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고려,조선전기,후기로 갈수록 시비법 윤작법 가을갈이의 발달순서와 영향관계
2. 조선시대 관리들이 수조권이 줄어들어갔다는 사실은 이해하겠는데
고려시대 관리들의 수조권이 어떻게 줄어들어갔나요?
고수님들의 답변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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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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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선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6.04.13 관수관급제는 조선시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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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피톤 작성시간 06.04.14 막상 정리할려고 하니깐.. 잘 안되네요...ㅎㅎ 가을갈이는 삼한에서도 우경이 실시 되었다걸로 미루어 보아 이시대에도 있었다고 할수 있구요.. 일반화 된 게 조선초기로 이해 하시면 됩니다... 시비법은 이전 농법에서는 농사를 한해 짓고 나면 토지의지력이 약해져서 더 이상 농사를 짓기 힘들어서 나온게 윤작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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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피톤 작성시간 06.04.14 고려말, 조선초가 되면서 시비법, 깊이갈이의 발달로 인해서 토지의 지력을 유지시킬수 있게 되었고, 2년3작, 이모작같은 농법도 가능하게 되면서 생산력을 높일수 있었겠죠... ok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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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피톤 작성시간 06.04.14 고려시대는 통신과 조선의 중간 단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려초기에 토지를 지급받은 공신, 귀족들은 조세, 부역, 공물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세습이 되었습니다... 전시과때 점차 세습되던것이 시정, 개정 전시과로 넘어가면서 세습되는지 않는 토지가 늘어나게 되고, 점차 조세 수취권만 인정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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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피톤 작성시간 06.04.14 되죠... 이러한 분위기에서 고려말 과전법이 실시 되면서 농민들의 경작권 보호와 병작 반수 금지를 함으로서 더 더욱 줄어 들게 되죠... 세습이나 부역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구요.. 전시대에 비해서 줄었다는 거죠... 음, 혹시나 해서 부가 설명 드리면 세습이 되면 그 지역에 대한 영구적 지배력 행사가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