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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이 갑옷, 철갑을 입었다는 것에 대한 참고자료입니다.(펌)

작성자자은|작성시간07.11.23|조회수592 목록 댓글 3
저번에 탐망군관 임중형이 좌수영 앞 장군도를 지나고 치타로가 지휘하는 고바야가 추격하는 장면에 나오는 사관론을 수정했습니다. 다른 곳에 인용할 때는 출처를 꼭 표시해주세요.

사관은 논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에서 군관급 아래 일반 수졸들이 갑옷을 어느 정도 비율로 입었을까? 임란 5년 전인 1587년 3월 2일 정해왜변 직후에 경상도 암행어사 이정립이 ‘병력은 출동준비를 갖췄고 궁시, 총통도 확보했고 철갑과 철환이 부족하나 현재 만들고 있다’고 보고하는 실록 기사도 있고, 조선 전후기를 통틀어 두정갑 등 갑옷을 대량으로 제작한 기록이 종종 나오니 임란 당시 장수나 군관이 아닌 일반 수졸들도 상당수가 갑옷을 입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명백히 상반되게 예나 지금이나 조선 군사들은 갑옷을 거의 입지 않는다는 실록 기사도 있으니 조선 수군이 100% 갑옷을 입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또한 임란 당시 전투가 아닌 조선 후기 수군의 훈련 상황을 그린 삼도수군조련전진도를 보면 상장의 전투원이나 하갑판의 격군이나 관계없이 대부분 장수와 병사들이 갑옷을 입지 않은 것으로 명백히 판별된다.
그런데 조선 후기 전선 1척과 사후선 1척을 운영했을 당시에 작성된 함평현 읍지에서 <수군기물 목록>에는 함평현이 수군용으로 철갑과 투구 50벌씩을 보유했다고 적혀 있다. <영암읍지> 진보鎭堡 편에는 당시 영암현 관할구역에 위치한 이진진과 어란진에 각각 철갑과 철 투구 47벌씩 비치돼 있다고 기록됐다. 어란만호진은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을 운영하고, 이진만호진은 여기에 방선 1척이 더해졌는데도 철갑과 투구 보유량은 함평현보다 오히려 더 적다. 그런데 어란진은 피갑주皮甲冑, 즉 가죽찰갑으로 만든 갑옷과 투구 20벌을 추가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진도군은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을 운영했는데 철갑과 철 투구 69벌에 종이로 만든 엄두, 엄심갑 각 4벌을 보유했다.
철갑 47벌에서 69벌이라면 판옥선 상장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수졸이나 병선 등 소형 함선, 혹은 사후선에서 노를 젓는 격군 대부분이 입을 수 있는 수량이다. 여기에 피갑주 20벌이나 엄심갑 등이 추가되면 기라졸과 사공 등 비전투원을 빼면 거의 100% 착용 가능한 셈이다. 참고로 판옥선 상장 안에서 충분히 보호받으며 노를 젓는 격군 같으면 갑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
반면 함평현에 수군보다 육군 병력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육군기물 목록>에 기록된 철갑주는 7벌에 불과하다. 왜선에 비해 높은 상장과 여장, 그리고 방패판으로 충분한 방어력을 제공 받는 판옥선에서 싸우는 수군은 철갑을 입는데 적과 칼날을 직접 맞대는 육군은 갑옷을 입지 않는다는 모순된 결론에 도달한다. 여러 가지 연구할만한 소지가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해보자. 가야시대 판금갑옷은 통짜 쇠로 만들어졌는데, 엄청나게 무거워 보병이 입으면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학자들은 처음에 이것을 의식용이거나, 아니면 기병이 착용했을 거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나중에 이 판금갑옷은 보병이 성곽을 방어하면서 입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 조선 육군이 아닌 수군이 다른 갑옷도 아닌 철갑을 입는 것도 전투 중에 움직일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 아닐까?
화승총 등 개인용 화약무기가 발달한 이후 세계 모든 나라의 육군은 점차 갑옷을 버리게 된다. 총알을 막을 수 있는 갑옷은 거의 없고 혹시나 그런 갑옷을 만들더라도 너무나 무거워 차라리 갑옷을 안 입고 빨리 움직이는 편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조선도 후기에 들어 육군은 무거운 철갑을 입지 않았고, 두정갑에서도 철 찰갑을 빼 갑옷이 단순한 유니폼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경제적 이유 외에도 화약무기가 발달하면서 갑옷의 효용성이 많이 떨어진 탓이다.
반면 수군은 육군에 비해 빨리 움직일 필요가 적고, 제자리에서 활이나 포를 쏘기만 하면 된다. 방어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테니 무거운 철갑도 입을만하다. 판옥선 상장에서 싸우는 수군은 성곽을 방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동할 필요성이 적기 때문에 철갑이 무거운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판단할 경우 상충되는 사료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사실 사관은 논한다 바로 밑에 나온 첫 번째 문단에 나온 여러 인용문들은 수군과 육군을 구별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 철갑이 충분하다, 즉 임란 5년 전에 철갑이 부족하나 만들고 있다는 실록 기사는 수군과 바닷가 고을 이야기였고, 조선군이 예나 지금이나 갑옷을 별로 입지 않는다는 실록 기사는 육군 이야기였다. 그러니 조선의 중앙군과 함경도 6진의 병사, 그리고 지방군 기병이나 보병 등 병종이나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육군은 대체로 두정갑, 면갑, 지갑紙甲 같은 비교적 가벼운 갑옷을 입거나 아예 입지 않은 반면, 수군은 판옥선 상장이나 소형 함선에서 활동하는 전투원 및 소형 함선 격군 대부분이 무거운 철갑을 입고 철 투구를 썼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 전후에 사용된 철갑이 어떤 종류의 갑옷인지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조선 중기나 후기의 여러 사료를 살펴보면 철갑은 단순히 철로 만든 일반적 갑옷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특별히 구분된 갑옷의 한 종류라는 식으로 기록됐다. 조끼 모양의 옷 안에 무쇠 통판을 덧댄 흉갑이나 조선 전기에서 중기까지 기록에 종종 등장하는 종이로 만든 엄심갑과는 확실히 다른 종류로 사료에 나온다.
<세종실록 오례의 군례서례>에 기록된 철갑에는 수은갑과 유엽갑 두 종류가 있다. 수은갑水銀甲은 별칭이 백철갑白鐵甲이었고, 쇠로 만든 미늘札에 수은을 덧칠하고 가죽으로 엮어 만든 찰갑이다. 삼국시대 찰갑과 만듦새가 비슷하며 빛을 반사해 번쩍번쩍 화려하다. 유엽갑은 수은갑처럼 쇠로 만든 미늘을 그을린 녹비로 엮어 검은 옻칠을 한 것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편 제5권> 부록을 참조하면 알 수 있듯이 두정갑은 철 찰갑 조각들이 옷 안쪽에 달려있는 반면 철갑은 철 찰갑이 바깥에 드러나 있고 또한 찰갑끼리 가죽으로 직접 연결됐다는 차이가 있다. 수은갑은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나가는 신립 장군에게 임금이 하사한 예나 국왕 호위병인 내금위가 착용한 사례로 볼 때 고급 갑옷이었다. 결국 수군 각 진포에서 보유한 철갑은 수은갑이 아니라 겉 칠만 달리한 유엽갑 혹은 유엽갑에서 개량된 좀 더 저렴한 갑옷으로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읍지에 기록된 철갑 수량은 각 수군진포에서 자체 보유한 것이고 장수나 군관, 수졸들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것이 아니다. 정공청 장군이나 류성룡의 갑옷 유물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지휘관인 장수들과 신분이 높은 군관들은 개인 소유의 갑옷을 따로 입었다. 그러니 상장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수졸들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간다.
물론 임란 기간 중 수군이 크게 증강됐으므로 이와 동시에 철갑을 추가로 생산하더라도 소요를 맞췄을지는 약간 의문이다. 그러나 전시에 군수품 생산이 급증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임란 당시 수졸들이 착용할 철갑이 크게 부족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아 원균이 수사를 맡은 경상우수영도 개전 직전인 3월 하순에 경상감사가 수영과 경상우수영 예하 19개 수군진포를 빠짐없이 돌며 검열했으니 최소한 개전 당일에는 철갑이 부족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난중일기> 임진년 3월 6일자를 인용한다.
<맑았다. 아침을 먹은 뒤 출근해 군 기물을 점검했다. 활, 갑옷, 투구, 통아, 환도가 깨지고 헐은 것이 많고 기준에 미달하는 것들이 매우 많았다. 색리, 궁장, 감고 등을 논죄했다. 晴. 朝食後出坐. 軍器點閱 弓甲兜鍪桶兒還刀 則多有破毁之物 不成樣者甚多 色吏弓匠監考等論罪.>
우리는 여기서 임진왜란 직전 전라좌수영에서 갑옷과 투구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난중일기>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면 누구나 읽었을 만한 임진년 초반 기록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기록을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갑옷을 입었느냐는 논제와 연결 짓는 경우가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 기록을 살펴봤다. 조선 전기에도, 후기에도, 그리고 임란 직전에도 수영과 수군 각 진영에서 갑옷을 보유했다. 그렇다면 조선 수군이 전투 중에 갑옷을 입었다는 소리지 그저 창고에 보관만 했겠는가?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은 전투원 대부분이 갑옷, 특히 철갑을 입고 해전을 수행했고, 육군은 대부분이 벗고 뛰었다.
출처 : 김경진, 안병도, 윤민혁 공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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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자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11.24 조방장 김완은 정유년 7월 해전에서 갑옷 입고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저고리 방식의 갑옷은 유사시 빠른 시간 내에 벗을 수 있습니다. 철갑을 가야단갑이나 서양식 판금갑옷으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장군급 이상은 그럼 왜 갑옷을 입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장군들은 중요해서 입고, 수군들은 중요 않해서 안 입는 건 아닐텐데 말이죠.
  • 답댓글 작성자자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11.24 조선시대 철갑은 정확하게 어떤형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그림대로 두정갑으로 입혔는가는 고려의 대상이겠지만, 조선 시대 수군이 철갑을 입지 않았다는 점은 다소 무리가 있는 내용인듯 합니다. 다음은 참고 링크입니다.(조선시대 찰갑출토;)http://news.media.daum.net/culture/art/200706/05/yonhap/v169866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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