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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omato 작성시간17.09.12 그녀의 소설 속 남자들은 왜 그리 살아야 하는 것이며 찌질할까. 예를 들어, 남성독자들이 왼편의 문장을 읽는다면
그들은 해당 소설을 읽어볼 의심도 들지 않을 것 같네요. 아마도 위글은 필자가 불편한, 작가의 젠더 감수성을 지적하시는 것 같았는데요. 아마도 남자사람들은 대부분 여자사람들을 유일하며 생물학적인 성별의 차이에서 찾기보다
비과학적이고 종교적인 계급 질서에서 찾는 데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경향들이 좌표에 가리키는 방향성은 양성평등에 반하는 쪽입니다.
아마도 그쪽이 할 말도 더 많아지는 쪽인듯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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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정신병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09.13 tomato 제 생각에 김 작가에게 여성은 버거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적 의식을 강하게 지녔기 때문에 그 죄책감이 책에 잘 나타난다고 봅니다. 생명연습에서 자신의 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의 여러번의 외도, 그 걸 못참고 죽는 형 등, 화자는 그 것을 목격할 뿐 개입하지 못하는데, 그 뉘앙스가 씁쓸하죠. 무진기행에서 화자는 자신을 구세주로, 구원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여성에게 자신의 이득(섹스)만 취하고 도망칩니다. 그러한 능력이 화자에게는 없기 때문인데, 그러한 오해는 반대로 가부장적인 남성의 허세와 부합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기도 하죠. 서1겨에서 병걸려 죽은 아내의 시체를 판 남자는 양심에 찔려 자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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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정신병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09.13 tomato 화자와 부유한 집 남자는 양심에 고통스러워하는 남자와 함께 그 돈을 같이 쓴다는 설정으로 여러명의 남자에게 죄와 공포가 전이되고 맙니다. 자살한 남자는 오히려 자살이 아닌 타살, 사형 심판을 받은 듯이 보이기 때문에, 다른 두 남자는 진범이 잡혀가고 풀린 공범의 입장이 됩니다. 하지면 이 소설에서의 포인트는, 여자가 죽었다는 것이고, 다른 세 남자가 같이 간다는 설정을 잡은 작가의 설정이겠죠. 남편이 죽은 보험금으로 우울해 하며 흥청망청 써대는 여자와, 그 여자에게 빌붙어 같이 소비하는 두 여자가 있었다가, 양심의 가책에 여자가 죽었다면? 성별이 이렇게 고정된 것이, 그 시대의 작가와 독자의 문제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