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9일은 둘째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손주 결혼식을 보기 위해 멀리 부산에서 어머니가 올라오셨기에 이천 집으로 모셔 이틀 동안 주변의 관광지를 구경시켜드렸다. 화요일 낮에 나는 어머니를 부산으로 보내드리려고 수서 역으로 갔고, 아내는 원주의 요양원에 계시는 장모님에게 면회를 갔다.
원래 장모님은 큰처남이 오랫동안 잘 모셔왔는데, 2년 전에 91세 고령의 장모님이 고관절 뼈를 다치신 뒤로는 집에서 모시는 것이 불가능해져 하는 수 없이 원주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다. 당시 이천의 요양원에 모실 것도 생각했지만 당시 코로나 때문에 서울 경기 지역은 면회가 될 수 없는 데 비해 원주는 2주에 한 번 면회가 가능하기에 그쪽으로 모신 것이었다. 게다가 큰처남은 속초에, 작은 처남은 서울에, 우리는 이천에 살고 있는데, 세 가족이 같이 모이기에는 원주가 가장 적절하기에 코로나가 풀린 뒤에도 따로 요양원을 옮기지 않았다.
아내는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서 엄마에게 아들 혼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장모님은 평소와는 달리 힘이 없고 가지고 간 음식도 잘 드시지 않았다고 한다. 요양원에서는 어르신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셨는데 전날 저녁부터 열이 조금 있고 기력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는 시름시름 아프시더니 결국 요양원에서는 폐에 문제가 있어 그런 것 같다고 근처 병원으로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요양원 근처의 작은 병원에 입원을 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아내는 매일 원주의 병원으로 달려가 정성스럽게 보살폈고, 덕분에 장모님은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셨다.
그러다 다시 상태가 위급하다는 연락이 와서 나와 아내는 급히 원주로 달려가 사설 앰뷸런스를 불러서 장모님을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모셨다. 그날 밤 나는 이천 집으로 돌아오고 아내는 병원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다음날 아침에 나는 다시 차를 몰고 원주로 갔고 하루 종일 병원에 있다가 저녁 무렵에는 작은 처남과 교대를 하고 아내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오빠와 교대하기 위해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병원에 도착하기 직전에 장모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장모님이 세상을 떠나시던 그 시각에 아내는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다가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큰 고통을 느꼈는데 잠시 뒤에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고 한다. 병원에 도착하여 급히 병실로 가보니 계기판은 산소포화도만 100이고 나머지는 모두 제로 상태였다고 한다. 작은 처남은 엄마가 대략 7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자기가 왔다고 말하니 계기판에서 수평선을 보이던 표지 하나가 되살아나서 아내는 깜짝 놀라서 오빠에게 엄마가 아직 살아계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 표지는 약 30초 동안 움직이다가 다시 수평선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아마도 사랑하는 딸의 마지막 인사에 반응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장모님은 1930년 봄에 태어나 93년 반을 사셨으니 비교적 천수를 누리신 편이다. 게다가 평생을 사시면서 2년 전에 고관절의 손상으로 다리가 불편해진 것 외에는 큰 병이 없었고 일주일 남짓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마지막 이틀 동안 크게 아프셨다가 돌아가셨으니 호상이라 할 수 있다. 아내도 마지막 일주일은 정성을 다해 간호를 했기에 크게 아쉬움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 혼사를 치를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시다가 혼사를 무사히 마친 뒤에 아프시기 시작한 것도 우리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아내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자기를 도와준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9월 한 달은 아들 혼사에 장모님 상사가 겹쳐 정신없이 보냈다. 더군다나 장모님이 추석을 코앞에 두고 돌아가셨기에 더욱 경황이 없었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친척과 꼭 알려야 할 곳 외에는 거의 알리지 않고 오붓하게 가족끼리 상사를 치렀다. 장모님의 상 뒤에는 또 다른 바쁜 일이 있어 며칠 정신없이 보내다 이제야 조금 숨을 돌리고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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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너른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10.07 7월에 청음 훈련을 열심히 하면서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좀 더 붙자 시간 날 때마다 재즈기타 즉흥연주를 시도하곤 했지요. 조금 감도 잡히는 것 같아 기타의 즐거움을 크게 느끼다가 9월에는 여러 가지 바쁜 일로 음악을 아예 손 놓고 지냈네요. 그러는 사이에 계절은 어느 덧 가을의 한 가운데로 들어왔네요.
옛날 주희는 "연못가의 봄 풀이 아직 꿈에서 깨기도 전에 계단 앞의 오동잎은 이미 가을의 소리를 내는구나."라고 읊었지요. 세월이 정말 빨리 흘러가네요. 음악에 대한 열정은 높고 높지만 내 머리는 벌써 반백이네요. 가을이라 그런지 웬지 마음이 휑해지네요. -
작성자violet 작성시간 23.10.09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아내 많이 위로해드려야겠네요.
우리들 나이가..인생이 그런가 싶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너른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10.10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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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해미 작성시간 23.10.09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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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너른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10.10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