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얼마 전 유튜브 공간에서 Finder님에게 <'나'는 무엇이며 '나'와 세상의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했었습니다.
익히 예상했듯이 기독교인의 교리에 맞는 답변을 해 주셨고 전 어려웠지만 대략적인 내용을 이해했습니다.
다만 '나'와 세상의 경계가 어디쯤인가에 대한 답변은 제가 보기에 두리뭉실하게 넘어가신 거 같아서 오늘 저의 의견을 말해보려 합니다.
느닷없이 웬 뚱딴지 같은 얘기를 하느냐고 의아해 하시겠지만 '나'라는 개별적인 개체와 세상과의 경계는 정말이지 연구해 볼 만 합니다. 우리가 종교와 철학에서 '자아'니 '에고'니 하면서 각 개체의 개별성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건 모든 사상과 철학의 출발점이 '나'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을 떠나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나'라는 주체가 없으면 삶도 없고 세상도 일순간 없어져버립니다. 하나님이 정성들여 만들어 주신 모든 것과 과학이 말해주는 이 광활한 우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그럼 '나'와 세상의 경계는 어디쯤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 딱히 경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기는 그 경계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살아가는데 편의성을 위해 상징적인 패턴의 양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이를테면 우리의 대화 내용이나 지식을 저장하기 위해 문자를 사용하듯이 말이죠.
몇 달 전에 뇌졸중에서 가까스로 회복 된 의사의 수기형식으로 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의학서적도 관심이 많기에 한 번씩 읽어보는데 근래 읽어 본 책 중에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좌뇌가 망가져 쓰러진 주인공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글도 읽지 못하는 등등 다시 갓난아기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 의료진들이 말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들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대체 무얼하는 걸까?' 라고 궁금해 하고, 집에서는 어머니가 글을 가르쳐 주시려고 날마다 노트에 알파벳을 써서 보여주는 걸 보고 '저 이상한 꼬부랑 그림들은 대체 무얼까?'라면서 궁금해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행동하고 쓰고 있는 모든 패턴을 망가진 좌뇌에서 정보처리를 못 하게 되니 생긴 현상입니다.
하지만 우뇌에서는 획기적인 현상이 일어납니다.(좌뇌가 망가져서 우뇌가 모든 인지 능력을 쓰게 되어서 그런 건지 우뇌도 조금 망가졌는지 그것까진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마음수련을 하면 얻을 수 있다는 세상과 하나가 된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너무나 황홀하고 충만한 나머지 아주 흐리게 의식하고 있었던 '난 다시 정상인으로 되돌아 가야 해.'라는 의지도 취소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마약을 취하면 느끼는 '황홀경'과 같았을 것입니다.
뇌졸중으로 우뇌가 맹활약하게 되자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과 경계가 사라져버려 내가 누구인지, 세상이 나인지 전혀 구분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아마도 우리 모두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갓난아기일 때 이러한 상태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자신과 세상의 경계를 조금씩 만들어 가게 되겠지요.
뇌졸중 환자의 경우로만 나와 세상의 경계는 없다고 단정짓는 것도 어이없는 상황일 거 같아서 제 의견도 간단히 써 보겠습니다. 물론 순수 제 의견이라기 보다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과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배운 내용에 기인한 게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 보통 우리가 책상에 앉아서 자신의 팔과 책상을 보면 서로 동떨어져 있는 물체라고 인식합니다. 하지만 뇌의 어느 한 부분을 망가뜨리면 그에 대한 정보처리 감각이 없어져서 도대체 어디까지가 자신의 몸인지 인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위에서 말한 뇌졸중 의사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니까 좌뇌에서 반복적인 훈련에 의해 자신의 몸과 세상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우리의 몸무게를 받쳐주고 발을 디딜 수 있는 단단한 땅이 없으면 우린 아예 걸어 다니지도 못합니다. 이건 물리적이며 신체의 인지능력적인 면에서 나와 세상은 경계가 없다는 가장 확고한 증거에 속합니다.
둘째로, 화학적이고 신체대사적인 경우를 보면 우리는 항상 산소와 물, 음식을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산소 같은 경우는 수 분만 호흡을 못 해도 사람이 숨지게 되는데 이것만 봐도 우린 세상과 따로 떨어져있는 개체가 절대 될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기가 빡빡하게 있는 곳에서 끊임없이 산소를 마시고 탄산가스를 내뱉으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죠.
셋째로, 우리가 태어나기 위해선 우리의 부모님, 친가 조부모님, 외가 조부모님, 친가 증조부모님, 외가 증조부모님 등등 이렇게 양가 부모님 조상의 가지를 뻗쳐 나가보면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조합으로 현재의 '나'가 탄생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과장된 표현으로 나의 조상은 적어도 수 억명은 됩니다. 그리고 그 조상들을 먹여살린 농산물과 가축의 원천은 태양에너지에서 오는 것이며 , 지구의 역사와 산업혁명 등 모든 영역으로 뻗쳐나가면 나라는 존재는 그냥 이 세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세상에서 홀로인 '나'와 세상의 경계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일상생활의 편의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패턴화시켜 좌뇌가 인식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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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ourdailybread 작성시간 19.10.01 말씀하신 대로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세상과의 교류이고 세상이 있음으로 내가 있다는 부분은 일면 맞는 얘깁니다만, 그 세계관은 인간을 지나치게 '기능적 측면'에서만 조명한 것으로 보이며 인간의 정신을 물질의 부산물로 보는 기계적, 기능적 관점에서만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그 관점은 현대 철학과 과학이 인간을 바라보는 기본적 태도이며 그들은 자기들의 관점이 옳지 않을 수 있음을 알지라도 그것을 놓으면 자기들이 돌이키고 싶어하지 않는 종교 입장에서의 인간 규정으로 가기 때문에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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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프시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10.02 기능적 관점으로만 서술한 것 맞습니다. 급하게 쓴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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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ourdailybread 작성시간 19.10.01 인간의 육체는 창세기에 기록된 바 진흙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세상의 기본 물질인 흙과 잘 조합되게 되어 있습니다. 흙에서 멀어지면 인간은 본성에 어긋난 행동을 많이 하게 되며 그래서 도시화된 현대 문명에서 인간들은 더 많은 복잡한 정신 질환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인간의 육신은 세상의 구성 물질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아닌 여타 종교, 특히 명상과 수련을 채택한 불교나 도교에서 이야기하는 물아일체, 깨달음 같은 부분은 사람이 본시 온전하고 바른 존재인데 단지 무지 때문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못 쓴다는 생각을 하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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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ourdailybread 작성시간 19.10.02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의의와 본래적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들어와야만 합니다. 단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믿으면서 읽을 때 자기 값어치가 정확하게 매겨집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으며, 그 형상에 문제가 생겼기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를 고쳐주기 위한 해법을 마련하셨다고 쓰고 있습니다. 인간의 불치의 병은 육체에 있기보다 그의 마음에 있는데 그것은 '죄'라는 병입니다. 그 병은 혼자서 극복할 수 없으며 어떤 정신 치료나 수련으로도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해법만이 유효합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철학과 종교 속에 숨어서 시간을 허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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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프시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10.02 세상은 무한하게 다변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인식하는 세상도 한 부분으로 존재하며 ourdailybread님이 말하시는 창조주로 인한 세상도 분명 존재한다고 봅니다. 저는ourdailybread님의 의견을 항상 존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