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 전하는 위안의 메시지, <도나 노비스 파쳄>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은 가톨릭 미사곡의 하나인 <神의 어린 羊:Agnus Dei>의 가사 끝 부분으로, 영어로 "Grant us Peace", 즉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라는 의미의 소절이다.
'랭스'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에 그려진 <神의 어린 羊)의 이미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에 나오는 어린 양의 이미지를 닮은 <神의 어린 羊>의 의미는, 인류의 죄를 대신 갚기 위해 십자가 형벌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속(救贖)과 일치한다. 구약(舊約)의 시대에서 인간은 어린 양을 희생제물로 바쳐서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았는데, 신약(新約)에 들어와 초월적 존재인 '神의 아들'이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어 인간의 죄를 기워갚게 된 것이다.
미사전례의 말미에 불려지는 이 노래는 신의 아들 예수가 지상에서의 일을 끝마치고 돌아가기 직전 제자들을 찾아가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빈다(요한복음 19장 20절)"고 이른 사실과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이 가사에는 예배소에 모인 공동체가 세속으로 다시 돌아갈 때 신의 축복으로 '평화와 안식을' 가슴에 안고 평안히 돌아가기를 바라는 의미이자. 우리 연약한 인간들이 세파 속에서 안락하고 평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원이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미사곡 <神의 어린 羊>은 여러 작곡가들에 의해 '평안'을 희구하는 주제와 정신을 표현하는 악곡으로 창작되었다. '하이든(F.J.Haydn)'은 그의 <불안한 시대의 미사:Augustiis "Nelsonmesse"(일명 넬슨미사)>에서, '넬슨'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가 '나폴레옹'의 함선을 무찌르고 조국의 평화를 이루게 해 달라는 탄원으로 '아뉴스 데이'를 합창하고 있으며, '모차르트(Mozart)'의 <C단조 미사곡>에서는 독창자와 합창단이 같은 선율의 노래를 거듭해 부르며 평화의 절실함을 나타내고 있고, '슈베르트(Schubert)'의 <미사곡 Ab장조, D.678>에서는 약음기를 낀 현악합주에 인도된 합창이 신에게 간절히 다가가 무릎꿇듯 평화를 간곡히 애원하고 있으며, '샤를르 구노(Charles Gounod)'의 <산타 체칠리아 미사곡>에서는 합창과 관현악이 온 힘을 다해 부르짖듯 세상의 평화를 호소하고 있다.
오늘날 <도나 노비스 파쳄>은 종교음악의 차원을 뛰어넘어 인간 실존과 인류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기원과 헌신의 음악으로 불려지고 있는데, 그 중의 대표곡이 영국의 음악가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가 1936년에 지은 칸타타 <도나 노비스 파쳄>이다. 이 합창곡은 세계대전의 불길한 징조 앞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수호하려는 염원을 아로 새겼다. 즉, 세상의 비극을 앞에 둔 우리 인간들이 반성하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간절히 정성과 기도를 다하면, 이들의 기원과 헌신이 희생제물이 되어 인류 구원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믿음과 의지로 이 곡을 지은 것이다. 그는 특히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시를 성경과 함께 곡의 텍스트로 사용하여 그 열망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곡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 1 곡 : Agnus Dei(아뉴스 데이)
제 2 곡 : Beat! beat! drums!(쳐라! 쳐라! 북을!)
제 3 곡 : Reconciliation(화해)
제 4 곡 : Dirge for Two Veterans(두 퇴역군인의 葬送曲)
제 5 곡 : The Angel of Death(천사의 죽음)
제 6 곡 : O man, greatly beloved(오 사람이여, 큰 총애을 받은)
이 합창곡은 연주 시간이 35분에 이르는 대곡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 중에서 제 3곡<Reconciliation(화해)>만 발췌하여 소개한다.
세 번째 곡은 느리고 온화하며 치유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서정적인 바이올린 독주가 비애에 가득한 선율을 연주하면, 바리톤의 서정적이고 웅변적인 레치타티보가 현악의 반주에 실려 읊어지며 전사하고 부상당한 이들을 위로한다. 이윽고 합창이 주제 선율을 이어받아 조용하고 정결하게 노래하고, 현악 합주는 긴 호흡의 가락으로 가사를 되뇌이듯 잔잔히 흐른다. 바리톤의 레치타티보와 독주 바이올린이 다시 등장하면서 곡은 명상과 침잠의 세계로 빠져든다. 합창단은 묵묵히 이를 잇는다. 이윽고 소프라노가 '도나 노비스 파쳄'을 간절히 호소하듯 부르며 곡은 끝난다.
Reconciliation Walt Whitman Word over all, beautiful as the sky, Beautiful that war and all its deeds of carnage must in time be utterly lost, That the hands of the sisters Death and Night incessantly softly wash again, and ever again, this soil'd world; For my enemy is dead, a man divine as myself is dead, I look where he lies white-faced and still in the coffin--I draw near, Bend down and touch lightly with my lips the white face in the coffin. |
화해 윌트 휘트먼 모든 것을 굽어보는, 하늘처럼 아름다운 말(言), 전쟁과 대학살의 모든 행위가 때가 되어 완전히 사라지니, 아름답다. 죽음과 밤이라는 자매의 손길이 이 흙 묻은 세상을 끊임없이, 부드럽게 씻어내고 또 씻어내니, 아름답다. 나의 적수는 죽었다. 나 못지않게 거룩한 사람이 죽었다, 나는 그가 하얀 얼굴로 조용히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을 본다 - 나는 가까이 다가선다. 허리를 굽혀 관 속의 하얀 얼굴에 가벼이 내 입술을 갖다댄다. |
20세기에 들어와 영국의 후배 작곡가 '브리튼(Benjamin Britten)'은 '본 윌리엄스'의 칸타타와 맥락을 같이 하여 1961년에 대작 <전쟁 진혼곡:War Requiem>을 작곡하였는데, 이 곡은 제 2차 세계대전에 희생된 고혼(孤魂)들과 고난받은 가련한 영혼들을 위해 전쟁의 당사국인 소련과 독일, 그리고 영국의 성악가들과 합창단, 관현악단이 연주한 진혼(鎭魂)의 음악이다. '브리튼'은 성경과 함께 2차대전 중에 전사한 영국 시인 '윌프레드 오웬(Wilfred Owen:1893-1918)'의 시를 텍스트로 하여 전쟁의 참화와 비극을 수습하고 새로운 인류 평화의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곡을 지었다. 또한, 미국의 음악가 '사무엘 바버(Samuel Barber)'가 작곡한 <현악 4중주 제 1번>의 아다지오 악장은 1967년 작곡가에 의해 <아뉴스 데이>의 가사를 담은 합창곡으로 편곡되었는데, 이 곡이 베트남 전쟁을 그린 영화 <플래툰>에 채용되어 휴머니티와 인간존엄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인 '채프먼(Beth Nielson Chapman)'은 고대 미사곡 선율을 채용하여 대중적인 돌림노래 <도나 노비스 파쳄>을 지어 널리 알렸다. 그가 노래에 사용한 주선율은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던 성가곡 멜로디로, 일설에 의하면 16세기 이탈리아 교회음악가인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가 작곡한 <교황 마르첼리 미사(Missa Papao Marcelli)>에 의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 곡을 듣거나 불러보면 평화의 메시지가 별빛처럼 세상에 쏟아질 듯한 기운과 느낌을 받는다. 돌림노래가 끝난 후 메아리처럼 들리는 여운이 있다. 그 돌림노래의 악보는 다음과 같다.
지난 해의 우리나라를 돌이켜 보면 억울하고 한스러운 여러 사연과 고통들이 있었다.
나라를 살림하는 이들이 서로 다투는 통에 민생과 인권이 땅에 떨어지기도 했고, 잔악한 북녘 정권에 의해 젊은이들의 순수한 영혼이 희생되는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가족같은 소들과 돼지들이 인간의 잘못에 의해 떼죽음을 당했다.
고단한 세월이었더라도 유복한 이는 아무 문제 없었으나, 생계의 찬바람 앞에 놓여진 많은 불쌍한 이들이 더욱 고생한 한 해였다. 그 가운데는 전세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동반자살한 가정이 있는가 하면, 삶을 한탄하며 소중한 생명을 끊은 시간강사도 있었으며,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문이 잠긴 방에서 오누이가 화재로 생명의 끈을 놓았던 일도 있었다. 모두 위로받지 못하고 스러진 가엾은 영혼들이다.
불안하고 힘겨운 현실 속에서 갈피를 못잡는 오늘날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못한 불쌍한 영혼들이 서럽고 버거운 삶을 살았던 한 해였다.
그러나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1861-1855)'가 시에서 "소나기가 내린 후에 장미가 피어난다"고 말했듯, 고난과 좌절을 이겨내면 화창하고 값진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꿋꿋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가 아닌가? 서로 위로하며 의지하며 나누는 생활을 한다면 새로운 한 해에는 희망과 축복의 꽃이 활짝 피어날 것이다. 온유와 지혜의 상징인 토끼의 해를 맞이해 우리나라에 반목과 결핍과 불신이 사라지고 화해와 충만함과 신의가 가득한 나날이 되기를 빌며, 평화의 노래 <도나 노비스 파쳄>의 정신이 온 나라에 두루 퍼지길 기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