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는 이방인이었는가? 유대인이었는가?
상당히 많은 분들이 성경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의 기자인 루카가 이방인이었던 것으로 알고 그렇게 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주장들보다 훨씬 더 많은 성경적 근거들이 루카가 유대인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측의 근거들을 살펴본 후에 루카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그런 주장들이 가져오는 영적 배후, 영적 효과나 영향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골로새서 4장 – 할례당
7 나의 모든 사정을 투키코가 너희에게 알리리니,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며 주안에서 함께 종된 자니, 8 그를 내가 너희에게 바로 이것을 위하여 보냈음은, 그가 너희 사정을 알도록 하고 너희 마음들을 위로하도록 하였기를, 9 신실하고 사랑받는 형제, 오네시모와 함께 하도록 하였으니, 그는 너희에게서 와 있느니라. 그가 여기의 모든 사정을 너희에게 알게하리라. 10 나와 함께 붙잡힌 자 아리스타코가 너희에게 문안하며, 바나바의 조카 마르코도 그리하며 (그에 관하여 너희가 지시를 받았으니, 그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너희는 그를 영접하라), 11 유스토라 불리우는 예수도 그리하니, 그들은 할례(파)에 속하여 있느니라. 이들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들이며, 저희가 나에게 위로가 되어졌느니라. 12 너희 출신인, 그리스도의 종 에파프라가,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뜻안에서 온전한 자들과 충만한 자들로 서도록, 너희를 위하여 기도들로 항상 힘쓰면서,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 이는 그가 너희와 라오디케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폴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은 열심을 가진 것을 내가 그에 대하여 증거함이라. 14 사랑받는 의사인 루카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데마도 문안하니라.
이 구절을 근거로 루카가 할례당에 속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유대인이 아니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구절들을 꼼꼼이 살펴보면, 루카가 할례당이 아니었다는 판단도 분명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설사 루카가 할례당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비할례당인 유대인일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빌 3:1-3에서 할례당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할례는 유대인을 대표하는 용어가 아니라, 율법을 대표하는 용어이며, 할례에 속해있다는 말은 율법주의자라는 뜻이 되는 것이지, 비율법주의 메시아 유대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례에 관하여는 로마서 2:25-27, 갈5:6-12, 6:12-15 에서 바울은 할례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할례 문제를 근거로 루카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다고 주장을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신학교에서 그런 교육을 받은 까닭으로 분별됩니다. 왜냐하면 미국인 목사들, 신학교 출신들이 그런 주장들을 많이 하는 것을 보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주장을 이 구절을 근거로 가져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이방인이라도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할례주의자들(행 15:1-2)을 언급한 것이지,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를 다룬 구절들이 아닙니다.
(2) 루카 1:3-4 – 데오필로
일부의 사람들은 루카가 쓴 복음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쓴 복음으로서 데오필로 총독에게 쓴 것이므로 루카가 이방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말이 상식적으로 지극히 무리한 논리임은 분명합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위하여 유대인의 관점에서 쓰여졌고 루카복음은 이방인을 위하여 쓰여졌다는 구분은 그 시작이나 대상에서 인정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성경이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말씀이라는 성경말씀(딤후 3:15-17)을 생각할 때 극히 편협에 흐르는 구분일 뿐입니다. 또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은 구분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반하는 것입니다(갈 3:28)
도마는 인디아로 갈 때에 마태복음만을 갖고 갔습니다. 그는 이방인을 위한 루카 복음은 갖지 않고, 유대인만을 위한 복음만을 갖고 인디아로 간 것일까요? 이런 구분에 의하여 어떤 다음 이론을 도출해내어 믿게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따라서 루카가 데오필로에게 편지하였다는 사실은 그가 유대인이었는지 이방인이었는지를 판단하는데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단지 루카는 이방인이었던 총독 데오필로와 친분을 가질 수 있었던 로마제국의 공인된 의사로서 높은 사회적 신분의 소유자였음을 말해줍니다. 그렇다고 루카복음이 고위 공무원들이나 부자들만을 위한 복음이겠습니까?
이제 다음부터의 여러 증거들이 루카가 유대인일 수 밖에 없음을 증거할 것입니다.
(3) 로마서 3장 1-2절 : 오라클- 하나님의 로기아!
1 그러면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모든 면에서 많으니라! 왜냐하면 먼저는 저희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로기아)들을 신탁받았음이라.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관리하는 임무가 유대인들에게 신탁되어져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 말을 하는데는 바울이 신명기 31장 25-27절에서 레위인들에게 성경 보전과 관리임무가 부여되었음을 모세가 말한 사실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만 수많은 예언들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함으로서 전달되어진 사실들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기자들이 유대인들이었다면 욥은 그 예외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경우 그의 생존 시기가 이스라엘의 형성기 이전 혹은 그 무렵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훈과 계명들을 가르쳤다기 보다는 그의 삶을 기록한 것을 훗날에 에즈라가 성경으로 확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에즈라는 당시까지의 토라와 모든 타낙(구약)들을 모으고 집대성하며 완성하였습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구약성경이 소급해서 쓰여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기록 연대들이 매우 후대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바로 에즈라가 모든 구약을 편집하고 보급하였기 때문으로 분별됩니다. 에즈라 자신은 성령님의 뜻에 따라 성경을 기록한 성경기자들 중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권위를 가졌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구약시대 모세이후 가장 위대한 성경학자였습니다.(에즈라 7:6, 10-12, 21, 25, 느헤미야 8:1-18)
만일 루카가 이방인이었다면 이방인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이 관리되고 전달되었다는 것으로 바울이 기록한 이 말씀은 틀린 것이 됩니다.
(4) 사도행전 21장 – 트로피모
28 소리지르기를, “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는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대적하여 도처에서 가르치는 사람이라, 여전히 헬라인들을 데리고 성전안으로 들어와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도다!” 29 이는 저희가 에페소 사람 트로피모가 그와 함께 성안에 있는 것을 전에 본적이 있었고, 파울이 그를 성전 안으로 데리고들어왔다고 생각하였음이라.
루카는 바울과 항상 동행하고 있었으며 이 당시 예루살렘에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로피모가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다녔으며 파울이 몇 사람과 함께 성전안으로 들어왔으므로, 그가 이방인 트로피모를 데리고 들어왔다고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루카가 만일 이방인이었다면, 왜 루카는 자기 스스로를 언급하지 않았겠습니까? 또한 문맥을 더 살피면 루카는 오히려 성전안에 들어와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성전에 들어왔든지 안들어왔든지, 루카가 이방인이었다면, 트로피모 보다 루카가 더 중요한 인물로서 당연히 언급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루카를 문제삼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루카가 유대인이었음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 문제에 관하여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5) 루카 1장 – 제사장들의 반차
루카는 복음서 1장 8-10, 23절에서 제사장단에 반차가 있음과 그 반차의 전례들과 분향관행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로서는 기술하기 매우 어려운 사항들입니다. 심지어 유대인들 중에서도 제사장단에 24개 반차가 있었다는 것(역대상 24:1)을 기억하고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제사장단의 반차들을 알고 있는 이방인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루카는 바로 제사장직제의 깊숙한 관행들과 실행들을 알고 그것을 증거한 사람이었습니다. 제사장단의 임무는 수없이 씻고 준비하며 정결케하는 일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 많은 일들을 나누어 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어느 반차에도 속하지 않는 대제사장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6) 루카 6장 1절 – 두번째 첫 안식일
지난번 별도 글에서 루카복음 6장 1절의 사바토 듀트로프로토( σαββατω δευτεροπρωτω)가 두번째 첫 안식일이라는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 단어는 유대인들중에서도 율법에 매우 정통한 유대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첫번째 첫 안식일을 알아야 하며, 또한 초실절과 유월절, 그리고 초실절 이후부터의 추수관행등 여러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 중에서도 안식일의 관행에 관해서 정통한 사람이 이런 용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17세기 당대 전문가들이 번역했던 킹제임스 성경마저도 이 구절의 의미를 정확히 몰랐으므로 첫번째 안식일이 지나고 두번째 안식일에로 번역하였으며, 오늘날 수많은 번역들은 그것을 아예 어느 안식일에로 혹은 안식일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절은 분명히 절대다수의 사본들이 두번째 첫안식일에로 기술하고 있으며, 바티칸 사본과 시내산 사본등 몇 개의 변개된 사본들이 그 듀트로프로토를 누락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첫 안식일은 초실절이 지난 다음 첫 안식일이었습니다.그것은 은혜의 시대에 속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방인으로서는 이러한 율법의 깊이를 정통하기 어려운 이유는 제사예식이나 안식일 자체를 중요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관하여, 할례와 율법에 관하여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합니다. 메시아 유대인들은 특히 그 율법과 구약을 통해서 메시아 예수아에 관한 예언들과 율법이 메시아에 관련하여 갖는 의미들을 연구하는데 주력합니다. 따라서 이방인들로서 유대인만큼 율법과 안식일에 정통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7) 루카 2장 – 이스라엘의 위로, 이스라엘의 소망
25 보라,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 사람은 의로우며 경건하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요, 성령이 그의 위에 계시더라. 26 그에게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전에는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는 것이 성령에 의해 계시되어졌더니 27 그가 성령에 의해 성전으로 들어오매, 마침 부모가 그분을 위하여 율법의 관습를 좇아 행하려고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오니 28 그가 그분을 그의 팔에 안아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기를:
29 “ 주재여, 이제는 당신의 종을 당신의 말씀대로 평안히 놓으시나이다.
30 이는 내 눈들이 당신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이오며,
31 그것은 당신께서 모든 백성들의 얼굴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 민족들을 비추는 빛이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38 같은 시각에 그녀도 다가와 주께 감사드리고 예루살렘에서 구속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에 관하여 얘기하니라.
사도행전 1장
6 그러므로 그들이 모여서 그분께 물어 말하기를, “주여, 당신께서 이스라엘에 나라를 이 때에 회복하시나이까?”
루카 복음은 어느 복음보다도, 이스라엘의 소망, 이스라엘의 회복과 위로를 기다리는 민족의 소망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그점을 해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루카가 이방인이었다면 그 점을 이방인인 데오필로에게 설명하거나 강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루카는 당시에도 수많은 민족들 중에 유독 여러 면에서 핍박을 받아온 이스라엘 민족의 억울함과 고난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그리고 그것을 유대인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8) 루카 24장- 벤하임 맛소라.
루카 24장 44절이 가르치는 두 가지 교훈을 다른 글로 성경 사본 게시판에서 이미 설명한바 있습니다. 그 하나는 구약성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된 성경이라는 점과 예수님께서는 벤하임 맛소라와 동일한 편제의 성경을 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처럼 70인역을 읽으신 것이 아닙니다! 70인역, 벤 아셀,납탈리 성경, 레닌그라드 코덱스 등은 모두 오늘날의 성경 편제와 비슷합니다만, 루카는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들과 시편을 언급하셨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벤하임 맛소라가 갖고 있는 편제입니다. 이와 동일한 편제의 성경은 오늘날 벤하임 맛소라가 유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벤하임 맛소라에 근거한 성경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번역한 성경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이며, 이에 반하여 벤 아셀 계통의 사본들을 편집한 성경이 BHS(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로서 Rudolf Kittel이 원래 벤하임 맛소라를 수정하기를 시작하였다가 나중에 아예 벤아셀 계통으로 바꾼 것이었고, 그것을 Gerhard Kittel이 편집하여 1936년 내놓은 성경이 바로 BHS 입니다. 이것은 상당부분을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은 부분들은 맛소라나 챈팅들을 살짝 살짝 고쳐놓았습니다. 게르하르트 킷텔은 유대인이면서도 히틀러에 의해 중용되었으며 히틀러는 킷텔의 성경을 보고 좋아했다고 합니다. 킷텔은 나중에 뉴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그의 나치 협력이 인정되어 형을 받고 복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메시아 유대인들은 이 성경을 히틀러 성경이라 별명으로 부릅니다.
오늘날 한글 개역, 개역개정, NIV, ESV, NLT, ASV, NASB, Living Bible, Jerusalem Bible, Message Bible, TNIV, 등 대다수의 현대역본들은 이 히틀러 성경을 바탕으로 하여 번역된 것들입니다. 반대로 킹제임스 성경, 영스리터럴, TMB, Webster 등은 벤하임 맛소라를 근거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루카는 당시에 70인역과 선행사본(Vorlage)인 히브리어 성경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이런 성경의 구조를 가진 성경을 언급합니다. 이런 성경의 언급은 다른 기자들에 의해서는 언급되지 않은 부분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면 기술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루카는 분명 유대인이었더라도 보통의 유대인이 아니라 성경에 관하여 많이 아는 유대인이었든지, 이방인이었다면 정통 유대인들보다도 더 많이 구약성경을 아는 이방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본들 부분에 관하여는 제가 할말이 엄청 많습니다만, 나중으로 미룹니다.
(9) 루카 2장 – 정결례와 성전 제사법, 율법의 준수
21 그분을 할례할 8 일의 날들이 찼을 때 그분의 이름이 예수라 불리우니, 그분이 태에 잉태되었기 이전에 천사에 의하여 불리워진 바라. 22 모세의 율법에 따른 저희의 정결례의 날들이 차매 저희가 그분을 예루살렘으로 데려가니 주께 드리려함이며 23 주의 율법에 기록된 바와 같이 < 모태를 연 남자마다 주께 성별되었다 일컬어지리라> 함이며 24 주의 율법에 말씀하여진 바를 따라< 비둘기 한쌍이나 어린 비둘기 둘>로 희생을 드리려함이라.
루카가 복음서를 이방인들을 향하여 썼다면 왜 굳이 이러한 정결례를 언급하겠습니까? 토라(율법)에 남아를 낳으면 7일 동안 여자는 부정결하며, 33일이 지나야 정결례가 완성되고 여아를 낳으면 두 칠일과 66일을 지나야 완전히 정결케됩니다. 이러한 율법 준수는 예수님이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는 절차를 거쳐서 양육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며 유대인들에게 크게 중요시되는 사항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것은 루카가 이방인이었다면 알기도 쉽지 않았거니와(당시에 성경은 매우 희귀하였습니다!) 알았더라도 중요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루카 2장
36 아셀 지파에 속한 파누엘의 딸인 안나 여선지가 있었더니 그녀는 연세 많았고 그녀의 처녀때로부터 7 년동안 남편과 함께 살았다가 37 과부로 84 년 있었으며, 그녀가 성전으로부터 떠나지 아니하고, 금식과 기도로 밤낮 섬기더니 38 같은 시각에 그녀도 다가와 주께 감사드리고 예루살렘에서 구속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에 관하여 얘기하니라. 39 저희가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것을 마친 후에 갈릴리 고향동리 나사렛으로 돌아가니라.
여기서 루카는 또다시 예수님이 율법의 모든 요구조건들을 충족시키며 자라나셨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아셀지파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지파와 족보는 중요합니다. 비록 그리스어로는 안나로 기록되었지만 히브리어 한나라는 이름의 여선지를 통해서도 모든 율법의 준수를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10) 2장 21절 – 제8일 할례자
유대인 남자들에게 있어서 유대인 됨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할례였습니다.그것은 아브라함 이래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요한 언약의 표징이었습니다(창 17장9-27).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할례를 생후 8일만에 받은 자와 그 후 나중에 할례받은 자들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제8일에 할례받은 사람들이 정통이며, 그후에 할례받은 자들은 정통성이 떨어지는 유대인들이 됩니다. 특히 이방인이었다가 개종한 사람들은 나중에 할례받으므로 제8일할례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 사이에는 제8일 할례자는 별도의 호칭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며 사도 바울은 그것을 페리토메 옥타에메라스로(필 3:5) 언급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어 니몰 벤 시모낫 얌밈을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외에 축약된 단어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런 제8일 할례자의 정통성이 중요시 되었으므로, 사도 바울은 자기가 제8일 할례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빌 3:5). 제 8일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부모가 정통 유대인이라는 것을 뜻하며 그들이 율법을 준수하며 양육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렇지 않은 유대인들은 나중에야 회개하였거나, 나중에 개종하였다는 뜻이 됩니다.
이에 따라 제8일 할례자는 중요시 됩니다.
이삭, 침례자 요한, 예수님, 사도 바울은 모두 제8일 할례자였으며 그외에 수많은 구약 선지자들도 제8일 할례자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루카는 바로 이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이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겠습니까만, 유대인들에게는 중요하였기에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11) 2장 7절- 카탈루마(καταλυμα)
루카 2장 7절에는 끝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카탈루마에는 저희에게 있을 곳이 없었음이라.
이 카탈루마가 여관이 아니라 손님방이라는 사실은 제가 쓴 다른 글이 성경 사본 번역 게시판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22장 11절에서 최후의 만찬을 가진 장소로 다시 나오며 마가복음 14장 14절에서 기록하고 있어서 신약전체에 3번 나오고 있습니다.
루카는 예수님이 태어날뻔 했던 곳도 카탈루마였으며,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던 곳도 카탈루마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루카가 고대 이스라엘의 가옥구조를 잘 알뿐만 아니라, 그 카탈루마가 쓰이는 용도까지 잘 알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이방인도 유대인의 가옥구조를 잘 알 수 있지 않느냐 하겠습니다만, 이스라엘에 거주한 경험이 있어야 알 수 있는 사항이며, 다른 여러 증거들과 종합할 때 또 하나의 참고사항이 되는 것입니다.
(12) 루카 – Λουκας
오늘날 메시아 유대인들은 그들의 족보들과 조상들의 계보들과 지파들의 분화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하고 되찾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살펴온 바로는 루카는 히브리어 이름인 우리 (אורי 출 31:2, 35:30, 38:22)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그리스어로 음역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라는 이름은 나의 빛, 이란 뜻으로 주님은 나의 빛이라는 뜻으로 써오던 이름이었으며, 그것을 라틴어로 번역하면 Luceo Lucere 동사로서 빛나다인데 이름으로 루카스로 쓴 것을 그리스어로 표기했을 뿐으로 보입니다. 그리스어로 빛은 포스(Φως ) 가 됩니다.
따라서 루카 자신은 유대인으로서 우리라는 히브리어 이름도 사용하고 공적으로는 루카라는 라틴어 이름도 사용하였던 의사로 보이며 고대 로마제국에서는 의사에 관하여 자격기준을 상당히 엄격히 적용했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루카는 앞서서 언급한 제사장단 직제와 반차에 관하여 언급한 것이나, 두번째 첫 안식일이나, 율법 준수 등에 있어서 굳이 이방인들에게 구체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없는 사실들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함으로서 그의 복음이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설득력있고 유효한 증거가 되도록 기록하고 있습니다. 루카복음은 다른 어느 복음보다도 율법과 성전제사 유대인의 관습에 관하여 가장 생생한 증언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위와 같은 분별을 놓고 각자가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루카가 만일 이방인이었다면 그는 일반 유대인들보다 모세의 율법에 대해 더 잘알고 정통하며, 또한 이스라엘에 매우 동정적이고 그들의 소망을 잘 이해하며, 제사장직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구약성경도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으로서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다 해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가 유대인들에게 주어졌다는 말씀에는 반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 경우 반대하는 분들은 그 말은 구약성경에 해당되지 신약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이나 루카복음도 비록 그것들이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한 것이고 교훈이나 계명을 가르치는 말씀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말씀의 정확성을 위해서 용어 하나 하나와 사건의 진실에 대한 정확성을 고려할 때 성령님의 계시가 없이는 한치도 기록될 수 없는 말씀들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계시가 유대인들에게 맡겨져 있다고 바울은 로마서 3장1-2에서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판단은 어떻습니까? 위의 모든 해석들과 분별에도 불구하고 루카가 이방인이었다고 판단되십니까?
저는 루카가 유대인이었으며 유대인들을 통해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이방인들 모두에게 전달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이러한 판단에 근거하여 몇 마디를 여기서 더 하고자 합니다.
(13) 루카가 이방이었다는 주장들의 영적 배후와 영향
욥을 제외한 구약의 모든 기자들은 유대인이었으며 욥기마저도 에즈라에 의해 편집되고 성경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신약의 모든 기자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루카가 이방인이었다고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항의 이유는 주로 신학교들에서 가르쳐지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2) 항의 견해는
세대주의적 해석에서 나온 것이기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주된 이유나 근거는 (1)항의 골로새서 4장을 오해한데서 그런 해석이 나왔다고 분별됩니다.
이런 구분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것 자체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다음에 제가 언급하는 여러가지 경향들을 종합하여 보면, 이것이 어떤 큰 영적 사조와 오해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갖게합니다.
이와 유사한 사조와 교훈들의 예들;
1)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였고,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쓰였다.
2) 예수님은 주로 아람어로 설교하셨다.
3) 예수님 당시에 히브리어는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죽은 언어였고, 종교 예식에서만 활용되었다.
4) 구약의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은 교회들에게 성취되었다(대체이론)
5) 예수님은 70인역을 인용하셨으며, 제자들도 70인역을 인용하였다.
6) 루카는 이방인이었다. 루카복음은 이방인에 의해 쓰여졌다.
7) 구약의 많은 계명들은 신약에서 바뀌었으며 안식일은 주일로 바뀌면서 일요일로 바뀌었다. 안식일 준수는 바로 주일성수인데 일요예배 준수로 바뀌었다.
이런 말들을 종합하여 모으면 이것들이 이끄는 영적 배후를 짐작하게됩니다.
위의 모든 주장들은 제가 알고 믿고 있는 바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은 히브리어로 바울에게 말씀하셨으며(행 26:14) 십자가상의 명패도 라틴어와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쓰였지 아람어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아람어와 히브리어는 같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사야 때에 서민들은 아람어를 모르고 고위 관리들만 알았으므로 아람방언으로 말해달라고 부탁한 장면이 있습니다(사 36:11) 언어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분화되어 더 달라집니다.
실제로 신약의 적어도 일부는 히브리어로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나중에 헬라어 부분과 히브리어 부분이 한 언어로 통일되면서 헬라어로 통일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히브리서도 히브리어로 쓰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성경책입니다.
70인역과 실제 신약성경을 한자 한자 대조해본 저로서는 예수님이나 제자들이 결코 70인역을 사용하시지 않았음을 제가 쓴 다른 글에서 증명한바 있습니다. 70인역은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이며, 벤하임 맛소라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오리지날입니다.
예수님은 아람어 사용지역인 데카폴리 지역에서 그들의 언어로 말씀하셨을 뿐이지 통상은 히브리어로 말씀하신 것으로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이스라엘은 전혀 다른 주체들이며,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은 앞으로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70번째 주간이 될 것이며, 이스라엘은 그 민족적 지위를 회복할 것입니다. 이점에서 세대주의는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세대주의는
-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언의 성취가 있을 것이며 이스라엘의 건국을 예언하였습니다. 1848-1850년 당시에 이스라엘 땅에는 아무도 살지 않던 황무지였던 시절이었습니다.
- 또한 세대주의는 진화론과 같은 과학주의로부터 기독교를 지켰으며,
- 공산주의나 종교 다원론에대 저항하며 기독교를 지켜왔다고 판단됩니다.
- 오늘날도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교단들은 바로 세대주의를 고집하는 교회 단체들입니다.
- 따라서 종말과 휴거에 관한한 세대주의에 반대하는 저로서는, 이점에서 여러 사조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고 있으며 다만 종말 휴거보다 구속과 죄사함, 성경과 교회 모임의 진리와 실행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것을 정확히 가르치는 세대주의자들을 존중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멜깁슨의 영화 Passion of Christ 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지난 댓글들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불신자이며 카톨릭 신자인 멜깁슨에 의해서 기독교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제작된 영화로서 그의 무식과 불신앙이 철저히 드러난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그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아니한 까닭에 예수님의 부활을 교묘히 처리하여 넘어갔습니다. 또 대사의 대부분이 아람어로 되어서 예수님이 아람어로 설교하였다는 기존 신학계의 학설을 그대로 반영하였습니다. 북미에서는 그가 포르노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을 대부분의 여자 배역에 기용하였다고 알려졌습니다. 그 영화는 예수님이 잔인한 형벌만 받는 장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은 전혀 찾아보기 어렵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류 모두의 죄를 담당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만큼만 고통이 예수님께 가해지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영화에는 왜 예수님이 죽으셨는가? 가 명확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주제인 인류 모두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피흘리고 죽으심으로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으신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 영화 전체에서 주는 느낌은 예수님은 미약한 인생에 불과하였으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십자가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둔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 위대한 승리가 그분의 부활로 확인 공표됨으로서 인류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게되었고 인류의 죄가 사해졌다는 진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기대를 로마 카톨릭 신자이며, 음주운전으로 체포되던 멜깁슨에게서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일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자체가 예수님의 속죄사역의 영원성을 믿지 않는데 그 신자가 그것을 믿겠습니까?
이런 영화를 한국의 수많은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보도록 권장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마 그들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도 그들의 신자들에게 그 적그리스도를 순복하고 따르라고 권장할 것이라는 우려를 갖는 것은 지나친 염려이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아람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주장하는 사조는 이러한 카톨릭 사조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엉터리 사조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습니다.
루카가 이방인이었다는 주장은 성경에 있어서의 유대인의 역할과, 이스라엘과 히브리어 성경의 중요성을 격하시키고, 히브리어 문헌들의 신뢰성을 낮추고, 성경 예언들이 성취되지 않고 흐지부지 되는 것이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그 성취가 증명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카톨릭주의 (Catholicism)이며, 반유대주의(Anti semitism) 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루카는 유대인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 계시는 유대인들에게 맡겨졌으며,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은 그대로 유효하며, 언젠가는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그들은 세계의 제사장나라로서 자리잡을 것이며, 하나님의 경륜이 천국에 이르기까지 최종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믿어집니까? 당신의 판단에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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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토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2.07 오늘 마침 누가 잡지들을 놓고가는데 보니까 멜깁슨 이야기가 나와 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 사진들 중에는 멜깁슨이 로빈 마누라와 이혼소송중에 옥사나라는 정부를 때려서 옥사나의 이빨들이 부러진채 나온 사건과 그녀와의 사이에 낳은 아기 이야기며 아침마다 조반에 맥주 다섯 컵을 마신다는 것, 술집에서 벌겋게 취한채 여자들 둘을 끌어안고 찍은 사진이며 자기 땅에 카톨릭 성당을 370만 달러를 들여서 지어준 독실한 카톨릭 신자라는 말과 감독교회를 다니는 마누라 로빈은 지옥으로 갈것이라는 예언까지 올려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주연 연출한 영화에서 예수님이 아람어로만 설교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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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토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2.07 실제와는 분명히 다른 것으로서 이스라엘과 유대 문화를 격하시키고 인류세계에서 그들의 흔적을 없애버리려는 바티칸과 카톨릭의 끊임없는 반유대주의의 영에 사로잡혀 있기때문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루카 역시 여러 면에서 풍부한 증거들이 유대인이었다는 추정을 어렵지 않게 하고 있으며, 이방인이었다는 증거로 가져오는 증거들 또한 매우 부실하고 허약한 논거밖에 안되는 점을 감안하면 루카만이라도 이방인이었다고 주장함으로서 모든 성경이 유대인들에게 쓰여졌으며, 인류 세계는 유대인들에게 많은 영적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막기 위한 영적 운동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
작성자하토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2.07 이러한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은 또 축복해주십니다. 롬 3장, 사도행전 21장, 루카 1,2, 6:1, 24장44절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늘 읽는 대목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올려놓은 해석들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며 그것들을 비교 공부하는 것은 각자의 성경 해석 방식과 시야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게는 원어문 성경들과 사전들을 꼼꼼이 정독할 때에 수많은 깨달음을 주님께서 주시고 있습니다. 이 글의 경우에도 그런 생각들이 이미 나온 것들을 모아서 정리해두고 싶어서 올린 점도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제가 책들로 내기까지는 이런 류의 글은 삼가하거나 줄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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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미가 작성시간 11.12.15 글이 길어서 모니터로는 정독이 되지 않아 인쇄해 두었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이방인줄 알았는데 하토브님의 논리 정연한 글을 읽으니 공감이 감니다
하토브님의 연구와 논리정연함에 감탄합니다 -
작성자느디님 작성시간 11.12.07 행여, 기회 있을 때마다 제시하는 저의 다른 의견으로 해서 '하토브'님께서 발표를 삼가거나 줄이지는 마십시오. 저를 포함한 많은 회원들이 큰 유익을 받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