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몸 담았던 기쁜소식선교회를 빠져 나온 어떤 형제의 간증

작성자jacob|작성시간15.05.19|조회수3,438 목록 댓글 9

여러분들께서는 될 수 있으면 저같은 방황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13여년(16~30) 가량을 기쁜소식선교회에 몸담고 있었다가 8년여를 방황했습니다.

 

구원을 받은 직후... 19861211)  

하루는, 당시 송정교회에 장년들과 일부 청년형제들이 대거 교회를 떠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어느 다른 교회로 옴겨 갔는데 그 형제 자매들은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였습니다

한 장년형제님이 저한테 이런 충고를 하시고 가시더군요. "짓는 죄에 대해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을 우리교회선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비판을 말이죠
"형제님 그것은 일반교회서 우리들을 이단이라고 비판할 때 하는 말이지 않습니까?
형제님은 그러면 구원받지 못한겁니까?"

당시 그 장년형제님과 저는 잠깐 밖에 애기를 나눌 수 없었지만.
아마 처음으로 요한1 1장의 자백이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것이라는 애기는 그분 장년 형제님이 처음 해주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한 쿠테타들? 이후 교회형제자매들은 소리소문 없는 의문에 사로잡혔고,,

이 문제는 당시 우리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몇몇 군데서 일어난 일이였죠,,

  

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집 형편은 그럭 저럭 모든게 잘 물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사업상 어려운일을 당하여서 비로소 결국에 그렇게 구원받을 수 없을 것 같으셨던, 무당에게 매달리시던 어머니는 수양회를 다녀오시고 사모님과 교제 끝에 구원을 확신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당에게 목매시던 일을 그만 두시더군요,,

아버님도 석연찮지만 수양회에서 구원받았다고 시인을 하시더라구요,,

당시 저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다른 학생형제들처럼 공장에 들어가기로 하였죠.
제가 기억하기로 당시 우리 모임엔 대학에 들어가는 형제는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것은 은근히 그 당시 전도사님이 형제들이 대학공부 하는 것을 세속적인 것처럼 믿도록

그런 설교를 많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공부에서 손을 놓은 채로

지내던 때 집이 광주로 이사했기 때문에 광주제일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광주에서 저는 참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죠..

하루는 광주의 시내 거리에서 구원파로 알려진 다른 교파 형제들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구원간증을 들어보니 저희와 다를 바 없는 구원간증이였지만
뭔가 다른 점이 있더군요.."짓는 죄에 대해 자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라는 애기가 나오더군요,,

당연히 저는 그분들에 대해서 "구원 받지 못하셨습니다"라고 판단하며 지적했고
거리에서 한시간 가량이나

(구원받은 사람이 지은죄를 자백하는게 정상이냐 아니냐라는 문제로) 성경책을 들고 변론을 하게되었죠..

'왜 구원받았다고 하는분들이 짓는죄에 대해 자백하고 용서를 구한다는것인가?'

이 문제는 제게 참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그들은 진정으로 구원받은게 아니다..그들이야 말로 짐짓 죄(10)를 짓는 죄인들이다"
라는 결론을 맺은 채 그분들을 만나게 되면 "구원 받지 못한 죄인 "이라는 선고를 내렸었습니다.

그러나....기쁜소식선교회는 상당히 이율배반적인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당시 칙 선교회라는 미국 만화 전도단과 교류를 가지게 되었는제 이 칙선교회의 만화내용이 참으로 이질적인게 보여지더군요..

그들(미국 칙선교회 사람들)의 구원간증은 일반 기성교회에서 영접기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배운 바대로 하자면구원받은 자들이 아니였던 것입니다.

(참고자료)

주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저의 모든 신뢰를 저의 돈과 저의 능력에 두고 살았습니다 제마음에 들어와 주시고 저의 구주가 되어주십시오 이제 저는 오직 주님만을 신뢰합니다." (야구왕이라는 만화 중에서)

위 기도는 당시 그 미국 단체의 만화 중 일부입니다.,,(이 내용은 대학생 형제가 보여준 내용이였습니다)

"영접기도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는 자는 죄사함 받지 못한다!" 라고 기쁜소식선교회에서 늘 배웠던 저는,,칙선교회의 이런 실상을 알고부터,,"왜 기쁜소식선교회는 구원받지 못한 칙 선교회사람들 같은 자들과 교류를 가지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복잡해지는 심정이더군요...(지금 생각해보면 수뇌부는 자신들이 평소에 가르친 내용이 잘못이었다는 걸 인식은 했었나 봅니다)

고졸이후 공장에 얼마간 일을 하다가 직장선교학교를 이인수 목사님이 여셔서 군대가기 전에 훈련을 받아보자는 마음으로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선교학교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첫 일주일간의 금식이후 형제자매들은 합숙을 하게 되었고 저는 몇 달간 그곳에서 저의 한계를 시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형제자매들의 인간적인 허물들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요?
간증할 때는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고 간증하지만 실제 옆에서 본 사실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해결한 일들이 보여졌을 때,,당황스럽더군요,그러나 그러한 모습들은 얼마든지 포용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형제가 전도를 함에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때로는 범법적인 행위
(불법 복사 영어교재 테이프)로 장사하며 전도하는 모습을 보고서 부딪히게 되더군요.
저는 그 형제로부터 "형제는 너무 양심적이야" 라는 지적을 받았고, 저는 그 말에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저는 사회 초년생으로써 더러운 세상의 법칙을 너무나 몰았던 것인가 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쓴 웃음이 나오지만, 그 당시에는 시험이 되었었죠. 후후..
저는 말하자면 원리 원칙적인 꽉막힌 초년 이등병이나 같았던것이죠..

아마 그 당시에 어느 광주 구석에 삭월세?로 살던 어느 할머니의 간증 아닌 간증은 제가 전하던 죄사함을 깨달아야 구원받는다는 교리에 도전이 오더군요,,

이 애기는 나중에 다시 할기회가 온다면 애기하죠. 그러다 이인수목사님으로 부터 대덕길공사 봉사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 해 겨울 대덕에서의 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는..이곳에서 저의 꽉막힌 신앙 주의가 얼마나 힘이 없는 것이였는지,, 절망하게 되었죠..

군대도 아직 가지 않은 18살 소년티가 풀풀나는 조그만 촌도시에서 온 형제,,
사실 거의 17년을 농촌시골 광산구에서 보낸 어린애였죠..

"어이 꼬마 거기 시멘트 좀 들고와봐"
저는 시멘트 하나 둘 수 없었습니다 "쯧쯧 이런 애를 뭐하러 데려왔노,,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지"

나중에 3개월간의 공사를 하게되었을 땐 저는 시멘트를 2개씩 나를 정도로 힘이 세어져
사람들이 놀라게 되었지만, 그때엔 삽 한자루 들고 땅파는 일도 제대로 못하던 때였죠.

시멘트도 섞을 줄 몰랐고 담배도 피워본 적이 없고 술이라곤 맥주도 먹어본 적없는 저는
그곳에 온 전국 노가다 봉사 형제들로 부터 참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고 해야 할까요?

대구에서 온 키가 크고 험상굿은 그러나 웃음이 해 맑았던 30대 형제,, 이름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원래 깡패였었고 아내가 교회를 나온 것이 연유가 되서 연결이 되어 왔다는 그 형제님,,

부산서 역시 깡패였었다는,, 어느 형제님,,등등 그러고 보니 당시 깡패출신 형제분들이 참 많았더군요  처음에 그분들은 하나님 얘기를 많이 하고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는 변화되어진 사람 같았습니다 그러나 겨울 힘든 눈 바람속에서 거친 모습들이 하나 둘씩 나오면서 서로 싸우고 주먹다짐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더군요,,
하루는 한 형제가 그날도 역시 구석에서 담배를 피더니 하나 둘씩 그 형제에게서 사이 좋게 담배를 얻어피우기 시작하더군요,,
처음 같았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지만,, 점점 일들이 거칠어지고 힘든 일이 닥치게 되니 인간적인 모습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더란 것이죠
대화는 어느새 사회에서 여자들을 강간하던 시절 이야기들이 인기?를 누렸고
깜방에서 남자들끼리 호모 짓하는 애기를 하며 "꼬마 형제는 곱상하게 생긴게 깜방가면 바로 ?? 대줘야 할거야"라는 농담들,,,
그런 애기를 잘하는 형제들에게 형제들이 몰려서 한 파당을 이루는 기묘한 현상이 보였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애기가,.

"사람이 죄를 짓는게 아니라 죄(근본)가 죄를 짓는것이므로 우리는 죄를 범하는게 아니다"
"속에 있는 죄를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죄짓고 싶으면 차라리 죄를 지어라 라는 뜻이였죠)
사실 이러한 교리?는 다름아닌 선교회의 영향?이 컸었던거죠..

아마,, 그때부터 제 마음을 억누르던 실 타래가 끊어진때가 아마 이때였나봅니다.

꽁생원처럼 욕망을 억눌러봤자 똑같은 사람이라면 똑같은 사람이 되자,, 라는...

그 때부터 그러한 형제들과 똑같이 어울리게 되더군요,,

대체 무엇을 위해 건물을 짓는 것인지.. 길 공사를 반대하던 마을사람들의 반대를 무마 할려고 돼지와 막걸리로 대접하는 목사님들을 보면서 저는 이 분들도 역시 사람이구나,,사람은 역시 똑같구나,,하는 쓴웃음이 나오데요..

12월달 크리스마스 가 닥치던 때 였는지,,해를 넘기고였는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대구에 눈은 참 춥더군요,,
3개월간에 합숙봉사를 마치고 저는 대덕을 내려왔습니다.
광주가서 다시 돌아오겠느냐 라는 질문에 저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만 하고
대덕을 내려왔습니다.

광주에 돌아온 저는 이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닌 세상 사람이 돼있었습니다.

공장에 다시 돌아가지도 않았고 집에서 빈둥 빈둥놀면서 어머니의 호주머니를 털어 유흥가를 돌아다니고 잡다한 쾌락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형제들이 찾아오면 냉랭항 표정으로 푸대하게 되었고..
그래도,,일주일에 한번 일요일날은 교회를 나가긴했죠..
예전 같았으면 거의 날마다 교회를 나갔을텐데 말이죠...
그 당시 저의 이런 변화?는 가족들도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하루는...제게 기억하기도 힘든..일이 생겼죠,,
저를 교회로 인도했던 형이 기쁜소식선교회에 대한 비판을 하더군요,,,
저는 형과 무슨 내용이였는지 모르지만 성경책을 가지고 말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 우스운일이죠. 저 역시 이미 교회에 대해 맘이 떠났으면서도 교회를 비판하는 말에 대해 열이 받힌거였죠,,
그러나 형은 그런 제 마음을 모른 체 예전에 얌전한 꼬마라고만 기억 했었나 봅니다.

말다툼 끝에 저는 형에게 바락바락 대들게 되었고 험한 말을 내뱉었죠.
당연히 얻어맞게 되었죠,, 그게 발단이 되였습니다.
그전과 달리 제 맘에 욕구를 억누르는 법을 상실한 저는 형을 가위로 중상을 입히고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겨울수양회 내내,, 저는 어두운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이나 어느 형제님도 저의 어둔 마음을 도저히 풀지 못하시더군요,, 사실..
수양회에 참석한 이유 자체가 수양회를 사모해서라기보다는 도망쳐 온 것 이였으니 말이죠.
다행히 형은 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고,
저는 아버지로부터 용서를 받고 집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방위소집을 받고 군대를 다니면서(방위가 뭔지 모르는 분들은 걍 넘어가주세요^^)
술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물론 전에도 술은 마셨었지만 정말로 정신 없을 때까지 술은 마셔보질 못했었죠,,

그 때부터,, 그 때부터,, 저는 마음에 혼란을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더군요..

이상하게도 제 주변에는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더군요.
예전에는 그들을 구원받지 못한 기성교인들,,이라는 시선으로 보았을텐데..
저는 세상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어느 무리들을 만났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이 형제단 분들이였는지, 아니면 왕중생 모임분들이였는지 도저히 알길이 없지만.
방위를 다니면서 술에 찌들려 살던 저에게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이겨내는 그분들의 모습이 너무나 저를 부끄럽게 하더군요,,
저는 그제서야,, 제가 배워왔던 가르침들의 허상이 보여졌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선교회는 설교석상에서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어쩌니 저쩌니 하지만 실제 삶에 있어서 얼마나 치졸하게? 인간적인 대응을 잘 하는지 잘 알고있던 저로선 비록 이름없는 그리스도인들이지만 타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 부끄럽더군요..
이중적인 형제자매들의 모습에 익숙했던 저는 참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에게도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너무 부담스러웠거든요.. 저는 그들을 최소한 피해야 했습니다.
차라리 교회를 다닐려면 다시 예전 선교회를 다니는게 더 부담이 없을 것 같더군요,,
거기선 차라리 맘대로 이중적으로 죄라도 지을 수 있으니 말이죠

날마다 자기 죄를 고백하며 기도한다는 모습은 너무나 부담스러웠던것입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또 사회생활을 하면서 저는 모임을 빠져 어느 날부터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1~2년정도 그랬던것 같습니다.

내 생애 이 기간 동안 온갖 향락은 다시 누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능력이 닿는 대로 지을수 있는 죄는 다 지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너무  고통스러워서 직장에서 조차 일을 제대로 하질 못했습니다.

직장도 1년여 만에 적응을 못하고 그만 두고 나니 만사가 다 싫어졌습니다.

저는 소위 말하는 폐인처럼 누워지냈습니다. 먹는 것도 ,,집밖을 나가는 것도,,
정신적인 공백이 너무나 컸던것입니다. 그리고 머리 속에서는 경고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누가 그러더군요,, 당시의 제 모습은 해골 같았다고 말이죠..

,,저는 어느샌가 광주제일교회로 힘든 걸음을 걸으며 나아갔습니다.
김월주 목사님은 아무말없이 저를 당시 여름수양회에 데려가 주셨고
저는 그곳에서 힘든 씨름을 하게되었습니다.

어떤 설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저는 무기력하게 멍하니 앉아만 있었습니다
도대체 3일간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도 모를 정도였죠..

 

수요일날 저녁,, 그날 저녁을 잊을 수 없군요..
모두가 잠잔 가운데 넓은 수양관에는 형제자매들의 코고는 소리만 요란하던때
그날 저녁도 저는 오지않는 잠을 재촉하다가 일어나 무릅을 끓었습니다

 

"하나님,,,,하나님,,,,어디에 계십니까?,,"

저는 이글을 쓰면서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올려고 합니다.
아마 선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이 일을 비판하는 눈으로 바라볼지도 모르겠습니다.

" 하나님,,,하나님,,,"
제가 처음 구원받을때 불렀던 하나님,,, 막연하기만 하던 그 시기 구원을 찾던 그 하나님,,
어느샌가 제 마음속에 음성을 들려주시지 않던 아버지 하나님,,그 하나님을 저는 그 저녁에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은 죄들을 자백하며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구원받은 후 처음으로 용서를 구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이 일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군요,,기도를 마칠 즈음,,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제 마음속에 마치 빛이 비취는 듯이 찾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백을 하면서 저는 제 마음속에 하나님으로 부터 용서받음을 누리게 되었고 제 마음에 잃어버렸던 구원의 기쁨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구원받을 때 천장을 바라보며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기쁨에 차던 그 시기로 돌아온 듯하였습니다.

그랬습니다..저는 하나님의 손에서 인도를 받았던 것입니다.

 

다음날,, 저는 밤새 있었던 일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은 평상시 선교회에서 비웃으며 조롱하던 회개 기도의 모습이였기 때문입니다.
저를 보는 형제자매들은 갑자기 밝아진 제 모습에 뭔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저는 그저 얼버부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양회에서 돌아온 이후 주일 아침 예배 때,, 저는 제가 겪은 놀라운 이 일을 간증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간증대 앞에서 저는 눈물만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저는 기쁜소식선교회 속에 다시 출석을 하게 되었지만, 형제자매들의 크나 큰 문제점이 보여지기 시작하더군요,,
형제 자매들은 비록 교회건물에 있을 때는 깨끗한 척하며 밝은 모습같아 보이지만
말할 수 없는 허무함속에서 죄에 대한 고통, 구원의 확신문제, 그리스도의 내주함에 대한 의심등의 큰 문제점이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구원받은 직후 얼마 정도까지는 마냥 기쁘고 즐거운 듯해 보이지만 1 2년이 지나가면 세상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 속에서 회의가 들고 마음이 죽어버리는 문제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였죠,,

어느 젊은 형제는 마치 과거의 제가 그랬던 전철을 밟아 가며 혼돈을 겪고 있었습니다
음행을 저질르고 돌아와 제게 고백하며 몸부림치는 모습에 제가 겪은 일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말하게 되는 날은 저는 쫓겨나는 날이 되버리고 마는 것 이였죠,,
또 어느 장년 형제,, 교회 벽돌 쌓기로 유명했던 그 형제,, 놀랍게도 자매를 버리고
어느 세상여자에게 빠져서 돈을 탕진하다가 감옥까지 갔다와 있더군요,,
교회가 커지면서 이런 저런 세상의 죄악이 교회안에서 버젓이 자행되더군요,
예전같으면 상상못할 일이였죠,,

박목사님의 설교 중에도 나오는 기름과 포도주,,, 말하자면 포도주가 날아가 버리고 나면,,
기름만 남는다고 하죠,, ,, 어느새 부터인가 구원의 기쁨은 없어지고 세상 사람속에서 똑같이 죄를 짓는 자신들의 모습에서 많은 형제자매들이 갈등속에 있더라는 것입니다.

비록 교회는 커지고 큰 예배당에 이제 형제자매들이 2~300명이 모여서 예배하게 되었지만 차라리 2~30명모여서 조그만 전세 예배당에 모일 때보다 힘이 없더군요,
젊은 형제자매들은 죄의 정욕에 끌려서 죄를 짓고 돌아 다니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여주었고 나이든 형제자매들 역시 한숨이 터져 나오더군요,,

다방아가씨를 불러서 차를 마시면서 ,,, 생략하죠..

이런 모습들이 제가 교회를 떠나 방황하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서 헤메다 다시 돌아왔지만,,, 차라리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는 형제자매들이 되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지금 시험에 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더군요,,

어느새,,, 형제자매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종교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니 세상의 종교인보다 못한,, 조직원이였을 뿐이였습니다.
교회 건물을 짓기 위해 작정을 하다가 돈을 채우지 못하니 친척을 속여서 돈을 빌려다 때우는 모습들,, 차라리 작정을 하지 않느니만 못한,, 그러나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 가증함,,이런 행태들은 광신자들의 행태일뿐 신앙도 무엇도 아니였습니다.

저는 예전에 시험에 들었던 공사일을 지원해서 봉사를 나섰습니다.

예전에 저는 봉사를 하며 시험에 들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 같더군요..

겨울,, 수양관 보조건물 공사,, 그리고 제주도 교회 건물 짓는 일,, 역시나,, 형제자매들은 여전히 싸우고 다투고 서로 헐뜯고 쳐바르고 상처주는 일에 익숙하더군요,,

대덕수양관 길공사때의 그 추악한 모습들의 재현이였을 뿐이였습니다. 변한게 없었습니다. 달라진게 있었다면 그전보다 조직적으로 교회건물 짓는 일이 체계가 잡혀있다는 차이였을 뿐이였죠,, 제주도에서 공사일 도중 이곳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 세상 종교라는 마음이 들면서 저는 다시 광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제마음은 타락을 향하지는 않더군요,, 오히려 타락해가는 교회의 세속만을 보았을 뿐이죠.

광주에 돌아와 보니 한 형제님이 페타이어 수집일에 형제 자매들을 모집하더군요. imf시기라.
참 많은 형제들이 일자리를 찾아 그 형제 밑으로 들어와서 페타이어를 수집하며 연명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당시 저는 노가다 일을 하고다니다 그 일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어느 청년형제의 고민을 들었습니다


"형제님,,저 구원받은게 정말 일까요?"

저는 그 형제의 고백을 들으면서,,' 얼마나 많은 형제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사실 이미 수양회에는 이미 복음을 듣고 죄사함 받았다는 사람들이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는게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재복음반에 몰리는 현상을 보아왔습니다.

정녕 그분들이 구원은 받았는데,,의심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구원받지 못한 것이기 때문인지,,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이미 교회는 그들이 손가락질하던 세상교회 사람들 보다도 구원에 대한 의심에 빠지는 일이 많았고 더 복잡하게 생각에 빠진 사람들이 참 많았다는 것입니다.

참 희한하죠,,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받았습니까?" 라고 질문 많이 하던 교회가
이제는"내가 정말 구원받았나?" 하는 고민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 5:12)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1:24-27  
( 5: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저는,,,남들보다 더 깨끗한 사람도 아니였습니다,그렇다고 특별히 열심히 뛰어난 사람은 어욱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제게 하루일과 중 정말 힘을 얻는 시간이 있었다면,,
하루종일 있었던 일들을 하나님께 자백하는 그 시간만큼은,,제게 특별한 시간이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던중,,하나님께선 안수복음의 비진리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엔 최대한 이것을 말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어느날 이러한 저의 모습은 교회에 알려지게 되었고 또한 교회와 다른 저의 모습이
"너는 구원받지못했다"라는 정죄를 받게 되었고 형제가 운영하던 직장도 그만두어야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박옥수모임은 비록 과거보다 자백에 대해 구원받은 사람에게 필요하다는 시인을 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아직도 이에 대해 명확치 못합니다.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아직도 어떤 이들은 자백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해당되는 애기라고 주장하는 교인들이 버젓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쁜소식 선교회라는 단체는, 독재적인 박옥수 목사의 왕국이 되어 이제는 부인할 수 없는 사이비종교가 되버린 현실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늙은 딕욕선교사 형제님의 편지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지나치게 사람을 우상화 해버린 상태입니다.

자료 http://blog.naver.com/2007ban/130029474101

 

사람이 왕으로 있는 곳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8년여 정도를 온갖 모임을 방문하게 하시고 교파를 초월해서 여러 귀한 형제님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사실 ,,,그러는 핑계로 제 미래를 위한 준비는 소홀했지만,(38세의 노총각 하하..)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제가 모임을 만들어 보기도 했고,,아주 극소수의 모임의 분들도 교제를 나눈 적도 많았습니다.

 

이세상엔 아직도 숨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과

음지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분들이 참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유명하고 요란하게 광고하는 곳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세월이였습니다. 13여년을 박옥수 모임이라는 좁은 테두리에서 지내다

8년여를 숨은 그리스도인 분들과의 교제를 나눌 수 있게 주님은 허락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형제 모임 안에 이제 정착을 결심한 뒤입니다만,,

8년여 동안 귀중한 경험은 제 마음에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모든 걸 초월하여 한 울타리에 있다는 경험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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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jacob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5.20 세힘 본문을 쓰신 분은 저도 모르는 분입니다 저의 간증이 분명 아닙니다.
    그 밥에 그 물...,
    본문과 상관없는 다른 상대 비방이 보기가 안좋아서 물어 본 말 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세힘 작성시간 15.05.20 jacob 아, '그 밥에 그 나물'... 그 사연을 적으면 또 얘기가 길어질 듯 하니 폐일언, 사과드리겠습니다. 다만 비방의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 겪어낸 일들이라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 작성자하토브 작성시간 15.05.19 이거 잘못되면 다음에서 삭제시킵니다.

    스크랩 하실 분들은 먼저 스크랩해두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jacob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1.21 본문의 내용은 한 분 형제님의 귀한 간증으로 올린 것이지만, 얼마전 이야기했던 어느 모임의 교리적 오류와 관련하여 다시금 확인하고자 자료를 올려 봤습니다.이분 형제님의 간증이 그 모임을 대표하는 믿음이거나 핵심교리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분명 그들의 신앙의 주요 맥락이라는 것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왠지 한편으로는 어느 특정 모임의 구석구석을 언급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적잖게 고민스러웠습니다. 마치 기소선이 전부 이런식으로 비추어질까? 염려가 되는군요.
  • 답댓글 작성자jacob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5.19 본문에 언급한 이러한 문제 때문인지? 예전에도 또는 지금도 다른 모임에서 거듭난 형제들이 그 모임으로 이적해간 경우 일정시간이 지나면 다시 구원 상담을 받으라고 하는 이야기를 여러차례 듣기도 했습니다.
    그말은 곧 삼각지 모임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기소선에 가더라도 형제로 인정을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형제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도 물론이겠지요?)
    그들이 일상적인 부분에서 혹여 연약한 부분을 지적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그들 믿음의 본질이 잘못되었기에 도덕성까지 무너져 버린 삶이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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