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월30일 오늘 옥크빌 교회에서 성만찬 얘배가 끝난뒤, 말씀집회시간에 앞서서 교회에서 부른 찬송가들 중에는 흥미를 끄는 찬송이 몇 곡 있었습니다. 하나는 한국에서는 복음성가 가수들이 복음 성가로 부르는 노래인데, 아마 최미씨가 부르던 곡이 아닌가 싶은 노래인데 그것은 저작권이 걸려 있어서인지 사이트에 올려지지 않아서 제가 못올립니다.
다른 하나는 I stand amazed in the presence of Jesus Nazarene, 이라는 찬송인데 나사렛 예수 앞에 서서 (혹은 섰더니) 정죄받고 불결한 죄인인 나를 어떻게 그분이 사랑하였던가에 경이롭다, 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가사 내용이 내가 서서, 로 시작되기 때문에 이런 찬송을 부를 때는 반드시 회중이 일어서야 합니다. 아주 노인들도 이런 찬송을 부를 때는 일어서는 것이 관행입니다. 서지 않고서 내가 서서, 하고 찬송을 부른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지요.
http://nethymnal.org/htm/i/s/isaithep.htm
I stand amazed in the presence
Of Jesus the Nazarene,
And wonder how He could love me,
A sinner, condemned, unclean.
나사렛 예수 앞에 내가 서서
정죄받고 불결한 죄인인 나를 그분이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나는 놀라도다.
(Refrain)
O how marvelous! O how wonderful!
And my song shall ever be:
O how marvelous! O how wonderful!
Is my Savior’s love for me!
(후렴)
얼마나 놀라운가 얼마나 훌륭한가!
내 노래는 항상
얼마나 놀라운가, 얼마나 훌륭한가!
나를 위한 내 구주의 사랑은!
For me it was in the garden
He prayed: “Not My will, but Thine.”
He had no tears for His own griefs,
But sweat drops of blood for mine.
그분이 동산에서 기도한 건 날위함이네,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 뜻대로,
그분 눈물은 자기 슬픔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피같은 땀방울이 날위함이라.
Refrain (후렴)
In pity angels beheld Him,
And came from the world of light
To comfort Him in the sorrows
He bore for my soul that night.
천사들이 그분을 슬퍼하여
빛의 세계에서 와서 그분이 그날밤
내 영혼을 위해 담당한
슬픔중의 그분 위로했네
Refrain (후렴)
He took my sins and my sorrows,
He made them His very own;
He bore the burden to Calvary,
And suffered and died alone.
그분은 내 죄들과 내슬픔을 지고가
그분 자신의 것으로 만드시고
그 짐을 갈보리고 지고 가서
홀로 고통당하시고 죽으셨네.
Refrain (후렴)
When with the ransomed in glory
His face I at last shall see,
’Twill be my joy through the ages
To sing of His love for me.
대속으로 영광중에
그분 얼굴 나 마침내 보리,
나의 영원한 기쁨은 그분의 나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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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이러한데 한국의 가사로 만들려면 내용을 상하지 않으면서 운에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한곡의 제목은 who can cheer the heart like Jesus 였고 다른 한곡은 How wondrous a Savior is God's blessed Son, 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찬송가들의 가사 내용들은 원래의 찬송가들의 내용들과 의미상의 차이가, 많이 나서 그 차이는 한글 성경과 킹제임스 성경의 차이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거기에는 번역상의 어려움이 많은데 이것은 한글문장이 영어 문장보다 의미 전달상 많이 길어지기때문에 운을 맞추기 위해서는 많은 의미들을 삭제하거나 축약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에는 한글 개혁과도 관련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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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고헌 작성시간 10.06.02 마태복음 20장의 천국비유가 여러모로 유익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그러나 천국의 구원에도 차이가 있음이 분명합니다.(고전 3: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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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고헌 작성시간 10.06.02 혹, 신자들 중에 천년왕국에는 참여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두 만날 것이라고 분별하고 있습니다..천년왕국이나 새 하늘과 새 땅은 그냥 천국이라고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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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토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6.02 고헌님이 우리의 몸이 변화를 입을 때 즉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때 이런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신 점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시에 영광의 몸도 있고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등 구체적인 차이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심판대의 설치 장소나 그것의 계시록 상의 시점등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제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계20:4-5). 나머지는 천년이 차기까지 다시 살지(부활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생명책이 20장 11-15에서 펼쳐지는 이유는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이 부활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둘째 부활에 부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
작성자하토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6.02 천년왕국에도 불신자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매우 정확합니다. 거기에서도 결국에는 반역이 일어나며 어떤 사람은 100세가 못되어 죽습니다,(사 65:21). 그러나 그것은 극히 드문 사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년왕국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기억되고 기념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다시 죽을 수는 없는 반면 그분의 십자가 사역은 영원한 효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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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joy기쁨 작성시간 10.06.02 감사합니다.
종말/재림 뿐 아니고 올리신 글들도 못읽어본것 차근차근 읽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