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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경계에 서다 (1장 들어가는 글)

작성자낙솔|작성시간18.01.19|조회수519 목록 댓글 4

 

1장 들어가는 글

1) 유럽울새와 나침반

유럽울새는 하루 300km를 날아서 3200km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인데, 가을철 북유럽을 출발하여 지중해에서 겨울을 나고 봄철에 북향하여 원래 자기 처소로 되돌아온다.

 

Ψ울새(Robin)는 참새목 딱새과로 분류되며, 우리나라에서는 봄과 가을철에 통과하는 철새입니다. 봄에는 시베리아 쪽 고향으로 북향하며, 가을에는 따뜻한 동남아 쪽으로 남향하겠지요. 이때 주로 우거진 숲의 울타리 쪽에서 발견된다고 해서 울새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습니다. 유럽울새는 목에서 가슴 쪽으로 붉은 털로 덮여있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로 상징되어서 가끔 성탄카드에 그 모습이 그려진다고 하네요.

 

유럽울새의 길 찾기 방식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에 암호화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의 육감으로 자기 수용 감각(magnetoreception)이라 부른다. 그런데 일반 나침반이 지구자기장의 극 방향을 가리키는데 비하여 철새들의 자기 감지는 이와 다르게 극지방과 적도지방만 구별할 수 있는 경사나침반처럼 작동한다. 문제는 그런 동물의 체내 메커니즘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해답은 양자역학이라는 기이한 학문과 연관이 있었다.

 

그렇다면 새의 이동경로에 대한 수수께끼의 해답이 생물학의 혁명을 이끌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그렇다이다. 1976년 사이언스 학술지에서 조류학자 빌치코 부부는 울새가 미약하지만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규명했다.

 

 

Ψ여기서 잠시 과학사를 되돌아보겠습니다. “생명, 그 경계에 서다이 책을 읽어나가는데 도움이 되지요. 자연과학은 천체물리학이 선두에서 이끌어왔는데, 크게 3번의 획을 가로 긋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헬레니즘(통념)-계몽주의(상식)-양자시대(확률)’의 인류문명사에서 큰 도약을 이끄신 분들이지요. 괄호 안의 키워드는 자연과학적 중심축을 나타냅니다.

 

1-1.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

신화의 잔재가 남아있는 스승 플라톤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그는 헬레니즘을 활짝 열었지요. 그러나 그의 자연과학은 통념적 천동설이 밑천이었고, 실험을 통한 확인과정을 무시한 채로 장장 2천년 동안 인류를 지배했지요.

 

1-2. 뉴턴(1643-1727)

1687년 그의 프린키피아에 기록된 만유인력의 법칙은 뜰 안과 지구 밖의 자연현상에 범용되는 놀라운 지동설이었지요. 그것은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의 기계론적인 우주를 상식으로 하는 계몽시대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1-3. 아인슈타인(1879-1955)

그는 1905년 한해에 4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중 양자역학 부분의 광전효과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상대성 이론은 절대 광속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시공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곡률을 가지는 우주를 그려냅니다.

 

2) 숨겨진 유령 같은 진실

20세기에 시작된 양자역학은 반도체 시대를 열었고, 선진국이란 GDP1/3 이상이 양자응용 기술에서 나와야 하는 국가이다. 21세기에는 핵융합, 생화학. 의학 분야에서 공상과학 같은 상상하지 못한 기술이 나타나 양자혁명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양자세계의 특이한 성질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2-1. 파동/입자 이중성

전자현미경은 전자의 파동성을 이용하여 광학현미경으로 볼 수 없었던 바이러스 모습을 찍었다.

 

Ψ원래 파동이라고 여겼던 빛이 광전효과에 의해 입자성이 증명되자 광자(photon)라고 불렀고, 이와 반대로 입자로 알았던 전자는 파동성이 실측되어 우리 모두는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이와 같이 미시세계에서 숨겨진 유령 같은 진실즉 이중성이 나타났지요. 제가 보기에 광자든 전자든 홀로 밖으로 드러날 때는 입자성으로, 숨어있거나 둘 이상 공존할 때는 서로를 배려하는 파동성으로 그 모습을 바꾸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되네요. 어쩌면 양자(量子 quantum)정에 약한(?)’ 존재인가 봐요.

 

2-2. 양자 터널링

태양은 수소 원자의 핵인 양성자가 서로 융합하는 반응기다. 이런 현상은 뉴턴의 고전물리학으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양자는 옆방의 TV 소리가 벽을 통해 들리듯 유령처럼 터널링이 가능하다.

 

Ψ양자세계의 감옥은 장벽이 허술하게 되어 있다고 보면 어느 정도 터널링 현상이 이해될 것 같네요. 확률은 낮지만 양자가 탈옥할 수 있다는 거지요. 이와 같은 양자의 비결정성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서로 통합니다.

 

2-3. 중첩(Superposition)

양성자끼리의 융합은 터널링까지 가능했지만, 바로 척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하나의 양성자는 베타 붕괴를 일으키고 중성자로 바뀐다. 이때 수소 핵은 중양성자로 결합되는데 매우 안정되어 있다. 그 이유는 중양성자의 중첩에 의한 스핀방식인데, 왈츠와 자이브를 동시에 추는 듯한 상태가 강한 결속을 만들기 때문이다. 자기 공명 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 MRI) 역시 중첩을 응용한 기술이다.

 

Ψ결혼이 이뤄질 때 신랑신부 양가에서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조건들이 서로 마주치게 마련이지요. 이것도 하나의 중첩입니다. 두 전자가 한 팀처럼 얽히려면 스핀이 업-다운으로 정렬되어야 하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결합할 때도 몇 가지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고 합니다. 중첩은 여러 가지 양자상태가 구름처럼 어울려 상호작용하면서 확률적으로 공존하는 현상이지요.

 

3) 양자생물학

지구 전체에 걸쳐 길을 찾는 유럽울새의 비행은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란 괴상한 특징에 관련이 있다. 양자 얽힘으로 인해, 한때 함께 있었던 입자들은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술처럼 서로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하여 아인슈타인은 원거리에서 일어나는 유령 같은 작용이라고 비웃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Ψ양자 얽힘의 즉각성은 시간이 전혀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며 비국소성(non-locality)이라 칭합니다. 반면 국소성이란 두 지점 사이에 정보가 전달될 때 최소한 광속의 시간이 요구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은 자기의 간판인 상대성 이론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을 것 같네요. 그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지요.

 

1982년 알랭 아스페 연구팀은 편광 측정을 통해서 광자 쌍의 얽힘을 확증하였다. 측정은 양자역학의 가장 불가사의한 일면 중 하나다. 앞서 설명한 양자의 기이한 행동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일단 어떤 방식으로 관찰이나 측정을 하게 되면, 이 입자는 기이함을 상실하고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일반적인 사물처럼 행동한다.

 

Ψ광자의 편광은 전자의 스핀이지만, 광속으로 달리는 방향에서 보면 전기장과 자기장이 맞물리는 스핀현상이 나타나지요.

 

측정은 양자세계와 전통적 세계의 경계선에 위치한 경계다. 이 책의 제목에서 짐작했겠지만, 우리는 생명도 이 경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Ψ로저 펜로즈는 양자세계를 U(유니터리 unitary), 전통적 세계를 R(환원 reduction)로 각각 상징시켜 양자의 도약을 설명합니다. 그의 대중 과학서 황제의 새 마음을 참고하시면 좋고, 원래 이 개념은 폰 노이만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출처까지 밝히지요.

 

양자생물학은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 발전했다.

 

3-1. 1970년대 초반 빌치코 부부 - 울새의 자기장 감각은 경사나침반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3-2. 거의 비슷한 시기 클라우스 슐텐 - 조류는 빠른 삼중항 반응(fast triplet reaction)이란 메커니즘을 이용할 것이라 제안했다. 최외각 전자가 짝을 이루지 못한 홑원자가 있는 분자에서 이웃한 원자에서 짝을 이루어 양자적으로 얽히게 될 수 있다. 이런 상태가 삼중항을 구성하는데 외부 자기장에 매우 민감하다.

 

Ψ(up, +1/2)(down, -1/2)의 스핀 짝으로 얽힌 전자는 스핀의 합이 0이 되어 척력을 극복하고 안정됩니다. 이런 상태를 일중항(singlet)이라 하지요. 반면 삼중항(triplet)은 스핀의 크기가 1이 되며, 이때 업-, 다운-다운, 평행의 세 가지 상태가 중첩된다고 합니다.

 

3-3. 1982년 아스페 연구팀 - 광자 편광 실험으로 양자 얽힘을 확인한다.

3-4. 2000년 슐텐과 토어스텐 리츠 - 크립토크롬(cryptochrome)이 새의 눈에서 양자 나침반을 제공하는지를 설명했다.

 

Ψ크립토크롬은 숨겨진 색이란 뜻을 가진 라틴어인데, 동물의 망막에서 발견되는 광수용체입니다. 이것은 청색과 자외선에 반응하면서 생체리듬을 조정하며 이것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다고 하지요. 물론 사람에게도 있으나 특이하게 정주성을 가진 고양이과 동물에게는 없다고 하네요.

 

3-5. 2004년 리츠와 빌치코 부부 - 새가 양자 얽힘을 이용해 길을 찾는다는 학설을 뒷받침하는 최초의 실험적 증거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로써 조류의 양자 나침반은 곧바로 양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분야의 상징이 되었다.

 

4. 양자생물학에 흥분하는 까닭

생물학은 일종의 화학이고, 화학은 또 응용물리학이라 할 수 있다면, 생명체는 근본적인 수준까지 내려가면 단순히 물리학이지 않을까? 생물학자 다수는 양자역학이 오로지 미시규모에서만 작용할 뿐, 생명에서 중요한 더 큰 규모의 작용에는 영향이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과연 그 두 세계 사이에 첨예한 경계가 있고, 그것은 측정에 사용된 장치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실험실 밖에서 양자적 행동을 파괴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 해답은 원자와 분자가 고체 내에서 불규칙한 진동을 하거나, 기체나 액체에서도 열로 인한 무작위 운동을 지속하는데 있다. MRI검사가 진행될 때 수소 원자핵의 스핀이 양자 결맞음(quantum coherence)으로 정렬되었다가 장비 밖으로 나와 강한 자성이 사라지면 다시 무작위가 된다. 우리 주변은 이와 같이 양자의 기이함이 사라진다.

 

Ψ책에서 저자는 열역학이라는 용어를 굳이 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네요. 열역학은 볼츠만에 의하여 집대성되는데, 그 기본 개념은 원자와 분자의 무작위적인 집단 운동에 의한 통계입니다. 양자역학에서 파동함수 ψ로 널리 알려진 슈뢰딩거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망명가서 퍼낸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참고하시면, 양자(파동)역학과 통계()역학 사이의 관계를 재미나게 풀어 이야기합니다.

 

살아있는 세포는 대부분이 물과 생체분자로 구성되는데, 이런 분자운동이 측정되면 양자는 얽힘이 파괴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슐텐이 발견한 것처럼, 빠른 삼중항 반응의 속도는 얽힘이라는 양자의 섬세한 특성과 연관이 있을 때에만 설명이 가능했다.

 

새와 관련된 것 외에도 양자생물학에 관련된 지식은 최근 몇 년 동안 크게 약진해왔다. 아직 소수에 불과하지만 생명현상에서 양자역학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명은 양자세계와 전통 세계 사이의 경계선에서 기이한 양자의 특성을 유지하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따뜻하고 축축하며 뒤죽박죽으로 살아 있는 몸속에서 양자의 불가사의를 해결하는 것이 최근의 연구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그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하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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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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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만촌 전석락 | 작성시간 18.01.21 낙솔!
    복잡하고 난해한 내용을 잘 정리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소생은 아직 양자에 대한 기본 개념이 부족하여 몇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1) 양자론에서 말하는 미시세계, 즉 '量子'에도 크기나 범위가 있는가요?
    2) 量子와 素粒子는 어떻게 다른가요?
    素粒子는 물질의 바탕이 되는 입자이고, 量子는 물질이 아닌 하나의 현상을 말하는 건가요?
    거의 같은 뜻이라면 양자역학을 소립자역학이라고 하면 안 되나요?
    3) '양자 얽힘의 즉각성은 최소한 광속의 시간이 요구되는 것'이라면,
    광속보다도 더 빠를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 작성자낙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1.21 차츰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궁금한 것을 참기 어려운만치 여기서 간단하게 답변하지요.
    1) 양자는 에너지 같은 물리적 양이 피아노 건반처럼 이산(discrete)되어 있다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볼륨이나 사이즈 같은 물체적인 표현이 적당치가 않습니다.
    2) 소립자는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부품과 같은 개념이지요.
    아원자 세계는 모두 양자의 특성이 뚜렸하게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입자물리학은 오직 양자역학으로만 설명이 가능합니다.
    3) 얽힘의 즉각성은 전혀 광속까지도 걸리지 않는 전송시간 제로를 뜻합니다.
    비국소성이란 국소적 거리조차 없다는 의미로써
    유령 같은 현상으로 기이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네요.
  • 작성자만촌 전석락 | 작성시간 18.01.22 낙솔! 설명 감사해요.
    그런대 어떤 책엔 量子란 '셀수 있는 작은 덩어리'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건 잘 못된 것이군요.
    원자, 양성자, 중성자, 전자, 광자 등의 子字가 粒子를 표현하니까
    量子도 입자로 이해하기 쉽지요.
    어쩐지 양자 설명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헷갈리더군요.
    낙솔의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 작성자낙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1.22 量子란 '셀수 있는 작은 덩어리다',
    이 말에 별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네요.
    여기서 덩어리를 하나의 물체로 보지않고
    에너지, 운동량, 스핀 따위
    양자화된 물리량의 단위일 수가 있겠어요.
    그러면 단위는 숫자로 크기를 재고 비교하자는 뭉치지요.
    가량 10초라면 1초 단위가 10개다 하는 식이겠네요.
    '작다'는 개념은 미시세계를 지칭한다고 보여지고
    양자역학의 단위인 플랑크 상수 h 자체가
    거시세계에서 무시해도 좋을만큼 극미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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