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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하토브. 작성시간13.09.04 죄를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 골방에 들어가서 직접 하는 것만큼 깊이있고 진실하며 간절하게 할 수 없습니다.
신약시대는 만인 제사장시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와 죽으신 몸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장들이 바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모두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된 우리가 누구에게 죄를 고합니까? 우리 스스로는 모두 제사장이라고 벧전 2:9, 계 1:6, 5:10 에서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카톨릭의 사제가 제사장이라고 쓰여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는 제사장들로서 예수님의 피를 기억하고 믿음으로서 마음속에서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 스스로의 죄를 간절히 깊이있게 고해하는 -
답댓글 작성자 하토브. 작성시간13.09.04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고해성사를 날마다 수시로 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인간 우상제사장에게 죄를 갖고 가야 합니까? 인간에게 고해할 때에는 하나님께 갖고 있는 사정과 당한 모든 설움과 억울함까지 낱낱이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며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이미 지켜보셨고 아시므로 참으로 깊이있고 간절한 기도와 그분과의 교제가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리심으로 우리 죄를 씻어주셨고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죄를 진솔하게 하나님앞에 내려놓을 때 그분은 직접 친히 우리죄가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님 피로 말미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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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하토브. 작성시간13.09.04 우리 죄가 사해졌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이미 사해주신 십자가에서의 죄사함안에 우리가 고해한 모든 죄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시는데 성령님을 통해서 해주시기 때문에 육신의 귀로 들은 것은 쉽게 잊혀지지만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신 것은 평생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문제와 죄문제가 십자가에서 사해졌음을 다시 한번 깨닫고 참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 기쁨은 신부에게 고해했을때보다 100 배 천배 더 큽니다!~ 이것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만 우상제사장에게 고해해야 한다고 우기며 성경의 어떤 구절 한 두군게 갖다가 고해성사 만들어내는데 진화론의 턱뼈 조각 같은 논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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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비전문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9.04 님의 카더라 통신에는 참..^^ 어이가 없군요.^^ 역사를 좀 다시 배우셔야 하겠습니다.^^
물론 종교적 체험은 유익합니다. 그러나 방언의 예에서 보듯, 그 체험이 과연 성령의 은사인지, 아니면
사탄의 농간인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것이 과연 주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잘 분별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통 계시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형제교회의 종교적 체험은
정통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그들은 이단의 혐의를 벗기 어렵습니다.
이단이 정통교회에 대해서 오히려 우상, 바빌론 종교 운운하는 거야.. 그러려니..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비전문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9.04 물론 주님께 직접 고백하는 것은 회개의 시작입니다. 고해성사도 시작은 통회, 즉 마음 속으로부터의 참된
반성을 전제로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일찌기 열쇠권을 주셨고, 다시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있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정통적
죄사함의 권한은 가톨릭과 정교회 등 사도전승 교회로 이어졌지요.
아마 형제교회에서는 이 구절은 탐무즈(두무지)가 말했다고 이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워낙 가톨릭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를 탐무즈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니 말이지요.^^ 이는 그들의 기독교 안티 속성을 드러냅니다. -
작성자 하토브. 작성시간13.09.05 죄의 자백, 고백과 회개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야 하며 그분과 마음속의 골방을 찾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의지하여 그분앞에 담대히 고백하며 그분으로부터 사하심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간구를 들으시고 그 죄를 이제야 우리가 간절히 구하므로 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에 의한 사하심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하시고 깨닫게 하심으로 용서해주십니다. 그분의 죄사함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이 근거가 됩니다. 그것 없이 영성체를 들어올리거나 포도주 잔을 들어올린다고 사해지는 것도 아니며 인간 우상제사장에게 찾아가서 고백했다고 마음이 후련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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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하토브. 작성시간13.09.05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죄사함의 기쁜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인간에게 고백했다하여 죄사람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최대의 목표는 바로 하나님과의 화해와 평화를 얻는데 있으며 그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을 근거로 나아갔을 때 그 속죄 희생이 자기 것이 되도록 하나님은 성령으로 깨우쳐 주십니다. 이것을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때에는 인간에게 가서 죄를 고해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하나님께 가서 모든 죄를 직접 고해했는데 어찌 또 인간에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직접 고해성사를 하십시오. 인간 우상제사장이 왜 필요합니까? -
답댓글 작성자 비전문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9.05 바로 하느님께서 그렇게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를 증언하지요.
초대교회 정통 신앙은 엄격한 화해예절이었고, 가톨릭 교회는 고해성사를 통해 그 정신을 잇고 있습니다.
여건에 따라서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주님께 직접 기도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예외적 방식이 정통적인 고해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으로 악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개신교 안에서도
종교개혁자들과 몇몇 실천적 신학자들은 초대교회 화해예절의 정신을 나름대로 되살리려고 노력하였지요.
형제교회의 자의적 성경 해석은 일견 그럴듯 하지만,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져온 정통적 가르침에서 벗어난
이단적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