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 수훈 8복 Mount Sermon
산상수훈이란 천년왕국에서나 적용되지 오늘날의 삶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용감하게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말씀들을 실생활에 적용해야 한다는 믿음을 꺾어버리는 용감한 선생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그분의 시대로 돌아가 음미해보는 것은 참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모두 거듭남에 관한 말씀들입니다! 그리고 거듭남 이후에도 삶에 계속 적용하면 큰 유익을 얻는 말씀들입니다!
마태 복음 5장
3. 영에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을 베푸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정결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평화롭게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울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영에 가난하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가난하게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이 비워지고, 교만함이 없이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져서 무엇이든지 그분의 말씀을 들을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며 아나니아가 예수님의 명을 받아 바울을 안수하고 침례 베풀도록 하실 때 그가 말했던 것처럼 “주여 여기 있나이다”( 행 9:10) 하는 자세에 있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또한 하나님이 이삭을 희생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 제가 여기 있나이다”( 창22:1) 하였으며 사무엘 또한 그리하였습니다( 삼상 3:6). 그러한 심령의 상태는 마음이 비워져 있는 상태이며, 인간들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그 마음속에서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상태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영으로 찾아오시고, 그 심령가운데 임하셔서, 그로 구원얻게 하시며 천국 백성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에 가난하다는 것은 인간 욕심들을 내려놓고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심령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 영이 가난한 사람들이 거듭날수 있으며 그들에게 천국이 주어집니다!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죄로 말미암아 애통하는자,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애통하는 것이 아니라, 의가 없어서 애통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간절히 바라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듣고 큰 찔림받아, 애통하며 그 애통함을 하나님이 보시고 위로하시되 그 모든 죄와 문제가 십자가에서 해결되어 졌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 중에는 하나님의 의가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이 없어서 애통해본 적이 없고 영원한 생명의 물이 없어 목말라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애통하고 많은 노력과 시간을 그것들을 위해 투자하면서도 그것들의 주관자이시며 그것들을 축복하시는 생수의 근원되시는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예배당밖의 생활에서는 미미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여부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온유한자는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사람이 하나님의 새하늘과 새땅을 유업을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 온유한자는 원래부터 성품이 온유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에 찔림을 받아 무릎꿇은자, 그분앞에 대항하지 아니하며 그분앞에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는 자, 그분앞에 떠는 자가 새하늘과 새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유업이란 누군가 죽었을 때 받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남겨진 유산인 것입니다. 그 유산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영원한 사역을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이 구절을 온유한 사람들은 부동산 투자에서 손해보는 일이 없이 성공한다는 말씀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목마른 것이 아니라, 의가 없어서 목마른 자들은 바로 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인격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 마 6:33) 하신 말씀과 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시며, 그분의 의이십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구원의 주이시며 믿음의 근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이며 그러한 사람은 그분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긍휼을 베푸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을 베푸는 자들은 자신들의 비천함과 부족함을 가장 빨리 깨달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또한 깨닫게 되며 그들은 곧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 얻은 이후에도 남들을 돕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크게 힘입을 것이며, 계속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원얻기 전이나, 후에나 모두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대강령은 바로 그분의 사법정의와 믿음과 긍휼이라고 예수님은 해설하셨습니다(마 23:23)
마음이 정결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속에 욕심이 여전히 가득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분 앞에 깨끗하게 되려면 자기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결국 정결하게 하는 샘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앞에 나아가서 자기 죄를 내려놓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계속하여 스스로가 낮아지고, 마음이 정결하게 되며,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안에서 세척제를 찾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성경 말씀으로 스스로를 정결케 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스스로를 정결케 할 수 있는 길이며, 샘이십니다. 그러한 자는 하나님을 마음속에서 볼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빌 2:5)
마음이 맑아진자, 정결하게된자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인생들에게 베푸시는 최초의 역사는 바로 죄를 깨닫고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사해졌음을 깨닫고 믿어지게 하심으로 죄문제를 해결하시면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평화롭게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울 것임이요.
우선 인간은 스스로의 평안을 위해 구해야 합니다. 참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요14:27) 그분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 전체가 주는 평안과 같지 아니하며 참 안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화평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하게 하셨으며 또한 우리로 화목케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고후 5:18-19). 사람이 평화롭게 하는 직분을 수행하는 첫 출발은 바로 그 사람 스스로가 진정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히 그리고 충실히 성령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는 화목케하는 직책을 잘 수행할 것이며, 그러한 사람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인정을 우선은 하나님께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받게 될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인격이라 할 수 있으며, 예수님은 의의 왕이시며(히 7:1-5, 사 32:1) 구원의 근원이십니다.(히 5:9)
우선은 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의 곧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천국이 저희 것이 되며, 그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시고, 그들은 거듭날 것입니다. 또 거듭난 이후에 참된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들은 구원을 넉넉히 확보할 것이며 천국에서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믿는 믿음에 관한 말씀들입니다.
즉 성경을 쥐어 짜면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안 나옵니다.
산상수훈은 전체적으로 복음의 기쁜 소식을 말씀하신 것으로 분별됩니다. 이 말씀들은 산상수훈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이어서 마태 복음과 마가 복음, 루카 복음에 더 많은 말씀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산상수훈의 8복은 산상수훈 전체의 일부라고 믿어지며 또한 가장 기초라고 생각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시며, 화평이 되시므로 그분안에서
참 평안을 얻으시기 바라겠습니다.
2009. 7/2015. 2. 18 하토브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어린양 작성시간 15.02.18 아멘~! 귀한 말씀에 감사 드립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을 자신의 죄를 깨닫고 애통하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신의 의로 받아들이는 가난한 영, 애통하는 영, 의에 주리고 목마른
영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하는 저의 생각을 더욱 명확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
작성자하토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2.18 제가 자라난 곳, 제가 오랫동안 살던 곳이 팔복동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팔복국민학교였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의 팔복에 대해 말했는데 당시에는 잘 몰랐습니다.
그때 팔복교회의 목사의 아들이 제 친구였는데,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그 친구는 < 믿음> 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냥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의 집에서 저는 평생 돼지고기를 처음 먹어보았습니다.
저희 집안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1년쯤 전의 일입니다. -
작성자느디님 작성시간 15.02.20 제목 처럼 (흔히들) '산상수훈(을) 8복'이라고 하는데, 왜 뒤이어 마5:11에 나오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는 다른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들과 다르게 '9복'에 못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they는 거듭나기 전, ye는 거듭난 후가 아닐까? 혼자 생각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하토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2.19 그 부분은 역시 마카리오이로 시작은 하는데 앞의 8복은 마카리오이 호이... 로서 일반칭을 한 반면 11절부터는 마카리오이 에스테, 로서 너희는 복이 있도다, 하여 그 앞의 복들에 근거하여 너희에게 적용된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8복이라는 구분도 인간이 한 것이지 예수님이 해석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마 그것까지 합한다면 9복이 되겠습니다. 다만 11절은 일반칭이 아니라 너희에게 곧 제자된 자들에게 해당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같습니다. 앞의 8복은 아직 구원얻지 못한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이라면, 11절부터는 제자가 된 너희들, 거듭난 자들이 당하는 핍박에 대해 축복하고 구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