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 소풍은 일정내내 무엇보다 날씨가 돋보였다. 바람이 잠시 숨을 죽이고 있는 사이 가을 햇살은 어쩌면 그렇게도 찬란한 빛을 아낌없이 지리산 자락에 뿌려대고 있었는지... 언제부턴가 가을 소풍은 기러기 모임의 연례행사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 것은 혹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반찬 같은 것이어서 때가 되면 우리는 또 다시 찾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된장찌개가 된장국으로 혹은 미역국으로 약간의 변신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이번 나들이는 평상시의 산행 중심을 탈피한 어떤 것이었다. 또한 미리 짜여진 일정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기 보다는 그 당시 우리들의 몸과 마음의 리듬을 쫒아갔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서울에서 내려간 수남, 동원, 종상, 영애, 영희, 또 광주지역에서 참가한 유선, 춘순, 정희, 이렇게 8명의 몸과 마음이 똘똘 뭉쳐 하나의 몸과 마음이라도 되었다는 말인가?
사실 우리 기러기들은 그 동안 살아온 날 만큼의 내공들이 탄탄하게 쌓인 사람들인 것 같다. 나의 개성이나 취향만큼 상대방의 그 것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때에 따라서는 전체의 분위기에 따라 자신을 거름삼을 줄 아는 사람들인 것 같다.
어떻든 우리는 순발력을 발휘하여 이 전에 못 해본 짓(?)들을 많이 해봤다. 여장을 풀게 된 지리산 가족호텔에서의 온천욕(솔직이 이 부분은 내가 거름이었다. ㅋㅋㅋ 이정희도 그렇다고 들었다.) 그리고 화투놀이(거름조차 될 수 없는 이 분야에서 나는 일찌감치 자진사퇴하였당. 8살 짜리 자신의 손자도 고스톱계에 진출하였다고 유선이 나를 독려하였으나 나는 한사코 손사레를 쳤다.) 아, 그리고 노래방가기! 노래방이야 기러기 모임 초창기에 꽤 들렀었는데 지리산에서는 처음인 것같다.
그런데 이 곳에서 기러기 역사가 새로 쓰여진 거디어따..! 아무런 기대나 예상 없이 무심히 들어간 그 곳 노래방에서 종상옵빠 카수로 데뷔하다! 평상시 서울에서 회식을 마치고 노래방에라도 들어가려고 우리들이 어물쩍거리고 있으면 "난 노래방에 안 간다. 노래방에 가라고 하면 난 모임에 안 나올꺼야"라는 폭언을 일삼아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던 종상오라버니가 아니던가..? 그냥 그 곳 문지방을 넘어가 준 것만 해도 고마워서 몸이 베베 꼬이는데.. 별안간 벌떡 일어나서 마이크를 잡는게 아닌가..? 데뷔곡은 "님의 향기" 크으... 좋다! 무대 앞 관객들은 여성팬을 중심으로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옵빠, 옵빠, 싸랑해요" 앞만 보며 가는 사나인 줄 알았더니 종상옵빠는 이제 주저 앉아 헛짓도 하는구나. "갈 곳이 없네"라는 노래가사가 유달리 자기 맘을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는데... 깊어가는 가을, 느닷없는 남자의 변신은 무죄일 수 밖에 없겠지?
그리고 이번 행사의 총 감독이라 할 수 있는 유선, 늘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방에 가면 나긋나긋 우리의 심금을 울려왔던 유선의 노래가 이번엔 좀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초연"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조수미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돋지 않던 소름이 갑자기 "후두둑" 돋아오는 것 같았다. 목소리 자체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실려있는 까닭이겠지. 그 무엇이 소낙비 되어 우리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준다.
그리고 또 다시 종상옵빠 얘기다. 손님을 맞이할 때나 손님을 방문할 때나 깨나 자나 쎈베를 끼고 다니는 듯한 쎈베 아자씨께서 역시나 이번에도 그랬다. 특히 "차홍식 부인께 전달요망. 깨지는 물건임. 조심조심" 어쩌고 하면서 매직펜으로 정성껏 눌러쓴 글씨의 과자박스를 보고 우리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정을 거의 바꾸다시피 하면서 화순의 무지개 병원을 향했다. 그 곳에서 차홍식 그리고 오여사 또 서치장씨까지 볼 수 있었다. 종상옵빠와 그 일당들의 즉석 재롱을 어여삐 여겨... 차홍식은 내년 봄을 기약해주었다. 근사한 전원주택에서의 일박과 이식은 책임지겠다! 꽝꽝 수표 한 장을 발행해주었다. 아아, 우리는 이 아름다운 계절 가을과의 이별도 이제 담대하게 맞을 수 있다! 내년 봄 꽃 피는 4월의 어느 날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큰 희망 하나 품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더냐.
우와, 우리 기러기 일당들은 복도 많지... 또 한 명의 스폰서가 내년 봄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지금 당장 손 봐주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춘순이 서방님이자 큰 손인 규종씨가 자신의 영원한 단골 집, 자신의 손 때 묻은 연주용 기타 여섯 대 중 한 대가 보관되어 있는 집, '귀향정'으로 초대했다. 굴비, 전어, 홍어 회를 비롯하여 남도의 맛 자랑 향연을 벌인 듯한 별미들을 우리는 여유있게 하나하나 음미할 수 있었다. 광주지역에서 유일하게 불참했던 향순도 그 곳에서 부르니 한달음에 달려나와 그 귀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숫 기러기 중에서 지리산 모임에 처음 참가하는 동원이,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큰 행사를 치뤄내는 평상시 솜씨대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들을 잘 리드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애써주었다.
귀향정에서 식사를 마친 후 유선은 또 다른 서울 친구를 맞이하러 희희낙락 차를 몰고가고, 향순은 한 발 늦게 서울을 출발하겠다는 동원을 태우고 떠나고, 나머지 서울팀들은 이정희 차를 타고 광주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정희 기사 너무 많이 부려먹었당. 터미널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다는 명호씨와 마주치면 아까운 정희 부려먹었다고 한 대 쥐어 박힐까봐 우리는 재빨리 인파 속으로 숨어버렸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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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엄벙덤벙 작성시간 12.11.05 내가 우울증이 많이 있었는데 눈치 안보고 이런 저런 말 마니 했더니 우울증이 나아 버렸다.. 이야기 마니 들어 준 친구들 감사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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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영애 작성시간 12.11.05 눈치없이 끼어들어 지리산 둘레1코스를 망쳐놓았지요? 글기나 말기나 엄청 재미났어요. 담에는 저 모르게 모여서 산에들 가시와요. 산을 좋아하는 기러기 언니 옵빠!! 미안시럽습니다. "미안하다고 다음에 안올꺼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절대로 아니라고 답허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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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동희 작성시간 12.11.05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아퍼 주껜네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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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종상 작성시간 12.11.07 막상 갈 곳이 없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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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춘순~ 작성시간 12.11.11 와!~ 다시 한번 더 재밋구나! 읽다가 혼자서 키득키득 웃음이 터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