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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마당

자평진전, 난강망, 적천수

작성자fiend|작성시간08.06.20|조회수593 목록 댓글 13
4. 격국론과 억부론의 충돌

억부론과 조후론의 충돌은 취사선택의 문제이고, 오류의 문제이지만, 격국론과 억부론의 충돌은 약육강식의 문제이고, 붕괴의 문제이다. 오늘도 싸우고 있다. 용신과 상신의 용어적 개념정립부터 시작한 난투는 결국 멀쩡히 영면을 즐기고 계실 서락오스님마져도 관을 깨고 꺼내 부관참시를 시킨다. 억부론과 조후론의 문제는 존재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관계론적인 문제인데도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 하나의 객체로 격상시킨 채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일간과 월령의 문제! 이것의 근본적 좀 더 본연적인 곳까지 탐구의 영역을 확장시켜야 한다. 성리학계는 오랜 기간 이기논쟁의 과정을 경험했다. 이것은 성리학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에 기인할 것이다. 하지만, 성리학에 비해 사회적 가치와 위상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명리학은 이러한 논쟁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채 그 숙제를 고스란히 후대에 전가시켰다. 성리학의 이기논쟁이 있다면 명리학에는 격국억부논쟁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싶다. 그럼 과연 격국론과 억부론에 대한 올바른 접근방식은 무엇인가? 우선 통시적적인 고찰이 전제되어한다. 과연 격국론의 토대적 세계관과 억부론의 토대적 세계관은 무엇인가? 격국론은 월령이 상황을 주도하고 억부론은 천간이 상황을 주도한다. 혹자는 격국론의 논쟁에 임함에 있어 격국론은 억부론을 아우른다고 주장한다. 심효첨의 자평진전을 제시하며 심효점이 저서에서 일간의 강약을 논외로 하지 않았음을 강변한다. 자평진전에서도 심효첨은 身重과 身輕의 용어를 사용하여 격국을 성립할 때 일간의 강약을 고려하고 있음을 은근히 암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평진전을 연구한 연구자라면 공감할 수 있듯이 살짝 격국론의 논리가 미치지 않는 일부 부분에 있어 첨가제 정도의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격국론에서 말하고 싶은 결과적인 주장은 무엇인가하는 것이 대두되는데, 격국론은 결국 환경결정론적 이기론의 관점을 채용하고 있다. 자평의 생몰기간의 정치적 성향을 미루어 판단해도 그러하고, 연해자평에서 자평이 직술했다는 부분의 문체나 용어나 일관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경향을 미루어보아도 그러하다. 왕충의 정명사상을 직접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자평의 권형은 자평의 것이 아니라 왕충의 것이다. 따라서, 명조의 궁극적인 체는 환경요인인 월령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억부론적인 관점은 어떠한가? 물론 체의 구분을 위한 카테고리의 인덱스로 격국은 채용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은 기술의 편의를 돕기 위한 인덱스의 가치이상은 지니지 않는다. 여러가지의 정황을 고려하고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적천수등에서 논하고 있는 중화는 나(我)에게 집중되어져 있다.
과연 그러한가. 세계관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주기적 관점으로 편향될수도 혹은 주리적 관점으로 편향될 수 밖에 없음은 피할 수 없는 경향이다. 하지만, 존재라는 것은 포이어바흐의 관점처럼 물질적, 자연적, 객관적 실재임을 인정할 때 환경은 자아에 반드시 영향을 미치지만, 그 영향은 자아의 선택적 의지에 의해 변형도 선택도 가능하다는 포괄적 존재론의 전제가 우선 철학적 무장의 필요성으로 대두된다. 얼마전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서 격국론과 억부론을 비유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비교하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쉽게 생각이 전개가 되어 전자를 관념론적으로 후자를 유물론적으로 비교했을 때 이것은 본말을 완전히 전도한 것이었다. 하지만, 좀 더 일상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시 그 사이트의 필자가 하고자 하는 기본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을 고려해서 용신을 정하는 것이므로 민주주의이고 주변상황은 2차적인 것이고 일단 자아를 중요시하니까 공산주의다라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물론 두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철학적 기저를 충분한 지식적 기반으로 이해하지 못함을 인정할 수 있으나 그 관점만은 신선하다고 볼 수 있다. 격국론은 유물론적 관점의 환경결정론이고, 억부론은 관념론적 환경선택론이다. 이것은 명확해 보인다. 명리학이 이데올로기적 접근이 가능한 정치적 경향이 아닐 진데 고대의 명리학자들은 정치적 경향을 고스란이 자신의 이론 속에 녹여 숨겨두었다. 현재의 의무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깨고 보편타당한 합법칙성을 담보해야하는 것에 있다.

5. 천간과 지지의 인식문제

천간과 지지문제는 이제 좀더 활발하게 서양의 실용학문의 개념을 차용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얼마전 모 지방국립대의 명리학과정의 논문발제를 도왔던 적이 있었다. 근래 국내 명리학계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는 듯한 심리학과 명리학의 크로스오버 시도에 관한 논문이었는데 아주 심각한 벽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십수년의 실전 경력을 가졌다고 한 학생이었는데 반자단선생이나 하건충선생의 원문에 대한 감수를 목적으로 했지만, 그가 가진 보편적 학문의 기반이 심각하게 일천한 것을 이유로 소기의 목표는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우선 융의 심리학을 학문적 도구로 해야만 접근이 가능한 테마임에도 융의 심리학에 대해 전혀 이해하고 있지를 못했다. 이 장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천간과 지지의 인식문제인데 갑작스럽게 도구학문의 이해를 거론하는 것은 이 간지의 인식문제와 현대적 지식의 이해문제는 다르지 않다는 관점에서이다. 과연 천간의 오행은 무엇이고, 지지의 오행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기질론을 이야기하면서 에너지나 질량을 논의의 소재로 채용하지만 과연 에너지나 질량의 본질적 의미와 학문적 기재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직 국내명리학계는 토굴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떤 영기가 뛰어난 산의 한 토굴에서 몇년 혹은 십수년을 수도해서 깨달은 것이라고 자신의 이론을 주장한다. 그러한 각성을 폄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성립된 이론을 확산시키는 과정에서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럴듯한 이론으로 포장하려는 의도는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 포장재로 사용한 이론의 적합성과 정확성은 논외로 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용어나 이론을 사용할 경우 보편성은 무시한채 토굴에서 운명감정의 어떠한 도를 깨우치듯이 용어 자체나 이론 자체를 깨닫고 사용한다. 소수의 도제를 양성하는 과정에서는 무방하다. 하지만, 서적을 출판하고, 인터넷을 이용해 자신의 이론을 설파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폐해는 두드러진다. 이렇게 된다면 명리학은 영원히 어둠의 학문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천간과 지지의 인식문제는 이러한 전제가 수용될 때 만이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한 인식이 획득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진춘익 선생의 팔자명리신해를 번역 출판한 국내의 한 명리서적은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서적의 필자와 의견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양의 기본적 심리학 체계와 방향을 이해하고 있는 학문적 역량도 대단하고 모호하기로 유명한 진춘익선생의 문체가 가지는 어감을 전문적으로 번역을 하는 학자이상으로 정확하고 생동감있게 표현해 내었다.



6. 천간과 지지에 대해

7. 십성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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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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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fiend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6.20 ㅋㅋㅋㅋ(잘난척 중...^^))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fiend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6.20 안 읽으면 됩니다. 피부미인님.
  • 작성자우담 | 작성시간 08.06.21 상담심리를 공부하는 학생인데 우리명리학과 심리학의 만남이 계속 기대가 됩니다. 자료있으면 부탁해도 될까요 참고로 저는 한문으로된 책못 읽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fiend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6.21 우담님께서 확실히 원하는 서적은 아닐 듯 하지만 낭월스님의 서적을 권하고 싶네요. 제가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시도의 자세는 인정하고 싶은 책입니다. 님같으신 분들이 명리학을 좀더 공부하셔서 전공과 결합시키면 아마 심리학분야에서나 명리학분야 모두 발전이 있을 거란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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