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며칠전 어느 캐나디언 여자와 만나서 신앙에 관해 많은 것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구원에 대하여도, 또 카톨릭의 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분명히 구원의 확신을 갖고, 세례가 아닌 침례가 옳다고 믿으며 성경말씀에 순종하려는 사람이었습니다. 제 블로그가 한글위주로 되어 있다해도 한번 보고 싶다하여 알려주었더니, 찾아봐서 보고 머리수건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평상시에도 머리수건을 써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리하여 긴머리가 영광이 된다는 말은 평상생활에서의 말이며 예배와 기도시간외에는 머리수건을 반드시 써야 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하여 주었는데 말씀에 관한 교제는 계속될 것입니다.
다음은 제 블로그에 있던 머리수건 글을 한글로 요지만 번역한 것입니다.
이 글은 머리 수건에 관하여 어느 메노나이트 형제이며 변호사인 사람이 쓴글인데 제 블로그의 영어 성경 교제에 있는 글을 간단히 요점만 번역하여 올립니다.
(번역)
제가 메노나이트 여성들의 머리수건을 볼때에 저는 왜 그들이 머리수건을 쓰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단지 그들이 고전적 관습을 따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제가 초기 기독교인들의 기록들을 읽었고 그때 저는 왜 메노나이트와 아미쉬 여인들이 기도수건 혹은 머리수건을 쓰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고전 11장 5절을 순종하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 자기의 머리를 덮어쓰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을 하는 모든 여자는 자기의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마치 그녀의 머리를 면도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 는말씀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여성들은 그들의 머리를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공공의 모임 어디에서든지 덮었습니다.
저의 교회사에 관한 연구에서 저는 기독교 여성들은 이러한 관행을 순종하기를 19-20세기까지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19세기 동안에 미국과 유럽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긴머리가 여자들의 머리수건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논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이들은 말하기를 여자들은 교회에서만 머리수건을 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중류층과 부유층의 여인들은 쓰는 경우에 머리수건과 모자에서 턱끈 달린 모자로 대체하였습니다. 턱끈달린 모자들은 고린도전서 11장에 대한 순종과 정숙함보다는 유행의 문제였습니다.그러나 20세기를 들어서면서 19세기의 턱끈 달린 모자들은 숙녀용 모자들로 바뀌었습니다.19세기 중반까지 유럽과 미국에서는 전형적으로 모자든지 스카프든지 공공장소에서 착용하였습니다만 그들은 원래 그런 관습의 이면에 영적인 이유가 있음을 알지 못하고 단지 전통과 유행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1960년까지 서양 여성들은 교회에서 모자들을 쓰고 있었습니다만 그 모자의 이면에 있는 의미는 잃어버렸습니다.
오늘날 동방 교회들의 기독교 여성들은 여전히 그들의 머리를 교회에서 가립니다. 그들중의 일부는 머리를 항상 덮습니다. 서구에서는 플리머스 형제단 여성들이 여전히 교회에서 기도수건을 쓰고 있으며 흑인 여성들도 그리합니다. 그러나 보통 이런 자매들은 그외의 시간에는 머리수건을 쓰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서구에서 오늘날, 오직 메노나이트와 아미쉬, 형제단, 후터라이트 여자들이 여전히 항상 머리수건 쓰기를 실천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천의 기독교 여성들이 가정교회 모임과 기타 독립교회들에서 신약성경의 전통을 재발견하고 그들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진은 천마디 말과 같은 가치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저는 아래에 기독교 여성들의 머리수건을 초대교회부터 오늘날까지 올려놓고자 합니다.
데이비드 벌코트
David Berc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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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디클레어 작성시간 10.01.24 지금 가서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사실 이것에 대해 그리 큰 관심도 없었고, 문제점을 느낄 수가 없어서 관심이 덜 갔던게 사실입니다.
많은 분들과의 쟁점사항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슬쩍 훑어 보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주님말씀을
실행하는 문제 , 순종하는 문제에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이제 들기 시작하는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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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고헌 작성시간 10.01.24 고전 11장을 읽어보면, 결국은 쓰라..는 내용입니다..11장 분위기 자체가 매우 강경한 어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uncovered 가 짧은 머리이다..남자 머리이다 는 둥 여러 이야기가 많은데, 이 단어의 뜻은 <쓴 것을 벗고>..입니다..한글 성경에 모두 그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커버링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신앙의 성숙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위의 사진을 보면 너울뿐 아니라 여러 가지를 쓰고 있는데 일단 머리를 가릴 수만 있으면 괜찮다고 저는 분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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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토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1.24 분명히 수많은 침례교의 19세기 예배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있다면 거기에는 예배시에 침례교인들이 머리수건 쓴 모습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머리 수건을 벗게 된 것은 어느 교파이든 20세기의 현상이었습니다. 역사상 줄곧 머리수건을 예배시에 ( 기도와 예언시에) 썼고 그것은 성경말씀에 대한 순종에서 나왔습니다. 침례교의 예배사진들이 모아지지 않는 이유는 침례교회들 마저도 오늘날 머리수건을 쓰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그런 사진들을 올리기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기 위해 꾸며내는 수많은 변명과 궤변의 기술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의 불순종 기술은 탁월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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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토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1.24 오늘날 바울이 온다면, 머리수건 쓰는 자들아, 그것은 머리를 길게 하여 덮으라는 뜻이었느니라, 하겠습니까? 아니면, 깨닫지 못하느냐? 내가 덮어쓰라고 명한 것이 머리를 기르라는 말이더냐? 어느 쪽이겠습니까?
다만 앞서의 글에서 강조했듯이 이 사안은 다른 여러가지 개혁의 사안들이 먼저 이루어진 다음 실행해야 함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목사제도가 엄연히 수많은 개혁을 막고 있는데 이것부터 고치겠다 하면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개혁이 될 것입니다. -
작성자KESLL 작성시간 10.01.24 저도 너울에 대한 구절을 모르기전에는..너울을 쓰도 그만 안써도 그만 했지만..쓰는것이 옳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것은 너울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미워하고 정죄하는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좋게 권면하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