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그 영원한 어머니의 젖품
이십 대 초반부터 대천에서 십 년을 살았는데 명절 때 고향 삽시도엘 가지 않은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힘든 나들이를 어떻게 매번 그렇게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참 잘했었다 생각하지요. 대천에서 고향에 가기 위해서는 휠체어를 타고 어항에 가도 스스로 배에 오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등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고행의 길이기도 했습니다. 섬의 상황은 어항과는 또 비교도 할 수 없는 난코스의 연속이었지요. 요즘처럼 번듯한 부둣가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어느 땐 바위틈에, 썰물이 질 때면 장벌 가까이 배가 들어오지도 못하는 상황일 땐 펄 땅에 그냥 배를 대기도 했었습니다. 뱃턱에 배가 닿으면 ‘정반’이라고 부르는 아주 길고 좁은 긴 사다리를 내려 그것을 잡고 높은 배를 오르내려야 했으니 형극의 길이 아닐 수 없었지요. 천만다행인 것은 당시 제 체중이 지금의 절반이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었습니다. 함에도 명절 때마다 고향 삽시도를 찾았던 것은 부모님 때문이었지요. 남들은 다 오는데 걷지 못하는 남국이 만 못 온다면 부모님이 제대로 명절을 쇠실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을 그때에도 했었다는 것이 지금도 참 기특(?)합니다. 형제는 물론이고 사촌들, 그리고 고향 선후배의 등을 참 많이도 빌렸었는데, 그 마음의 빚은 지금도 어쩌지 못하고 삽니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네요. 요즘은 직접 차를 가지고 그냥 섬까지 들어가는 시대가 됐으니 케케묵은 옛날 한 토막 아련한 추억이 됐습니다. 지금은 고향이 아닌 포천 형님네로 설을 쇠러가지만, 명절 때가 돌아오면 아득한 그 옛날이 문득문득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