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디모데 할례와 신 절기에 대하여

작성자부르지저|작성시간11.05.01|조회수194 목록 댓글 10

  파수꾼님과 의견을 나눔에 있어 주 내용은, 십일조와 신 절기(부활절, 성탄절)문제였습니다.

 

파수꾼님은 십일조 문제에 있어서 이는 모세이전 아브람 때에 발생한 일이므로 율법이 아니니 이를 존속 시행함에는 아무하자가 없다는 주장하였습니다.

나는 이에 대하여[십일조의 의미]글을 올리니, 님은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물론 님은 전번 예수침례 문제처럼 이번도 지나친 자의적해석이라 어디부터 손볼 수가 없다고 할지 모르나, 그러나 내 글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십일조는 여기서 일단 접어 제치고 할례와 신 절기를 다뤄봅니다.

 

 

이제 문제는 할례와 절기입니다.

파수꾼님은 <행16:3>을 거론함에 있어서, 할례의 정의가 오직 구원과 의롭고자 하는 차원에서만 아니라면 이를 시행해도 무방하다며, 동시에 이를 절기에 빗대어 부활절, 성탄절도 의도가 주님을 위해서라면 바울이 이행한 할례처럼 이를 세워 지키는 것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지론을 펴셨습니다.

 

이에 나는 <행16:3>과 <갈2:3~5> 을 하나로 묶어놓고 말을 했습니다만, 이는 할례를 받은 사람이 다르고 조건이 다르므로 시비의 요지가 있어, 이번은 <행16:3>만 다루려 합니다.

 

 

<행16:3>에 기록된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시행한 할례를 상고해보면, 파수꾼님이 인식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어 보여 그렇게 이현령비현령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시행한 것은

 

그 이유가 첫째가 유대인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궁색한 변명의 여지는, 그의 모친이 유대인이라는 점도 고려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나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치 못하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입니다만, 그렇다고 하여 할례는 의도만 다르면 아무나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이현령비현령용이라고 한 것은, 님이 주장하고 있는 신 절기의 의도처럼 디모데의 할례가 기념이나 교육용이 아니지 않느냐, 하는 반박도 감안하고 디모데의 할례를 절기와 빗대야 할 것입니다.

이를 반대로 뒤집어 말을 하면 알아듣기가 쉬울 것입니다. 즉 님이 주장하는 절기는 그리스도인들의 항의나 핍박이 무섭고, 또 진리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절기를 세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바울이 디모데에게 시행한 할례는 이현령비현령용이 아니라고 하는 것임을 알아 들으셨으면 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바울 | 작성시간 11.05.01 오늘날 성경이 가르치지 않으나 다수가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실행해 오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지엽적인 진리이거나 실행이라면 서로 간에 이렇든 저렇든 자유함을 가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성경의 핵심 내용인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대체하거나 가리운다면 그만큼 그런 것들을 실행하는 그 자신들에에게는 '손해'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간을 아껴 복음을 전하고, 생명으로 목양하고, 자아를 거절하고 그리스도자신을 생명으로 더 모셔들임으로 생명의 성숙에 이르는 일에 집중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 작성자김바울 | 작성시간 11.05.01 그동안 파수꾼 님(목사님)과 여러분들의 토론 내용을 읽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오늘 마침 시간이 있어서 오랫만에 지난 글들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사실 십일조, 특정 날을 지키는 문제 등은 웬만한 개혁 싸이트에서는 최소한 한번 이상은 치열한 공방이 이뤄졌던 주제들이라 공방의 내용들은 낯설지가 않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입장은 파수꾼 님과 반대편에 서 계신분들과 같습니다.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파수꾼님이 참되게 거듭난 분임이 분명하다면 서로 간에 대화시 조금 더 온유한 영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어떨까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제가 이러한 인터넷 상의 대화시 훈련하고 있는 부
  • 작성자김바울 | 작성시간 11.05.01 분이긴 합니다만, 저 역시 잘 대화가 안되고 상대가 억지를 부린다 싶을 때는 답답하게 느껴져서 이 방면에 실패한 체험이 많습니다.
  • 작성자파수꾼 | 작성시간 11.05.03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강 아닙니다.
    바울이 행16:3과 갈2장에 나온 내용이 이현령비현령용 아닙니다.
    바울은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 복음에 유익하면 오케이, 무익하고 해가 되면 노 아니겠습니까?
    저는 부활절과 성탄절을 지켜야된다, 지켜도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복음에 전해 무해하고, 오히려 유익하게 부활절과 성탄절을 지키는 여러 분들이 본 적이 없는 교회와 성도들을 더 이상 정죄하지 말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부르지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5.03 장난으로 던진 돌이 개구리에게는 사망이라는 말처럼, 님의 의식없는 절기는 님의 신자들에겐 거치는 장애물이요 그들에겐 사망인 반면 신에게는 모욕이 될 수가 있음을 각성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