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보네 에세이 63
홀리는 새, 홀리는 봄
-새호리기와 나눈 하늘의 계절-
지난해 그 자리 새호리기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에
그 소식을 반기는 지인들과 달려간다.
가까운 지역 도로변에 우뚝 선
배전전주 까치 둥지를 언제부터인가
자기 집으로 정해 놓고 올해도 어김없이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새호리기 부부
그들을 만나러 달리는 기분
봄바람이 창가를 스치는 상쾌함
오늘 새호리기와의 만남이 기대되고
그들의 날갯짓이 설레게 다가온다.
나이 답지 않게 괜히 무언가의
기대에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두근거림이 부끄럽지 않다.
주책스럽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아직 마르지 않은 감성의 샘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니
뛰는 심장이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배전전주 위에 한 쌍이
오고가며 분주히 움직인다.
왔구나.
왜 하필 이곳인가, 처음엔 의아했다.
차 소리 요란하고, 먼지 풀풀 날리고,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도로 옆
전주라니. 사람의 눈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또 그다음 해가 바뀌어도,
그들은 어김없이 그 자리로 돌아왔다.
이것은 그들이 선택한 땅이다.
소란한 세상 한가운데,
그들만의 고요를 품은 자리.
하늘이 사방으로 넓게 열리고,
믿어온 까치 둥지가 기다리는 곳.
그들은 인간의 소음 속에서도
그들만의 리듬을 찾아낸 것이다.
이 얼마나 당당한 선택인가.
세상이 시끄러워도
하늘은 언제나 고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새호리기 부부가 재회하여
달콤한 사랑을 속삭인다.
각자의 겨울을 살아낸 암수가
봄날 그때 그 자리에서 만난다.
서로를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긴 이별 뒤의 재회인데도 어색함이 없다.
본능이 기억하는 것인지,
영혼이 기억하는 것인지,
그 경계가 새들에게는 없는지도 모른다.
둥지 근처를 함께 선회하며
날아오르는 그 모습이
말 없이 안부를 나누는 것 같았다.
잘 지냈소? 무사했소? 나는 여기 왔소.
반갑구려, 무척 그리웠소....
함께 하늘을 도는 두 날개가
바람결에 포개졌다 벌어졌다 한다.
오래된 연인의 손짓처럼.
나는 그 장면 앞에서 한참
카메라를 내리고 그냥 서 있었다.
담는 것보다 그냥 느끼는 것이
맞는 순간이 있다.
짝짓기가 시작되면 하늘이 달라진다.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하루에 다섯 번, 여섯 번.
조류 연구 관찰자의 기록에는
하루 최대 여덟 번까지
관찰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수정 확률을 높이고 충분한 정자를
공급하기 위함이라 하지만
서로의 애정과 사랑을 확인하는 의미도
포함된다고 한다.
처음엔 그저 놀랐다.
나중엔 경이로워졌다.
그리고 이제는 이해한다.
번식의 행위이기 이전에,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며칠을 그렇게 뜨겁게
하늘에서 사랑을 나눈다.
의무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함을 담아서,
온 하늘을 사랑 방으로 삼아서.
바람이 이불이고, 햇살이 조명이고,
넓은 창공이 그들의 보금자리이다.
저토록 온몸으로, 저토록 여러 번,
온 하늘을 다 써서 사랑하는
생명이 또 있을까.
나는 그 장면들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서
새들에게 미안함 같은 것을 느꼈다.
이토록 순수한 것을 렌즈로
담아도 되는 걸까 싶어서.
새호리기의 비행을 제대로 본 날,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시속 160킬로미터.
웬만한 자동차도 따라오지 못할 속도
숫자로는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하늘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지우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잠깐 존재했다가
눈 깜짝할 새 다른 자리에 있었다.
공기가 길을 비켜주는 것인지,
새가 공기를 뚫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됐다.
급강하할 때의 그 모습은 더 경이롭다.
날개를 몸에 바짝 붙이고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
온 우주가 그 작은 몸 하나를 향해
수렴하는 것 같다.
넓디넓은 하늘에 작은 한 점이 되었다가
어느새 멋진 비행을 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발톱을 뻗으며
방향을 틀 때의 그 곡선.
수학도 물리학도 따라오지 못할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다.
하늘이 그들에게 준 것이
단순한 날개가 아니었다.
하늘 전체가 그들의 몸이었다.
수컷이 먹잇감을 물고 날아오를 때,
암컷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
그것을 하늘에서 받아낸다.
밥상을 차리는 것조차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하는
이 새들은 삶의 모든 것을
하늘에서 완성하는 존재들이다.
사랑도 하늘에서, 사냥도 하늘에서,
먹이 전달도 하늘에서.
그들에게 땅은
잠시 쉬어가는 곳일 뿐이다.
진짜 삶은 언제나 하늘에서 펼쳐진다.
이 자유를 바라보며
나는 자꾸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저렇게 훌쩍 날아오를 수 있다면,
이 무거운 몸을 잠깐만이라도
하늘에 맡길 수 있다면.
나이 들수록 몸은 땅으로 가라앉는데,
마음은 자꾸 하늘을 그리워한다.
새호리기라는 이름이 참 묘하다.
'호리기'는 '홀리기'의 변형이다.
홀리다, 사로잡다, 정신을 빼앗다.
그래서 새호리기,
또는 새홀리기라고도 부른다.
먹잇감을 홀려서 잡는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맹금류에게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 처음엔 낯설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이름이구나 싶었다.
그들의 비행을 보면
그렇게 이름 지어진 것이 이해가 된다.
먹잇감의 정신을 빼앗는 것이
저 날렵함이구나.
저 속도와 저 곡선이
상대의 판단을 무너뜨리는 것이구나.
그래 홀린다는 것은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온 존재로 다가간다는 것이로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면,
홀리는 것은 새호리기만이 아니다.
살면서 홀려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사랑에 홀리고, 욕심에 홀리고,
한때의 달콤함에 홀려
앞뒤 없이 달려간 날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지는
어리석음들이. 갈팡질팡 오락가락,
정신없이 나댔던 시절이.
그러나 그 홀림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흔들려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서 중심을 배우겠는가.
새호리기는 상대를 홀리지만,
정작 자신은 한 번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홀리는 쪽이 오히려 더 단단하다.
그 이름 안에 역설이 있고,
그 역설 안에 지혜가 있다.
해마다 봄이면
나는 이 자리로 찾아온다.
그들도 돌아오고, 나도 돌아온다.
어쩌면 나도 그들처럼
해마다 같은 자리를 찾아오는
철새인지 모른다.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는 마음을 들고,
이 봄을 살아내려는 마음을 들고.
뭉게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한다.
저 새들이
나에게 자꾸 무언가를 가르친다.
비울 건 비우고, 버릴 건 버리고.
하늘에서 사랑하고,
하늘에서 살아가라고.
무거운 것들은 땅에 두고
그냥 한번 날아오르라고.
배전전주 위로 새호리기 수컷이
힘차게 솟구쳐 오른다.
봄 하늘이 그 날개를 받아낸다.
“가장 자유로운 자가 가장 깊이 홀린다.
새호리기가 그러하듯이”
나는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조용히 따라 날아오른다,
마음으로.
2026년 봄,
새호리기를 만난 날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小談 (구 큐티여사) 작성시간 26.06.05
새호리기의 비상을
하늘이라는 무대에서
온갖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앵글에 담아
우리의 영혼까지
홀리개하는 새인듯합니다.
시보네님이 아니라면
새에 대해 무심히 넘겼을
신비로운 새의 비상에
우리의 마음까지
설레이게 하네요.
새에 대한 사진 전시회라도
한번 열어
새의 세계를 함께 느끼고
사랑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종일 새 부부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고
새새히 글로 표출 할 수 있는
능력이 저는 부럽기만 합니다.
이제는 기력이 떨어지고
기억도 깜빡깜빡하는 나이라도
내 고향 풍기라는 카페가 있어
젊은 사람처럼 활기있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공간이기도하지요.
새벽으로 글을 읽고
부족한 하지만 답글이라도
쓸 수있는 공간이 있어
나이를 잊고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