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오후에 1시간 조퇴를 하고 3시간을 넘게 달려서 1박 2일의 답사를 시작했다. 휴게소에서 라면하나로 저녁을 때우고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군산 창안 석조여래입상
창안 마을에 있어서 창안 석불로 불린다. 민가 바로 옆에 있어서 너무 늦게 찾으면 안되는 곳이다. 실내에 있는 석불인데 마을 사람들이 잘 모시고 있는 듯 하다. 해질 무렵에 찾았는데도 거의 8시다. 여름엔 조명신공을 너무 늦게 시작해야 하고 벌레들이 너무 많다는 애로점이 있다. 불두는 새것이고 앞면은 추각을 한 듯 하다. 옆면에 있는 주름이 조금 섬세해 보인다.
군산 발산리 발산초등학교
여러 번 왔었는데 올 때마다 초등학교를 통해서 들어 갔는데 뒷편에서 바로 진입하는 길이 있다. 주차장도 잘 되어 있어 학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답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풀을 관리하지 않아서 사진을 찍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다.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하고 모기가 너무 많아서 조명신공을 하는데 힘이 조금 든다.
발산리 오층석탑
왔으니 조명을 비춰서 찍어 본다. 특별히 더 보이는 것은 없다.
승탑
옥개석의 우동마루에 용이 새겨져 있다. 조명을 비추니 수막새와 암막새가 아주 자세하게 보인다.
석탑재
석탑재와 다른 부재들이 섞여 있는데 아래위에 귀꽃 문양이 새겨진 안상이 특이하다. 바로 아래에도 안상이 새겨져 있다. 몸돌에는 문비와 자물쇠가 새겨져 있다.
발산리 육각부도
이 승탑에도 안상속 귀꽃 문늬가 있고 중대석에는 희미하게 상들이 새겨져 있는 육각이니 두면의 문비에 사천왕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발산리 석등
화사석에 새겨진 존상들을 확인할 수 있을까 싶어서 이곳으로 조명답사를 왔다. 간주석에 용이 새겨져 있고 화사석에는 신장상이 새겨져 있는데 발아래에 생령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천왕일 가능성이 높다. 마멸이 심해 존상의 정확한 명칭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보령 웅천 미륵불
조명답사의 특성상 한답사지에서 다른 답사지로의 이동거리가 길다. 성주사지로 가는 길이라서 잠시 들렀는데 문무인석을 재활용한 듯 하다. 가슴에 뭔가를 새겼는데 뭔지 모르겠다. 마을에서 미륵불로 모셨으니 미륵으로 여긴다.
보령 성주사지
오늘의 메인 답사지인데 비바람이 몰아친다. 우산을 쓰고 사진을 찍는데 바람에 우산이 날아간다. 신발은 이미 흠뻑 젖었고 날이 안좋아서 다음을 기약하자니 오늘 운전해 온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옷이 젖더라도 조명신공을 강행했다.
석등
석등의 하대석과 상대석의 연화문이 독특한 편이고 그 아래 하단석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다.
오층석탑
성주사지에 원래 있던 석탑이다. 성주사지에 있는 모든 석탑들이 별석의 탑신 받침이 있다. 뒤에 있는 3개의 석탑은 어느 시기에 옮겨 온 것인데도 모두 탑신받침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 지역의 특징이지 싶다.
석불 대좌
사각대좌이다. 불상 대좌 중 사각대좌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서 삼층석탑
정면에서 보면 향좌측에 있는 석탑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식공이 제일 많은 탑이다. 앞뒤로 문비가 새겨져 있고 각호각 삼단의 받침이 잘 보이는 편이다.
중앙 삼층석탑
다른 곳에서 옮겨온 탑인데 문비안에 자물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둥근 장식들이 표현되어 있어 매우 독특한 모습이다. 뒷면에는 같은 것을 새긴 듯 하나 파손이 되었다.
동 삼층석탑
정면에서 보면 향우측석탑이다. 이 탑도 문비가 앞 뒤에 2개 새겨져 있다.
석조여래입상
옷주름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왼팔쪽에 있는 옷주름이 아주 특이한 모양이다. 승각기가 사선이라서 시대를 올려봐도 좋을 듯 하다.
대낭혜화상탑비
사산비 중의 하나이다. 전각때문에 낮에는 이수가 잘 보이지 않는데 조명을 비추니 선명하게 보인다. 확인해 보니 용이 9마리 있는 듯 하다. 왼발아래에는 보주가 있고 귀갑문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꽃무늬로 보인다. 주모를 아주 확실하게 표현했다. 이번 답사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다.
여름은 해가 길어서 조명을 비출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아무도 없는 폐사지라서 밤이 늦도록 조명을 비추고 살필 수 있었다. 집에 있으면 병든 닭새끼 모양 늘어져 있는데 이렇게라도 나오면 살이 있음을 느낀다. 어쩔 수 없는 팔자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