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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3

인성의 타락

작성자청석 임병식|작성시간26.06.17|조회수19 목록 댓글 4

인성의 타락

 

임병식

 

한 달에 한 번꼴로 찾는 이발소에 머리를 깎으러 갔다.

“머리가 많이 기르셨네요.”

이발사의 말이 마치 한 달이 훨씬 지나서야 온 것처럼 들렸다.

“한 달은 넘지 않았는데요.”

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여름철에는 머리가 더 빨리 자랍니다.”

사십 년 넘게 가위를 잡아온 사람의 말이니 그런가 보다 했다.

잠시 뒤 그는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

“머리도 덜 빠진 것 같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머리카락은 계절에 따라 자라는 속도도, 빠지는 양도 달라진다고 한다. 문득 털갈이를 하는 동물들이 생각났다. 사람 역시 자연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발아래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생각은 더 멀리 나아갔다.

생물학적으로 인간도 동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과 도덕성을 지녔기에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여긴다. 문제는 그 특별함이 언제나 인간다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동물은 배가 고프거나 위협을 받을 때 공격한다. 반면 인간은 원한과 질투, 집착과 증오를 오랫동안 품고 살아간다. 때로는 그것을 마음속에서 키우다가 끝내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강력 범죄들 가운데는 오래된 원한이나 왜곡된 집착에서 비롯된 것들이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 앞에 서게 된다.

동물은 생존을 위해 싸우지만 인간은 기억 때문에 싸운다.

동물의 공격은 순간에 그치지만 인간의 악의는 세월 속에서 자라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동물보다 더 위험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예부터 “머리 검은 짐승은 함부로 거두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인간의 변덕과 배신을 경계하는 뜻일 것이다. 거친 표현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오랜 관찰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동물에게 없는 능력 또한 있다. 자신의 본능을 성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이다. 인성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타인을 배려하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식과 기술이 사람을 유능하게 만든다면, 인성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이발이 끝났다. 바닥에는 잘려 나간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인간에게도 머리카락처럼 잘라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증오와 질투, 그리고 타인을 해치려는 어두운 마음일 것이다. 그것들을 제때 덜어내지 못할 때, 인간은 스스로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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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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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仁齊 김권섭 | 작성시간 26.06.17 new 이발소라는 친근한 공간에서 출발하여,
    날카로운 인간 본성 성찰을 거쳐,
    따뜻한 人性論으로 歸結되는 明澄하고 品格 있는 인생론적 秀作입니다.^^
  • 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7 new 머리를 자르며 머리가 여름철에는 더 빨리 자란다는 말에 놀랐습니다.
    곧이가 들리지는 않는데 40년 경력의 미용사가 한 말이니 믿기로 했습니다.
    사람이 봄과 가을로 털갈이라는 동물처럼 머리가 많이 빠지는 것을 보며
    동물의 일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데, 동물은 먹이다툼 이외는 복수라는 것이 없는데, 사람은 감정에 따라
    살인도 불러오니 더 위험한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흉악범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작성자人山 이희순 | 작성시간 08:01 new 정기적으로 이발을 하듯 마음속의 나쁜 것들도 그렇게 몰아내야겠어요 인성은 그저 형성되는 것이 아니니 마음과 행실을 가다듬는 일에 개으름을 피우면 안 되겠군요
    이발사의 말처럼 머리칼은 겨울보다 여름에 20% 정도 빨리 자란다고 합니다 온실 속의 작물을 떠올려 보니 이해가 되네요
  • 작성자청석 임병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25 new 인간이 이성을 잃고 저질은 범죄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많기도 하고,
    그 잔혹성을 치를 떨게 합니다.
    잘려자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마음속에 있는 나쁜 것들도 당연히 잘려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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