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삶
김수환 추기경은 “겸손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평생이 걸렸다.”고 하였다. 나 역시 배려가 지식에서 실천으로 조금 전환되기까지 칠십 년이 흘렀고, 아직도 미완성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학창시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모든 학문은 철학으로 통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대학 재직 중 제자들에게 성공의 관점에서 ‘성실은 모든 문제를 푸는 맥가이버칼’이라고 힘주어 말했었는데, 요즘은 처세술의 관점에서 주변 사람들과 라포(rapport)를 유지하는 방법은 ‘배려’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배려란 한마디로 주위 사람이나 사물에 다음과 같이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것이다.
자가용 운전을 하면서 남에게 양보운전을 하면 내가 바쁠 때 먼저 갈 수 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 먼저, 타는 사람이 나중이지만, 기본예절이 없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한 템포 늦추니까 충돌할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손주들에게 라떼의 가치관을 강요하기 쉬운데, 시대와 가치관이 변하고 손주들도 하나의 인격체란 점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기회를 자주 주어야 할 것 같다.
관심·댓글·선물·칭찬은 대인관계의 기본인데, 나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이들어 친구들과 정치와 종교에 대한 견해차로 척지게 된 경우가 더러 있다. 그래서 상대의 견해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인정하려는 포용적 자세가 필요하다.
요즘 아파트 층간소음에 따른 불상사가 심심찮게 매스컴에서 보도되고 있다. 상습적 소음이 들린다면 완곡한 의견제시가 필요하지만, 간혹가다 어린 손주들이 와서 또르르 굴러가듯이 뛰어가는 경우라면 이해좀 하면 안될까?
젊은 시절 부부는 마주 보는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같은 방향을 보고 걸어가는 동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해 남존여비·남성상위의 전통적 가치관을 버리고 부부는 각각 상호 존중해야 하는 인격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배려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바라는 바를 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선의의 거짓말처럼 발전적 차원에서 만부득이한 거절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완곡한 거절도 가치있고, 또 친한 사이임에도 상대방이 거절할 때는 거꾸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거절과 충고를 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절감하는 것은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란 점이다. 빈부격차는 사회적 불안요인이기 때문에 부자들은 좀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여 절대적 빈곤에 허덕이는 계층을 구제하고, 사회적 약자를 최소화시키려는 기독교적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40일밖에 못사는 일벌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으면 벌집에서 2∼3㎞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 조용한 죽음을 맞이한다. 다른 벌들이 자신의 사체를 처리해야 하는 수고를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 하물며 미물도 이러할진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의 배려는 어떠한지 반성해 볼 일이다.
다음은 특히 내가 좋아하는 배려에 대한 명언이다.
"배려 없는 인간은 빈 인간이다." - 에이브러햄 링컨
"배려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 루시 스톤
"배려는 존중과 이해를 실천하는 것이다." - 토머스 켄프리스
"배려는 작은 선한 행동들의 연속이다." - 윌리엄 워드스워스
"배려는 마음의 예절이다." - 고트호르트 빌헬름 레벤츠
"배려는 인간성의 근본이다." - 톨스토이
"배려는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 제인 애덤스
"배려는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는 일상적인 행동이다." - 알버트 슈바이처
"배려는 다른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것이다." - 리오넬 사비디
"배려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 로버트 인거솔
“배려는 행동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칭찬받기 위해 남을 도왔다면 그건 배려가 아니다.” - 무명씨
<관포지교>는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에 대한 고사로 <사기>에 나온다. 고사에서 “관중은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라고” 논평하고 있다. 젊었을 땐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포숙아 같은 친구가 가끔 눈에 띄인다. 많은 친구들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나밖에 모르는 소아적 독선주의자로 변하는데, 가끔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실천하는 멋쟁이 노인이 짜잔!하고 내 앞에 나타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그동안 나는 뭘 보고 뭘 배웠는가 한심하다는 자격지심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이제까지 솔선수범은 못했지만, 지인의 배려에게 감사하며 같이 보조라도 맞출려고 노력하는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혹시 아나. 그러다 보면 나도 죽기 전에 먼저 배려를 실천하는 단계에 이를지도 모르지 않는가?
“경제의 노예로 살면 인생의 1/3밖에 모르고, 정신적 가치를 알면 인생의 2/3를 알고, 사회적 보람을 느끼면 그제서야 인생의 100을 사는 것이다.”(스타다규 마이웨이 김형석 편, 2023. 1. 22.)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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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순우 작성시간 23.08.25 특별한 존중이나 우대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삶 속에서의 배려가 필요해 보입니다. After you'라는 서양 사람들의 일상화된 배려가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그 실천이 쉽지 않지요. 좀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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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해암 작성시간 23.08.25 배려가 실종된 현장을 가끔 보게 되고 개탄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는데,
갈헌의 글을 접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으려 합니다. 감사! -
작성자월몽 작성시간 23.08.25 어느 시각장애인이 캄캄한 밤에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의 오른 손에는 후레시가 있었죠. 마주 오는 비장애인들이 킬킬대며 쑤근거렸습니다. "앞도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후레시가 왜 필요하담~~~~" 자기를 향해 던지는 비아냥에 시각장애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후레시를 든 것은 당신을 위한 배려때문이라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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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멋진사랑 작성시간 23.08.26 감동의 글 감사ㆍ갈헌글을 카피해서
나의 집필에 활용하겠습니다 -
작성자송백松柏 작성시간 23.08.28 젊은 시절, 예절에 댜해 많은 것을 읽고 배려가 예절의 근본임을 알게 됩니다. 이제 되돌아 보니 나의 과도했던 배려를 이용하거나 나를 가볍게 보는 빌미를 준 것 같아 씁씁했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