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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학]주역의 기본 원리와 개념(기초 자료)

작성자周易人|작성시간19.04.17|조회수3,549 목록 댓글 6

 

 

 

주역의 원리 중에서도 간략한 내용들입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스스로 더 공부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번 수정을 해봐도 제 성에 차지 않아서 시원찮습니다

비록 내용의 깊이가 일정하지 못하거나 불편한 내용이 있더라도 

또 다소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거나 곁가지들이 있더라도

너무 불쾌해하지 마시고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주역을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점술가로서 학술적인 내용을 염두에 두고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편의상 존댓말은 생략했습니다

 

 

 

 

 

2. 주역의 기본 원리와 개념

 

 

 

 

   천주교 신자였던 정약용 선생은 점술이란, 점치는 사람이 초자연적인 존재와 접촉함으로써, 그것을 매개로 일의 징조나 징후를 읽어서 그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제정일치 사회였던 은()나라는 왕을 천자(天子) , 신의 뜻을 대리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의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울 때 천명(天命)을 바꾼다는 뜻의 개명(改命) 혹은 혁명(革命)이라고 말했다. ()나라에 와서도 여전히 은()나라의 거북점은 잔존해서 시초점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나라가 무너진 뒤로는 값비싼 거북이 필요한 거북점은 사라지게 되었고 누구든지 점칠 수 있는 시초점이나 척전점이 유행했다. 인간은 점술을 통해서 그것이 운명이든 혹은 우주나 신이든 간에 그와 통함으로써 앞에 마주한 사건의 길흉이 어떨지 예측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 결정을 내렸다. 그리스의 델포이 신탁처럼 그 말의 의미가 모호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대로 실현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시대나 나라마다 그 수단이 달랐을 뿐이다. 은나라는 뼈점과 거북점이 사용되었고, 주나라 이후로는 거북점 대신에 시초점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다만 그 점괘에 대한 기록이 통상적인 기록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정약용 선생도 주역을 기호적인 특성을 간과하고 논어나 맹자를 읽듯이 하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잘못 이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미 앞에서 주역의 괘·효사들의 변천사와 고려해야 할 것들을 밝힌 바 있다.

 

 

 

   주역은 크게 의리학파와 상수학파, 둘로 구분된다. 의리학파는 특정한 사건과 때가 가진 의미(의리)들과 길흉, 중용을 중시한다. 어떤 이유로 그것이 흉하거나 길하고 혹은 허물을 면할 수 있는지 간략한 예측에 그치지 않고 더 구체적으로 그것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흉하거나 길한지 예측한 것이 상수학파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의리학파가 단순했던 주역 괘·효사에 철학성을 부여했다면 수리학파는 점의 구체성(현실성)을 부여했다. 현실에서는 그 구체성이 필요하고 그 구체성은 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상수학파는 탄압받기도 했다. 상수학파는 나라가 혼란스럽고 왕조가 바뀔 때마다 유행했던 참위설(讖緯說)의 근거가 되었기 때문에 왕조를 전복하려는 세력들은 참위설을 이용해서 소문을 퍼뜨렸고 기존 지배 세력은 그것을 막아야 했다. ··도교의 종교 교리들이 의리학파 속에 녹아들면서 안정된 삶과 사회를 원했던 백성들과 그들을 지배하려는 지배 계층 사이의 타협점이 되었다. 주역을 관학(官學)으로 삼아서 등용문으로 삼되 과도한 예측에 편향되어 있던 상수학파는 배척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주도적이었던 의리학파와는 달리 상수학파는 근근이 살아남았다. 표면적으로는 지배적인 영향을 발휘했음에도 변화에 소극적이던 의리학파와는 달리 수리학파는 민간에서 자유롭게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사변적인 카발라가 엄격한 교육에 의해서 소수에게 전승되었던 반면에 실천적인 카발라는 민간에서 온갖 마법 지식이나 민간 신앙, 연금술, 점성학과 접목되면서 자유롭게 발전했던 것과 동일하다. 어쩌면 수리(數理)에 대한 추구는 기본적인 욕구인지도 모르겠다. 주역 이전에도 숫자로 치는 점이 있었고 상주시대에는 복서(卜筮) , 거북점과 시초점이 유행했고 전국시대에는 일자의 술법1)이 크게 유행했었다. 상수학파는 음양오행설과 납갑(納甲)을 주역에 적용시켜서 주역괘를 시간적인 변화 즉, 역법(曆法)과 연계시키게 되자 의리학파와는 확연히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고전에 기록된 주역 해설에는 괘명이나 괘사 혹은 괘상, 효사 혹은 팔괘로 풀이한 것은 있어도 陰陽이나 로 풀이한 것은 없었다. 음양론과 오행론은 각각 존재하다가 음양오행론이 되었고, 주역 뿐만 아니라 유행했던 여러 점술들 속에 녹아들었다.

  

 

1) 리링에 의하면 중국의 점술에는 상주시대에 유행했던 거북점과 시초점인 복서(卜筮), 전국시대와 진한시대에 유행했던 일자(日者)의 술법(術法), 꿈에 대해서 점치는 점몽(占夢), 미신적인 방법을 써서 재액을 없애는 염핵(厭劾), 풍재나 한재, 흉한 일을 막는 사양(祠禳), 관상법인 상술(相術), 산수의 형세를 살피는 풍수(風水) 등이 있다. 특히 한나라 시대에 유행한 점법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당시에는 주역 괘를 4 계절, 12 , 24 절기, 72 절후에 연계해서 역법과 결합시켜 점을 쳤는데, 卜筮가 쇠퇴하면서 시초점이 거북점에서 떨어져 나와서 일자의 술법과 결합했다. , 당시에 가장 권위 있던 거북점에 붙어 명성을 얻던 시초점이 후대에 날짜를 택하는 일자의 술법에 붙어 새로운 점법이 되었다. 당시의 날짜는 납갑(納甲)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물질 우주는 음양(陰陽)으로도 충분히 묘사가 가능하다. 부모, 생사(生死), 주야(晝夜), 동정(動靜), 선악(善惡), 상하(上下), 호불호(好不好) 등등 음양만으로 설명되는 것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것도 있다. 좋아하지 않는 것이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싫어하지 않는 것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물을 두 가지 범주로만 설명하는 것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극단적인 둘이 아닌 사계절을 범주로 삼아서 만물을 설명할 수도 있다. 그것이 사계절인 겨울, , 여름, 가을인 태음, 소양, 태양, 소음인 사상(四象)으로 간주해도 좋다. ‘오행’(五行)은 사상(四象)과 같다. ()는 목화금수(木火金水) , 4 계절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가 일어나는 땅(배경)인 동시에 계절과 계절 사이의 간절기와 같아서 그 넷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사상(四象)으로도 묘사하기 어려운 것들은 팔괘(八卦)를 통해서 묘사가 가능하다. 이것은 ‘2³’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3 차원 물질 우주에 대한 상징이다. 음양과 오행을 본성과 관련된 것들의 상징으로 보면 팔괘는 본성을 내재한 형상들에 대한 상징이다. 팔괘를 아래로부터 위로 중첩시키면 거기에 시간의 변화도 묘사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4 차원의 시·공간복합체를 상징하는 것이 주역의 대성괘인 셈이다. 그러나 사실은 시초점(蓍草占)의 결과를 기록한 것이 대성괘(주역점)이고, 그것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의 결과물로써 파생된 철학적인 관념들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소성괘(팔괘)를 비롯한 여러 철학적인 개념들은 기초적인 수준의 대성괘와 괘사 혹은 괘·효사들을 가졌던 시초점을 장식하기 위해서 훨씬 후대에 주역 속에 덧붙여진 것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주역 뿐만 아니라 카발라를 비롯한 여러 종교·사회적인 큰 흐름의 발전사들은 대부분 동일한 과정을 거쳐 왔다.

     

 

 

   주역에서는 수()에도 음양(陰陽)이 있다. 홀수는 남성이자 양()이고, 짝수는 여성이자 음()이다. 1-5 까지의 숫자를 생수’(生數) , ‘선천수라고 부르는데 선천수에 5 씩 더해진 6-10 까지의 숫자를 성수’(成數) , ‘후천수라고 부른다. 생수에서 홀수인 1, 3, 5 는 양수(陽數)이고 짝수인 2, 4 는 음수(陰數), 양수의 총합은 ‘9’(1+3+5=9) 이고, 음수의 총합은 ‘6’(2+4=6)이다. 그래서 ‘9’()가 양수를 대표하고 ‘6’()은 음수를 대표한다.2) 이것은 시초점의 원리와도 관련성이 있다. 시초점을 통해서 얻는 영수(營數)‘6, 7, 8, 9’ 인데, 그 중의 ‘6’ 은 음수 중에서 가장 작은 태음(太陰)이고, ‘9’ 는 양수 중에서도 가장 큰 태양(太陽)이기 때문에, 주역의 효사들을 말할 때 양효에는 구(), 음효에는 육()을 붙여 표시한다. 초효는 초(), 6 효는 상()을 앞에 붙이고 나머지는 2, 3, 4, 5를 아래로부터 순서대로 숫자를 써서 표시한다. 초효와 상효는 을 먼저 말하고 그 뒤에 음양을 표시하는데, 나머지 효사들은 음양(6,9)을 먼저 말하고 그 뒤에 해당하는 숫자(위치)를 붙인다. 효사들 중에서 가장 아래의 효사에는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를 붙이고 가장 위의 효사에는 ’()을 붙인다. 그것은 효사 하나하나의 변화가 시공간이 하나로 결합된 세상에서의 특정 사건()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초효와 상효는 하나의 괘에서 중요한 사건의 시작과 끝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지위가 없다고도 말한다. 그것은 시작과 마침이라는 시간적인 변화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초효(初爻)와 말효(末爻) 혹은 하효(下爻)와 상효(上爻)라고 부르지 않고 초효와 상효라고 말하는 이유는, 공간적인 지위와 시간적인 성숙도를 동시에 상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상효(上爻)가 마침이자 위()로서 충만함을 상징하는 반면에, 초효(初爻)는 시작이자 아래()인 동시에 아직은 미천한 궁함()을 상징한다.

 

2) 양효는 발기한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고, 음효는 구멍이 있는 여성의 성기(--)를 상징한다. 수비학적으로 ‘0’은 무한(무극)인 신을 상징하고, ‘1’은 완전수(태극)를 상징한다. ‘2’는 말하자면 만물을 낳는 어머니요 물인 음()이고 ‘3’은 그의 아들이자 불인 양()이다. 점서역과 도서역이 결합한 개념인 삼천양지(參天兩地) , 양은 ‘3’이고 음은 ‘2’의 비율이나 책수의 개념이 되었다. 그것을 양효(3)와 음효(2)의 형태와 관련시켜 중간이 비어있는 음효(- -)는 양(3)2 개라서 ‘3*2=6’이 되지만, 중간이 이어져있는 양효(---)는 양(3)3 개라서 ‘3*3=9’이 된다.

 

 

   예를 들어 4 번째 주역괘인 산수몽(山水蒙)의 경우에 아래에서 첫 번째 효사는 초육(初六)이라고 부르고 2 번째 효사는 구이(九二)라고 부르고 3 번째 효사는 육삼(六三)이라고 부르고 4 번째 효사는 육사(六四)이라고 부르고 5 번째 효사는 육오(六五)라고 부르고 마지막 6 번째 효사는 상구(上九)라고 부른다. 대체적으로 초효와 상효를 가리켜서 지위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특정 상황()에서 초효와 상효는 그 큰 흐름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효와 4 효는 각각 하괘와 상괘에서 일종의 시작의 어려움이 들어있고, 2 효와 5 효는 중용의 덕으로써 일을 성취하는 기쁨이 있지만, 3 효와 상효(6 )는 하괘와 상괘에서 그 덕이 지극해서 조만간 바뀌기 때문에 마침의 어려움이 들어있다. 대성괘에서 허리에 해당하는 3 효와 4 효는 의심이 있어 머뭇거리는 불안정성이 들어있다. 보통 가장 위태로운 3 효를 넘어서면 그 때와 사건의 중간을 넘어섰기 때문에 점점 더 무르익어 간다고 말한다. 주역의 가장 기본 원리는 지극하면 변하는 상대성과 유동성에 있어서 시작과 끝이 맞물려있는 순환적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주역 64 괘의 마지막에 미완성인 미제(未濟)가 놓여있다. 이미 성취한 완성의 때인 기제(旣濟)에 오히려 붕괴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주역은 안정(완성)할 때 불안정(미완성), 불안정할 때 안정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주역의 6 개 효사에는 각각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귀()하고 천()함이 있다. 즉 효사의 위치에 따라서 그 지위에 걸맞는 역할과 분수가 있기 때문에 위치를 살피는 것은 길흉을 살피는 것과도 관련성이 있다. 예를 들어 초효는 백성()에 상응하고 2 효는 하급 관리인 형리()에 상응하고 3 효는 특정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에 상응하고 4 효는 조정에 등용된 대신에 상응하고 5 효는 군주()에 상응하고 상효는 국사(國師)나 물러난 상왕에 상응한다. 초효와 상효는 앞에서 말했듯이 시작과 마침의 의미도 있다. 주나라의 봉건제도는 천자가 3 ()과 제후()를 두어서 여러 제후국들을 다스렸고, 제후들은 경()과 대부(大夫)들을 두어서 다스렸고, 대부들은 형리()들을 두어서 백성들을 다스리게 했다. 이것은 현대적인 의미로 변형시켜서 적용해야 할 것이다. 초효는 보통 해당하는 사건과 그 순간에서 윗사람에 의해서 통제되는 대상으로 윗사람을 따르는 아랫사람이고, 2 효는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실무자를 가리키고, 3 효는 자신만의 영역을 가졌지만 그것을 유지하거나 혹은 확장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다. 위로 나아갈지 아니면 그냥 머무를지 선택해야 하는 불안정한 요소가 들어 있다. 역사적으로 지방의 제후가 왕이 된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비록 3 위가 주도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일종의 잠룡과도 같다. 4 효는 그 때와 사건에서 가장 주도적인 사람을 보좌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5 효는 그 때와 사건에서 가장 주도적인 사람이다. 아랫사람을 부리는 오너거나 높은 지위의 사람에 해당한다. 6 효는 높은 지위에 있었다가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이나 스승에 해당한다.

 

 

 

   주역에서의 괘()를 왕필은 특정한 ’()로 간주했고 효()는 그 때에 알맞게 변화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정이천은 괘를 특정한 일()로 간주했다. 인간사의 여러 사건들과 상황들을 괘로 간주했고 효사는 그것들 속의 다양한 시점(時點)으로 간주했다. 효사들은 전체 괘가 의미하는 포괄적인 상황에서도 보다 더 구체적인 상황을 가리킨다. 따라서 주역 점()을 살필 때는 반드시 먼저 때와 사건을 살피고 그 뒤에 효사()와 괘상(卦象), (), 본성(陰陽), (), 관계(應比)를 살펴야만 한다. 본성이란 강유(剛柔) , 음양(陰陽)으로 구분된다. 양강(陽剛)은 재능이 있어 그 뜻을 발산하며 위로 나아가는 성질이고, 음유(陰柔)는 재능은 없지만 부드럽고 수용적이며 아래로 가려는 성질이 있다. 애초에 본성은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단지 그것을 활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덕()은 본성(자질)과 달리 이치()를 터득해서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따라서 본성(자질)과 덕()은 그 성질이 다르다. ()에는 중()과 정()이 있는데, ()보다 중()이 더 중요하다. ()은 양효(陽爻)가 홀수 자리인 1, 3, 5 째 자리에 오거나 음효(陰爻)가 짝수 자리인 2, 4, 6 째 자리에 오는 것이다. 그것을 올바르다() 혹은 정위(正位)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양효가 양위에 오면 다소 과강하거나 망동하기 쉽고 음효가 음위에 오면 너무 과손(過遜)하거나 결단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은 그렇지 않다. 아래로부터 2 번째 효사는 하괘의 중()이고 5 번째 효사는 상괘의 중()인데, ()은 과도하거나 부족하지 않아서(中庸) 대체로 길하다. 그래서 정()보다는 중()이 중요하다. 비록 올바른 정위(正位)에 있어도 너무 과도하거나 시작부터 지나치기 쉽다. ()은 처한 지위()와도 관계가 깊다. 언제나 사회적인 지위 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성숙도를 고려해야 한다. 효사들은 특정한 본성(자질)과 덕()을 가지고 특정한 지위()와 때()에 처해있지만 그렇다고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위아래의 다른 효사들 사이의 관계(應比)도 살펴야만 한다. 그리고 주역 64 괘에는 그 사건()에서 중요한 의리(義理) 혹은 상리(常理)라고 부르는 이치가 존재한다. 그 의리는 비록 손해일지라도 마땅하면 취해야 하고, 이익이라도 마땅하지 못하면 취하지 않아야 한다. 주역이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훔쳐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묻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왕필이 주장한 주효(主爻)라는 개념도 재미있다. 어느 괘든 간에 가장 중요한 효사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건위천()의 구오나 곤위지()의 육이, 천풍구()의 초육, 산지박()의 상구, 지뢰복()의 초구, 수풍정()의 구오가 그러하다.

       

 

 

   주역 점을 통해서 얻은 괘상과 괘·효사들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다소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괘명과 괘상을 통해서 때로는 비유적인 괘·효사들을 통해서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효사들은 점사(占辭)이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이의 점 사례나 자신의 경험도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것을 위해서 괘·효사를 음미할 상상력여유가 필요하다. 주역을 굳이 구분하자면 크게 상()과 언어(), 의리(), 점사() 이렇게 넷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계사전에서도 성인의 도()가 넷이 있는데, ()와 상(), () 그리고 점()이라고 말했다. 말로 표현된 것이 괘·효사()이고, 움직이는 것이 변화()이고, 구체적인 사물들에 대한 상징들이 괘상()이고, 실제적인 길흉을 말하는 것이 곧 점사()이다. 춘추 전국시대에도 본괘(本卦)와 변괘(變卦)를 얻게 되면 사()를 살피고 괘상과 괘명을 살핀 뒤에 인사()를 살폈다고 한다. 유학자들도 신()과 위(), (), (), ()을 차례로 살폈다고 한다. 괘의 상()은 일종의 추상적인 원형이자 큰 틀의 그림과 같아서 성인이 상()을 보고 주역 속의 괘·효사들을 지었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괘상을 살피는 것은 곧 그 순간의 세상을 살피는 것으로, 그 사건과 때를 정확히 괘상화시킬 수만 있다면 그 일들 속에 내재된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다. ()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예시)을 통해서 세상사를 표현한 것이다. 정해진 상징과 상()에는 여러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취해서 글자로 표현된 것이 괘·효사()이다. 괘가 상징하는 추상적인 원형()과 현실 속의 구체적인 의미인 점사(占辭)를 팔괘가 연결시켜준다. 그 연결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설괘전(說卦傳)이다. 그러나 성인이 계사전(繫辭傳)에서 이미 밝혔듯이 문자는 말을 모두 표현할 수 없고 말은 의미를 모두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원형인 상() 이면에 담긴 의미()와 언어 이면에 담긴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효사들과 상전(象傳)과 단전(彖傳)의 해설들은, 그 글이 기록되던 그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들과 그 전후의 배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상수학파가 탄압받고 의리학파가 주를 이루게 되자 ()은 의미를 간직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에 의미를 얻으면 상을 버려도 된다.’는 왕필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상()보다는 언어와 철학적인 의미들이 우선되었다. 왕필은 노장 사상에 심취한 사상가로서, 도가(道家)에서는 참다운 인식을 위해 언어와 대상을 모두 초월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도가의 관점에서는 언어나 상징이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괘상이 상징하는 것에 대한 일정한 규칙이 없다면 자의적인 해설이 될 수밖에 없다. ‘설괘전은 주역의 해설에서 일종의 공통의 규약과 같다. 상수학파의 해설 관점도 주역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의미는 상()과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효사에는 수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취해서 구체적인 괘·효사로 묘사했을 뿐이다.

  

 

 

   길흉에 대한 결과는, ·효사들 속에 점사(占辭)라는 형태로 삽입되어 있다. ()은 일반적으로 두루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고, ()은 그 중에서 구체적인 특정 사건을 가리킨다. 주역에서 상()이 갖는 역할은, 온갖 구체적인 사례들을 모두 기록할 수 없는 점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양한 함축성을 가져야 한다. 애초에 주역은 일상사 속에 가득한 의미들을 살펴서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려는 것이다. 그 의미들은 그저 처한 상황에서 욕심을 내려놓기만 해도 알아차릴 수 있음에도, 욕심 때문에 그 상황 속에 들어있는 의미와 처세, 길흉을 깨닫지 못한다. 주역 속의 상황과 의미들 그리고 예시로 기록된 내용들이 지금의 관심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과연 제사를 드리면 이롭다는 뜻이나 유부연여(有孚攣如), 진여최여(晉如摧如), 비구혼구(匪寇婚媾), 군자유종(君子有終), 왕격유가(王假有家), 귀매이수(歸妹以須), 견양회망(牽羊悔亡) 등의 의미를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양과 소를 잃고 강을 건너고 혼행이나 양을 끌고 가는 것의 의미가 현대인들의 가슴에 와 닿기는 쉽지 않다. 대다수의 점사들이 그런 식이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점을 쳤던 목적도 달랐다. 제정일치 사회에서 제사는 그저 신성한 예식일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는 수단과 같아서 전쟁이나 재앙이 일어나면 예외 없이 제사부터 모셨다. 게다가 괘·효사들에는 점사가 뒤섞여 있다. 아마도 후대에 동일한 점괘에서 발생했던 사례들과 그 길흉을 추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괘·효사를 살필 때, ()과 의미에 대한 언급과 점사(占辭)에 대한 언급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한자의 의미, 시대적인 풍습이나 고사들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그 시대의 사회상과 문화를 도외시하고 글자의 의미만 좇으면 자칫 엉뚱한 해설이 되고 말 것이다.

    

 

 

   주역 64 괘에 붙여진 괘명(卦名)과 의리들을 괘상(卦象)과 효사들의 내용 그리고 위()와 주효(主爻), 관계()와 연관 지어 살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역괘의 이름과 순서, 의리는 후대에 정립된 것으로 다소 인위적인 것이다. 그저 괘·효사에 기록된 말의 의미만 좇지 말고, 괘의 상()과 효사의 위치 그리고 그들 간의 관계를 잘 살펴서 전체적으로 길흉을 판단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런 괘·효상과 괘·효사 사이에 어떤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주역이 변화·발전하는 중에 괘·효상과 괘·효사 사이에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인과관계가 형성되도록 추가된 것이다. 과도한 의미 부여는 결국 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처음에는 상()과 수()를 위주로 해서 괘·효사를 해설하는 상수학파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왕필 이후로 상수학파는 몰락하였고 의리학파가 상당한 기간 동안 주류를 이루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는데 왜 아직도 손가락을 보고 있는지, 달을 보았으면 이제 손가락은 잊으라고 말했다. 아마 상수학파가 도전괘와 호괘, 착종괘3) 같이 자유롭게 괘상의 변화를 주면서 그 의미를 추론하는 여러 방법을 개발하게 되자, 처음에 괘·효사에 부여되었던 의미와는 거리가 발생하게 된 것을 꼬집는 말이기도 하다. 정약용 선생도 상수를 활용한 점법이 어리석은 백성들을 미혹했기 때문에 심지어 잡술이라고 치부하면서 수()를 노골적으로 경시했다. 그러나 특정한 괘·효사에 주어진 의미가 어떤 상수(象數) 원리와 연관된 것인지 추정해보는 것도 좋다. 비록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납갑과 음양오행, 수비학과 매화역수, 명리학, 현대적인 심리학이나 타로조차도 주역과의 연결은 나름의 유익이 있다.

 

 

3) 괘상을 살피는 방법에는 도전괘, 배합괘, 호괘, 착종괘 등이 있다. 주역은 2 개의 팔괘(八卦)가 위아래로 짝을 이루고 있는 대성괘(大成卦)가 최소단위이다. 아래의 팔괘를 하괘’(下卦) 혹은 내괘’(內卦)라고 부르고, 위의 팔괘를 상괘’(上卦) 혹은 외괘’(外卦)라고 부른다. 정약용 선생은 아래의 내괘가 점의 주체(사건)를 상징하고 외괘는 주체(사건)의 배경(상대)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러나 매화역수는 작괘 원리로 보면 상괘가 점의 주체인데, 세응(世應)을 사용하는 경방역전의 영향으로 동효가 없는 팔괘를 점의 주체로 삼은 반면에, 동효가 있는 팔괘를 배경으로 삼았다. 대성괘를 위아래의 소성괘로 구분해서 살피는 해설방법은 상수학파가 주로 활용한 방법이었다. 도전괘는 상괘와 하괘를 거꾸로 뒤집어 살피는 것이다. 모든 상황은 지극하면 역전되는 법이고, 그 선후관계가 있는 인과관계를 살핀다. 배합괘는 음양을 모두 반전시켜 살피는 것으로, 지금의 환경과 반대되는 상황에서 살피는 것이다. 호괘는 2-4 번째 효사로 구성된 내호괘와 3-5 번째 효사로 구성된 외호괘로 나뉜다. 내호괘는 나의 성격과 상대방에 대한 나의 태도이고, 외호괘는 상대방의 성격과 나에 대한 상대방의 태도를 뜻한다. 착종괘는 도전괘와는 달리 내괘와 외괘를 뒤집지 않고 그저 상하의 위치만 바꾼 것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주역의 대성괘를 구성하는 두 개의 팔괘를 음양오행으로 살피는 것은 경방의 영향이다. 물론 그가 없었더라도 누군가가 했을 일이기도 하다. 모든 점술들은 시대마다 유행하던 점술과 교리, 교훈들이 스며들었다. 단순히 팔괘의 의미로도 충분히 풀이는 가능하다. 각각의 효사들 사이의 상응 관계를 살펴볼 수도 있다. 효사의 관계에는 응(), (), (), () 등이 있다. ()은 상괘와 하괘 둘 간의 음양관계이다. 상하괘 각각에서 동일한 위치에 있는 효사들의 관계이다. 음양이 맞으면 짝이 되어 정응(正應)이라 부르고 정응이 아니면 적응’(適應)이라 부른다. 산수몽의 경우에는 초육과 육사는 정응이 아니라 적응이고, 구이와 육오 그리고 육삼과 구삼은 정응이다. ()는 위아래로 서로 인접한 효사들 사이의 음양관계를 가리킨다. , 초육과 구이, 구이와 육삼, 육삼과 육사, 육사와 육오, 육오와 상구 사이의 음양관계이다. 음양이 맞으면 친비(親比)라고 한다. 조금 더 상세히 나누면 음이 양 위에 있으면 탈 ’()이고 반대로 양이 음 위에 있으면 태울 ’()이라고 한다. 대체로 양을 올라탄 음에게는 위태로움이 있다. 주역의 응비에서 2 효와 5 효 사이의 응() 그리고 4 효와 5 효 사이의 친함()이 특히 중요하다. 그래서 공자도 비록 왕을 받드는 것은 동일해도, 멀리서 받드는 2 효가 가까이에서 받드는 4 효보다 명예가 많다고 했다. 왕의 측근에서 받드는 4 효는 강한 양효보다 부드러운 음효가 좋다. 그것은 음효가 음위(陰位)에 오는 것이 올바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재능있는 양효가 4 효에 오면 바로 위의 왕에게 근심(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사 즉, 음위(4 )에 있는 양효는 위()가 바르지 못해서 위태롭다. 그러나 측근이 아니라 멀리에서 왕을 보필하는 2 효는 비록 양효가 오면 바르지는 못하지만 재능 있는 양효가 더 낫다. 그래서 공자는 2 효는 명예가 많고 4 효는 근심이 많다고 말한 것이다.

    

 

 

   ()는 어떤 특정한 사건과 시기를 뜻하지만, ()는 변하기 마련이다. 비록 한 때 길()하더라도 반대로 변해서 흉()이 되기 때문에, 괘는 서로 반대로 마주하고 있다. 누구나 길함은 취하고 흉함은 피하고 싶지만, 언제나 길함을 얻기는 쉽지 않고 차라리 잘못을 고쳐서 허물을 면하는 것이 더 낫다. 길흉에는 때가 있어서 때를 범하면 안 되고, 나아가고 그침에는 적절한 시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놓쳐서도 안 된다. 그런 이유로 정이천은 때()를 알고 시세(時勢)를 아는 것이 역()을 배우는 큰 방법이라고 했다. 길과 흉은 단순히 얻고 잃음을 의미하지만, 단순히 한 순간의 얻고 잃음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비록 지금은 조금 얻어서 이롭고 형통해도 마냥 그것만을 고집하면 인색()하고 비록 지금은 조금 잃어서 이롭지 못하고 형통하지 못해도 후회()하고 돌이키면 형통하게 될 수 있다. 후회와 인색함은 비록 흉()하지만, 걱정()하고 그것을 고치면 허물을 면할 수가 있다.(无咎) 노자는 너무 아끼면 반드시 크게 손해를 보게 되고, 많이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 () 중에서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욕심을 부리다가 화를 자초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길흉은 단순히 욕심에 나아가는 움직임 때문에 초래된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언제나 상황과 때는 일정하지 않다. 그저 합당한 이치와 도리를 잃지 않는 것이 중도’(中道)이고, 망동하지 않고 마땅한 자리에 머물러서 허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올바르다.

 

 

 

 

[  참  고  서  적  ]

 

 

 

 

- 대산 김석진 선생의 주역 강해’, ‘주역 점해

- 김상섭 선생의 주역점의 이해’, ‘바르게 풀어쓴 주역 점법

- 리링의 주역강의

- 장치청의 주역 완전해석’(周易全解)

- 심의용 박사의 주역’ : 이천 역전 완역

- 임채우 박사의 주역 왕필주

- 김승호 선생의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 인문학

- 최정준 박사의 주역 개설

- 신원봉 선생의 인문으로 읽는 주역

- 남회근 선생의 주역 계사 강의

- 김인환 선생의 주역

- 황태연 선생의 실증주역

- 김진원 선생의 알기 쉬운 역의 원리

- 김상섭 선생의 춘추 점서역

- 신동준 선생의 주역론’, ‘서경

- 김원중 선생의 노자

- 한동석 선생의 우주 변화의 원리

- 조영주, 김승제 선생의 누구나 쉽게 읽는 점수 주역

- 방인 교수의 다산 정약용의 주역사전 기호학으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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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周易人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4.17 서양의 마방진이나 하도낙서, 구궁도나 선후천도나
    기본적으로 수비학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명과 數에 대한 관점은 다양한 관점들이 있어왔었고
    물론 어느 하나 혹은 몇 개가 비록 주도적이기는 했지만
    주도적이지 않은 관점들도 주도적인 관점들 속에 차용되기도 하고
    또 차용되지 않았어도 그 균형점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점성학과 한의학, 풍수가 완전히 주역과 분리되었지만
    지금보다 훨씬 전에는 잘 맞물려 있도록 상응시켜서 사용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어떤 점술 체계든지 너무 신성한 것으로 숭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든지 합리적인 의심은 존중받아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작성자선구자 | 작성시간 19.04.17 많은 도움이 됩니다^^
    ♡ 고맙습니다 ♡
  • 작성자나그네 | 작성시간 19.04.17 수고 하셨습니다. 공부에 도움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닷가 | 작성시간 19.04.18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한발씩 주역의 깊은 샘을 파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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