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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동생을 보내면서

작성자너른돌|작성시간15.05.30|조회수165 목록 댓글 31
바로 아래 여동생이 갑자기 위독해져서 급히 귀국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참 친했고 저를 많이 따랐지요. 결혼한 뒤에도 늘 가까운 곳에 살면서 잘 지냈고 항상 오빠를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했지요.

십여년 전부터는 저의 명상모임에 나와서 저에게 명상을 배웠지요. 그리고 저의 후원자 역할도 많이 했습니다. 매주 명상모임 때마다정성스러운 음식을 장만해오고 몇년전에는 매주 수련하는 공간을 제공하기도 했지요.

재작년 가을부터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했고 한번 완치했다가 작년 5월에 재발했지요. 작년 가을에는 아주 위급했다가 좀 나아지는 듯 했지요. 저도 동생을 위해 작년 가을부터는 매주 두세번씩 병원에 들러 기치료도 하였지요.

제가 프랑스에 갈 때만해도 괜찮았는데 5월 중순 들어 병세가 악화되었습니다. 저는 병세가 더 악화되기 전에 동생이 보고 싶어 귀국하는 표를 끊었습니다. 하필이면 저의 프랑스 1년체류를 위한 프랑스 이민국의 마지막 소환날짜가 26일이어서 그날 저녁표를 끊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때 동생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어 결국 임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다음의 글은 임종 다음날 새벽에 저의 바라보기 명상모임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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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에 눈을 떴다. 서른몇 시간 잠을 자지 못하다가 어제 12시가 다 되어 눈을 부쳤는데...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에서 동생의 병실을 지키고 있는 조카에게 카톡을 보냈다.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는 답변이 왔다. 암스테르담에서 환승을 하면서 이제 좀 있다 탑승을 하면 10시간 동안 연락이 두절될 것이기 때문에 은혜의 상태를 알고 싶어 카톡 전화를 했다. 조카는 엄마의 상태가 점점 급속도로 악화되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으니 통화하라고 은혜에게 핸드폰을 대어준다.

나는 은혜가 내가 갈 때까지 버텨주기를 간절히 희망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하늘이 허락하는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은혜에게 하고싶은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은혜야 정말 장하다. 모진 고통 속에서도 잘 참고 버텨왔구나. 그래 지금 폐에 물이 차고 하체는 부어있고 암세포의 통증으로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꿋꿋히 버티는 너의 모습이 너무도 장하고 아름답다.

전화기에 은혜의 응답아 들린다. 호흡은 가쁘고 가래때문에 목소리는 재대로 나오지 않지만 희미하게 응응 하는 소리가 들린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울음이 터져나오지만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야기를 한다.

이미 몇번이나 너에게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기쁨과 행복만 느끼려고 하지만 우리가 인생 수업에서 배우는 더 큰 공부는 슬픔과 고통이다. 양극단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결국 양극단을 두루 알아야 된다. 지금 너는 고통의 극단을 견디는 인욕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고통없는 세계로 가고 싶겠지만 지금 너에게 주어진 생명을 소중히 여기면서 숨이 붙어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다오. 사랑하는 나의 동생아.

또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핸드폰에서도 은혜의 가냘픈 반응이 들려온다. 공항의 마이크에서는 다른 비행기의 탑승을 재촉하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은 짐을 들고 분주히 왔다갔다 하고 있지만 나는 오로지 전화기에만 마음을 모은다.

은혜야 지금 호흡이 너무나 짧고 가쁘겠지만 그래도 지금 여기의 들숨날숨에 마음을 모으라. 마지막 힘을 내어 의식을 또렷히 차리고 들숨날숨을 따라 지금여기 바라보기를 새겨라. 평소 매주 수요일 명상모임에서 수련하듯이.

계속 반복되는 시끄러운 안내방송과 바삐 오가는 주변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핸드폰을 통해 은혜를 들숨 날숨의 명상으로 인도했다. 내 마음도 차분해지고 나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은혜도 마지막 힘을 내어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은혜야 참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았던 은혜야. 그것들을 다 이루지 못하고 떠나려니 아쉬움도 많고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 내려놓아라. 그리고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신세한탄도 하지 마라. 오히려 모든 것에 감사하고 담담히 받아들여라.

비록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아쉽게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었지만 너는 이미 많은 것을 성취했다. 명상책도 몇권이나 번역했고 요리책도 번역하지 않았느냐? 게다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배풀었느냐? 우리 바라보기 명상모임 사람들은 너가 매주 만들어왔던 그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너의 남편에 대해서도 감사해라. 비록 너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젊은 날 너의 속도 많이 썩혔지만 지금까지 너를 얼마나 지극정성 간호했느냐? 다섯달이 넘도록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병원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간호하는 남편은 정말 드물 것이다. 그러니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남편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났던 모든 사람에게 감사해라. 설령 너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 있어도 다 용서하고 감사해라. 기쁘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즐겁거나 네가 겪었던 모든 순간들은 다 배움의 장이었으니 소중하게 생각해라. 고통의 순간에도 이런 저런 과거의 회상이 떠오르면 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내려놓아라. 착하고 슬기로운 나의 동생아 오빠의 말을 잘 들을 거지?

은혜야 너와 내가 좋은 부모 아래 남매로 태어나 같이 살아온지도 벌써 오십몇년이 되었구나. 우리는 참 잘 지냈지. 나는 너를 아끼고 사랑해고 너는 나를 날 따랐지. 나는 너를 오랫도록 기억할 것이니 지금 헤어지는 것이 아주 헤어지는 게 아니란다. 다음에도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의 만남은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안심을 해라.

지나가는 파란눈의 여행객들이 나를 힐큼 쳐다봄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은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은혜는 거칠지만 연약한 숨소리로 답변을 하였다. 그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탑승시간이 다가와 하는 수없이 마지막 이야기를 했다.

은혜야 이제 오빠는 탑승을 해야한다. 바다건너 산을 건너 너에게로 날아갈테니 제발 열 몇 시간만 버텨다오. 니가 오고싶어했던 노트르담사원에 들러 좋은 선물을 사가지고 너에게 달려가니 제발 조금만 더 버텨다오. 오늘 낮에는 부산에서 형제 남매들도 올라올 것이고 저녁에는 명상모임 사람들도 다 올 것이다. 마지막 힘을 내어 버텨다오. 오빠는 꼭 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고 싶구나.

전화기 너머로 연약하지만 강한 의지가 담긴 희미한 답변을 마지막으로 조카에게 잘 지켜달라도 당부하면서 통화를 끝냈다. 42분 남짓의 시간이 찍혀있었다. 먹먹한 가슴으로 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행기는 출발부터 연착이었다. 연료급유로 무려 한 시간을 지체한 끝에 10시 반이 넘어서야 출발했다. 나는 자세를 잡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와 명상을 했다. 간간히 눈을 떠서 모니터를 바라보면 지도 위의 비행기의 항로가 보인다. 두 번의 식사시간에도 의식을 집중하며 기도와 명상을 했다. 거의 11시간 동안 나는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의자에 앉은 채로 제발 은혜가 버텨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인천공항에 다가갈수록 조마조마한 마음이 든다. 마침내 한국시간으로 수요일 오후 3시 8분에 비행기는 도착하였고 짐을 들고 비행기를 빠져나오자마자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켰다. 카톡에 많은 글들이 보인다. 조카의 카톡을 열어보니 너무나 잔인하고 매정하게도 "박은혜 오전 11시 35분 사망선고를 받았습니다"라는 글이 찍혀있었다. 눈물이 쏟아지고 울음이 터져나왔다.

큰아들 태홍이가 내 차를 몰고 마중나와주었다. 동생들과 통화를 해보니 동생들도 급히 부산에서 올라왔지만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아들과 딸 남편만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바쁜 마음으로 병원에 달려가니 5시 40여분. 병실의 문을 여니 은혜는 하얀 천에 덮혀있었다. 천을 열어젖히니 모진 시련을 견디고 최선을 다한 메마르고 자그만 얼굴이 나를 질책한다. "오빠 조금만 더 일찍 오지."

이마에 손을 대니 벌써 차가워져있고 한국을 떠나기 전에 매주 두세번씩 병실에 들러 잡아주던 그 손도 이제는 차갑다. 그 차가운 손을 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은혜야 내가 잘못했다. 아픈 너를 두고 외국에 나가는 게 아닌데...이 욕심많은 오빠를 용서해다오. 그 모진 고통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니? 오빠로서 그리고 명상의 스승으로서 너의 마지막을 꼭 지켜주고 싶었는데...

임종을 지켜본 매제와 조카는 은혜가 정말 힘들었는대도 나를 보고 떠나려고 끝까지 의식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고 전해준다. 그 말을 들으니 더욱 울음이 터져나온다. 아아 무정한 하늘이시여.

살아있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뒷수습은 함께 했다. 장의사와 함께 일단 시신을 장례식장 지하의 시신보관소로 옮겼다. 어제는 마침 장례식장이 만원이어서 빈소도 마련할 수가 없어 조문객은 오늘부터 받기로 하고 가족들은 모두 집으로 왔다.

부산에서 올라온 사촌형님 그리고 동생들과 간단하게 한 잔 하고 잠을 청했지만 서너 시간도 자지 못하고 새벽 3시 반에 일찍 깨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을 추억하기 위해 새벽부터 눈물을 흘리면서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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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선수는후반전 | 작성시간 15.06.02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작성자난초♬ | 작성시간 15.06.03 가슴이 쨘 해 져 오네요
    너른돌님의 따스한 마음 가슴에 담고 동생분도 평안히 좋은곳으로 가셨을듯합니다
    힘든 몸과마음 잘 추스리시기바랍니다
    우리의 인연은 언젠가는 이별하는것이잖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작성자너른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6.05 저는 이제 한국에서 일을 다 치르고 다시 암스테르담을 거쳐 이제 막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제 동생의 명복을 빌어주고 저를 위로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 작성자너른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6.06 집에 도착해 한 숨 자고 한국에서 사온 노트북 부품으로 노트북을 수리하고 나니 해질 무렵이네요.
    창밖에 보이는 붉은 구름이 참 아름답네요. 저녁 9시 50분이 넘었는데....
    창밖의 경치는 아름답지만 제 마음은 아직도 슬픔이 가시지를 않네요.
    세월이 지나면 이 슬픔도 자연스럽게 희석되겠지요. 세월이 약이니까.
    저를 위로하고 동생의 명복을 빌어주신 모든 사오모 벗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 작성자영현 | 작성시간 15.06.08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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