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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4일 수필 연구반 제1강 보충자료>

작성자박양근|작성시간15.02.14|조회수229 목록 댓글 3

<2015년 2월 14일 수필 연구반 제1강 보충자료>

초의식 글 읽기 법

1.

(서두) 나는 꿈 많은 소년시절을 전원에서 자랐다.

(중략)

나는 지금도 소박하고 목가적인 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을 기쁨으로 회상한다.

포도넝쿨, 은행나무, 내(川), 동산, 개나리나무로 둘려진 집이 내가 자란 그리운 풍경이다. 거기서 나는 개, 염소, 산토끼, 꿩, 다람쥐와 벗하며 천진난만하게 자랐다. 나의 소년 시절은 그지없이 즐거웠고 아름답고 자유로웠다.

청춘의 시인 헤르만 헷세가 노래하듯, 그 시절은 ‘아름다운 전설’ 과 같았다.

포도가 익어 갈 무렵이면, 포도송이에 벌레가 끼지 않게 종이 봉지를 씌운다. 봉지는 헌 신문지로 만들었다.

어려서 나는 이 신문지를 들추며 읽기를 즐겼다. 그러다가 거기서 우리 포도원에 관한 기사를 발견하고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흥겨워하였던가.

지금도 기억에 또렷이 남은 한 신문표제가 있다. ‘낮에는 포도원/ 밤에는 글 읽기….’ 이것이 나의 아버지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는 평범한 농사지기가 아니었다.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윈 까닭에, 그의 기억이 아득한 나에게, 포도봉지의 헌 신문지는 신비에 싸인 아버지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 이것은 나에게 위대한 발견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포도밭을 가꾸어 나에게 그럴 수 없이 아름다운 소년시절을 갖게 하여 준 것에 무한히 감사하고 있다.

소년시절은 사람이 일생을 두고 걸어가는 길을 비춰 주는 빛의 발원이다.

-김용구 「포도원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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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얘, 국광이나 좀 사 오너라."

"아버지, 국광이 뭔데요?"

"과일 가게에 가서 물어 보고 삼천 원어치 사 오너라."

"후지(富士) 사과가 훨씬 더 맛이 있는데 왜 국광을 사 와요?

"잔말 말고 빨리 사 오기나 해라."

(중략)

능금 한 알을 들고 한 입 가득 베어 무는 순간 그는 무엇이 못마땅했는지 느닷없이 "활이 너는 집에 가 봐라."라고 말했다.

먹다 남은 능금을 내려놓고 일어서려는데 눈물 한 방울이 멍석 위에 떨어졌다. 그 눈물은 어쩌면 하늘나라에서 이승을 내려다보고 계시던 아버지가 아들이 당하는 수모를 보고 대신 떨군 눈물방울인지도 모른다. 수 십 년 세월이 지났지만 그 날 그 때의 절망감과 배신감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소쿠리에는 먹음직한 능금이 수북히 담겨있고 여자아이 몇몇이 원을 그리듯 앉아 있는 그 통한의 능금밭이 더러 꿈에 나타나면 나는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빌어먹을.

분하고 서러운 것은 둘째 치고 먹다 남은 능금이 눈에 밟혀 엉엉 울면서 방천 둑을 따라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치마를 붙잡고 목 놓아 울어 버렸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어 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최초의 슬픈 사건도 바로 이때였다.

-구활 「능금밭에 얽힌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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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

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조오현 「아득한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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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가 의도적으로 내 앞에 나타났을 턱은 없었다. 나도 부유하고 그도 부유하다가 만났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보고 싶지가 않았다. 그것도 인연인가 싶었다. 꼭 이유를 붙이려는 인간의 습성이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른다.

그는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처럼 보였다. 원고지 위에 나타난 것이 어찌 아무런 이유가 없었을까. 글쓰는 허무한 짓을 비아냥거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게 무엇이 그리 대단하냐고 빗대는 것 같았다. 그만큼 나의 인간살이가 문제로 되어 있다고 함을 그 하루살이가 인간이 자기에게 붙인 부당한 명명을 의식하기라도 하듯 나에게 인식시키려고 하는 것같이 보였다.

하루살이는 나중에 내가 쓰고 있는 원고 위를 설치고 다녔다. 종이 위를 횡단해선 모서리 끝까지 오갔다. 더러는 날기도 했다. 뛴다는 표현이 나을지 모르겠다. 가만히 바라보니 더듬이가 두 개 있고, 날개는 제법 길었다. 암만 작다고 날지도 못한다고 핀잔할까봐 훌쩍 날기도 하였다.

한참 있다가 그는 어디로 사라졌다. 이번엔 그가 나를 버리고 가버렸다. 별볼일 없다고 여겼을까. 나는 허전해졌다. 그도 갈 곳이 있을 것이었다. 그것조차 무시한다면 너무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확실히 나에게 무슨 시위나 항의를 할 셈치고 나타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처음에 나는 도대체 어쩌자고 이러느냐의 투로 큰소릴 쳤다. 그 잘못을 깨치게 하기 위하여 다른 하루살이가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나를 야유해도 좋다. 그러나 분명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눈에도 잘 보이질 않는 하루살이가 네가 나에겐 그지없이 반가웠으며, 훌쩍 떠난 뒤 되레 네가 내 동반자다 함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김병규 「하루살이와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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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허만 우크는 10년을 집에 들어앉아 소설을 썼다. 그는 아내에게, 남들이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돌아오듯, 나도 낮에는 집에 없는 사람으로 치고, 찾아 들어오거나 불러내지 말아 달라고 당부를 한 것이다. 이 묘한 부부간 협약이 이루어지자 우크는 아침이면 아내가 싸 주는 샌드위치와 음료를 들고 자기 서재로 출근(?)하였다. 서재에 들어가서는 안으로 문을 잠그는 것이었다.

문을 안으로 잠그는 일, 그것은 바로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을 네 벽 안에 구속하는 일이고, 자신 밖의 일체의 관계를 단절하는 일이며, 자신과의 대화만이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몸은 네 벽 안에 갇혓지만, 생각은 멀리 케인 호의 함상으로 달렸을 것이다. 안일무사로 날을 보내려는 함장과, 차라리 치열한 저누 속에서 삶의 보람을 찾으려는 젊은 장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 그 갈등은 바로 작가 속의 갈등이었을 것이다. 무위와 안일에 기울어지려는 함장에 맞서, 전투 속에 전사의 보람을 찾으려는 또 하나의 실전에는 하루의 전과가 드러나지만, 창작에서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막막한 작업……. 하루의 싸움을 마치면, 그날의 전과(있다면)를 싸움터에 남기고, 열쇠로 문을 열고, 지친 몸으로 문 밖으로 나와, ‘여보, 이제 돌아왔소.’하며 아내의 마중을 받았을 것이다. 그를 싸움터에서 돌아오는 전사(戰士)라고 한다면, 아침에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한 가닥 스릴은, 직장에서 돌아오는 샐러리맨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하루의 정전이 아니라 장기간의 휴전을 바랐던 것이다. 적어도 한 2, 3년……. 롱아일랜드 비치의 휴식은 싸운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귀한 휴식이 되었을 것이다.

공덕용 「고독한 직업」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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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말은 발음이 되어 소리로 나와도, 혹은 소리가 되지 않고 그냥 생각으로만 남아 있어도 거의 최면 같은 주문을 걸 수 있다. 말 속에서 인간은 쉽게 자기를 잃어버린다. 어떤 것에 단어를 갖다 붙이기만 하면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암묵적으로 믿어 버린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무엇인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다만 신비에 하나의 분류표를 붙였을 뿐이다. 모든 것들, 즉 한 마리의 새, 한 그루의 나무, 심지어 단순한 돌멩이는 말할 것도 없고 한 사람의 인간 존재를 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심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각하고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실체의 표면층뿐이며, 빙산의 일각보다도 작다.

그 겉으로 보이는 것의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나온 생명 전체의 원천과도 연결되어 있다. 돌 하나까지도, 꽃과 새라면 더욱더, ‘신’에게로, 그 ‘원천’에게로, 당신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보여 준다. 단어를 붙이거나 머릿속에서 분류표를 붙이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거나 손에 쥘 때, 그리고 그것의 있는 그대로를 허락할 때, 외경심과 경이감이 당신 안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것의 본질이 침묵 속에 자기 자신을 당신에게 전달하고, 당신의 본질을 당신에게 되비쳐줄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느끼는 것, 그들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그것이다. 반 고흐는 “이건 낡은 의자일 뿐이야.”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바라보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 의자의 ‘순수한 있음’을 느꼈다. 그러고 나서 캔버스 앞에 앉아 붓을 들었다. 의자 그 자체는 몇 달러밖에 되지 않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자 그림은 지금 2천 5백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

말이나 분류표로 세상을 덮지 않을 때, 인간이 생각을 사용하는 대신 생각에 사로잡힘으로써 오래전에 잃어버린 기적과 같은 감각이 당신 삶에 돌아온다. 삶에 깊이가 돌아온다. 사물은 새로움과 신선함을 회복한다. 가장 큰 기적은 단어나 생각이나 머릿속 분류표나 이미지에 앞서 자신의 본질적 자아를 경험하는 일이다. 그 일이 일어나게 하려면 자신과 뒤엉킨 모든 것, 자신이라고 믿는 모든 것으로부터 ‘나’의 느낌, ‘순수한 있음’의 느낌을 풀어 주어야 한다. 이 책은 그 뒤엉킨 것을 푸는 것에 대한 것이다.

사물과 사람과 상황에 말이나 머릿속 분류표를 재빨리 붙이면 붙일수록 당신의 현실은 더 얕아지고, 생기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자신의 안과 주위에서 쉼 없이 펼쳐지는 현실, 그 삶의 기적에 더 무감각해진다. 그런 방식으로 영리함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혜는 잃어버리고, 마찬가지로 기쁨, 사랑, 창조성, 생명력도 잃어버린다. 감각 지각과 해석이라는 소리 없는 틈 사이에서 그것들은 묻혀 버린다. 물론 우리는 말과 생각을 사용해야만 한다. 말과 생각에는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들 속에 갇혀 살아야만 할 필요가 무엇인가?

말은 실체를 인간 마음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축소시킨다. 언어는 성대에 의해 생성되는 다섯 개의 기본적인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은 ‘아, 에, 이, 오, 우’의 다섯 가지 모음이다. 나머지 소리들은 공기 압력 조절을 통해 만들어지는 ‘그, 스, 프’ 등의 자음들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음의 몇 가지 조합만으로 당신이 누구인지, 우주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아니면 한 그루의 나무나 돌멩이 하나에 대해서라도 그 깊은 곳에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말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가?

에크하르트 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류시화 옮김.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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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날은 배꼽마당이 들썩거리도록 말 타기를 하고 놀았다. 배가 촐촐할 무렵 친구는 내 손을 잡고 자기 집으로 이끌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호박전을 굽고 있었다. 금방 구운 호박전은 달콤하고 고소했다. 노랗고 동그란 모양이 달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달이 반달이 되고 하현달이 되고 눈썹달이 되어 내 속으로 사라졌다.

몇 개의 달을 삼켰는지 모른다. 어스름 녘이 되어 달처럼 부른 배를 안고 집으로 왔다. 달을 닮은 호박전을 먹을 때부터 아래가 이상했었다.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싫고도 궁금한 무엇이 내 몸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석에 숨어서 아무도 몰래 아랫도리를 내려 보았다. 낮에 먹은 호박전 빛깔이 끈끈하게 묻어 있었다. 아침이 되어 제일 먼저 살펴본 샅에서는 붉은 달빛이 흥건했다. 울컥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뒤꼍 뚜껑 덮인 대야에서 몰래 훔쳐본 어머니의 서답이 떠올랐다. 달빛보다 더 붉은 물에 담겨있던 서답은 한 번도 앞마당 빨랫줄에서 하얗게 펄럭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뒤꼍에 낮게 엎드려 달빛 아래서만 말랐다. 결코 다른 빨래와 함께 섞인 적 없는 그것은 어린 내 눈에도 부끄러움이었고 남에게 숨겨야 할 비밀이었다.

앉은뱅이책상 서랍 속에 꼭꼭 숨겨둔 흔적을 반나절도 안 되어 어머니께 들켰다. 어머니는 달거리가 시작된 거라고 했다. 여자라서 겪는 불편이며 부끄러움이니 참아야 한다고도 했다. 달마다 한 번씩 며칠에 걸쳐 하게 된다는 마지막 말은 울고 싶은 나를 적잖이 안심시켰다. 내 속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달빛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 수는 없다고 절망하던 참이었다. 어머니의 말이 끝나고 왜 여자는 부끄러워야 하고 숨겨야만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뒤꼍의 뚜껑 덮인 대야를 생각하니 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오후 내내 반짇고리 곁에 앉아 하얀 소창을 만지작거리던 어머니는 개짐이란 걸 만들어 내게 주었다. 뒤꼍에서 몰래 훔쳐 본 어머니의 서답이랑 참 닮았었다. 내 것이 좀 작았을 뿐. 샅에 차는 물건이라 했다.

셋이나 되는 오빠들 틈에서 풀썩거리며 자란 나는 억지로 여자가 되어야했다. 달을 지날 때 마다 개짐이 지닌 부피가 부담스러워 치마를 입고 견뎌야 했으며 달거리의 아픔도 참아야 하는 줄만 알았다.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은 우리 집에서 아무 눈에도 띄지 않게 모아둔 서답을 씻느라 밤에 몰래 깨어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한 유년의 배꼽마당과 결별했고 달을 닮은 호박전을 유난히 싫어하게 되었다. 내가 잉태의 신비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달콤 쌉싸래한 신혼의 어느 날, 여름 땡볕에 제 몸을 둥글게 말아 키운 감자를 삶았다. 오지게 잘생긴 놈을 골라 입안에 넣다가 울컥 신물이 올라왔다. 빙빙 어지럼증이 생기더니 하늘이 노랬다. 달을 본지가 언제인지 헤아려 보곤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내 안에서 새 생명이 움을 틔운 것이다. 세상이 다 내 것이 된 양 좋았다. 몸속의 아이가 톡톡 발길질을 하던 날은 숨이 멎을 것 같은 경이로움에 휩싸이기도 했다. 말갛게 숨 쉬던 달빛이 치마 아래로 축축하게 번지던 날 아이의 첫 울음 소릴 들었다. 서 말의 붉은 달빛을 쏟은 후에야 아이를 낳는다는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처럼 나도 그만큼의 달빛을 쏟은 후 비로소 엄마가 된 것이다.

우주가 내 품에 와서 안긴 듯한 잉태와 출산의 기쁨을 가슴 뻐근하게 누려보고서야 알 게 되었다. 내게로 들어 온 달의 소중함과 내 안에서 느끼는 귀찮지만 달콤한 비밀은 건강한 여자에게만 허락된 의무이며 축복이라는 것을.

예전엔 가뭄이 심하면 붉은 혈이 선명한 여자의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생명의 상징인 물을 여자의 달거리로 불러오려 했다는 건 잉태의 근원이 거기에 있다고 믿은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이유로 지금껏 내가 알던 것과는 달리 여자의 달거리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조상들은 달의 정기를 받으면 여성의 생산력도 높아진다고 믿었다. 보름달이 뜨기를 기다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 같은 놀이를 여자들만 즐긴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이제 내가 처음 달을 보았을 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었고 엉덩이에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젖무덤이 봉긋하게 부푼 딸은 그때의 내 나이가 되었다. 둥근 호박전 빛깔을 가진 달과 제 몸의 붉은 달빛도 그 아이는 보았다. 빠르게 시간이 흘러 그 아이가 우주와 소통하게 될 날을 나는 손꼽아 기다린다. 달이 가져다 준 몸의 신비를 우주를 품에 안으므로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 비로소 그 아이도 생명의 경이로움을 온 몸으로 받들고 지켜가게 되리라.

그때쯤이면 아마 나는 달의 몰락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기에 겪게 된다는 끝 모를 우울과 나른함으로 힘든 날들을 맞을 수도 있다. 혹은 쓸쓸함과 불안함이 엄습해 와서 밤마다 잠 못 들고 뒤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서 뜨고 지던 달의 기억들이 모여 이루어진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를 보면서 순하게 견디어 낼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달이 준 의무와 축복을 누린 후 참다운 *완경(完經) 을 이룬 내 어머니처럼.

*완경(完經)-김선우의 시 제목에서 빌려옴. 폐경(閉經)

달 / 박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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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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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동목작가회장 박영희 (5기) | 작성시간 15.02.18 교수님,
    보충자료 챙기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카페를 자주 들락하는 저도 사실 이 자료를 읽지 못하고 수업에 나갔습니다.
    이렇게 수업 당일에 올리시면 대부분 문우들이 잘 읽지 못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으로는 최소한 3일 이전에 올려주시면 저희들이 예독하는데 있어 편리함은 물론이고 수업 이해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설날이 다가왔습니다.
    따끈한 떡국 맛있게 드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작성자박양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2.24 ok 그럭할게요. 첫 시간이라 그렇습니다.
  • 작성자이정희(7기) | 작성시간 15.03.16 불량학생 자료를 이제사 보옵니다.ㅎㅎ 앞으로 충실하겠습니다.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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