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사회적 현상이다.'
라는 주장을 하는 책이 에밀 뒤르켐의 저서 '자살론'입니다.
에밀은 자살을 개인이 선택해서 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요소의 변화에 개인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증상으로서 인식했습니다.
이전에는 자살은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살은 '죄'였죠. 그걸 선택한 사람이 나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다양한 사회적 요소 - 전쟁, 경제 위기, 사회변화 - 가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정립함으로써 자살이 단순히 한 인간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할 내용임을 증명해 냈지요.
대표적인 예가 자살론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아노미적 자살'이라는 내용입니다.
인간은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회는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규범'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사회의 규범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규범이 변해버리면? 인간은 적응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규범에 적응하는 것은 심각한 스트레스이고, 그 적응 과정에서 많은 자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아노미적 자살'의 주된 내용입니다.
IMF 사태는 우리나라 사회에 전혀 다른 규범을 만들어냈습니다.
비정규직이 생겼고 실업률이 치솟았습니다. 안정된 직장에 대한 선호가 생겨났죠.
그 외에도 다양한 규범의 변화가 생겨났고, 이에 따라가지 못 한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경제 위기라면 그렇다 치고, 그럼 경제 호황기에는 자살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까요?
에밀은 호황기에는 적응이 쉬우니 적응을 해내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역시 규범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일정 비율로 존재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코인이나 주식, 부동산 등으로 큰돈을 벌고도 변해버린 상황에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사례가 될 수 있겠죠.
이렇게 사회의 규범이 변화하면 그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은 커다란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렇다면 해결방법은? 사회의 규범을 빠르게 잡아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에 취약한 계층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요.
인간은 어디로 나아갈지 모를 때,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내가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를 때 가장 괴롭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살면 된다!'라고 길을 제시해주면 된다는 것이죠. (물론 엄청나게 어렵기는 하겠습니다만.)
근래에 젊은 사람들이 기성세대에게 분노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이렇게 살면 된다!'라고 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히 돈 저축했더니, 이제와서는 남는 것도 없고 바보 취급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규범을 적응할 틈도 없이 바꿔버리고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도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책임을 넘겨버리거나 아무 대처를 안 해주니, 젊은 사람들이 화가 날 수밖에요.
양성 갈등도 비슷합니다.
현재 페미니즘을 이끈다고 하는 30~40대 여성들은 어려서 '남자 하고 정정당당히 경쟁해서 성공하라.'라는 규범을 부모님과 학교에서 듣고 경험하며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성장하고 사회로 나와보니 사회 자체는 남자와 여자가 완전히 정정당당히 경쟁하는 곳이 아니었지요.
사회에 진출해서 일하라더니 임신하면 눈치 주고 실제로 직장을 유지하기 힘든 사회라니.
배운 규범과 실제 규범이 다르니 분노하게 되었겠죠.
그러니 여성에게 더 많은 권리와 현재까지 불리하게 적용했던 부분에 대한 보상까지 요구했겠고요.
최근 양성 갈등에 분노하고 행동에 나선 20~30대 초 남성들도 비슷합니다.
학교에서 남자들은 도저히 남자가 여자의 우위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그런 형태의 가정은 거의 사라졌지요.
'남자와 여자는 같다'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앞에 페미니즘을 이끈 여성들에 의해 오히려 여자가 대우받는 부분이 눈에 띄게 되었죠.
사회에 나가지도 전에 남자가 역차별을 당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죠.
같다고 규범을 집어넣어 놓고는 실제 자신에게 적용되는 규범은 여자에게 유리하게 되니까요.
결국 양측에서 사회에 자신에게 유리한 규범을 적용시키기 위하여 달려들고 있습니다.
젊은 치기로 아주 저렴하게 싸우고 있어요.
저는 이 모습이 너무나도 불쾌합니다.
결국 사회는 시스템입니다. 시스템은 여러 가지 형태로 생겨나지요.
무한도전에서 소개팅 특집에 불편하다고 몇몇 분들이 몰려가서 항의하는 형태의 일이 많아지자 비슷한 프로그램은 모두 조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어떤 사회적 집단이 힘을 발휘한 예이지요.
지금 양진영은 이것 가지고 어떻게 해보려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하여 시스템을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법과 정책이지요.
민식이법이 통과되는 것 만으로 학교 앞 통행의 규범이 변했습니다.
직접적으로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정치인들은 양진영을 통합하려고 움직이지 않고, 각자의 편으로 만드려고 하고 있습니다.
선거가 끝나니 20대 남성은 누구 편이고, 20대 여성은 누구 편이라고 하고 있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회의 작은 부분부터 '차이'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제도를 만들 정치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자살도, 양성 갈등도, 세대갈등도 결국 사회에 적용된 규범과 관련된 사회적 현상입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는 정치인들의 힘이 절대적이고요.
그들이 어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를 촉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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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인생의별빛 작성시간 21.05.03 대체로 공감합니다. '아노미'가 본문에도 언급되었습니다만, 아노미 현상 자체가 '사회 규범의 위기'를 뜻하는 것인데, 그런 와중에 고위층, 다시 말해 '사회 원로들'의 역할을 요구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겠죠.
사회 규범이 안정적인 상황에서야 원로들의 영향력이 강한 것은 상식적인 예측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규범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문제를 인식한 민중이 절박하게 찾아다니고 권력을 쥐는 '멘토'는, 보통 데마고그들이 많죠. 제도권 외부의 문제적 인물들입니다.
참신하고 사회변화를 대변해주는 인물들이기야 하겠지만, 그들 역시 아노미의 결과물인만큼 아노미를 심화시킬지언정 아노미를 안정시키는 역할은 할 수 없죠.
그런 의미에서,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스타 경제인'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 자체가 그런 현상의 하나일 겁니다. 원로들은 진부하고, 영향력을 상실했어요. 차라리 사회변혁을 주도하는 신세대 기업인이나 전문투자자가 더 각광을 받죠. -
작성자37式大化 작성시간 21.05.04 페미들이 아가리 단속만 잘 햇으면 한국남자들은 지금도 조직적인 반발 없이 뭐 모르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불합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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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통장 작성시간 21.05.06 7080은 확고한 가치관이 있었고 뭐가 옳은지에 대한 모두의 투쟁이 있었지만, 그래도 결국 끝에서는 둘다 윈윈으로 갔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싸움의 끝이 해피엔딩일지는 모르겠네요. 왜 가면갈수록 속이 답답해지는 사회가 되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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