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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의 breakfast [26]

요한일서 강해 2장18-26절(6)

작성자瑤翰 김요한|작성시간26.06.14|조회수161 목록 댓글 5

 24절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말씀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들은 말씀을

통하여 아들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처음부터 들은 말씀을

통해 아버지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동의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허락해야 합니다. 성령에

의해서 삼위 하나님 안에 자신이 발견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 분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분은 우리 안에 임재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재미있던 육신을 포기하기에 두려움을 느끼는가 봅니다.

과거에 저만 보면 슬슬 피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그리스도의 제자 되고 싶어 하지만 막상

해 보고자 하면 그동안 정들었던 것에서 손을 떼려고 하니

몹시 아까운가 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질 못해 성령께서 그 사람을 보증해 주시지 않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우리의 활동력입니다. 

이 생명이 우리의 생각을 움직입니다. 이 생명이 우리

안에서 창조적인 역사를 일으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음부의 집을 파괴해 버리고 귀신의 집을 파괴해 버립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 생명을 업신여깁니다. 이 생명을

끝까지 갖고 있다가 천당이나 가는 정도로 알아요. 이

생명이 삶의 기운 인줄 모르고, 삶의 용기인줄 몰라요. 

사람들이 조마조마하며 불안 초조 속에서 융통성 없이

살면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얼마나 귀한 줄 모릅니다.

 

 이 생명이 우리를 순수하고 담대하게 만듭니다. 생명이

없으면 혼란을 막을 수가 없어요. 공허와 혼돈이 막히질

않아요.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북새통은 이 생명력이 없으면

계속됩니다. 처리가 안 됩니다. 무저갱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하니 말이 어둡고 부정적이며 비판적인 걸 고칠 수 없어요.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생명을 담았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생명을 아주

우습게 여깁니다. 생명을 우습게 안다는 것은 성령을 우습게

안다는 겁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습게 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건강이 없어요. 따라서 육체에 건강도 좋지

않아요. 그 상태에서 인간관계를 맺으니 생활에 문제가 생겨요. 

성령을 모셔 생명의 능력이 우리에게 충만하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문제가 바로 이 문제인지 잘 몰라요. 

언젠가 한 분이 겉으로는 멀쩡한데 문제가 자신과의

관계가 문제이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모든 만물과의 관계가 있다는 것 몰라요.

지식과 기술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아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부지런히

가꾸고 꾸미는 성실함으로도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벌고자 하는 삶은 정작 사람을 벌어야 돈도 벌립니다. 

내가 사람을 못 버는데 돈을 어떻게 벌 수 있겠습니까?

이 생명력만이 다른 사람이 부족해도 참아 줄 수 있습니다. 

생명력만이 한 움큼 집어가는 사람을 보아도 그래 집어가라

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생명의 능력이 자기 인생을 좌우합니다. 

이 생명의 능력이 내게 역사하면 무언가 남에게 뿜어줍니다.

 

 다른 신자들을 잘 보십시오. 성령의 체험을 하는 사람하고

성령의 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하고 다른 점이 나타납니다.

얼굴에서 나오는 것과 들어가는 것이 다릅니다. 사람들이

눈 코 입이 똑 같은 것 같아도 생명력에 따라 다릅니다.  

그것이 인간관계입니다. 사람을 버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 다음 물질도 법니다. 생명을 가진 사람의 복입니다..

 

 25-26절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항상 현재입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생인 겁니다(롬6:23) 과거 미국에서 케네디박사에게

이 영생이란 하나님의 은사는 미국교회에서 어느 위치냐고

물으니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더군요. 사역을 위한 은사는

잘 챙기는데 존재에 주어지는 영생은 은사인 줄 모릅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 

약속하신 약속은 우리로 부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겁니다. 이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복되게

하시는 겁니다. 이거 하나로 우리를 부흥케 하십니다. 이거

하나로 다윗을 다윗 답게 만듭니다. 여호와는 나의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시27:1) 이것 하나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통해 자기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영원한 생명 이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이 내 속에 역사할 때에 사랑 희락 화평 기쁨이 있습니다. 

여기에 긍휼이 있습니다. 여기에 관용이 있습니다. 여기에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이 역사할 때 지혜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 정체성과 자화상이 바뀝니다.

 

 이 영원한 생명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무시하고 맙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됩니다. 

제발 성경적인 구원을 받기를 바랍니다. 구원은 왕도가 없어요. 

반드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복이 임했다

하는 것이 무슨 말이죠? 바로 영원한 생명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임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평강이 임했다는 겁니다. 

영원한 생명이 오므로 말미암아 죄 사함이 이루어져 하나님과

하나가 되므로 평강(에이레네 join)입니다. 죄 사함이 언제

오느냐? 영원한 생명이 들어오므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말씀이 확증이 되는 겁니다.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 우리를

최고의 가치를 가진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변명할

수가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 자신에게 항상 걸립니까? 영원한 생명이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 속에 역사하지 않으니까 영광의

자화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망과 음부와 쓰레기가 내 속에

있으니 이 잡동사니가 내 속에 가득하므로 아무리 자기를

부인하려 도리질을 해도 어찌할 수 없어요. 그러나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됩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것이 복이 아닙니다. ‘너희 안에

아들을 거하게 하라’ 우리 안에 계시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도 함께 거하십니다. 그 때부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항상 주십니다(요10:28) 이 생명이 대장부 답게

만드십니다. 이 생명이 우리로 하여금 남을 긍휼이 여기고

마음의 큰 포부를 만들고 위대한 꿈을 만들어 줍니다.

 

 이 생명이... 그래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7)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능력이 사람을

설득시키는 철장 권세가 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능력이

있으면 사람들을 금방 설득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엉뚱한

소리를 하다가도 내가 성령의 능력으로 밝은 마음으로 밝은

말을 하면 금방 설득되어 따릅니다. 이게 진정한 리더십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여 내 마음을 성령께서 다스려 주옵소서. 

내게 주의 생명으로 가득 채워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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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하나복 | 작성시간 26.06.14 아멘 입니다.
    문제는 저도 삼천포로 종종 빠지는게 문제 입니다. 그럴때마다 사망의 맛을 보니, 생명의 맛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다시한번 성령님의 역사를 사모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새 독일의 양심있는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책을 접하면서, 아마도 지금 이 시대에도 십자가의 좁은길을 가는 사람이 많지 않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명성있고 강해설교를 탁월하게해도 관상기도니, 카톨릭과 연합하자는 헛소리하는 ㅇ ㅇ원목사의 기사를 접하고
    나니, 더욱더 그런 생각이듭니다.
  • 답댓글 작성자瑤翰 김요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사망과 생명을 알게 하신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영의 사람이 되신겁니다.
  • 작성자류재길 | 작성시간 26.06.14 아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할렐루야!!
  • 작성자han5572 | 작성시간 26.06.1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瑤翰 김요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할렐루야 영원한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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