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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 입문(11) 새로운 철학 등장 (비합리주의적 방향)

작성자만촌 전석락|작성시간18.03.31|조회수172 목록 댓글 3

4. 비합리주의적 방향


헤겔 철학에 대한 반발은 유물론뿐만 아니라, 비합리주의적 방향에서도 나타났다. 여기에서 세계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정신이나 이성이 아니고 비합리적인 의지나 무의식, 또는 삶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
먼저 쇼펜하우어는 인간이나 세계가 ‘맹목적 의지’의 충동을 받는다고 주장했고, 니체는 이 세계란 ‘권력에의 의지’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이 우리의 행동과 정서를 규정한다고 말했다.


1) 쇼펜하우어


아르투르 쇼펜하우(1788~1860)가 헤겔을 미워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로서, 자기의 개를 ‘헤겔’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말을 했다. “천박하고 우둔하고 역겹고 매스껍고 무식한 사기꾼인 헤겔은 뻔뻔스럽고도 어리석은 소리들을 잔뜩 늘어놓았는데, 이것을 그의 상업적인 추종자들은 불멸의 진리인양 나팔을 불어댔으며, 바보들은 그것을 진실인 줄로 알고 환호하며 받아들였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이 주장하는 이성주의에 반발해서 의지 위주의 주장을 폈다. 그는  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인간의 본질은 사유나 이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의지에 있다고 보는 입장으로 인간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이성적인 논리와 판단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의지라고 역설하며, 따라서 그러한 의지로 인해서 직관적으로 진리를 판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식과 동떨어진 거대 담론적인 진리 체계는 거짓 헛소리라고 헤겔을 비판했다.


쇼펜하우어는 경계심리가 강해 이발사에게 면도를 시키지 않았으며, 불이 날까봐 이층에서 자지도 않았으며, 잠잘 때에는 권총에 탄환을 넣어 침대에 두고 잤다고도 한다. 어머니와 불화 때문인지 여자를 불행의 근원으로 생각했다. 특히 그는 염세주의적인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그의 성격과 염세주의의 원인을 사람들은 흔히 개인적인 배경에서 찾는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겪은 아버지의 우울증과 죽음, 일찍부터 현실에 뛰어들어 상인 수업을 받은 덕분에 남보다 빨리 세상 돌아가는 법을 배운 상당히 예외적인 철학자에 해당한다. 사실 사람들은 그의 철학적 주제를 모른 채 단지 그를 괴팍스러운 염세주의자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이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 인간은 불행한 존재라는 그의 철학은 염세주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주장은 단순히 삶에 관한 비관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인 의지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보는 그의 이론은 특히 니체의 실존철학과 프로이트 심리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2) 니체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독일 작센 주 레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여자들 만 있는 외갓집에서 자라는 바람에 여성적이고 섬세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고교 시절부터 반항기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대학생 때에는 술과 여자에 깊이 빠져 들었다. 결국 본 대학 철학과를 뛰쳐나와 헌책방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를 사서 읽고서 철학과 결정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매독으로 의심되는 원인으로 길거리에서 쓰러진 후 어머니와 여동생의 헌신적인 간호로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혼수상태에서 헤매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저서에는《비극의 탄생》《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피안》 《도덕의 계보》 《이 사람을 보라》 등이 있다.


                                               <니체 초상화>    에드바르 뭉크


니체 역시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이성 철학에 결별을 선언하고 의지의 철학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에게 의지는 맹목적이므로 우리의 삶은 비극일 수밖에 없었던 것에 반해, 니체에게 의지는 권력(힘)에의 의지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충만하게 된다.
니체는 하나의 새로운 도덕, 즉 삶의 도덕을 세우고자 했다.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모든 전통적인 가치를 허물어뜨렸다. 여태까지의 관념론적·기독교적·행복주의적 도덕을 부정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치를 세우려 했다.




“신은 죽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초인(超人)을 소망해야 한다.”라고 니체는 말했다.
그렇다면 초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첫째, 초인이란 대지(땅)를 의미한다. 천국의 희망을 말하는 자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지금 이곳에 충실한 자다. 초인이란 가장 성품이 좋은 사람이며, 힘이 넘치는 종족이다.
이러한 초인은 천국을 동경하지도 않고, 지금 이 땅을 경멸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곳이 초인으로 가득 차도록, 이 땅에 몸을 바치는 사람이다.
둘째, 초인은 신의 죽음을 확인하는 사람이다. 그는 흔히 말하는 유토피아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순응하는 자다. 자기 자신이 이 세계의 한 부분임을 잘 알고, 삶의 모순까지 견딜 줄 아는 사람이다.
셋째, 초인이란 영겁회귀의 사상마저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윤회한다. 모든 것은 무한한 시간 가운데 흘러갔다가 되돌아온다. 바로 이 사상을 깨닫는 자가 초인이다.


니체는 20세기 초에 다가올 유럽의 허무주의를 예측했다. 그래서 반드시 새로운 가치 체계가 세워져야 한다고 믿었으며, 이를 위해 그는 먼저 전통적인 가치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니체는 파괴자로 나타난다. 노예도덕을 반대하고, 하찮은 동물에게나 적용되어야 할 민주화 운동을 비웃는다. 모두 평등하게 살기를 꿈꾸는 사회주의를 반대하며, 여성해방운동을 하나의 타락으로 간주한다. 지성을 강조하는 주지주의(主知主義)에 반대하며, 인생이란 아무 가치도 없다고 주장하는 비관론자들을 또한 비판한다. 그러므로 니체 철학은 기독교적인 것에 반대한다. 여기서 기도교적이라는 것은 지배적인 힘과 품위, 자부와 용기, 그리고 관능이나 그 밖의 모든 즐거움에 대한 미움이다.
둘째, 니체는 예언자로 등장한다. 그는 유럽의 허무주의가 나타나 모든 가치와 질서가 무너지리라는 것을 예언했다. 그래서 이에 대비한 새로운 가치 창조가 자신의 임무임을 깨닫고, 혼신의 힘을 다했던 것이다.
셋째, 니체는 야생동물, 금발의 야수, 약육강식 등과 같은 단어들을 많이 사용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철학을 생물주의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넷째, 그는 줄기차게 독일 정신을 비판했다. 관념론적인 성격, 불확실하고도 축축한 것, 그리고 그저 은폐되어 있을 뿐인 것들을 경멸했다.


위대한 시인으로도 꼽히는 니체는 인간의 심리를 천재적 통찰력으로 그려낸 심리학자이기도 했다. 낭만주의자이면서 반낭만주의자이고,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반 기독교적이었던 그는 독일인이면서 또한 가장 반독일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독일인을 가장 강한 종족이라며 사랑했고, 그렇기 때문에 고귀한 민족을 수도원으로 끌고 간 기독교를 미워했다.



이러한 니체를 악용하기도 했다. 특히 니체가 죽은 후에 그의 유고(遺稿)가 누이동생 부부에 의해 멋대로 왜곡되기도 했고, 반유대주의자들과 나치의 지지자들에 의해 그의 사상이 잘못 악용되기도 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왜 니체를 현대 철학의 거장이라고 칭하는지, 그 의미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그의 책을 통해 우리가 너무 많이 들어 익히 알고 있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이제 그 의미가 더욱 풍부해져 있다. 그는 단순히 신의 죽음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을 지탱하던 이성이, 그 위에 세워진 서구 유럽의 모든 것이, 근대를 지탱하던 인간에 대한 확신이 모두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외침은 직관과 생의 약동을 강조한 베르그송(1859~1941) 등으로 이어져 생철학(生哲學)을, 하이데거와 사르트르로 이어져 실존(實存)철학을, 그리고 오늘날 데리다나(1930~2004)

푸코(1926~1984) 등으로 이어져 프랑스 현대 철학을 지탱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그를 망치를 든 철학자, 또는 예언자라고 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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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낙솔 | 작성시간 18.04.01 니체는 19세기를 닫고 20새기를 여는 시대적 선지자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무산자 계급을 절대화한 마르크스와 공산주의를 퇴행적으로 봤지요.
    또 선과 악의 이분법적 기독교 윤리와 구원관을 퇴폐적으로 비판합니다.
    아폴론과 디오니시오스 즉 로고스와 파토스의 융합에다
    '힘에의 의지(the Will of power)'를 앞세워 허무를 극복하고자 했지요.
    19세기말 초인의 모델입니다. 말종은 통속적 부유함을 추구합니다.
    영원회귀는 부활신앙이나 윤회사상과는 거리가 멀고
    찰나적 철학적인 깨침으로 오히려 禪僧의 해탈과 비슷한 것 같네요.
  • 작성자낙솔 | 작성시간 18.04.01 니체의 사후 30여년이 지나 일어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지요.
    니체의 유고와 유작을 누이인 엘리자베트가 관리했는데,
    그녀는 일부 작품을 짜집기하여 히틀러를 '초인의 도래'로 치켜세웁니다.
    그래서 그녀는 '니쳬교'의 여사제처럼 임하면서
    생전에는 부귀영화를 누렸고, 죽어서는 국장의 예우를 받았죠.
    무덤에 누워있던 니체가 분노하고 뛰쳐나올만한 더럽혀진 현실이었습니다.
  • 작성자만촌 전석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4.02 낙솔의 양념이 있기에 밥 맛이 살아나네요.
    감사해요, 낙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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