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황하
창조우역에 6시가 조금 넘어 기차가 도착해서 내리니 벌써 캄캄 했습니다. 혼자 다니
는 여행에서 외로움이 살 짝 들 때는 비행장에서 빠져 나갈 때와 기차역에서 나갈 때
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여행객을 맞이 해 주는 데 나를 맞으러 온 사람은 하나
도 없을 때 어떤 외로움이 살짝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서는 저 만큼에
서 나를 먼저 본 이가 손을 높이 흔들며 웃고 있었습니다.반가웠습니다. 지난 해 10월
내외가 한국을 다녀가면서 우리집에도 왔었습니다. 내가 이곳을 지금 네번 째 오고 있
습니다.산동성 제난이 가까운 곳입니다. 한국과도 직선 거리로 가깝고, 날씨도 한국보다
따뜻한 곳입니다.
이 곳은 가끔 오고 있습니다. 좀 특별한 일로 요.......
내 짐을 그 분 차에 싣고 두 시간 정도 간 곳은 황하라는 도시입니다. 여기서는 바닷
가도 가까워 여름에 오면 낚시하기도 좋고, 고기도 많이 잡혀 꼭 여름에 한번 오라고
했지만 그럴 기회가 아직은 한 번도 없었네요.
이 지인의 집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데도 개발이 안 된 곳이라 옛모습 그대로 입니다.
조개탄을 때고, 방 구조도 옛 중국의 집 그대로여서 한 쪽에 높게 구둘을 놓고, 그 곳만
덥혀 그 곳서 자고 한 쪽은 빈 공간인데 거기에 방 살림을 놓고 씁니다. 지금 중국 시골
을 가면 거의 다 이런 구조들입니다.
조개탄을 땔 때면 연탄 냄새가 방에서도 약간 나고 밖에 나가면 아침 저녁으로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연탄 냄새가 마을 전체를 뒤 덮습니다. 몇년 전만해도 연길과 화룡이
이와 똑 같았는데 지금은 난방 시설을 많이 개선해서 그 쪽은 좋아졌습니다.
겨울 3개월에 우리 돈으로 60,000원이면 된다고하니 그야말로 난방비가 쌉니다. 그리
고 시장에 가면 채소가 싸서 부식비도 얼마 안 들고, 싼 음식점이 많아 노인 혼자서 우
리돈 200,000원 정도면 한 달을 살아 간다고 했습니다. 물론 최소한의 생활비겠습니다
만 .....
나는 여기에서 머므르면서 해야할 일들을 거의 못했습니다. 그 때 마침 한국도 눈과
강추위가 몰려 왔었고, 여기도 40년만에 눈이 많이 내려서 가야 할 곳들을 못 갔습니
다.한번은 차를 갖고 가려다가 빙판 길 위에서 두번이나 360도를 돌아서 끝내 포기
했습니다. 다행이 이른 새벽이어서 차가 많지 않아 사고는 안 났습니다. 이 때 하얼
빈은 영하 40도를 오르내린다고 뉴스에 나왔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얼빈서 나온 후에
더 추운 일기가 몰아와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하 40도에서는 어떻게 견디는 지를
체험해 보지 못해 아쉽기도 했습니다.
6박 7일을 이곳에 있으면서 지인의 부인이 마침 연길 딸네 집에 가서 없을 때라 둘이
서 밥을 해 먹기도 하고 나가 사먹기도 하면서 재래 시장과 백화점, 호화 싸우나
와 동네 싸우나(이곳 집들은 샤워 시설이 없어 공중탕을 많이 사용)도 갔었습니다.
동리 싸우나 에서는 난생 처음 발을 깨끗하게 해 주는 맛사지도 받아 보았습니다.그리
고 지인이 몽고에 가서 잡아 온 양고기를 여러 끼 먹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양
고기를 많이 먹어 보았네요. 우루무치를 가면 양꼬치 구이가 중국서 제일 맛있는데 이곳에서는 솥에다 넣고 삶아서 익은 고기 뼈를 잡고 갈비 뜯듯 뜯었네요. 여행은 이처럼
먹는 경험도 여러가지를 하게 됩니다. 싱가폴이나 중국여행을 하면서 두리안에 반해
버렸는데 이제는 양고기에 또 반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지인의 생일이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와 음식점으로 가서 점심을 사 주었고,
그들은 각자 100원(약 18,000원)원씩 주는 풍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여행경비를 쪼개어
300원을 주었네요. 집으로 와 수박을 먹으며, 노래를 하는데 어찌나 잘들 부르는지
흥이 절로 났습니다. 비록 해야 할 일은 조금 밖에 못했어도 시장 구석 구석을 돌아
봣으며, 아주 싼 음식점도 가 보았고, 백화점 안에 있는 근사한 부페식당도 가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중국체험을 제대로 한 셈입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우리나라의 1,000
원샾같은 곳에 가서 조그만 전등하나를 2원주고 샀는데 한국와서 사용해 보니 너무 좋아 며칠전 화룡에서 오는 식구가 있어 사오라 했더니 거기는 없다면서 그대로 왔습니다.
25일 날이 새기도 전에 일어나 준비하고 지인이 천진공항까지 태워다 주어 11:40한국
에 오는 아시아나에 몸을 실었습니다. 여행을 잘 마치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
비행기에 오르니 내 옆자리에 창가쪽으로 아가씨가 타고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
하면서 스튜디어스가 입국신고서를 주면서 쓰라고 하는데 이 아가씨가 중국인이어서
잘 몰라 자연스럽게 자세히 일러 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인천공항에
도착 할 때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몽골에서 슈퍼마켓에 근무하고 있고, 천진은 남자
친구가 있어 왔다가 천진서 비행기를 탔다고 했습니다. 한국은 두번 째고 혼자 5일
동안 자유 여행을 하기 위해 오는 거라고 합니다. 떠나기 전 내가 하루를 안내해
줬는데 핸드폰 두개를 갖고 다니며 실시간으로 연락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고, 회답을
받으면서 물건들을 사는데 놀랬습니다. 이런게 바로 국경이 없는 거구나, 이제
맘만 먹으면 마음 것 세상을 헤집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며칠전 이 아가씨에게서 영수증 사진으로 보내며 무었을 알아봐 달라고 해서 그곳
으로 전화해서 자세히 알아 연락해 줬더니 고맙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해 12월에 화장품 500만원어치를 샀는데
150만원을 활인받은 것이 계산상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중국의 전통 가옥 구조 (이 사진은 중국의 삶을 알기 위함
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중국 음식이 풍성합니다.
중국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너무 쫀쫀하다고 말합니다.
사과도 하나씩 안 주고 왜 잘게 짤라 주느냐고 하구요...
칼이 좀 . . . ㅎ ㅎ. 가정집에서 일상 쓰고 있습니다
전기 모터 자전거
손잡이에도, 앞에도 바람을 막기 위한 두터운 장비가 있습니다
백화점 내부
거리에 세운 공예품
중국의 붉은 색이 밤엔 환하게 거리를 비춥니다.
백화점
시내에 이렇게 오랜된 토성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 공항에 가면서
천진 공항
*****
이번 여행기는 여기서 다 마쳤습니다. 함께 해 주신 분들 께 감사를 드립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청죽 작성시간 16.03.11 애쓰셨습습니다. 그냥 생각없이 밖을 나갈 순 없네요. 이렇게 세세하고 꼼꼼하게 기록을 하시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외국뿐일까 싶네요. 바로 옆집을 가더라도 생의전부는 내가 보는 만큼 본다는 진리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것은 전부를 볼 수도 있고 정말고 작디작은 것을 볼 수도 있으니까요.
중국의 저력이 남다르단 생각을 해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청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3.11 나는 첫 해외 여행 때(87년도 쯤)부터 세가지를 했습니다. 하나는 메모, 하나는 사진, 또 하나는 스라이드
(그 때는 스라이드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 환등기로 보여 주던 시절)사진, 다녀 와서는 교회 주보에다 여행
기를 꼭 써서 성도들하고 나누었습니다. 이런 나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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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들고은 작성시간 16.03.12 사진을 보니 마치 우리나라 20년 전 쯤의 모습을 보는거 같아 구수한 맛이 납니다.
저는 클클해지는 날엔 오래된 한국 단편문학집을 꺼내 읽어야 맘이 편해지는 옛것파 입니다 ㅋ
흥미로운 영화 한편이 끝난 것 같은 아쉬움입니다.
다음편을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뭐 이런 맨트라도 남겨주심이 ㅎㅎㅎ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청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3.11 그래요 아직도 그 쪽엔 우리나라의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 인터넷에다는 이야기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아픈 사연이 많기도 하구요.....
흥미로웠다니 다행입니다. 우리 독서회원하고 나누고 싶은 여행담이 많이 있는데 기회 보아서 나누도록 하
겠습니다. 전에 여행기를 써 놓긴 했습니다 만, 다시 컴으로 옮기고, 또 새로 구성하려니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소재는 엄청 많은데 내 문장 표현이 문제 입니다.. ㅎ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