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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Irea 작성시간14.04.08 첝 당시 오스만은 러시아의 남진 저지나 영-프의 경제원조(국가재정엔 원조, 민간경제는 수탈) 때문에라도 독일쪽으로 아주 기울어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7월 말 전함 압류 -> 반영여론 악화 -> 8월 10일 궤벤 입항&판매 제안 -> 친독여론 강화 -> 14일 청년 투르크당의 엔베르 파샤의 독단적 대독 군사동맹 비밀조약 체결(아타튀르크의 회고록에 나옴) -> 16일 괴벤 판매 -> 친독여론 강화 -> 독일의 지원과 친독여론을 등에 업은 청년투르크당이 중립을 고수하던 늙은 대신들 밟아버리고 대독 군사동맹 공식화 -> Profit!
흘러가는걸 보면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불안정하던 오스만의 외교 테이블에 날린 밥상 뒤집기 였... -
답댓글 작성자 첝 작성시간14.04.09 Irea 러시아와 영국은 이미 얘기가 끝난 상황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중앙아시아, 극동, 이란을 차례대로 점령하고 러시아와 영국의 제국주의 경쟁은 일단은 영국 우위로 끝난 상태였고... 당시 영국의 문제는 뷜로와 티르피츠가 주축으로 세계패권 도전, 그리고 그 일환으로 함대 건설을 추진하는 독일이었으며 기존에 러시아를 막는 방파제로써 오스만의 가치는 사실상 끝난 상태에서 영국이 굳이 오스만을 살려줄 필요가 없던 상황... 결국 영국 입장에서는 오스만을 선택하느냐 러시아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였는데, 여기서 뭘 선택할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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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첝 작성시간14.04.09 Irea 제가 뭐 무례한 행동이라도 했나요? 불쾌하군요.
도널드 쿼터트의 오스만 제국사나 여타 1차대전 관련 논문이나 보시죠. 19세기 이래로 오스만은 철저히 종속변수였어요.
"영국 입장에서는 러시아를 동맹으로 끌어들이는 게 이익이고, 러시아 입장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을 받아야만 했다."라는 것이 대명제고, 이 구조 안에서 오스만은 뭘 해도 동맹군에 붙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주장의 핵심입니다. 전함은 그냥 에피소드일 뿐이에요. 이 뜬금없는 반응에 정말 어이가 없군요. -
답댓글 작성자 첝 작성시간14.04.09 Irea 그리고 제1차세계대전의 본질이 총력전 체제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상 마른 강의 기적 이후에 지리한 참호전의 지옥으로 들어간 이후에요. 영국이 전함을 뺏은 1914년 7-8월까지만 해도 이게 총력전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왠만한 사람들은 다들 생각도 못했고, 보불전쟁식 단기결전이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애초에 당사국들 전부가 전쟁 그렇게 오래 할 생각조차 없었고요.
오스만의 참전이라는 게 총력전 하에서 의미가 없진 않았죠. 하지만 그 사람들은 총력전이라는 것 자체를 아직 인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첝 작성시간14.04.09 Irea 그런데 총력전 상황이라는 것도 당시 몰랐던 영국인들에게 "아 이 전쟁은 총력전이 될 거니 오스만을 잡아 놔야겠어!"하는 시대를 뛰어넘는 식견을 기대한단 말입니까? 영국이 전함을 뺏은 건 외교적 신뢰 차원에서 규탄 받아야할 일이지만 당시 7-8월에서 오스만이 붙냐 마냐는 "그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어요. 님의 말은 철저한 결과론입니다.
첫째로 전쟁이 장기화될 거라는 생각도 못했고, 둘째로 러시아의 요구를 만족시켜줘야 하는 상황에서 오스만을 끌어들인다고 러시아를 버린다고요? -
답댓글 작성자 첝 작성시간14.04.09 Irea 그리고 러시아군이 아무리 개삽질만 하는 쓰레기 군대였다고 치더라도, 러시아군이 갈아마셔준 오스트리아군과 동부전선에서 허우적대게 만든 독일군을 생각하면, 갈리폴리와 중동에서의 병력 투입은 싸게 먹힌 편이에요. 영문판 위키백과만 봐도 당시 동부전선에서의 독일군이 손실만 80만이고 오스트리아군은 100만이 넘네요. 사상자는 합쳐서 730만명. 단위부대 당 전투력이 독일군이 영국군보다 더 위였다는 걸 생각할 때, 영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오스만 따위보다 러시아를 선택하는 게 더 맞는 선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