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나는 고향인 서해안 시골마을에 내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아직껏 서울에서만 머물면서 일기예보를 읽는다.
지방 농업기술센터에서 메시지가 연거푸 떴다. 폭설과 강풍이 예상되니 농작물과 시설물에 대비를 철저히 하라는 전달이다.
인터넷 뉴스에는 서해안 지방은 최고 20cm 폭설이 내린다고 한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갯바닷가와는 직선거리 2km 남짓 떨어진 산너머 마을인 내 시골집은 어쩌지?
지난해 12월 중순경에 보일러를 약하게 가동시키고, 야외 지하관수 모터가 작동하도록 전원 스위치를 올리고, 집안의 배수관이 얼지 않도록 약하게 물이 흐르도록 조치했는데 이것도 기온이 심각하게 내려가면 별 의미가 없다. 모두 얼어서 동파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잠깐씩 시골에 다녀온다는 생각이 자꾸만 뒤로 미뤄져서 벌써 한 달이나 더 지났다. 그런데도 내려가기가 좀 그랬다. 날씨가 조금은 따뜻할 때 내려가야 하는데 하고 기회를 엿보는데도 날씨는 오히려 빗나가서 더욱 사납다.
2016. 1. 18. 월요일인 오늘, 서울에서는 오후에 해볕이 났다.
이렇게 좋은 날씨인데도 내 고향은 아닌가 보다. 올들어 최강 한파, 대설 예비 특보가 내려졌다는 기상 뉴스다. 그렇다면 시골 빈 집은 더욱 어찌 됄까?
거의 2년 가까이 비워 둔 집이다. 냉해를 입을까 봐 지난해 12월 중순경에 보일러 광 속에 들여다놓은 화분들은? 지금쯤 수분 부족으로 모두 메말라서 죽었을까 싶다. 지난해 겨울철에도 많이도 죽인 경험으로 보면. 지난해에는 어머니가 지방 종합병원에서 목숨을 겨우 연명하던 때라도 나는 이따금 시골집에 들러서 화초를 들여다보았는데도 겨울철에는 많이도 죽였다. 하물며 올해는 완전히 빈 집이기에 피해는 더욱 클 것이 뻔하다.
화초야 죽으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보일러, 야외 모터, 집안의 배수관이 탈나면 큰 돈이 든다. 아직은 추운데도 그것을 고치려면 고치는 동안 벌벌 떨어야 한다. 어디에서 머물며, 어디에서 잠자며가 걱정이다. 그러니 아무런 탈이 없기를 빌 뿐이다.
시골 사람들은 순박할 것 같아도 때로는 정말로 약삭빠르다. 특히 주택 관련 기술자들은 더욱 그렇다. 내 시골집은 옛날집을 오십여 년 전에 본채는 보수과 두 곳의 사랑채는 새로 지었다. 본채는 낡았다. 그 낡은 집을 20여 년 전에 재보수할 때에 날림으로 했다는 뜻이다. 늙은 할매 혼자 사는 집에 집 고쳐주는 업자들이 수도배관 등을 제대로 설치했을까? 아니다. 정말로 날림이다. 붉은 벽돌로 쌓아야 할 곳을 스티로풀과 베니다판으로 눈가림하고는 그 위에 벽지로 싸악 발랐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았다. 부엌의 물 배수관은 겨울철에는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했으며, 심한 경우에는 봄이 되어셔야 해동되기도 했다.
이런 원인을 알기에 겨울철에는 물이 줄줄 새게끔 조치를 해야 되는데도 요즘 내가 서울에서만 머무니 걱정이다. 초겨울 12월 중순경에 시골집에 내려가서 조치하고는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고는 하니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 언제 날을 잡아서 시골로 한 번 다녀가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도 이게 어긋나서 벌써 한 달이 더 되었다.
이런 배경에는 내 게으름도 한 몫 했다. 아내가 시골로 자꾸만 따라나서려고 했고, 또 심지어는 시골로 내려가지 말고 서울에서만 머물자고 말했다. 이런 암묵의 압력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으며, 또 요즘생후 16개월이 된 어린 손녀를 이십여 일 돌보았다는 핑계도 들 수 있다. 남동생한테 일찍 터를 판 소녀한테 할아비가 장난감이 되어야 했다.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시골에 내려가 있다. 서울에서는 무료하여 날마다 인터넷 카페에 들락거리면서 잡글 쓰면서, 마음을 달랬다. 오늘도 컴퓨터 앞아서 잡글 쓰는데 점심밥 먹으라면서 방문을 살짝 두드리는 기척을 느꼈다.
식탁 위에는 중국요리가 놓여 있었다. 짜장면, 탕수육, 울면.
'누가 시켰니?' 요즘, 집에 머무는 막내아들한테 물었다. 이런 음식을 자주 주문시키는 아들한테 무어라고 잔소리를 할 의도였는데도 아들은 엄마가 시켰어요라고 대답했다. 요즘 독감 걸렸다며 병 든 닭처럼 축 쳐진 아내한테는 뭐라고 말할 수도 없게 생겼다.
내가 뭐라고 지청구하려는 속셈은 있었다. 집밥이 아니라 가공된 식품을 지나치게 밝히기 때문이다. 치아가 나쁘다면서 치아를 삵히는 콜라 쥬스류를 즐겨 마셨으며, 또 통조림 캔을 무척이나 즐겨 뜯어먹는 꼬라지가 나한테는 영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중국요리를 제 어미가 시켰다는 데야 내가 뭐라고 탓할 바는 아니어서 나는 울면 그릇을 내 앞으로 당겼다. 흰 비닐로 잘도 포장해서 뜯어지기 않기에 과도로 포장지를 뜯어낸 뒤 빈 대접에 반을 덜어냈다. 내가 한 그릇을 다 먹으면 배가 동산만큼이나 불러올 게다.
'이거 얼마씩이니?' 물었더니만 '육천 원이어요' 라고 대답했다. 거짓말인지는 몰라도 육천 원이면 무척이나 헐한 가격이며, 가격에 비하여 양도 많고, 조리하는 정성을 들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기사 단골이라서 더 배려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들은 짜장면 속의 쫀득한 국수만 건져 먹고는 시꺼먼한 국물과 양파 등 잡다한 부식물은 그대로 남겼다. 짜장면 그릇에 2/3쯤 국물 등이 남았다. 그대로 비닐봉지에 넣어서 바깥에 내놓을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자식, 되게 돈 많은가 보다. 나 같으면 그 국물마저도 말끔히 다 먹을 텐데'라고 속으로 궁시렁 거렸다. 아내의 그릇도 보니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나만 반쯤도 안 되는 울면을 다 먹고는 국물마저 수저로 떠 먹고는 이번에는 숭늉을 부어서 후이후이 내저은 뒤에 다 마셨다. 싱크대 물에 씻지 않아도 될 만큼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그래야만 빈 그릇을 걷어가는 사람도 좋아할 것이고, 나중에 그릇 닦는데도 쉬울 것이다.
내가 깔끔히 먹는 습관의 본질은 따로 있다. 나는 촌태생이었고, 지금도 촌사람이기에 농사를 짓고, 유통하고, 조리하고, 배달하는 노동이 무척이 고되고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음식물을 소중히 여겨서 다 먹고, 또 빈 그릇도 정갈하게 닦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쩌면 나는 가난한 아비와 어미를 두어서 옛날 방식의 근근한 절약정신이 몸에 배었을 것 같다. 이런 아비에 비하여 서울에서만 사는 자식은 이런 빈궁한 짓은 전혀 하지 않는다. 배고품과 어려움을 별로 모르고 자랐다는 뜻도 되겠다.
내가 배달음식을 주문해서 먹었다면 나는 빈 그릇을 싱크대 안에 넣고는 깨끗하게 닦아서 바깥에 내놓을 게다. 그렇게 하면 음식물을 만들어서 파는 업자가 음식물을 더 정성스럽게 만들겠다는 소박한 마음을 가졌는데 비하여 아내나 자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음식 잔반을 그대로 비닐봉지에 넣어서 바깥에 내놓을 게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정말로 음식쓰레기이다. 또 음식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지?
배달된 음식물을 남김없이 낄끔하게 먹으면 여러 가지로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런데도 아내와 자식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린다. 국물 속에는 못쓸 화공가공 성분이 녹아서 남았다고 한다. 맞는 말일 게다. 음식장수가 음식 만들 때 여러 가지 조미료 등 가공물을 넣을 게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조미료 등에 깨알같이 작은 명칭들은 나쁜 비밀을 숨겼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국물마저 다 마시려고 한다. 어쩌면 내 식탐 속에는 옛날 시골 아이의 먹성이 그대로 남아 있일까. 모든 물자를 소중히 아끼려는 잠재의식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뜻일까.
배달시킨 짜장면에서 면발만 골라먹고 나머지는 잔반으로 내놓은 자식처럼 면발 이외에 건더기를 조금더 건져 먹고는 많은 양을 남긴 아내의 시선으로 본 아비와 남편의 모습은? 정말로 궁상맞은 아비이며 쪼잖은 남편일 게다. 아무려면 어떠랴 싶다. 늙어서 퇴직한 뒤로는 만8년 동안 100원도 못 번 나로서는 이렇게 궁상맞고 쪼잖하게 더 살아야 할 게다.
지금은 오후 세 시 반.
서울 송파구 잠실아파트 남서 방향의 유라창에는 오후 햇볕이 살짝 스며들었다. 오전 낮보다는 어둑침침한 볕이다. 아무래도 서해안 쪽으로 밀려오는 강풍과 폭설의 영항을 간접적으로 받는다는 뜻일까 싶다.
오늘은 잔챙이 고구마를 먹었다. 지난해 10월 중순에 마을에서 사 온 고구마다. 잔챙이가 먹기에 더 좋다면서 손가각 굵기를 골라서 여러 박스를 사 온 아내. 농작물의 상품가치 판단에는 눈썰미가 지독히도 없는 아내다. 고구마는 춥기 전 10월 초순 경에 캐야 하는데도 늦게 캤는지 모르겠다. 얼어서 반품되었다는 말을 듣고도 애써 잔챙이만 골라서 샀던 아내다. 그것을 서울로 가져 와 큰딸네한테 나눠 준다고 별렀는데도 큰딸네가 외국에 나갔으니 잠실 아파트 베란다에 남아 있었다. 캔 지 벌써 석달이 지난 잔챙이가 후숙하여 상할 것을 뻔한 이치. 더군다나 살짝 얼었다고 반품된 고구마. 양 끝을 잘라낸 뒤 삶아서 찐 고구마가 식탁 위에 있기에 내가 몇 차례 덜어서 먹었다.
사실 말이지, 고구마는 잔챙이보다는 조금 더 큰 게 낫다. 그렇다고 해서 두 손으로 쥘 만큼 큰 고구마는 또 전혀 아니다. 중간보다 약간 큰 것이 가장 오래 보존되고, 맛도 훨씬 나은데도 잔챙이만 애써 사서 서울로 가져 왔으니 할 말이 없다. 그냥 엄지손가락 굵기의 잔챙이만 먹었다. 그것도 양끝을 칼로 톡톡 쳐 낸 고구마.
아흔여섯 살 늙은 어미 병원 입원했다고 시골집을 1년 간 비웠으며, 또 아흔일곱 살을 넘긴 지 며칠 뒤에 돌아가신 어미를 아비 무덤 곁에 묻고는 마음이 지쳤다며 서울 올라왔기에 또다시 1년을 더 비웠다. 2년이 더 넘게 비웠으니 텃밭도 2년 넘게 방치했다. 그 결과로 지금쯤 냉이류 등 온갖 봄철 잡초가 텃밭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자랄 게다. 추운 겨울에는 땅바닥에 납짝 엎드려서 맹추위를 비껴나는 그 지혜로운 잡초가 숨죽이고는 때를 기다릴 게다.
해동이 되면 우쑥우쑥 자랄 냉이류, 쑥, 씀바귀, 지칭개, 민들레 등이 생각난다. 봄이 되면 저 들풀을 날이 무딘 부엌칼로 살살 뜯으며 캐야겠다. 풋냄나는 겉절이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또 찬밥 덩어리에 저런 잡초를 넣고는 끓이면 그런대로 맛난 끼니는 되겠다.
가난한 아비, 가난한 남편은 오늘도 시골로 내려 가 살 궁량을 댄다. 혼자서도 너끈히 사는 연습을 미리서부터 한다. 남녁 유리창 너머를 자꾸만 바라보면서 시골로 내려갈 마음의 음모를 다진다. 날씨가 따뜻하고 고르다면 갯바람이 산능선 너머로 내려오는 고향집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지방 농업기술센터에는 강풍과 폭설이 예상되니 농작물과 시설물에 대비하라는 멧시지가 핸드폰에 연거푸 떴다.
서울에 있는 나는 어쩌냐.
남동생한테 터를 탄 손녀를 할아비인 내가 데리고 있었기에 시골 다녀올 시기를 살짝 놓친 나.모든 것은 반반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다라면서 애써 나를 다독거린다.
올 겨울에는 따뜻할 것이라며, 근래에 없는 따뜻한 기온으로 피해가 예상되며 걱정이라던 기상관청도 낯뜨겁게 생겼다.
에잇. 일기예보 기상청이 아니라 일기후보 기상청으로 명칭을 바꿔라. 그 결과나 보도하구려.
'예, 지금 어떤 지방에는 폭설이 내고 강풍이 분답니다. 지금 어떤 곳은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답니다....'
2016. 1. 18. 월요일.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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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희태 작성시간 16.01.18 한달이나 가보지 못한 고향집 걱정에 노심초사 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네
내일 아침 기온이 -14도까지 내려간다니 수도 동파를 피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네
아마도 그간 한 두번 가 보았다 하여도 결과는 마찬가지 아니겠나?
차라리 수도 계량기 부근부터 집안 내부의 배관에 든 물을 모두 빼 두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게 나을 듯 하네
보통 장기간 사용하지 않을 땐 물을 빼는 방법이 효과적이지, 전문가와 상의해 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수도 들어오는 부위에 차단밸브 하나 달고, 집안은 보일러를 포함하여 낮은 곳에수도꼭지 같은 거 하나 달아서
사용 안할 땐 물을 빼는 방법...ㅎㅎ 기술도 없는 내 생각일 뿐이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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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정희태 작성시간 16.01.18 음식 많이 남기는 일...문제지...
이 순간에도 수 억명이 지구상에서는 굶고 있다고 하는데 말일세
옛날 어린시절에 국수를 먹을 때 국물까지 먹지 않는다고 주의를 주시던
아버지가 그립네 그려 ㅎㅎ 옛날에는 다 그랫었지... -
답댓글 작성자최윤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1.18 정희태 다시 보일러 등, 야외모터의 밸브를 모우 개방한 뒤에 물을 다 뽑아내면 간단한데... 그게 나중에 또 나사 조이고 어쩌고 하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살짝 가동시킨 채로 서울 올라왔더니만 그게 더 걱정일세 그려. 지난해에는 내가 병원에 있다고 해도 자주 시골집에 들렸는데도 올해는 서울에서만 머물고 있으니...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생각도 들어. 물을 모두 다 뽑아냈더라면 하는 후회지. 한번 고향 간다는 게 일정이 뒤틀러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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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풀향기 작성시간 16.01.19 모든 것 내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
마당이 있고 들꽃이 피는 시골집을 가진 님이 부럽네요....ㅎ
나도 그런 집이 있어 봤으면 하고 가끔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좋은 것만큼 불편하고 힘든 부분이 따르니
모든게 양면이 있게 마련이네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니 내 것이 옳다고 주장하다 보면 고집센 사람으로 보이겠지요..
나이 들수록 경계해야 하는게 "내 것이 옳다"겠지요...
글을 읽으며 웃기도 하고 생각도 하게 되어 좋으네요....
감사.....^^ -
답댓글 작성자최윤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1.19 시골생활은 힘이 들지요. 전원생활은 조금 낫고요. 더 좋은 것은 잠깐만 머물다 가는 힐링생활이겠지요.
시골생활은 모든 것이 구차하지요. 그것을 이겨내려면 많은 노력이 들어가야겠지요. 예컨대 여름철 시골로 피서를 간다? 많은 나무들이 있고 꽃이 피고...어쩌구.
그런데 나무가 많고 풀이 많으면 그 많은 모기들은요? 시골모기는 서울모기와는 달라서 정말로 억세지요.
뱀이 나타날 것인데요!
고집이 센 사람이지요. 융통성이 부족한... 반성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더 늙으면, 더 힘 빠지면 그때나 가능하려나...
마당이 있고, 들꽃이 피는 시골집은 손바닥만하고, 추우면 얼른 서울로 올 때에는 그게 꼭 필요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