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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usader Kings

[CK2]게임 내 역사적인 가문 소개(24) House of Wittelsbach

작성자shyisna|작성시간15.03.05|조회수1,944 목록 댓글 11

전번에 프레미슬 가문 소개 이후 프랑스 귀족 가문에 필이 꽂혀...

프랑스 영역 조사를 열심히 뒷조사 하다가 마침 외부의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조사의 흐름이 딱 끊겨버리더군요.

그러다가 근래 다시 몸이 아파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덧글이나 쓰고 연대기 밀린 것들 읽고...(즉 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지냈습니다.

 

그런데 저를 소위 카페에서 연대기 읽기라는 습관 속으로 빠뜨린 그분(?)께서 여전히 청백의 문장을 휘날리시는 걸 보니... 문득 이 가문의 뒷조사가 끝난 상태인지라 정리 한 번 해 볼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실은 이 가문... 너무 분가가 많아서 정리하기가 싫었습니다. 카페 가문 만큼은 아니었지만 17세기 초까지 여러 분가들이 유럽 전역에서 설치는 터이라 정리하기가 정말 피곤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대충... 간략하게 소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전 한번도 이 가문으로 플레이 한 적이 없네요. 한번 도전해 봐야 겠다는... 

 

비텔스바흐 가문은 11세기 초에 백작 하인리히(Heinrich I, Count in the Pegnitz)의 아들이라고 알려진 오토1(Otto I, Count of Scheyern, died 1072)를 가문의 시조로 합니다. 게임상에선 어떤 가문의 분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역사서에선 그런 언급은 하지 않더군요. 다만 가문의 이름인 비텔스바흐는 오토 1세의 아들 오토 2(Otto II, Count of Scheyern)가 아헨 근처에 비텔스바흐 성을 축성하면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13세기부터 사용된 비텔스바흐 가문의 문장입니다.

그러고 보니 좌측 검은 사자는 룬 백작령(레지날 가문) 것이 아닐까요?

시조인 오토 백작의 어머니가 Loon 백작의 딸이라고 하던데...

시니어 라인인 라인-팔라티네 백작 후손들이 주로 사용한 문장입니다.

 

 

 

비텔스바흐 가문이 널리 알려진 배경에는 오토 1세의 증손자 오토(Otto I, Duke of Bavaria, 3년간 공작) 때문입니다. 1180년 벨프 가문의 사자공 하인리히가 제위쟁탈전에서 패배함에 따라 공작 작위를 빼앗기자 그 자리를 대신하여 오토가 바이에른 공작에 임명되면서 부터입니다.

원래 공작 오토의 아버지인 오토는 1120년 처음으로 바이에른 지방의 팔라티네 백작(Count palatine of Bavaria)에 임명되면서 라인강 부근의 영지를 벗어나 바이에른에 새로운 영지를 획득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오토가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롯사에게 충성하면서 마침내 공작으로 승급... 일약 공작 가문을 승급됩니다. 그러므로 가문의 원래 영지는 바이에른 지방이 아니고 중부의 팔츠(라인강 근처) 지방이었습니다. 초대 공작이 된 오토의 모계가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 1세의 증손녀였던 터라 혈통빨에 의해 작위를 획득했다고 보시면 무난하겠네요.

 

오토 1세의 손자 오토 2(1231-1253)는 균분상속의 전통에 따라 처음으로 바이에른을 둘로 나누는데 장남 루트비히 2세에게는 바이에른 지방과 라인-팔츠 지방을, 차남 하인리히에게는 바이에른 지방을 떼어 줍니다. 가만히 보니 팔라티네 백작령이 더 중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지역은 항상 장남에게 돌아갔으니까요.

그렇지만 바이에른 분가는 1340년 남계가 최종 단절되면서 다시 종가로 영지는 돌아가죠. 이에 루트비히 2세의 두 아들은 최종적으로 영지를 두 개로 분리시킵니다. 장남 루돌프 1세는 영구히 라인-팔츠 지방을 가지고 차남 루트비히 4세는 영구히 바이에른을 가지는 식이 됩니다. 그래서 바이에른 공작 위는 차남 계열인 루트비히 계열이 지니고 완전히 분가합니다. 이후 공작들은 모두 루트비히의 자손들... 최종적으로 1777년 남계 단절되면서 다시 영지는 종가인 라인-팔츠로 돌아갑니다. 즉 가문의 최종 승자는 라인-팔츠 지방을 차지했던 종가인데 1918년 전쟁 패배와 혁명으로 바이에른 왕위가 깨질 때 까지 이어집니다. 현재도 그 후손들이 줄기차게 왕국 돌려 달라 요구 중이지만... 독일 연방은 여전히 민주공화국입니다.

 

먼저 차남 루트비히 4세가 가져간 바이에른 공작 가문에 대해 소개합니다.

루트비히는 바이에른 공작이기도 하지만 승승장구하여 1314년 독일 왕이 되었고 1328년 드디어 신롬 황제가 되어 가문이 배출하는 첫 황제가 됩니다. 어떻게 보면 바이에른은 바바리아라는 야만인을 뜻하는 어원의 유래가 시작된 지역인데... 이때에 이르러 이 지역의 군주가 드디어 제국의 황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별칭은 “the Bavarian”... 감이 오시지요? 야만인의 땅에서 나온 황제님... 좀 비웃는 별칭도 되고... 진짜 그렇기도 하고...

 

그는 두 번의 결혼을 통해 16명의 자녀를 얻습니다. 그래서 가문의 영지는 여러 분가들로 쪼개집니다. 첫 결혼의 자식들은 모두 바이에른을 쪼개 들고 갑니다. 물론 장남은 아스카니언 가문이 단절되면서 브란덴부르크를 획득하지만 2대 만에 단절되어서 다시 제국으로 넘어가버리죠. 그리고 두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아버지로부터 바이에른-스트라우빙 지역과 어머니의 영지였던 홀랜드 지역을 들고 분가합니다.

 

 

게임상에서 루트비히 4세...

그러고 보니 비텔스바흐 가문의 문장이 라인-팔츠 계열에서 사용한 문장을 채용했군요.

루트비히의 후손은 '주니어 라인'이라 부릅니다.

 

 

즉... 루돌프 1세의 후손들이 '시니어 라인'이고 루트비히 후손이 '주니어 라인'입니다.

문장도 다르게 사용하게 되는데... 게임에선 그냥 다 쓰는군요.

시니어 라인이 팔라티네 백작이었고 주니어 라인이 바이에른 공작이었습니다.

 

 

 

좌측은 가문의 첫 황제인 루트비히 4세(주니어 라인)가 사용한 문장이고

우측은 독일왕만 된 루프레히트(시니어 라인)가 사용한 문장입니다.

독일왕 문장에 자신의 가문 문장 더하기...

구분이 되시죠? 주니어 가문인 루트비히는 바이에른 공작 작위만 있으므로 바이에른 문장만 사용...

시니어 가문인 루프레히트는 라인-팔츠 백작 작위만 들고 있어서 옛 문장을 채용

 

 

 

즉 바이에른은 1347년 루트비히의 아들과 손자를 중심으로 네 지역으로 크게 나뉘는데 바이에른-잉골스타트(1445년 남계 단절), 바이에른-란드슈트(1503년 남계 단절), 바이에른-스트라우빙(1425년 남계 단절), 바이에른-뮌헨이 그것이죠. 여기서 최종 승자는 루트비히의 차남 스테판 2세의 막내아들이던 요한 2(d.1397)이 들고 나간 뮌헨 분가가 됩니다. 그래서 바이에른 공작령의 중심이 뮌헨이 되었죠. 간단합니다... 최후로 살아남으면 승자가 됩니다. 그래서 아들...아들 했던 겁니다.

 

 

루트비히 4세가 2번에 걸친 결혼에서 태어난 자손들에게 바이에른을 4등분 합니다.

장남 루트비히은 원래 브란덴부르크를 받지만 2대만에 단절... 결국 영구히 상실했고

차남 스테판이 잉골스타트와 랜드슈트, 뮌헨을 물려받습니다. 이 둘은 모두 첫 결혼에서 얻은 자식들...

두번째 결혼에서 얻은 세 아들에게는 모계로 부터 얻은 홀랜드와 스트라우빙을 물려줍니다.

그래서 4등분... 나중에 모두 뮌헨으로 합쳐집니다.

 

 

 

1503년에 이르러 전 바이에른 지역을 통치하게 된 알프레히트 4(d.1508)과 그 후손들은 합스부르크 가문과 줄기차게 연혼 관계를 가집니다. 아무래도 지역이 서로 인접한지라 자연스럽게 결혼관계가 이루어진듯합니다. 상당히 상징적인 결혼이었는데...

알프레히트 4세는 합스부르크 가문 여인과 결혼하는 첫 비텔스바흐 가문원이 됩니다. 그녀 이름은 쿠니군데(Kunigunde of Austria)...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살아남은 유일한 누이였죠. 앞서 합스부르크 가문 소개를 드릴 때 포르투갈 왕녀인 어머니가 짠돌이 아버지 땜에 오트밀만 먹인 결과물... 살아남은 자식이 11녀라고 언급한 적이... 그 중 1녀가 바로 비텔스바흐 가문으로 시집간 쿠니군데입니다. 그녀가 낳은 자손들은 1777년 남계가 단절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또한 한 번 맺은 인연 덕분에 또 한번 신롬황제가 배출되기도 합니다만...

 

알프레히트 4세의 손자 알프레히트 5(d.1579)는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딸 아나와 결혼합니다. 그래서 아들 이름을 막시밀리안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그 손자는 또 페르디난트란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아무튼 합스부르크 가문과 줄기차게 결혼한 비텔스바흐 가문에서도 비독일계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게 다 결혼 덕분이죠...

 

막시밀리안 2(d.1726)는 황제 레오폴드 1세의 딸 요제파랑 결혼해서 신롬 제관을 넘봅니다. 당시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는 남자가 점점 귀해지거든요. 그래서 대타로 황제 가문이 되려고 도전하는데... 카알과 그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는 순순히 제관을 내놓지 않습니다.

 

결국 두 집안은 사촌끼리 제관을 두고 다툽니다. 그런데 문제는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 공작비가 낳은 세 아들들이 모조리 요절했다는 사실입니다. 바이에른-뮌헨 분가 출신으로 그도 마지막 남계였거든요. 모든 사촌들이 죽어서 이제 남계로 친척이라곤 수 세기 전에 떨어져 나간 라인-팔츠 종가에서 분파된 남자들 뿐이었죠. 촌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먼...

 

그래서 공작은 급하게 폴란드 공주를 데려다 후처로 삼아 적자를 봅니다. 그의 이름은 카알 7세 알프레히트(1697-1745)... 카알은 황제 요제프 1세의 딸 아멜리아와 결혼해서 제관에 더 한층 다가가려 합니다. 결국 두 가문은 치고 박고 하다가...

1742년 카알이 승리하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으로부터 제관을 탈취합니다. 그러나...

1745년 카알 7세는 황제가 된 지 3년 만에 사망하는 통에 신롬의 제관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손으로 넘어갑니다.

이런... 결국 그의 아들 막시밀리안 3(1727-1777)은 황제도 되지 못하고 그냥 공작님...

 

 

합스부르크 가문을 물리치고 제위를 차지한 카알 7세의 문장...

쌍두독수리 문장에 가문의 문장을 합체... 좋네요~

참... 문장 가운데 있는 붉은 십자가는 '선제후'를 뜻합니다.

 

 

문제는 또 발생합니다. 결혼을 했는데도 자식이 없다는 사실...

그에게는 숙부님이 엄청나게 많았는데(어른으로 성장한 숙부만 네 명) 이상하게도 결혼도 안하고 혼자 살다 죽거나 주교나 되었다는... 종국엔 영지 분할 안하려다 결국 대가 끊겼다는 어이없는 사실...

1777년 뮌헨을 수도로 했던 비텔스바흐 가문은 최종 단절됩니다. 이제 남은 건 13세기 초반에 가문의 옛 영지인 라인-팔츠 지방에 정착한 종가 후손들만 남는군요.

 

루돌프 1(Rudolf I, 1274-1317)1294년부터 Count Palatine of the Rhine이 됩니다. 여기서 팔라티네 백작이란 황제의 제권 일부를 자신의 영지 내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신분 높은 귀족을 뜻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층 높은 백작님 정도...?

이 팔라티네 백작은 이미 메로빙거와 카롤링거 왕조 때부터 시행되었는데 원조는 로마제국 후기 최고사령관에게 부여된 명칭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카페 가문의 로베르 1세도 원래 팔라티네 백작 출신입니다. 그리고 비텔스바흐 가문의 오토가 바이에른의 팔라티네 백작이 되면서 그의 아들 대에 이르면 공작이 되죠.

로트링겐 지방에도 팔라티네 백작(Counts Palatine of Lotharingia)이 등장하는데 그 유명한 에조니도 가문(Ezzonids)이 그러했습니다. 라인강 부근의 팔라티네 백작(Counts Palatine of the Rhine)은 바로 비텔스바흐 가문이었죠.

 

 

팔라티네 백작에서 선제후로 승급되면서 문장에 변화가 생깁니다.

붉은 십자가 형태... 요게 '선제후'를 뜻한다고 합니다. 즉 황제를 선출하는 제후...

 

 

 

덤이지만 작센 가문의 팔라티네 백작(Counts Palatine of Saxony) 가문은 바로 베틴 가문(House of Wettin)이었습니다. 또 덤이지만 슈바벤의 팔라티네 백작(Counts Palatine of Swabia)은 호엔슈타우펜 가문이었다는 것...

그러고 보니 이거 하다가 성장한 가문이 상당수 있군요. 아무튼 백작급인데 황제의 직속 백작이라는 점이 대단한 권한인가 봅니다. ...

 

루돌프 1세의 증손자인 루프레히트 3세는 1400년 독일 왕에 선출됩니다만 황제는 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가문의 위상은 세습 선제후로 승격됩니다. 이른바 'Elector Palatine'가 되었던 것입니다. 공작보다도 훨씬 좋은 작위라고 생각하시면 무난할 듯... 황제를 선출하는 권한을 가진 제후라는 뜻이기 때문이죠. 그의 어머니는 시칠리아 왕 페도르 2세의 딸 비어트릭스 였는데 아라곤 왕가와도 혈통이 연결됩니다. 아마도 공주빨 어머니 덕분으로 왕이 되었던 듯... 부모 가문이 좋으면... 후손들에게도 좋긴 좋군요.

 

그의 형제는 7명이었지만 혼자 어른이 되어서 다행히 분가되지는 않다가... 호엔쫄레른 가문 출신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9명의 자녀를 낳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분가가 형성됩니다. 균분상속의 굴레를 못 벗어나는 비텔스바흐 가문... 자식이 많아도 적어도 탈입니다.

장남인 루트비히 3세 계열은 4대 만에 단절되어서 8번째 아들이었던 스테판이 쯔바이뷔릭켄과 지메른 영지를 모두 가져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두 아들 프리드리히와 루드비히에게 나누어 주는데 프리드리히 계열(지메른)에서 유명한 보헤미아 왕 프리드리히 5세가 나옵니다. 그렇지만  프리드리히 5세의 손자 카를 2세가 1685년 죽으면서 남계는 결국 단절되죠. 그리고 루드비히 계열(쯔바이뷔릭켄)이 역사적으로 진짜...진짜 최종 승리자가 됩니다.

 

흥미로운 건 7번째 아들이었던 요한입니다. 요한(1383-1443)은 뉘른베르크를 불려 받게 되었는데 포메니아 공작 바르티슬라우 7세와 메클렌부르크의 메리(그녀의 어머니는 덴마크왕 발데마르의 장녀) 사이에서 태어난 캐더린과 결혼합니다.

그 두 사람 사이에 크리스토퍼(Christopher, 1416-1448)가 태어나는데... 덴마크 왕실이 워낙 자손이 부족한 관계로... 그가 외할머니 잉게보르그 공주의 클레임을 물려받아 1440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왕이 됩니다.

덤으로 그는 뉘른베르크의 팔라티네 백작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그는 자식 없이 죽어서... 그의 영광을 비텔스바흐 가문은 이어가지 못합니다. 아들만 얻었다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역사는 확 달라졌을 듯...

 

 

크리스토퍼가 사용한 문장입니다.

왕관 3개를 가지고 있으니... 자신의 가문 문장을 잘 조합하여 넣었군요.

 

 

이제 프리드리히 5(1596-1632)의 인생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그는 스테판이 장남에게 지메른 영지를 나누어 줄 때 분가했던 프리드리히의 6대 손으로 대대로 라인-팔츠의 선제후가 됩니다. 즉 팔라티네 선제후(Elector Palatine)였다는 소리입니다. 14세 때 아버지 프리드리히가 죽어서 소위 아청군주로 즉위했는데 문제는 종교전쟁이 한창일 때였다는 겁니다.

 

그는 바이에른의 사촌들과는 달리 구교를 버리고 신교를 선택합니다. 결국 나중에는 신교도 군주들의 리더로 성장하게 됩니다. 혈기 왕성한 이 선제후는 신교도로 가득 찬 보헤미아를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부터 독립시키는데 앞장서게 되죠. 이 계획을 후원한 사람이 바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1세였습니다.

 

그는 대륙에서 신교도들이 학살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죠. 특히 의회에서는 독일의 신교도를 도우려면 프리드리히를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고 소리가 나올 정도였죠. 결국 제임스는 1613년 신교도간의 신용의 징표로 딸 엘리자베스(Elizabeth Stuart, 1596-1662)를 그에게 시집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1619년 보헤미안 인들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군주를 버리고 그를 왕으로 추대합니다. 그야말로 추대... 절대 혈연관계가 없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잠시 고민을 합니다. 그럼 잉글랜드랑 싸워야 되냐... 그런데 보헤미아와 잉글랜드는 너무 멀죠. 결국 오스트리아군은 프라하로 침공했고 프리드리히와 그의 아내는 겨울 한 계절만을 왕과 왕비로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잉글랜드군은 프라하에 가지도 않았죠. 결국 명분 싸움에서 이겼지만 실질적인 전쟁에서 패하면서 프리드리히는 조상의 영지조차 박탈당한 채 네덜란드로 망명합니다. 그리고 12년을 더 살다 마인츠에서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치고 맙니다.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공주는 더 오래 살았는데... 망명지에서 무척 궁핍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두 개의 왕관을 가진 왕이고 어머니가 덴마크왕의 공주였는데 말입니다.

 

 

보헤미아 왕이자 라인-팔라티네 선제후인 프리드리히 5세의 문장입니다.

보헤미아 문장을 제일 위에다 놓았군요. 나머지는... 한번 맞춰보세요. ㅋㅋㅋ

모라비아, 실레지아, 룩셈부르크... 엄청 나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선 13명의 자녀(9남 4녀)가 태어났는데 딸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귀족 사회에서 버림받았다고 해야 되나... 황제는 신교를 고수한다면 절대 영지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하는 통에... 결국 그의 살아남은 두 아들은 개종하고 조상의 영지를 돌려받습니다. 개종하지 않았던 아들 루프레히트(정말 인물이었습니다)는 외가 잉글랜드로 영구히 가버렸고 훗날 컴벌랜드 공작이 됩니다만... 딸만 둘 낳아서 가계는 곧 단절됩니다. 아무튼 살아남은 아들들은 한 명 빼고는 다 구교로 개종합니다.

 

그런데 12번째 자식이었던 소피아는 신교도 군주였던 벨프 가문의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에게 시집을 갑니다(그가 늦은 나이에 공작이 되는 통에 가능했던 일이죠). 이렇게 늦게 태어난 것이 행운으로... 그녀의 언니들은 다 시집을 못가고 소위 집귀신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신교도인 그녀가 낳은 딸은 신교도였던 하노버 선제후에게 시집가서... 이리하여 훗날 그녀를 통해 하노버 가문(조지 1세의 가문)이 잉글랜드 왕위를 획득합니다. 할머니가 신교를 고수했던 덕분에 외손자가 덕을 보게 됩니다. 다 이것도 행운이죠. 운은 노력을 능가합니다.

 

한편 1773년에 이르러 뮌헨을 중심으로 하였던 바이에른 공작 가계가 단절되자 가장 가까운 친족은 쯔바이뷔르켄 공작이었던 막시밀리안이었습니다. 아마 그는 마지막 공작과는 14대조가 비로소 동일한 할아버지였다는 사실...

당시 남계로는 두 개 라인만 살아남았는데... 즉 쯔바이뷔르켄(막시밀리안)과 비르켄펠트(빌헬름)... 이 두 분가만이 남계가 살아남습니다. 두 가문 중 막시밀리안의 조상이 형인 터라 바이에른 지역을 물려받았고 1806년 왕국으로 승격되어 초대 국왕이 됩니다. 그리고 빌헬름은 신생 바이에른 왕국의 공작이 됩니다. 물론 이 가문은 흥미롭도... 대대로 왕가의 사위가 됩니다. 이 빌헬름 라인의 남계는 1973년 단절되어서 막시밀리안 자손들만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습니다.

 

17세기에 잠시 쯔바이뷔르켄 분가에서 스웨덴 왕이 등장합니다. 카알 10세라고... 1654년 그는 외가 덕분에 즉위하는데 그의 손자였던 카알 12세가 결국 아들 없이 죽으면서 그의 누이 울리카가 계승... 결국 남계가 단절됩니다.

비텔스바흐 가문은 2번에 걸쳐 스웨덴 왕국을 획득하지만 오래 가지지는 못하는군요. 그렇지만 이 가문의 위상이 대단하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국왕들의 사윗감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가문이 번성하다는 증거겠죠. 단... 신교도 출신인 라인-팔츠 가문에서만 벌어진 현상입니다.

 

 

카알 10세, 카알 11세, 카알 12세... 3대에 걸쳐 사용했던 문장입니다.

역시 스웨덴 왕이라는 강렬한 포스가...

 

 

900여 년 동안 이 가문이 지녔던 작위는 Duke of Bavaria, Elector of Bavaria, King of Bavaria, Elector of the Palatinate, Elector of Cologne, Holy Roman Emperor, King of the Romans, King of Denmark, King of Sweden, King of Norway, King of Greece 등입니다.

... 그리스는 바이에른 왕국이 된 이후 19세기 중엽 1832년 막시밀리안의 손자 오토(1815-1867)가 그리스 왕으로 추대되면서 잠시 차지합니다만 아들이 없어서 왕관은 덴마크 왕실로 넘어갑니다.

 

 

14세기 독일연방제국의 영토 모습입니다.

역시 3대 가문은 대단합니다. 이들 가문들이 다 가져가는군요... 쩝...

이제 남은건 룩셈부르크 가문이군요. 이 가문도 한가닥 하지요.

 

 

비텔스바흐 가문은 바이에른 지방을 대표하는 이른바 터줏대감 가문입니다.

11세기 이후 줄곧 남계 라인으로 잘도 가문을 보존을 한 터라... 영지를 아주 보수적으로... 흠... 

아무튼 그런 동네로 통합니다. 지금도 정치 색채가 아주 보수적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는 바이에른 하면... 축구와 맥주 그리고 자동차(BMW)로 유명하지요.

 

이 가문의 문장이 바이에른 자체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독일연방 내에서 구교를 고수한 몇 안 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구교를 고수한 덕에 종교전쟁이 종결된 이후 통혼했던 가문은 대단합니다.

합스부르크를 비롯하여 프랑스 왕실과 통혼할 정도로 대접받죠.

본디 공작급인데 왕급으로... 뭐... 결국에는 왕국이 되었지만요. 결혼 덕분에... 

 

 

좌측은 1809년 처음 바이에른 왕국이 되었을 때 채용한 문장이고

우측은 1835년부터 1918년까지 채용한 문장입니다.

아마 라인-팔라티네 문장이랑 프랑코니아 문장을 합쳤다는...  아~ 결혼은 복잡해~

 

 

바이에른 왕국 시절의 비텔스바흐 가문 관련 이야기가 상당히 많지만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중요한건 크루세이더 킹즈의 세계이니까요. 이 가문에서 열렬한 크루세이더 킹이 있었다는 말은 없네요.

한마디로 종교적 열의는 그다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종교분리 때 바이에른의 가문원들은 구교를 줄기차게 믿어서... 이웃에 합스부르크가 있으니... 

그냥 조용히 남아서 구교의 대표적인 귀족 가문이 되었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어차피 크루세이더의 세계는... 프랑스가 최고니까요.

어서 프랑스로 넘어 가야 되겠는데 정리할 여유가 좀 부족하군요.

 

이 가문이 역사에 남긴 건 역시... 간지나는 문장 뿐입니다... (이건 완전 제 생각...올시다)

장문을 읽어주셔서 그저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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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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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라플 | 작성시간 15.03.06 어우 쉽게 설명해주셔도 워낙 가계가 복잡해서 이해가 쉽지않네요. 의문점이라면.. 장자에게 팔츠라인을 주고 차자?에게 바이에른을 주었는데 단기적인 작위파워는 바이에른이 낫네요? 어려워서 질문이 맞는지조차 의문!
  • 답댓글 작성자shyisn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3.07 답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당시 바이에른은 변경지역인지라 그다지 선호도가 무척 낮은 곳이라서... 바바리안이라는 어원이 시작된 곳이라면 이해에 도움이 될까요? 반변에 라인강변은 독일 문화의 중심지와도 같았죠. 프랑크왕국의 수도가 아헨이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요. 그래서 장남이 영지는 작지만 라인-팔츠 지방을 상속받고 영지가 넓어도 황무지와 이민족이 우글거리는 변경 바이에른은 차남에게 넘어가는 겁니다. 오늘날 비교하자면 장남에게 서울 강남 소재 소형 주공아파트 한 채 주는거랑 차남에게 강원도 속초 바닷가 소재 대형 아파트 한 채 물려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속초 분들 진실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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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shyisn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3.07 개인적으로 바이에른 하면... '막장드라마가 꽃피는 바이에른 공국'이 제일 생각납니다. 게임 입문 시기였던 터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면 웃겠죠...?
    '삶의 길'이 따로 없습니다. 바이에른에도 있었죠...ㅋㅋㅋ
  • 작성자핫도쿄 | 작성시간 15.03.15 방대한 지식에 감탄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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