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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논평 **

[화요논평](2007년 11월 13일) <장마>를 둘러싸고 : 윤흥길과 나카가미 겐지

작성자소조(小鳥)|작성시간07.11.13|조회수1,138 목록 댓글 3

* 이 글은 <너희가 황석영을 믿느냐> (8)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장마>를 둘러싸고 : 윤흥길과 나카가미 겐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서 황석영의 1985년의 행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 바 있다. “1984년 <<장길산>>을 완간하고 다음 해인 1985년 베를린에서 열린 ‘제3세계 문화제’에 아시아대표로 참석한다. 그리고 미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와 6개월 정도 머물게 된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그 ‘제 3세계 문화제’(호리존테 페스티발)에 참석한 한국작가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가 바로 황석영보다 한 살 위인 윤흥길이라는 사실이다. 흔히 윤흥길은 조세희, 황석영과 더불어 70년대 한국소설을 이끈 트로이카로 불리지만, 오늘날 그에 대한 평가는 조세희와 황석영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소홀한 감이 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베를린에서 귀국한 직후 좌반신 마비증과 그에 따른 후유증 때문에 한동안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했던 게 가장 컸다. 여기서 우리는 윤흥길에 대한 재평가를 할 생각을 없다. 대신에 그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한 일본소설가를 논의의 중심으로 데려오기로 한다. 여기서 한 일본소설가란 앞에서도 간간히 호명되었던 나카가미 겐지이다. 사실 윤흥길을 베를린에 오도록 주선한 것도 바로 그였다고 한다.

 김윤식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사실 한일문학 간 교류에 있어 한 획기적인 이정표는 누가 뭐래도 윤흥길과 나카가미 겐지 사이에 이루어졌다.1) 그 이전에도 교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과 일본의 최정상급 작가들 사이에 어떤 긴장감 있는 우정이 맺어진 것은 아마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물론, 최근에 공지영과 쓰지 히토나리 사이에서, 또는 신경숙과 쓰시마 유코 사이에서 보는 것처럼 교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 의례적인 행사에 그친 감이 있으며, 따라서 한일문학 양쪽에 도움이 되는 진정한 교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윤흥길과 나카가미 겐지 사이에서 오고간 문학적 우정은 그와는 달랐으며, 실제 양국문학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상대적으로 우리 쪽의 반응은 미약했지만). 윤흥길의 소설 <장마>를 읽고 충격을 받은 나카가미는 그의 소설들이 일본어로 출판되도록 애를 썼고, 실제 일본어판이 출판될 때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관심을 모았다. 특히 ‘장마’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소설집(1979)은 많은 서평을 받았고2)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황석영은 정부의 지원을 얻어 이름 없는 출판사에서 번역서를 내는 생색내기 해외출판이 아닌, 외국의 저명한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일반서점에서 판매되는 책은 자신이 처음이라고 주장하며, “우리 문학은 이제 겨우 세계 독자를 향한 창문을 열었다고나 할까요”3)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확실히 그의 작품들은 이전의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과는 달리 정부지원에 의한 추진되는 억지스러운 출판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의 경우만 놓고 보았을 때 일본에서 출간된 그의 어떤 작품도 <장마>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4) 사실 일본인에게 황석영은 ‘세계문학’이라는 보편성 하에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한국’이라는 특수성을 온몸으로 체현한 작가라는 작품 외적 요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1980년대에 이미 번역된 그의 대표작들(<객지>, <한씨연대기> 등)이 우리나라에서와는 달리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일본에서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비단 이 때문만은 아니다(이에 대해서는 곧 다루게 될 것이다). 어쨌든 결과만을 놓고 말한다면, 일본의 독자들은 황석영의 소설 대신에(조세희의 소설도 이미 번역되어 있었다) 윤흥길의 소설을 선택한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나카가미 겐지 등의 일본인들이 황석영이나 조세희가 아닌 윤흥길, 그중에서도 특히 <장마>에 주목한 것은 한국적 토속성과 같은 이국적 감성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엿보이는 토속성이 한국적 특수성을 훌쩍 넘어 어떤 보편성에까지 닿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그런 비판은 일면을 과장한 것에 불과하다(이는 김동리의 토속성과 윤흥길의 토속성을 비교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럼 일본인 나카가미 겐지는 왜 <장마>(또는 <장마>계열의 작품)에 열광한 것일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다른 계열의 작품,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GI문화의 일부라고 강하게 비판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그는 후자를 비판하고 전자를 높이 치켜세웠던 것일까?5)

 사실 이런 질문을 제일 먼저 던졌던 것은 바로 윤흥길 자신이었다. 그는 나카가미 겐지에 대해 한국 사람이 일본소설을 읽을 때 ‘일본적인 것’을 찾는 것처럼, 그 역시 그런 것은 아니냐고 묻고 있다.


나카가미 겐지: 내가 압도적인 공감을 갖고 있는 것은 역시 <장마>나 <황혼의 집>처럼 인물을 확실하게 그려내는 계열입니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일본식으로 분류하자면 테마소설 또는 프롤레타리아문학의 계보지요. 사회문제를 다룬 소설은 항상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지식인체 하는, 소위 이미 매우 오래전에 파괴되었음이 분명한 ‘지성’을 근거로 지적인 조작을 하고 있는 소설로 읽힙니다. (…)


윤흥길: 같은 이야기를 다른 일본작가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일본소설을 읽은 경험으로는 우리가 일본작가의 작품에서 기대하는 것 역시 특히 일본적인 것이나 그런 것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읽고 싶어 합니다. 나카가미 씨가 나의 작품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는 충분히 이해에 가지만, 작가라는 존재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개성이고, 그 다음에 민족이라는 존재,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존재라는 게 아닐까요?


나카가미 겐지: 확실히 상투적으로, 아니 평론가투로 말하면 그렇게 될지 모르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작가라는 존재’라는 것이 이미 자명한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윤흥길의 <장마>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개성’이나 ‘작가라는 존재’가 파괴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발견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윤흥길이라는 작가에게서 오늘날 현대작가가 회복되는 극(劇)과 같은 것, 그것을 발견했다는 것이 나의 독해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아메리카로부터 온 것, 앞서 당신이 GI문화라고 말한 그런 것은 그저 이런 빌딩이나 한일양국이 계속 짓고 있는 아파트나 컴퓨터나 과학기술이나 그런 것만이 아닙니다. 소설, ‘문학’이라는 것도 아메리카나 유럽을 경유해서 온 것이지요. 그렇다면 특히 예를 들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그런 ‘문학’의 범주에 있는 것이 됩니다. (…) 그런데 윤흥길의 <장마>를 읽고 생각한 것인데, 한국의 소설 즉 한국의 ‘문학’이 재미있는 것은 ‘근대문학’이라는 퍼스펙티브가 결여된 부분에 있습니다.6)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서로 간에 핀트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는 위 대담을 자세히 읽다보면, 우리는 나카가미가 <장마>에 주목한 이유가 상당히 자각적이라는 것(이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한국문학, 특히 윤흥길의 <장마>가 그토록 충격적이었던 것은 ‘근대문학’이라는 퍼스펙티브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장마>에는 놀랍게도 근대문학에서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부재하다는 의미이다. 혹자는 이를 근대문학의 이념을 어느 정도 성취한 나라 사람이 그렇지 못한 나라의 문학을 교묘하게 무시하는 방식이 아니냐? 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예컨대 나카가미는 과거 백 년 동안의 양국의 근대문학을 비교하면서 일본문학이 한필의 베가 짜여지는 선(線)으로 바뀌어온 데 반해, 한국문학은 선(線)이 아닌 면(面)으로 전부냐 무(無)냐 라는 물결로 존재했기에 지금과 백 년 전이, 여기와 저기가 동시에 존재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른 말로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같은 소설은 일본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선(線)적인 소설이지만, <장마>는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는 면(面)적인 소설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윤흥길은 나카가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나카가미가 일관되게 ‘근대문학’의 자명성을 비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리어 그것을 옹호하는 입장을 고수하는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이런 태도는 물론 기본적으로는 작가의 자기 작품에 대한 방어와 직결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 한국문학의 중요한 흐름이었던 사회파 소설을 의식한 발언이라고 봐야 한다. 즉 그가 나카가미의 논리를 있는 그대로 수긍하게 되면, 그의 소설 일부만이 아니라 당시 한국소설의 주요흐름 자체(황석영이나 조세희의 소설)를 모두 부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상황판단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윤흥길: 한국에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라는 작품을 쓴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외국인이 읽은 것과 관점이 다릅니다. 한국인은 당신이 느끼고 있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카가미 겐지: 그럼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지요?


윤흥길: 절박한 현실, 그런 것을 묘사함으로 문제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나카가미 겐지: 그런데 절박한 현실이라는 것이 뭐죠?


윤흥길: 인간이 인간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인간성이라는 것이 완전히 무시된 채로 사회의 흐름이라는 것에 휩쓸려 들어가는 그런 현실을 말합니다.


나카가미 겐지: 때문에 나는 그 부분에서 당신과 완전히 다릅니다. 나는 인간이라는 것, 인간이나 인간성이라는 것, 이것도 GI문화라고 생각합니다. (……) 인간이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입니다. 우리는 인간보다도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부를 가지고 피를 가지고 있는, 말하자면 어둠이 있으면 무서워하고 우리 머리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거나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라기보다도 살아있는 존재입니다.7)

 

 여기서도 우리는 윤흥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근대문학’이라는 관념을 깨뜨리려고 노력하는 나카가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당시 윤흥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주장이 오늘날에는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변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누가 뭐래도 나카가미 겐지의 맹우(盟友) 가라타니 고진이다. 그의 저서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이 국내에 번역된 이후 이제 어느 누구도 ‘근대문학’을 자명한 것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지만 ‘상식으로 변질되는 과정’은 항상 그것의 진짜 의미가 은폐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식으로는 ‘근대문학의 자명성’을 의심하면서도, 문학의 현실적 조건(시스템) 하에서는 어떤 ‘회의’도 느끼지 않는다. 도리어 그런 ‘회의’ 자체가 ‘상식적인 것’으로 폄하되며, 그 과정에서 뇌관이 제거된 ‘회의’는 도리어 근대문학을 더욱 강화시키는 기제로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수없이 그 책을 인용하면서도 그와 같은 ‘기원’ 비판이 가진 보다 본질적인 의미(기원이 보인다는 것은 그것이 종언에 이르렀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8) 따라서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가 제출되자 모두들 놀라는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카가미 겐지가 한국에서 찾고 있었던 것은, 그리고 그가 <장마>에서 발견한 것은 ‘근대문학의 종언’과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명백한 사실을 집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윤흥길의 소설집 <<장마>>가 일본에서 출간되어 화제가 된 해(1979년)는 놀랍게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출간된 해이기도 하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이 두 작품의 동시적 등장은 그저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기에는 꺼림칙한 무언가가 있다. 그러니 보니 아키야마 슌(秋山駿)은 1979년 5월 25일자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 <문예시평>에서 바로 이 두 작품을 나란히 언급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9)

 이 글에서 아키야마는 제일 먼저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이미지를 상실한 일상’으로 보고, 최근 소설들에는 오늘날의 현실을 조명할 수 있는 진정한 현실감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윤흥길의 작품집 <장마>를 들어 그것들과 대비시키고 있다. “이 작품집은 그 선명한 현실감에 의해, 희박한 일상밖에 그리지 않는 오늘날의 일본소설의 약점을 정확히 찌르고 있다.”10)고 전제한 후, 전쟁이라는 것만 손으로 가리면 오늘날 일본의 어느 지방에 가면 있을 법한 광경이 정말 리얼리스틱하게 그려지고 있다고 덧붙인다. 다시 말해, 그는 당대의 일본소설보다 윤흥길의 소설에서 일본의 현실감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후 이런 <장마>와 아주 대조적이었기에 흥미로웠던 작품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들고 있다.


 윤씨의 것이 현실의 무게를 탐구한 것이라면 이것(<<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인용자)은 현실의 말하자면 가벼움을 명석하게 즉흥적으로 연주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윤씨와는 대조적인 각도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오늘의 현실이라는 것의 감촉을 선명하게 오려낸 것이다. 매우 의식적인 제작으로서, 작자는 단순히 일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감이라는 반응이 없는 일상의 공허함을 음부(音符)의 배열처럼 구성하고 있다.11)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키야마가 현실감의 포착하는 방식으로 윤흥길적인 것(무거움)과 하루키적인 것(가벼움)으로 비교하면서, 전자만큼은 아니지만 후자에도 일정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일상생활의 가벼움이 곧 우리들이 포용하고 있는 삶, 생존의 진정한 실체에 그대로 직결되는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이는 다른 말로, 1979년 일본에서 근대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위 두 가지가 제시되고 있다는 의미인데, 문제는 그중 일본에서 실제 가능했던 것은 후자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문학의 종언’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때, 일본문학인들에게 윤흥길은 또다른 의미에서 근대문학 한계와 관련된 어떤 지표로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키와는 다른 윤흥길, 다시 말해 <장마>의 힘(가능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한일 간에 이루어진 <장마>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그것은 단순히 잘 씌어진 소설 한 편이 외국에서 인정받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나카가미 겐지의 흥미로운 지적 한 가지를 더 살펴보기로 하자. 나카가미는 일본문학과 한국문학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일본근대문학에는 전통이라는 억압이 존재하는데 반해, 한국근대문학은 그렇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 후, 그 원인을 문자의 레벨에서 찾고 있다. 즉 일본의 경우 한자에서 유래한 가나문자로 씌어진 문학이 천년 넘게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항상 근원(과거)로 소급해가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인공어인 ‘한글’로 인해 어떤 결정적 단절이 이루어져서 일본과 같은 전통의 억압이 부재하다는 것이다.12) 그리고 그는 그 증거로 일본근대문학에는 작은 문호들(소세키, 아쿠타가와, 다자이 등등)이 많은데 반해, 한국에는 그런 문호가 없다는 것을 들고 있다.13)

 확실히 한국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전통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사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작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오늘날의 작가들에게 주는 영향은 전무하다(따라서 그들은 주로 외국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아무도 염상섭이나 이상에 대한 ‘영향에의 불안’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으로 ‘한국문학의 빈곤’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견해에 대한 윤흥길은 응답은 비교적 단순하다. 한국문학에 대가가 없는 것은 식민지시대의 억압(한국어말살 정책)과 같은 외적 환경 때문이며, 현재 한국의 문학은 육성되고 있는 단계라고 말한다. 이는 발전도상 중에 있는 한국문학도 언젠가는 대가를 가질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근대문학이라는 것이 인위적으로 육성된다고 되는 문제일까? 다시 말해, 문학의 발전도 냉장고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드는 것처럼 투자와 시스템설비에 의해 가능한 것일까? 당연 나카가미가 말하는 것은 그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문학동네>> 편집위원 남진우는 ‘근대문학의 종언’을 비판하면서, 한국문학은 아직 근대에도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그 증거로 그는 외국서점에 한국문학이 거의 꽂혀 있지 않다는 것을 든다) ‘종언’이라는 말을 가당치 않다고 성토하면서, 한국문학은 그런 말에 미혹되지 말고 근대를 향해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고 주장한다.14) 그런데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세계문학의 반열에 드는 문학만이 진정한 근대문학이라는 매우 단순-소박한 논리가 있을 뿐이다. 즉 그가 생각하는 ‘세계문학’이란 서구의 인정을 받은 문학이며, 또 그런 인정을 얻을 수 있을 때에만 제대로 된 ‘근대문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타인지향적인(서구-중심적) 문학관은 현실에선 일말의 설득력을 가질지 모르지만, ‘세계문학’이나 ‘근대문학’이라는 개념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단적인 예로, ‘근대문학의 종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작가 개개인이 노력해야 한다는 황석영의 이해와 맞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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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윤식, <윤흥길과 나카가미 겐지>(1983), <<지상의 빵과 천상의 빵>>, 솔, 1995 참조.

2) 당시 나온 일본 측 서평은 같은 해에 나온 다음 책이 대부분 번역이 되어 있다. 김현/김병익 엮음, <<윤흥길: 우리시대의 작가연구총서>>, 은애, 1979 참조.

3) 황석영 대담, <문학의 지평에 금표(禁標)는 없다>, <<문학의 문학>>, 2007 창간 가을호, 46쪽.

4) 또 이문열의 소설 중 일부는 황석영보다 일찍 본격적인 해외시장에 진출했다는 점도 지적해 두기로 한다. 

5) 사실 황석영이나 조세희의 소설은 모두 <장마>보다는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 쪽에 속하는 소설들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들이 일본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6) 中上健次/ 尹興吉, <<東洋に位置する>>, 作品社, 1981, 21-23頁, 강조는 인용자.

7) 中上健次/ 尹興吉, 위의 책, 24-26頁. 강조는 인용자.

8) 실제 가라타니는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이 출간된 해에, 한국에서 와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졸고 <비평의 노년: 가라타니 고진과 백낙청>(<<오늘의 문예비평>>, 2007년 여름호)을 참조바람.

9) 아키야마 슌, <현실의 무거움과 가벼움>, 김병익/김현 편, <<윤흥길: 우리시대의 작가연구총서>>, 은애, 1979, 198-201쪽에 수록됨. 참고로 한국 쪽 문헌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바로 이 글이 아닐까 한다. 물론 당시엔 아무도 그의 이름에 주목을 하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10) 아키야마 슌, 위의 책, 199쪽.

11) 아키야마 슌, 위의 책, 201쪽.

12) 이와 관련하여 덧붙일 수 있는 것은 일본소설가의 경우 대부분 만년에 이르면 자국의 고전을 돌아가 <<겐지 이야기>>와 같은 작품의 현대어역을 시도하는데 반해, 우리의 경우는 하나 같이 중국의 <<삼국지>>나 <<수호지>>를 번역하는데 시간을 소비한다. 

13) 참고로 나카가미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진정한 대문호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14) 남진우, <'위기'론과 '종언'론을 넘어서>, <<문학동네>>, 200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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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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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소은 | 작성시간 07.11.16 근대문학의 종언으로서의 자리찾기를 전통의 무게에 눌리지 않은 근대 이전의 울림으로부터 길어내려하는 나카가미 겐지를 보면서, 앨빈 토플러가 말한 제3의 물결은 불과 몇백년에 불과한 산업화의 낡은 틀을 벗음으로 시작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저로서는 아직 근대의 계몽주의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서구화의 그 패턴을 꼭 거쳐야만 한다는 도식(무의식적 강박)부터 떨쳐버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반성도 생기고요. 많은 것을 생각케하는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 작성자로쟈 | 작성시간 07.11.16 이 '연재'는 게재된(혹은 게재예정) 원고인가요?
  • 작성자소조(小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11.18 아무도 모르는 잡지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나오면 한 권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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