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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usader Kings

[CK2]루스 정벌기 하편-북방이 평정되다

작성자독일육군|작성시간14.12.31|조회수591 목록 댓글 14













지난 번에 라틴 제국 황제 루이가 루스의 평화를 위해 군대를 일으키시어 갈리치의 영민들을 폭정에서 해방시킨 일을 서술하였다. 이번에는 라틴 제국이 북방을 평정하고 이교도들을 제압한 이야기를 마저 다루고자 한다.


핀스크 백작의 상소로 루이 황제는 22000명의 제국군을 동원하여 키예프 공국을 징벌케 하였다. 당시 키예프의 여공작 류바바는 어린이인데다가 선천적으로 어리석은 여자아이였다. 따라서 그녀의 휘하에 있는 졸개들이 스스로 군대를 편성하여 황제에게 저항하려고 했다. 키예프인들은 약 3500의 병력을 동원하고 키예프로 집결시키려고 했으나, 병력 차출이 끝날 무렵, 제국군은 솔루츠크에 당도한 상태였다.


결국 키예프의 징집병들은 집결하지 못했다. 투로프에서 징집된 1500여명의 키예프군은 솔루츠크의 산길에 진지를 구축하고 제국군에 대항하고자 했다. 


그러나 라틴 제국군은 포병을 동원하여 키예프군의 허술한 방어진지를 무력화시켰다. 포격이 끝날 무렵에 때맞춰 진군한 1만여명의 제국군 중보병대가 혼란에 빠진 키예프군에게 밀어닥쳤다. 도주하는 투로프의 키예프인들을 제국군 경기병들이 학살했다. 

결국 솔루츠크에서 투로프의 키예프군은 전멸했다.


제국군은 기세를 타고 투로우 성을 공성하였다. 화포 운영에 익숙해진 제국군은 집중 포격을 가하여 투로우의 수성군을 제압하고 투로우 성을 함락시켰다. 투로우에선 제국군에 저항할 세력이 없다고 판단한 제국군은 투로우의 제읍들을 공략하지 않고 곧장 키예프로 진군했다.


한편 키예프 여공작 류바바는 루스의 혈족들에게 사신을 보내어 구원군을 요청하고 용병을 고용하여 제국군에 저항하고자 했다. 그러나 전령이 여공작의 친족들에게 당도하고 용병들과 협상하기 전에 제국군이 키예프로 진출하였다. 이에 키예프인들은 모든 징집병들을 스히토미르에 배치시켜 제국군에 대항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류바바가 키예프를 탈출하여 조금이라도 더 병력을 불러모으고자 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키예프는 투로우와 달리 평야지대였다. 제국군과 키예프군이 교전한 스히토미르는 회전을 치루기에 적합한 지형이었다. 6천의 제국군 기사들이 일제히 돌격을 감행하여 키예프군의 중앙과 우익을 일격에 궤멸시켰고, 후퇴하는 키예프군의 좌익을 포위하여 몰살시켰다. 


스히토미르 전투는 순식간에 벌어진 전투와 학살이었다. 오히려 병력 배치와 전리품 수습에 더 많은 시간이 소비되었다. 제국군은 스히토미르에 키예프 인들의 약탈당한 시체만 남기고 키예프로 진군하였다. 키예프 군의 궤멸이 거둔 유일한 소득은 키예프 여공작이 도주하게 해준 것 뿐이었다.



제국군은 키예프를 포위한 뒤, 키예프인들에게 항복을 요구하였다. 키예프인들은 이길 수 없음을 알았고, 자신들이 설사 목숨을 바쳐 싸워도 아무 의미 없음을 더 잘 알았다. 그리하여 제국군은 키예프에 무혈입성하였다.


라틴 제국 황제 루이는 키예프 공작 류바바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핀스크 백작 류리크에게 투로프 백작위를 하사하셨다. 물론 이에 류바바 공작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황제는 이에 더하여 스스로 키예프의 지배자임을 선언하였다. 즉 류바바를 키예프의 공작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키예프 백작 류바바는 인정하지 않고, 라틴 제국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열폭했지만 키예프인들은 그녀를 지배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제국도 그녀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군대를 키예프에서 철수시켰다. 황제도 키예프의 멍청이보다는 아직도 복종하지 않는 갈리치인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제국군은 제국에 복종하지 않는 페렘이슬을 공격하였고, 페렘이슬 백작은 블라디미르볼린스키 백작에게 순망치한의 논리를 들먹이며 제국에 함께 항거하였다. 그러나 제국군은 두 백작이 연합군을 결성하기 전에 페렘이슬을 석권했다. 페렘이슬 백작은 제국군과의 야전에서 전 병력을 모두 잃고 겨우 성으로 달아났지만, 그의 성도 얼마지나지 않아 함락되었다. 그것으로 페렘이슬은 제국에 복속되었다.



루스인들이 라틴 제국에 복종함에도 불구하고, 키예프 여백작 루바바는 멍청하게도 계속 제국과의 전쟁을 지껄이고 있었다. 이에 키예프의 몇몇 루리코비치 가문원들은 루바바로 인해 루리코비치의 남은 영지도 제국에 의해 멸망될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하여 루바바는 스몰렌스크 대공 트리폰 2세의 후원을 받은 몇몇 류리코비치 가문원들에 의해 유폐당했고, 종국에는 타워에서 밀쳐져 추락사당했다. 이에 루스인들과 제국인들 모두 추악한 루리코비치 가문을 비방하였다.



그러나 라틴 제국의 공정한 황제 루이는 사악한 루리코비치 가문에 대해 단순히 비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징벌하여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고자 하였다. 마침 류베크 백작이 체르니코프에 대한 권리를 청원하였기에 황제는 그들을 징벌할 실질적인 명분도 획득한 상태였다. 이에 황제는 제국군을 체르니코프로 진군시켰다. 


하지만 이때부터 황제는 이웃영지에 대해 손쉽게 소유권을 주장하는 루스 귀족들에게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첩보부를 동원하여 영지 소유의 정당성을 재조사케 하였다.




스몰렌스크 대공 트리폰 2세는 제국군의 침공에 대항하여 군대를 모았다. 그리고 호로드니아에서 도강하는 제국군을 맞아 싸웠다. 이 전투에서 제국군은 비좁은 도강지점에서 강을 건너면서 전투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포격이나 궁수의 지원 사격 없이 그저 물량으로 스몰렌스크 군을 밀어붙여야 했다. 


그 중에서 제국군 중군의 선봉부대는 교두보를 확보하고 스몰렌스크 군의 반격을 저지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했다. 따라서 그들은 최정예 하마 기사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신속히 교두보를 확보해야 하는 조건때문에 그들은 기사답지 않게 경무장을 한 상태에서 싸워야 했다. 1개 바타이유로 편성된 제국군 선봉대는 그들의 4배나 되는 스몰렌스크 군의 저항을 받아내며 교두보를 확보하였고, 2만명의 제국군이 도강할 때까지 교두보를 지켜냈다. 훗날 그 기사들은 황제에게 훈장을 수여받았다.




결국 호로드니아 전투에서 제국군의 도강을 저지하지 못한 스몰렌스크 군은 제국군에게 격멸당했고, 스몰랜스크도 뒤이어 함락되었다. 스몰랜스크 대공 트리폰 2세는 다른 류리코비치 가문원들이나 다른 루스족 영주들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나, 친족 류바바 살해를 지원했던 그를 돕는 이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도와 제국에 척을 지고 싶은 루스인은 더 이상 없었다. 결국 스몰렌스크 대공은 체르니코프의 지배를 포기하였다. 


이로써 더 이상 라틴 제국에 의한 루스 지배에 이의를 제기할 루스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후 루스인들은 라틴 제국의 루스 지배에 편입되어 갔다.


한편 제국 첩보부는 루스의 귀족들이 부당하게 클레임을 확보하고 황제에게 청원하여 영지를 늘려왔다는 조사 결롸를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루스의 영주들이 자신을 이용하여 사익을 추구했음을 알게 된 황제는 격노하였다. 그리하여 라틴 제국 황제는 휘하의 루스 영주들의 영지를 모두 회수하고 제국의 유공자들에게 분배하였다. 그 과정에서 몇몇 영주들이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모두 진압당했다.




라틴 제국의 정벌과 통치로 그동안 내전에 시달렸던 루스인들은 평화를 되찾고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제국의 확장은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폭정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다른 정벌을 유발하고 말았다.


제국인들은 곧 제국 국경의 리투아니아 인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페르쿠나스라는 잡신을 섬기는 미천한 족속이었으며, 그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는 선교사들을 핍박하는 흉악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더 나쁜 것은 그들이 크킹삼치의 작품 [테부니에 다르나]를 자기네 참역사로 믿고 오만불손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 거짓 역사서를 바탕으로 주변 국가들에 분쟁을 일삼았다. 친절한 루이 황제는 야만족들의 착각으로 백성들이 핍박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리하여 리투아니아 인들을 징벌할 군대를 조직하시어 진군시키셨다.


황제의 군대는 그로스노로 진입하여 미처 집결하지 못한 어리석은 야만족의 군대를 공격하였다. 제국군의 맹공에 야만족은 수천의 시체 더미를 남기고 북으로 도주했다. 제국군은 그들을 추격하였다.....




"그 다음은? 그 다음엔 어찌 됐나요?"


"그건 나도 모르지. 북방에서 무슨 소식이 와야 썰을 풀어 놓을 게 아닌가."


이 말에 제국과 리투아니아 야만족과의 한 판 결전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한숨을 쉬며 하나 둘 흩어졌다. 그 아쉬운 사람들 중에는 정벌에 참여한 아버지를 둔 기사 견습생 페터도 있었다.


"아아, 아빠가 리투아니아 야만족을 쓸어버린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그때 다급히 황궁으로 향하는 전령들이 페터의 옆을 황급히 지나갔다. 페터는 순식간에 멀어져 가는 그들을 물끄러미 본 뒤, 무예 연습을 하러 병영에 갔다. 그곳에서 하루종일 무예를 연마하고 나오는 길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허어, 정벌군이 그 야만족놈들에게 괴멸당하다니."

"잔인한 야만족놈들이 후퇴하는 우리군을 북해까지 추격하여 모조리 죽였대요."

"종군부대에 있는 여인들까지 모조리 그 페르쿠낙슨가 뭔가 하는 잡신에게 바쳤다며?"

"빌어먹을 놈들!"


이에 페터는 깜작 놀라 집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면서 속으로 수없이 되뇄다. 

'울 아버지처럼 강한 기사들이 수도 없이 많던 정벌군이 궤멸했을리 없어!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그러나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어머니는 양피지를 쥔 울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 페터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오! 페터 불쌍한 것! 네 아버지가 네 아버지의 정벌군이...!"


페터는 자신이 겪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다. 2만이 넘는 제국군이 리투아니아 군에게 도륙당했다!




그로스노에서 3천의 이교도를 섬멸한 제국군은 이교도들의 소굴 빌뉴스를 함락한 뒤, 이교도들이 집결한 민스크에서 일대 회전을 치뤘다고 한다. 목격자 요르문간드의 증언과 생존자 피터버그의 피터(비록 이교도들에게 1년 동안 비역질을 당했지만!)의 기록에 의하면 제국군은 무려 20만이 넘는 이교도들에게 둘러쌓여 영웅적인 혈투를 벌였고, 무려 15만명을 쳐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교도들은 요술을 부려 끊임없이 비를 퍼부었고, 제국군에게 화평을 요청하면서 한편으로 수십만의 지원군을 동원하여 제국군을 포위 공격하였다. 


결국 퇴로가 사라진 제국군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영웅적으로 싸워 수만명의 이교도들을 추가로 쳐죽이고 전멸했다고 한다. 수십만의 전사자를 낸 이교도들은 정벌군의 기사나 군졸뿐만 아니라 종군여성과 아이,종자도 학살하거나 제물로 처리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라틴 제국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교도들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는 더욱 분명해졌다.




정벌군이 궤멸된 이후, 라틴 제국 황제 루이는 제국군을 재편성하셧고 제국의 성전에 참전하는 외국의 전사들을 모집하셨으며 지원하셨다. 또한 이 원정에서 가족을 잃은 수많은 제국의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지원하셨다. 이에 제국의 백성들은 감읍하고 한편으로 사악한 리투아니아 야만인들에게 복수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2년만에 제국은 다시 정벌군을 재조직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황제의 2만 상비군뿐만 아니라, 제국의 지원병 4만 5천, 외국의 지원군 2만 6천이 동원되어 총 9만 대군이 조직되었다. 이 대원정은 교황도 후원금을 지급할 정도로 모든 유럽인들이 승리를 염원하였다.



제국이 절치부심하여 군세를 재정비하는 동안, 어리석은 리투아니아 이교도들은 핀스크를 약탈하며 더욱 오만방자 하였다. 그러나 9만에 달하는 제국군이 북상하기 시작하자, 자기네 소굴로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제국군은 다부힌에서 그들을 따라잡았다.


이교도들은 황급히 목책을 쌓고 제국군에 저항하려고 했으나, 제국군 포병대에 의해 목책이 파괴되고 상당한 병력을 잃었다. 뒤이어 복수를 갈망하는 5천의 제국 기사대가 돌격을 감행했다. 이들 중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사에 서임된 페터도 있었다. 그들 뒤로 1만의 보병대가 뒤따랐고, 전장에서 200km에서는 2만명의 제국군이 북상하고 있었다.

결국 다부힌에서 리투아니아 이교도들은 큰 타격을 입고 도주했는데 그중에는 이교도의 우두머리도 있었다. 


이후 제국군은 핀스크의 성들을 탈환한 다음, 이교도의 소굴을 다시 공략했다. 8만이 넘는 제국군이 리투아니아의 이교도들을 치니, 이교도들은 황제에게 땅을 떼어주며 자비를 요청하였다. 또한 다시는 주변 국가들을 침략하지 않겠노라는 약속도 받아냈다.


그리하여 라틴 제국은 루스와 리투아니아 정벌을 완수하고 북방에 평화를 정착시켰다. 친절한 황제 루이의 은덕은 그리스,라틴인들뿐만 아니라 루스,리투아니아,폴란드에까지 퍼졌다. 황제의 공세에 욕심쟁이 귀족들은 섬멸되고 백성들은 안둔할 수 있었다. 이교도들은 어리석은 신앙과 전쟁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문화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이후 라틴제국은 비잔틴 제국을 능가하는 번영을 누리며 발전하는 세계적인 제국이 되었다.


(끝)







번외편



루이 황제의 치세 말렵, 크킹삼치의 증손녀 엘레오노르는 자기 증조할머니의 소설로 인한 전쟁과 그로인해 탄압받는 사람들을 보며 슬퍼하였다. 또한 증조할머니의 작품들로인해 세상사람들의 비난을 듣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서 그녀는 증조할머니 크킹삼치의 편지 및 서간을 소각하고, 제국도서관에 보관된 크킹삼치의 작품들을 빼돌려 국외로 달아나려고 하였다. 



엘레오노르는 크킹삼치의 편지 대부분을 소각하는데 성공했으나, 제국군이 엘레오노르를 추격하자 나머지 작품들을 급히 배에 싣고 달아났다. 하지만 엘레오노르의 해상도주를 염두한 제국군은 해군을 보내어 그녀의 배를 추격하기에 이르렀다. 엘레오노르의 배를 따라잡은 아르샹보 백작이 엘레오노르에게 항복을 권유했고, 엘레오노르는 아르샹보의 설득에 항복하려고 했다. 그런데 휘하 수병 이마리우스의 실수로 화포가 발사되어 엘레오노르의 돛을 부러뜨리고 배를 침수시켰다. 엘레오노르는 바다에 빠졌고, 아르샹보 백작이 그녀를 건져올리려고 하자, 화가 난 엘레오노르는 아르샹보 백작을 바다에 빠드렸다.



백작의 부하들이 백작과 엘레오노르는 건져올렸고, 백작이 그녀를 취조하자 엘레오노르가 대답했다.

"증조할머니는 사람들을 즐겁게하려고 글을 썼을 뿐인데 왜 괴롭히는거야! 여러나라의 이야기를 다룬게 뭐가 잘못된 거야? 그것을 읽는 것은 증조할머니도 할머니도 어머니도 나도 시킨 것이 아닌데 왜 나를 욕하는거야? 왜 그걸 쓰고 보았다고 죽이는 거야? 그런 것가지고 왜 전쟁을 일으키는 거야? 이 나쁜 새끼들아!"



대충 엘레오노르가 이렇게 부르짖으니 아르샹보 백작은 엘레오노르에게 술과 음식을 주어 달래고 한편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게 하였다. 그녀의 사정을 들어주고 함께 식사하며 위로하던 아르샹보 백작은 엘레오노르와 정을 통했다. 그 뒤 아르샹보 백작은 루이 황제에게 전후 사정을 아뢰며 크킹삼치의 일파를 변호하여, 마침내 엘레오노르가 석방되게 하였다. 



하지만 아르샹보 백작이 리투아니아와의 전쟁에 종군하게 되면서 엘레오노르와의 연락도 끊어졌다. 10년 뒤, 루이 황제의 아들이었던 아르샹보 백작은 라틴 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녀의 부인이 아이를 낳은 후 별세했다. 아르샹보 황제는 황후를 기원하기 위해 성지순례를 떠났다. 이때 기사들과 기사 견습생들이 황제를 호위했는데, 황제는 '에밀'이란 꼬마 견습생과 사이가 가까워졌다. 



황제는 에밀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아버지가 없으며, 어머니가 니케아의 남작의 성에서 메이드로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샬레프 강을 건너면서 에멜로부터 그의 어머니가 엘레오노르이며, 그녀가 아르샹보라는 백작에게서 구명받았다는 말을 듣고 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이후 에밀이 자신과 똑같은 왼손잡이임을 확인한 아르샹보 황제는 성지 순례후 돌아가는 길에 니케아로 향했다.



이후 라틴 제국은 기존에 박해받던 음류시인들에게 사면을 베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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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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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통장 | 작성시간 15.01.01 류리코비치가 가짜제국에게 죽다니 ;ㅅ;
  • 답댓글 작성자독일육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1.01 류리코비치의 졸개들은 라틴 제국을 가짜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그리스인들의 제국은 패망한 뒤라서 아무 의미없었다.
    오히려 옛 비잔틴 제국의 강역이 라틴제국의 강역이 되었으며 류리코비치 족속은 루스의 통합과 평화와 번영을 막은 족당행위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여기에 류리코비치에 매수된 이녀석의 약탈행위와 패역질로 류리코비치의 명예는 완전히 떨어졌다. 이후 루스인들의 거듭되는 요청에 힘입어 라틴제국은 류리코비치를 박멸했고, 이녀석을 잡아 척장분지형에 처했다.
  • 작성자MrGuinness | 작성시간 15.01.01 키예프는 응당 피아스트 가의 권리이거늘...
  • 답댓글 작성자독일육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1.01 귀네스의 주장에 라틴 제국인들은 기뻐하며 말했다. "귀네스가 우리에게 좋은 명분을 제공했도다. 폴란드가 제국의 휘하에 편입된다면 더 이상 분쟁이 없겠군."
    이후 라틴 제국이 폴란드를 징벌하고 폴란드군 1만을 참획하였으며 폴란드 왕국을 제국에 편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피아스트 가문은 왕좌를 뺐겼다.
    이에 피아스트 족속들은 귀네스가 라틴 제국을 꼬드겨 침략을 일으켰다고 결론을 내고, 귀네스를 납치한 뒤,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귀네스의 똥꼬를 찔러 죽였다.
  • 답댓글 작성자MrGuinness | 작성시간 15.01.01 독일육군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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