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서 사는 아이들
최유진 수녀
무덤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한 사도직을 시작하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산 사람이 무덤에서 산다고?’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곳 마닐라의 무덤은 시멘트로 덮은 네모난 관의 모양인데 이들은 그 위에서 먹고 잔다.
그들의 생계수단은 무덤을 청소하는 일, 하루에 무덤 10개를 닦으면 한 달에 11페소(3,000원)를 받고, 장례를 치르러 오는 사람들의 차를 지켜주면 한 대에 5페소(150원)를 받는다.
공동묘지 안으로 첫발을 들여 놓았을 때 신발도 옷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은, 심지어 몸 전체에 피부병으로 상처가 가득한 아이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상상할 수 없이 까맣고 더러운 그곳…
털이 숭숭 빠진 개까지 내가 신기한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다.
일거리가 없어 온종일 길가에 앉아있는 어른들은 자신들의 영역에 용감하게 들어온 외국 수녀를 커다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은 표정이 없어 무섭기까지 했다.
‘어떻게 이곳에서 혼자 사도직을 할 수 있을까? 혼자 다닐 때 위험하지 않을까?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안아주는 것은커녕 손잡는 것조차 두려운데…‘
게다가 수업을 하려면 교실이 있어야 하고 의자와 책상이 있어야 하는데 이곳의 교실은 지붕도 없는 그냥 무덤 위였다.
첫날 나는 선교수녀가 아니라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못사는지 구경 온 관광객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희망 없는 어색함으로 시작되었다.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이들 모으기였다. 수업시간이 한 20분 지나서야 아이들은 모였고, 몇몇은 수업이 시작되어도 야생마처럼 이 무덤에서 저 무덤으로 뛰어다녔다.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데 어찌 선교수녀가 화들짝 놀라 달아날 수 있을까. 나도 그냥 비를 맞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10분, 30분, 1시간… 그 순간 나는 어이들의 눈에서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 대한 묘한 연민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홀딱 젖은 몸을 이끌고 수녀원으로 돌아오면서 나를 이곳으로 부르신 예수님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나는 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수업시간을 지키자고 약속했다.
처음에는 다섯 명 정도가 시간을 지키더니 이제는 미리 와서 기다리는 녀석도 생겼다. ‘아이들은 되는구나…’
그곳에 갈 때마다 나는 50~60명 되는 아이들을 위해 칠판이며 색연필, 종이, 미니 키보드를 들고 간다.
거기에 아이들 간식까지 들고 가면 혼자서 들기에 가벼운 무게는 아니다. 그런데도 어디서 이런 원더우먼 같은 힘이 나오는지… 아이들의 웃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에 내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볍다.
아이들에게 게임을 통해 교리와 노래, 미술 등을 가르치는데 그들은 영어를 모르고 나는 타갈로어를 잘 못하는데도 서로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안다.
내가 타갈로어를 틀릴 때마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고 까르르 웃으며 고쳐준다. 가끔씩 나를 놀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
어느 날 또 바리바리 싸들고 무덤 입구에 들어서는데 아이들이 나를 보자마자 달려온다.
“쥴리 수녀님~~~” 그리고 수업 도구며 아이들 간식이 들려 있던 내 두 손에는 어느새 꼬질꼬질한 아이들의 고사리 손이 잡혀있다. “아구 무겁지?”
“헤헤, 괜찮아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그렇게 해온 것처럼…
그렇게 시간이 흘러 11월 초, 수업 중에 어느 한 녀석이 “수녀님, 우리도 크리스마스 파티하고 싶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선물준비로 한창 난리인데 이곳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누릴 수가 없구나…
그러나 파티를 한다면 최소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올 텐데 타갈로어도 못하는 내가 혼자서 어떻게 음식준비며 게임진행을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아이들 선물은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어두운 현실만이 보일 뿐이었다.
아이들의 눈이 얼마나 크리스마스 파티를 바라고 있는지 충분히 느끼면서도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11월 중순, 아이들은 해맑고 동그란 눈을 깜빡거리며 여전히 묻는다. “수녀님, 크리스마스 파티는 언제 해요?”
마음속으로 ‘미안하다…’ 하며 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날 수녀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내가 왜 크리스마스 파티를 못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지?’ 라는 물음이 내 마음을 스쳤다. ‘아, 나는 모든 것을 완벽히 다 갖추려고 했구나. 그저 우리들이 함께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데… 선물은 연필하고 지우개를 하나씩 주고, 아이들과 게임하면서 캐롤도 부르면 되는 거지. 그래, 해보자!’
그 다음 날 바로 아이들과 날짜와 시간, 장소를 상의했다. 아이들은 기뻐 날뛰었고 그날을 위해 스스로 팀을 만들어 춤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와서 “수녀님, 우리 엄마 화났어요. 내가 공부는 안하고 매일 춤 연습만 한다고요…”
그 친구에게 모자라는 타갈로어로 “말룽코트 카 바(구래써 너 쓸쁘니)?” 하니까 나의 우스꽝스러운 발음 때문인지 그 친구가 갑자기 웃는다. “아니요!”
종이와 색연필, 가위, 풀을 주며 너희 마음대로 장식해보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놀라우리만큼 화려한 장식을 만들어냈다.
벌써 저녁 6시. 특히 공동묘지 안은 전기가 없어서 너무나 어두웠다.
“너희들 배고프지?” “네…”
다행이 저쪽 끝에 조그만 구멍가게가 보였다. “수녀님이 과자 하나씩 쏠게. 너희들 먹고 싶은 것 하나씩 골라”
분명, 이거요! 저거요! 하며 난리일 줄 알았는데 순간 입이 벌어지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손을 내저으며 “아니에요, 수녀님. 괜찮아요.” 하며 수줍게 웃는 것이었다.
나는 이 상황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가슴이 벅차왔다. 그들에게 나는 더 이상 신기한 외국인 수녀가 아닌 가족이 되었구나!
한 아이가 “그룹 허그! 그룹 허그!” 외치더니 그 수많은 아이들이 나를 동시에 버럭 끌어안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어둑어둑해진 무덤의 한 모퉁이에서 나는 아이들을 통해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만났다. 온몸으로 사랑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이 그곳에 계셨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매일매일 기적을 체험했다. 기도와 후원금 또 선배수녀님들이 장난감이며 옷 등 후원받은 좋은 것들을 선뜻 내어 주셨고, 그것들을 130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다 나누어주고도 한 자루가 남았다.
오병이어… 차고 넘치도록 주시는 하느님을 경험했다.
파티 당일에는 부모님들이 총동원되어 의자, 테이블 등을 빌려오고 스피커를 설치하고, 집에서 예쁜 리본까지 가져와 크리스마스 장식까지 해주고, 음식준비도 도와주어 너무나 수월하게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났다.
그날은 아이들과 부모들의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이 원하셨다는 것을 깊게 느낄 수 있었다.
또 우리의 완고한 생각과 편견만 바꾸면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적은 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이 글은 최유진 율리엣다 수녀가 마닐라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있는 토평동 성당에 보낸 감사편지입니다.)
가톨릭 다이제스트 2013년 7월호에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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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코스모스 작성시간 13.12.15 혼자서 해보려 아둥바둥 거리며, 초라한 내 능력의 한계를 생각하며 포기하려 할 때,
하느님께 맡기고, 내 능력은 이것밖에 안되는데도 맡기셨으니, 모르겠다. 알아서 하시겠지 하면... 정말 알아서 해주신다는...놀라운 섭리. 하느님의 기적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홀홀단신, 무능한 것 같은 한 사람을 통해 이루시니.
놀라우신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능하신 분이 큰 일을 하셨음이요...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셨도다.
주님, 선교사들에게 힘과 사랑과 건강을 더해 주시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답댓글 작성자천국열차 승무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12.15 네,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알면서...
'인간 끝 하느님 시작' 많은 체험을 했으면서도 아직도 자신이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봅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니고 하느님은 모든 것이 옵니다. 말은 잘하는데 마음은 아직도....
하느님께 사랑과 찬미와 영광을 드리기 위하여! 오늘도 예수님과 성모님과 하이 파이브를 하며 회이팅!!! -
작성자전 은숙 메리클라라 작성시간 13.12.16 저를 내 버려야 그분이 오실 수 있는데, 왜 전 아직도 저를 붙들고 믿지 못할까요?
인간 끝 하느님 시작! 마음속 깊이 새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