙부와 숙모님을 만나 모처럼 회포를 풀었습니다. 먼길 마다않고 찾아주신 발길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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