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팔래치아 누에나방 Appalachian Silkworm Moth
이 이야기는 경기도 오산 부근의 유평모임에서 사역하셨던 에드가 쿤지 형제님의 말씀집회를 제가 통역할 때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쿤지 형제님은 소천하셨고 어언 20년이 지난 것으로 기억됩니다.
어느 미국인 할머니가 화덕 옆에서 뜨개질을 하면서 나무를 이따금 화덕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쌓아둔 나무에서 한 누에 나방이 매우 어렵게 누에고치로 부터 나오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누에 나방을 이따금 보니까 어렵게 구멍을 뚫어내더니 한 올 한 올 벌리고 제쳐서 그 사이를 만들어내고 마침내 어느 정도 크기의 구멍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런 다음 나방이 나오려다가 못 나오기를 여러번 하더니 드디어 구멍으로 비집고 나오다가 다시 실패하였다가 마침내 드디어 그 구멍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그때부터도 엄청 많은 시간이 걸려서 겨우 날개를 밖으로 꺼내고 나방이 나오더니, 마침내 그 나방이 퍼덕 거리며 날아갔습니다.
이 엄청난 과정을 눈여겨본 할머니가 또다시 다른 누에고치가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또 다시 엄청난 시간을 걸려서 그 누에나방이 누에고치로부터 나올 것임이 예상되었고 분명하였습니다. 그 할머니는 이번에 자연의 생물에게 좋은 일좀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 누에고치를 살펴보고 그안에서 누에나방이 나올려고 발버둥침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할머니는 누에고치의 머리 부분에서 몇 가닥의 실올만 잘라주면 아주 수월하게 누에나방이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리하여 그 할머니는 드디어 누에고치의 머리 부분에서 명주 실오라기를 가위로 잘라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 누에나방이 이제야 자유를 찾아서 아주 잘 날아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에나방은 마침내 그 누에고치로부터 빠져 나왔습니다만 그것은 날아가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까, 그 누에나방은 날개도 있는데도 날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누에나방은 날개를 갖고서 여기 저기를 기어다녔습니다!
왜 그런 현상이 생겼을까요? 바로 앞서서의 누에나방은 누에고치로부터 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힘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날개밑 곤충의 혈관(혈관이라 부를지 의문이긴 하지만)에 진액이 넘쳐들어가며, 날개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개로 온몸을 움직이는 요령도 쉽게 터득되었습니다.
반면에 할머니가 도와준 그 누에나방은 고치로부터 쉽게 나오기는 하였으나 몸의 진액이 날개밑으로 넘쳐 들어갈 기회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둘째번 누에나방은 그 날개에 힘이 없어서 날지를 못하며 그 날개를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할 기회를 항구적으로 놓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슨 교훈을 가르쳐 줄까요? 왜냐하면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창조의 사역의 원리가 하나님께로 부터 나와 반영되어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인간들도 그런 원리에서 배울 것이 있으리라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현상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도, 환난을 통한 연단, 시련을 통한 장애극복 능력의 함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믿어집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일찌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날개가 있음에도 기어다니는 - 네 발을 가지고 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함이라. (레 11:23)
But all other flying creeping things, which have four feet, shall be an abomination unto you.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들이 되었습니다.(벧후 1:4, 행 17:29, 외). 그렇다면 우리모두는 그분의 독특한 백성으로서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부분은 먹을 것 입을 것에 너무 매여 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애석하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너희 모두는 지극히 높으신 이( 엘리욘)의 아들들이라 하였거늘, 그러나 너희는 아담처럼 죽으며 귀족들의 하나처럼 엎드러지도다” ( 시 82:6-7)
인생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풍성히 받아 많은 일들을 주님 안에서 해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하나님은 원하시고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들은 자꾸만 편한 삶, 안이한 삶만을 추구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날으려 하기 보다는 인간 육신의 생각들로 땅을 기어다니는 삶으로 만족하며 그것으로 가득차있습니다. 자식 교육도 그들이 고난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좇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고난을 당하기 보다는(딤후 2:3) 그저 좋은 직장 취직 잘하고 결혼 잘하고 잘먹고 잘사는데 치중하며 목표를 삼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당하는 것이 정상입니다(딤후 3: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을 좇아 땅을 기어다니는 삶만 살고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거듭난 성도들은 어떠한 고난이 올지라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스스로 극복함으로 하늘을 나를 수 있는 성품과 능력을 확보하는데 목표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빌 3:20)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을 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날마다 기적을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기어다니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환난이나 시련들은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가져다 줄것입니다(롬 5:3-4).
끝으로 이 이야기와 관련하여 한 구절 더 생각해보고 싶은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난(苦難) 당(當)한 것이 내게 유익(有益)이라 이로 인(因)하여 내가 주(主)의 율례(律例)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우리에게 오는 시련은 주님안에서 참으로 회개하며 온전히 주님을 좇는 기회로 삼는다면 우리 스스로에게 크나큰 유익이 되리라고 믿어집니다.
2012. 5. 25 하토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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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토기그릇 작성시간 12.05.27 다시한번 깊히 생각케 되는 말씀들,, 잘 읽고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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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고헌 작성시간 12.05.28 신앙은 고난과 고통을 통해 자란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온실"에서 자란 신앙은 나약한 신앙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
작성자뮤즈 작성시간 12.05.28 한번더 마음깊이 상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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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사랑 작성시간 12.05.29 우리를 독수리처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을 생각케 합니다
신명기32장
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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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토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5.29 이 글을 읽으실 때 비상(飛翔 혹은 飛上) 이란 단어를 생각해보셨습니까? 바로 우리는 날을 수 있다는 믿음부터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으로부터의 외면당함을 각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