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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칼럼

[하라리의 21세기를위한 제언] 5부: 회복탄력성

작성자앨리사|작성시간20.05.06|조회수310 목록 댓글 5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위한 21가지 제언>을 재독하였다

대개 중요 저자들의 작품은 연대순으로 읽는데

어쩌다보니 하라리의 작품은 역순으로 읽었다

호모데우스와 사피엔스까지 읽고나니 분명 이들보다 먼저 읽은 21세기를위한 제언에서

놓친것이 읽는 것 같아 재독 중인데 역시나이다

사피엔스는 과거에서 현재를

호모데우스는 현재에서 미래를 풀고 있다면

21세기를위한 제언은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 책이다

4부. 진실편에 이어 마지막 5부. 회복탄력성편:

1. 교육

하라리는 4부에서 지금까지 인류는 거대한 외부 세상에의해 휘둘리며 살아왔지만

스스로 그런 삶을 살고있다는것조차 모르는 <무지>에서 깨어나는 것이

첫 걸음이라 하였다

이어서 그런 상태에서 깨어나 회복탄력성을 갖추려면

우선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서구교육체제도 정보 주입에 치중한다고 하면서

(서구가 정보주입에 치중한다면 정말 주입식 교육을 해왔던 우리나라 교육은 어쩌라는건지..)

지금부터 교육은 단순히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 인터넷이나 인공지능이 훨 뛰어날테니)

정보가 담고있는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이나, 각 정보들을 융합하여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학교 교사들도 전부 이전 방식으로

교육받았기에 실은 교사들조차 어떻게해야 하는지 모르는게 문제라고

2. 의미

그러므로 각자 스스로 <의미>를 찾고,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하라리가 말하는 의미는, 이제까지 사람들은 외부 세상에서 만드는 허구적 의미에

(예를 들면 종교적 의미나 민족성 혹은 기타 정치적 신념 등) 스스로를 바치며 살아왔는데

지금부터는 디지털 세상이 블랙홀처럼 모든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빨아들이며

디지털 세상에서 만드는 가상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게 될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알고리즘이 이젠 인간에대한 생물학적 정보를 해킹내지는 점유하기 시작하며

끝내 인간은 알고리즘이 처음에는 리딩하다 후에는 조정하는데로

모든 결정을 내리며 살아가게 되는데

결국 이 알고리즘의 최종 소유는 정부아니면 몇몇 소수의 거대기업이 될것이기에

디지털 독재적 세상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예측한다

그러므로 이런 디지털 노예적 삶 (이라지만 정작 본인은 최첨단 소비를 한다고 믿는) 이 되지않기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스스로 자신들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3. 명상

그리고 스스로 그런 의미를 만들기위해서는 이미지 만들기에 심취한 가상세계에서 깨어나야 하는데

그러기위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즉. 사람들은 누구나 진짜 나를 알지 못하고 (칼 융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어떤 에고에 휘둘리는지 알지 못하고)

에고를 충족시키기위한 거짓 삶에 빠져있기에

가장 중요한것은 명상을 통해 그런 자신을 깨닫고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하라리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제언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삶을 자각하지 못한체

디지털 세상에서 남에게 보여주기식의 허상적 삶에 빠져

알고리즘이 이끄는데로 자의식없이 살아가고 있으니

명상을 통해 내가 어떤 에고에 휘둘리는지를 깨닫고

하루속히 현실 세계에서 내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삶을 시작하라, 쯤 될 것 같다

IT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전하는 현재

그렇기에 더욱 그 매트릭스에서 깨어나라는 하라리의 제언은

코로나사태로 이전과 이후, 너무도 많은 사회변화가 예상되는 지금

참으로 혼란함 속에 명료함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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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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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BONG | 작성시간 20.05.06 인문고전을 기본으로 하고 세상을 보는 나만의 관점을 가지기 위한 공부는 필요하고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깨치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어른으로 사는데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과 일상을 살아내기 위한 명상과 수행은 현대인에게 더더욱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고... 그래야만 인간이기에 순간순간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빨리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을 갖출 수 있는 것 같다.
  • 작성자Athena | 작성시간 20.05.09 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오랜 생각이, 허황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라는 생각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동시에 그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장이 현실이고, 현실에서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의미라는 것. 동떨어진 혹은 아무런 노력없이 하늘이 특별하게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잠에서 깨어난 하루의 소중함을 이해하게 된다.
  • 작성자마시 | 작성시간 20.05.11 아이러니 하다. 기술의 그 첨단의 끝에서의 해답으로 말하는 것이 <명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철저히 조종당할 알고리즘과 가상세계에서 속에서, 명상에까지 가 다다를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것인가?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회복 탄력성> 이라고 명명되어 있는 이유가, 가상세계가 주는 달콤한 대신,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고서도 매번 의미를 찾아 일어설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을 갖추어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닐까? 문득 <죽음의 수용소> 빅터 플랭크이 말하는 , 자신의 고통의 의미를 아는 자는 그 고통을 지나 자신의 삶을 참된 의미로 채울 수 있다 라는 것이 연상되어 진다.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진실되게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가?
  • 작성자황금씨앗 | 작성시간 20.05.11 무지에서 깨어나는 것, 나를 알아가는 것은 불교에서도 익숙하게 들었던 내용이며, 고대로부터 철학자들이 설파했던 것이다. 지금도 무지에 빠지거나, 나의 에고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새 기계적인 생각과 습관의 노예가 되는 일상에 빠지고는 하는데, 한 숨호흡으로 이런 나를 알아치리고 자신을 든든하게 하는 것은 인문고전과 사유, 명상 등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 작성자새벽의여신 | 작성시간 20.05.21 수없이 흔들리고 좌절하다보면 그런 자신이 또 싫어 회피하게 되는 악순환 속에 살아왔다.
    끊임없이 외부에 신경쓰다 지쳐 홀로 칩거하면서 한 것은 순간의 쾌락과 멍때리기의 반복이었다. 칩거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스스로 찾은 나의 삶의 의미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에 의해서였고 그러니 다시 도망가는 것도 너무 쉬웠다.
    그때에 비하면 목표가 있고 나만의 중심, 철학을 찾는 일의 필요와 무게를 인지하고 있다보니 조금은 빨리 다잡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완전히 홀로서는 힘이 많이 딸리는 것을 느낀다. 홀로서기를 한다 해도 위기와 좌절의 순간은 올 것 이기에 수행과 공부를 꾸준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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