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비아 형제단
모라비아 형제단은1415년 7월 얀 후스가 로마 카톨릭 교황과 추기경들에 의해서
독일 남단 콘스탄츠에서 화형을 당한 후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일으켜 세운
모임들로 알려졌습니다. 후스는 프라하 대학 총장이었고 보헤미아 여왕의
고해신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여러 카톨릭 교리들에 반대했으며, 재침례를
가르쳤고, 면죄부, 고해성사에 대한 돈 요구 반대, 장례식 집례에 대한 돈 요구 반대,
등 돈받는 관행에 반대했습니다.
그는 오직 회개와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가르쳤습니다. 그로 하여금 교황청으로
오라는 요구를 그는 거절했는데 교황이 신변안전 보장을 해주겠다고 하여 독일
남단의 콘스탄츠에 갔더니 교황과 추기경 대주교들은 주지육림으로 파티하면서
그를 체포하여 가두게 하고 2달반후에 화형시켰습니다.
그 사실을 들은 수많은 보헤미아 체코인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군대가 동원되어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는데 나중에 타협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 사건이후 후스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과 교훈을 따라 후스파
(Hussites) 로 모이기도 했고 일부는 모라비아 형제단으로 모였습니다.
모라비아 형제단의 큰 부흥은 1700년경 데이비드 라는 청년이 진젠도르프라는
백작이 무상으로 제공한 헤른후트 영지에서 수백명의 모라비아 그리스도인들을
모아 공동 생활하며 개간하고 개척하여 모임을 이룬 것이 근대 모라비아 형제단의
시초였습니다.
그들이 독일의 헤른후트에서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라비아 형제단으로
불리운 것은 그 이전부터 재침례파 형제단들이 모라비아에서 모였었고,
그 무리가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로 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라비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중간지역이었습니다.
그후 모라비아 형제단은 미국으로, 남미 브라질, 서인도제도 특히 자메이카,
아프리카 탄자니아, 잠비아 등으로 이민을 가면서 전도하였는데 그때 요한 웨슬레를
선상에서 만나 전도한 사람들이 모라비아 형제단이었습니다. 그 이후 모라비아
형제단은 영국의 플리머스 지역에도 정착하였으며, 이들의 대부분은 플리머스
형제단으로 흡수되었고 미국 등의 모라비아 형제단도 대부분은 플리머스
형제단으로 흡수되었습니다. 형제모임이 플리머스 형제단으로 불리우게 된
이유는 그곳에서 전도했을 때 거기에는 이미 모라비아 형제단이 다수 살고 있어서
그들이 곧바로 형제모임 교훈들을 받아들이고 많이 합류했으므로 크게
번성하였고 그곳 이름을 따서 플리머스 형제단으로 불리웠던 것이고, 원래
형제모임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모임을 시작했고(1825-27) 나중에 존 넬슨 다비가
합류하였습니다.
오늘날 모라비아 형제단은 75-100만명의 신자들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탄자니아에 2/3 50만이 살고 잠비아, 콩고, 말라위,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토바고, 안티과 등의 서인도제도에 살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는
별로 없는 줄로 압니다.
오늘날의 모라비아 형제단은, 제가 아는한, 목사제도를 두고 그냥 모라비아
교회라고 불리우며, 교리상으로도 옛날 재침례파와는 전혀 다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라비아 교회의 95% 이상이 아프리카와 서인도 제도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WCC, World Council of Churches 는 1948년 암스텔담에서 결성되었고
바티칸은 옵저버로만 참가했지만 배후에서 조종해왔던 것이고, 모라비아
형제단이 과거 1700년대에 웨슬레에게 전도할 때에는 WCC 가 없었으므로
그때의 모라비아 형제단과 오늘날의 모라비아 형제단이 같다고 말할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모라비아 교회가 WCC 에 가입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후스파는 캐나다에서도 모임을 갖고 있는 줄로 알고 있으며 그들의 모임
책들을 캐나다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나중에 좀더 확인해보고 싶은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을수 있습니다.
2020. 4. 20 엘리야후
참고 사이트
https://www.oikoumene.org/en/member-churches/moravian-church-in-tanzania
https://en.wikipedia.org/wiki/Jan_Hus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엘리야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4.21 모라비아 형제단의 발생지 헤른후트의 많은 도서들은 2차대전 무렵 ( 아마 직후) 서부독일에 있는 비데니스트 성경학교로 옮겨왔습니다. 공산권에 있기 때문에 옮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1993년쯤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도서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한국 형제모임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괜찮은 성경학교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독일 학교들은 무료이기 때문에 다니는데 많은 비용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엘리야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4.21 이 비데니스트 성경학교 교장으로 오래 봉직했던 분이 바로 에릭 사우어이고 한국에는 그가 저술한 책으로 세계구속의 여명, 십자가의 승리, 영원에서 영원까지, 라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앞의 두권은 권할만 합니다. 영원에서 영원까지는 세대주의 입장에서 쓴 환난전 휴거에 관한 것이므로 저는 권하지 않습니다.
아마 세계에서 신약성경을 암송한 3 사람들중 하나로 알려졌는데 시력이 좋지 않은 그는 성경을 읽지 못할까봐 신약성경을 암송했다고 합니다. 다른 한분은 해리 아이언사이드로 알고 있습니다. 소련의 후르시쵸프는 4복음서만 암송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25시 작성시간 20.04.21 엘리야후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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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느디님 작성시간 20.05.04 1415년 얀 후스의 화형은, 100년 후 152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선구였음을 짐작케 합니다. 천주교의 전횡이 엄혹했던 그 시절 독일 사람 진젠돌프 백작의 후원으로 한 때 모라비안 신도들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산지사방 흩어지는 가운데 요한 웨슬리에게 복음을 전하여 감리교가 탄생에 기여하기도 하고, 또 존 넬슨 다비 계열(?)의 플리머스 형제 모임과도 연합하는 등 이합집산을 거듭하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그런가 하면 영국의 형제모임은 중국 워치만 니 목사의 '적은 무리' 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한 편, '예수가정' 운동에도 좀 다르긴하지만 그 쪽의 영향이 아니였나 합니다. 아무튼 기독교라는 종교의 틀을 벗어나 순수 복음주의 모임의 여러 흐름이 있으나 제 지식의 한계로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나 가가와 도요히코 같은 분의 공부는 못하였습니다. 형제모임의 대강을 알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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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엘리야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05.04 작년 11월에 프라하와 모라비아 지역을 다니기는 했는데 그 신앙유적지 들은 다녀보지 못했습니다. 모라비아지역은 열차에서 보았을 때 매우 평화로운 농촌들이었고 간혹 큰 공장들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