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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법 윤작법 가을갈이

작성자정선아| 작성시간06.04.13| 조회수262|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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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피톤 작성시간06.04.13 이정돈 공부하세요... ㅡ.,ㅡ;;
  • 작성자 정선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6.04.13 책을 찾아봐도 이해가 안되니 그렇죠 알면 좀 가르쳐 주시면 안될까요?
  • 답댓글 작성자 흥분한 호랑이 작성시간06.04.13 바보네...책 봐도 모르면 포기해야지...
  • 작성자 정선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6.04.13 보통 보면 조선전기에 가을갈이 농사법이 점차 보급되어 갔다라고 하잖아요...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가을갈이는 고려시대에도 있었던걸로 아는데....가을갈이와 이양법과 관련이 있나요?
  • 작성자 정선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6.04.13 ㉢ 가을갈이 농사법 보급 : 가을에 농작물 수확 후 빈 농지를 갈아엎어 다음해 농사준비
  • 작성자 정선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6.04.13 고려시대 전시과 안에서 수조권이 줄어드는것은 알겠는데 역분전 전시과 녹과전 과전법으로 진행되면서 줄어든 양상이 그려지지가 않아서요
  • 작성자 기적은 내 마음안에 있다 작성시간06.04.13 고려시대 관리들의 수조권은 <관수관급제>를 생각해보시면 되겠네요.
  • 작성자 정선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6.04.13 관수관급제는 조선시대 아닌가요?
  • 작성자 피톤 작성시간06.04.14 막상 정리할려고 하니깐.. 잘 안되네요...ㅎㅎ 가을갈이는 삼한에서도 우경이 실시 되었다걸로 미루어 보아 이시대에도 있었다고 할수 있구요.. 일반화 된 게 조선초기로 이해 하시면 됩니다... 시비법은 이전 농법에서는 농사를 한해 짓고 나면 토지의지력이 약해져서 더 이상 농사를 짓기 힘들어서 나온게 윤작법입니다.
  • 작성자 피톤 작성시간06.04.14 고려말, 조선초가 되면서 시비법, 깊이갈이의 발달로 인해서 토지의 지력을 유지시킬수 있게 되었고, 2년3작, 이모작같은 농법도 가능하게 되면서 생산력을 높일수 있었겠죠... okay??
  • 작성자 피톤 작성시간06.04.14 고려시대는 통신과 조선의 중간 단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려초기에 토지를 지급받은 공신, 귀족들은 조세, 부역, 공물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세습이 되었습니다... 전시과때 점차 세습되던것이 시정, 개정 전시과로 넘어가면서 세습되는지 않는 토지가 늘어나게 되고, 점차 조세 수취권만 인정받게
  • 작성자 피톤 작성시간06.04.14 되죠... 이러한 분위기에서 고려말 과전법이 실시 되면서 농민들의 경작권 보호와 병작 반수 금지를 함으로서 더 더욱 줄어 들게 되죠... 세습이나 부역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구요.. 전시대에 비해서 줄었다는 거죠... 음, 혹시나 해서 부가 설명 드리면 세습이 되면 그 지역에 대한 영구적 지배력 행사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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