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숙성(熟成, Aging)
(1) 숙성의 기원
술을 나무통에 저장할 때 나무와 공기와 시간의 작용으로 통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변화는 발효와 증류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만큼이나 광범위하다. 화학적으로 말해서, 술이 가득한 술통은 흥미진진한 공간이다.
그러면 술의 숙성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헤로도투스는 《역사》 1권에서 기원전 5세기 아르메니아의 와인 상인이 버드나무 뼈대에 동물 가죽을 씌운 배에 와인을 거의 25톤이나 싣고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바빌론에 왔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알코올 발효의 가장 오래된 증거를 밝힌 고고학자 패트릭 맥거번은 이게 오역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술을 나무통 안에서 숙성시킬 경우 맛이 더 좋아진다는 사실은 누가 알아낸 걸까? 오늘날 우리는 숙성된 맥주와 와인, 위스키의 독특한 향미가 나무 술통에서 나온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 숙성을 시작했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로마시대의 와인 문화는 소믈리에(Sommelier)가 있을 정도로 발달했고 와인을 여러 종류로 나누었다. 로마시대의 창고를 발굴한 결과, 로마인들은 곡물 같은 건조한 식품과는 별도로 와인을 대량으로 보관하기 위한 전용 창고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장법은 둥근 단지에 와인을 담아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목까지 땅에 묻는 방식이었다.
버번위스키의 역사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1780년대 후반에 위스키를 숙성했다고 말하는데, 당시 배로 운반된 술통에 찍혀 있는 ‘올드 버번위스키’라는 문구를 증거로 들었다. 프랑스 코냑 지역의 브랜디는 전형적으로 1년 또는 2년 동안 오크통에서 보냈는데, 1700년대 말에서 1800년대 초, 프랑스를 동경했던 미국인들은 숙성 때문에 코냑이 고급이라고 생각했다.
(2) 와인과 위스키의 숙성
포도주 숙성이란 포도주에 포함되어 있는 당, 산, 페놀류 물질 등은 복합적인 화학 작용을 통해 향, 색, 질감 등이 변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포도주의 품질이 개선되기도 하지만 모든 포도주가 숙성 시 품질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장기 보관 시 포도주가 변질될 수도 있다. 숙성 가능 정도는 포도 품종, 빈티지, 양조 방식, 포도주 생산 지역 등에 따라 상이하다. 병입 후 포도주의 보관 상태에 따라서도 숙성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적절한 보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투자되기도 한다. 따라서 일부 오래된 포도주들은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포도주는 장기 숙성에 적합하지 않은데, 포도주는 생산 후 1~5년 이내에 마시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위스키는 숙성과정이 없으면 보드카나 진과 같은 다른 증류주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제조되는 스카치위스키의 경우 법적으로 오크통에서 3년 이상 숙성해야만 스카치위스키라는 이름을 달 수 있다. 즉 이 오크통에서 숙성이 되면서 오크통의 성분이 스며들어 색이 짙어지고 맛과 향에 변화가 생긴다. 포도주를 담아두었던 오크통, 속을 그을린 오크통, 프랑스산 오크통, 미국산 화이트오크통 등등 그 산지와 담았던 재료의 유무와 종류, 속을 그을린 정도의 유무에 따라 차이가 있다.
(3) 숙성 통
로마시절에도 나무통이 있기는 했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로마인들이 갈리아인이나 켈트인에게서 이 방법을 배웠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터키에서 발굴한 와인 시료에서 수지(樹脂)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아마도 보존제로 쓰였을 것이다. 또 락톤이라는 화합물도 발견했는데 이는 오크 목재나 수지에서 종종 발견되는 화합물이다. 위스키의 락톤은 나무통에서 숙성될 때 나오는 화합물로서 레드와인과 스카치위스키, 코냑에 코코넛 같은 부드럽고 그윽한 풍미를 부여한다. 나무를 불에 그슬릴수록 락톤 농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술통을 만들 때 그슬리는 과정이 들어간다.
한 번 사용한 오크통에서 이전에 담긴 내용물의 맛을 없애려면 통 안을 불에 그슬리면 된다. 버번위스키는 새 오크통을 써야 하고 안을 거슬려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영국의 스카치위스키도 이와 비슷한 규칙이 적용되지만 새 통을 쓸 필요는 없다. 이제 나무통은 예전에는 운반하는 수단일 뿐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술 제조 공정에서 빼먹을 수 없는 부분이 됐다.
목재의 구조를 이루는 성분인 셀루로오즈, 헤미셀루로오즈, 리그닌은 숙성 시 향미에 영향을 주며, 내용물은 조금씩 증발하는데 증류과정에서 구리에 잡히지 않은 유황화합물도 오랜 숙성기간 중 증발하거나 덜 자극적인 분자로 바뀔 수 있다.
증발은 그 대신 외부 공기가 통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공기 중 산소는 알코올을 산화시켜 아세트알데히드와 아세트산으로 산화됨을 뜻한다. 이러한 현상은 맥주 숙성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맥주에는 지질과 지방 분자가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런 분자들이 산화해 노네날 같은 분자가 만들어지면 맥주에서 골판지 냄새가 난다.
통 안에서 알코올은 물과 접촉하면 알코올 분자들끼리 서로 뭉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지기 때문에 최종 제품에서 알코올이 덜 느껴진다. 또 뭉쳐진 알코올 무리는 몇몇 휘발성 분자를 붙잡을 수 있어서 맛이 순해진다. 사람들이 숙성된 술이 ‘잘 넘어간다’고 하는 것은 이런 맛 때문이다.
숙성 시 음악을 틀어 주는 ‘음향술통 숙성 과정’을 시험한 경우도 있다. 술통의 내용물을 진동시키기 위해 베이스가 많은 음악을 들려준 것이다. 또 거의 4년 동안 배 위에서 숙성하기도 했다. 물결에 의해 내용물이 출렁거려 목재에 더 많이 더 빨리 노출되고, 짠 바다의 공기가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다. 음악을 틀어 주거나 배 위의 숙성 모두가 좋은 술로 평가 받았다.
참고로 술의 숙성이라는 것은 이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것을 말하지, 병입이 끝난 술은 더 이상 숙성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10년 전에 구입한 12년산 위스키가 있다면 10년이 지났다고 해서 22년 숙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12년 숙성 그대로다.
(3) 천사의 몫
증류주는 숙성하는 동안 술통의 목재나 연결 부위, 술을 담는 입구의 틈을 통해 자연적으로 증발이 된다. 기후와 알코올 함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1년에 부피가 약 2% 정도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17년 숙성의 경우 30%나 증발되기 때문에 양조업자들에게는 경제적으로 머리 아픈 일이고, 소비자들에겐 비싼 술이 된다. 이러한 손실을 '천사의 몫'이라고 부르며 기적에 대한 감사로 하늘에 바치는 제물임을 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세상 최고의 술꾼은 하느님이라는 우스개도 있다. 여하튼 숙성 시 자연 증발하는 천사의 몫이 있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술맛은 더욱 좋아진다. 이는 천사가 베푸는 값진 선물이리라.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낙솔 작성시간 18.06.27 인간이 술을 좋아하는 것은
신을 닮았기 때문이군요.
창세기에 보면
신은 자기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고 적혀있지요. -
작성자강창훈 작성시간 18.06.27 사람도 술처럼 일정기간 숙성기간을 거쳐 세상에 나오게 할 수 없을 까.
미성숙한 인간들 특히 정치인들이 설치는 나라는 바로 미성숙 국가가 아닌가 합니다. -
작성자만촌 전석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06.27 낙솔!
그럼 술 못마시는 사람은 누구를 닮았을까요?
우보!
인간도 성장 후 성숙, 즉 숙성돼야 진정한 인격인이 되겠지요.
오늘날 이 나라 숙성 안된 꾼들 노는 꼴이 가관이지요.
내가하면 숙성 남이하면 부패,
'내숙남부' 족속들 때문에
어제 우리 공덕동 막걸리로 취했었지요. -
작성자해평 작성시간 18.06.27 천사의 몫이라 ㅡ
악마의 몫은 ? ㅎ ㅎ -
작성자만촌 전석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06.27 악마의 몫?
책에는 답이 없어요.
누가 아시는 분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