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불패아기곰작성시간07.02.14
성리학 이전의 고려 유학은 훈고학이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훈고학에서 벗어난 성리학자들이라는 거겠죠. 완전히 벗어났다는 과격한 지문이 거슬리고 확실히 모르겠지만, 2번이 확실히 틀린 지문이니까..뭐..패스하죠.ㅋ 그다음 문제는 왕권과 신권의 조화쪽에 풀어야 할듯...조선 개창때 정도전 등이 재상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도 한 바 있고...
작성자자아의신화를찾아서작성시간07.02.14
성리학과 훈고학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조선이전의 통치이념은 훈고학이라고 할 수 있고, 고려후기에 신진사대부들이 주자의 성리학을 수용하여 개혁을 추진해 나간 것입니다. 정도전, 권근(급진), 정몽주(온건) 등의 공통점 중 하나가 기존의 훈고학적인 유교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주의할 점은 '훈고학'과 조선 초기의 '훈구파'는 개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훈고는 경구의 해석을 의미하고 훈구는 공신세력을 의미합니다.
작성자자아의신화를찾아서작성시간07.02.14
또한 2번에서 조선은 전제군주라기 보다는 왕도정치, 대신정치를 추구했던 사회입니다.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왕권이 약하였고, 이로인해 붕당이라는 정치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왕권이 강하면 붕당을 만들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대교린정책에서 친선정책이 우선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나머지 보기는 그냥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