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 주제로 한 사극이 나올 때마다 나온 말인데
도대체 뭘 재평가 할게 있다는거지요?
예전엔 장녹수랑 동급으로 취급받았던게 여성학계에서 좀 억울해서 그런가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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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스아스터 작성시간 17.01.07 장희빈하고 인현왕후 둘다 숙종의 장기말에 불과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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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대명궁 작성시간 17.01.08 옥산부대빈 장씨.. 장씨의 본명의 미상이며 옥정은 소설속 근거로 명성황후 민씨와 같이 이름이 내려오나 둘다 실제 이름은 모름.. 민자영이라고 알고 있으나 조선시대에 여성의 이름 감히 적는 것이 아님므로 성과 본만으로 기록을 합니다. 둘다 소설속의 이름이 회자되면서 내려오는 것으로 한명은 왕후에서 대빈으로 한명은 황후의 신분이라 감히 휘를 후세에 남기는 것은 금기라 기록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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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대명궁 작성시간 17.01.08 경종의 모후로 경종이 대빈궁을 짓고 사친의 예를 다한다.. 이게 칠궁의 시작입니다. 칠궁중 대빈궁만 둥근 기둥을 세우는데 이는 한때 왕비라 칠궁의 후궁중에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원으로 추존 받지 못해 묘는 대빈지묘로 영조의 사친보다 격이 떨어지나 영조도 감히 자신의 사친을 대빈보다 높일수 없어 묘에 원이라는 추존으로 대빈보다 높게 하였을 뿐... 태묘에 들진 못했으나 왕의 사친임으로 따로 廟를 만들어 사시절 제를 올립니다. 숙종의 애증의 여인이나 사후 세자를 바뀌지 않았고 숙종 말년 대리청정을 당시 세자에게 위임하니 이가 바로 경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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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대명궁 작성시간 17.01.07 대명궁 숙종의 치세 말년의 치적은 경종의 치적이고 경종의 재임이 불과 3년이라 영인군을 왕세제로 삼아 위를 불려줌.. 선대의 악업인지 모르나 영조의 비긋이 숙종대 부터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세자를 사사하게 이른것이며 이는 영남 유림중 남인의 몰락의 원인이 됩니다. 대빈의 장례후 숙빈최씨도 사가에 나가 살도록 하는데 이는 당시 영인군이 아직 관례를 올리지 않는 일개 군호를 받은 것에 불과한 것으로 출궁을 당함... 숙빈은 그후 다시 입궐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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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대명궁 작성시간 17.01.07 대명궁 후궁은 선대왕이 승하하면 출궁하는데 자식이 있으면 대게 자식들의 사가로 나가고 없으면 출가를 하는게 당시 법도로도 숙빈 출궁당시 왕이 승하한 것도 아닌데도 이례적으로 출궁을 하였습니다. 이는 거의 궁에서 축출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는 조선내엔 거의 없든 것으로 이게 전례가 되어 고종때 귀인이씨가 완칭왕을 낳자 출궁을 했고 귀인장씨가 의친왕을 낳자 출궁한 전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