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RPG의 등장인물이나 사건은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이를 통해 불쾌감을 느끼게 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립니다.
이 RPG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국가, 회사 또는 단체, 그 밖에 모든 명칭,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유사한 예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이 RPG는 특정한 사상, 이념, 정치체제, 인권 탄압과 폭압적 정치 질서를 옹호, 미화하거나 찬양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우리는 혁명에 관한 낭만을 끝냈다. 이제 우리는 혁명의 역사를 시작해야 한다. 혁명의 원칙을 적용하는 데에 현실적이고 가능한 것만을 보아야지, 사변적이고 가설적인 것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통치가 아니라 한낱 철학일 따름이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장 25년에 걸쳐 전 유럽을 뜨겁게 불태웠던 혁명전쟁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프랑스인의 황제, 혁명의 종결자이자 완성자, 인민과 자유의 보호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결국엔 패배하고 몰락하는 “인간”이었습니다. 천하의 영웅이라 불리며 유럽을 발 아래 두었던 그는 1814년 짤막한 연설만을 남기고 퇴위하여 엘바 섬의 영주가 되었고, 모두가 잠시 잊고 있었던 옛 질서가 되돌아왔습니다.
이젠 누구도 혁명을 대의를 외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장 반동적인 이들, 역사의 수레바퀴를 어떻게든 거꾸로 돌리거나 적어도 멈춰있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메테르니히 같은 자들이라도 한 가지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뭇 인민의 심장에 질러진 불은 잠시 꺼질지언정 그 흔적마저 지워질 수는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프랑스는 형제애에 기반해 인민을 그 주권자로 세워진 자유롭고 평등한 공화국입니다. 그것이 1792년 8월 봉기 이래 프랑스 인민의 마음 속 깊이 아로새겨진 정언명령이고, 언제가 되었든 다시 이룩해야 할 목표입니다. 간혹 압제자가 나타나 인간의 천부적 권리를 박탈하더라도, 결국 그 시련을 인민 스스로 극복해낼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민은 더 이상 노예가 될 수 없습니다. “공화국”이라는 단어에는 그러한 의미가 새겨져 있으니까요.
즉,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분리될 수도, 굴복할 수도 없는 공화국”을 재건하고 만세토록 유지되게 하십시오. 당신이 그것을 원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시민으로서의 의무이기 때문에..!
규칙 설명.
1. 이벤트(Events)
본 RPG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프랑스 혁명(이하 ‘리제로’)”는 기본적으로 [사건 발생 - 해결 - 보상]의 구조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만들게 될 리제로의 캐릭터들은 상술한 “전체 목표(공화국의 재건 및 유지)”를 공통 분모로 할 뿐, 각기 다른 개인적 동기와 목표를 가지고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즉 캐릭터마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이나 목표가 가지각색일 수 있으며, 충돌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의 캐릭터들은 다 같이, 혼자, 또는 조를 이루어 이벤트에 참가하여 목표 달성을 위해 한 걸음씩 내딛게 됩니다.
2. 능력
능력이란 말 그대로 각 캐릭터가 갖고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진 12개의 능력이 존재하며, 그 수치가 높을 수록 해당 능력이 필요한 행동을 할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각각 최대 7까지 올릴 수 있으며, 수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올리고자 하는 등급 숫자만큼의 경험치가 필요합니다. 가령, “선전” 능력을 1에서 3까지 올리기 위해서는 경험치 2포인트(1->2레벨) + 3포인트(2->3레벨), 총 5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수치상으로 능력이 탁월하다고 하더라도, 틀린 판단에 기초하여 행동할 경우 그 우수한 능력이 오히려 비수로 날아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통솔
1) 지휘 : 대규모 제대(가령, 1개 군단)의 기동, 전투 및 각종 작전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능력입니다.
2) 조직 : 인적 네트워크를 편성하고 활용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는 능력입니다.
3) 운영 : 물적 네트워크를 편성하고 활용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는 능력입니다.
***지식
4) 논변 :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상대를 이성적으로 논박하거나 설득시키는 능력입니다.
5) 저술 : 특정, 불특정 다수의 대상에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써 전달하는 능력입니다.
6) 고찰 : 이미 주어진 정보에 근거하여 일의 성패, 향후의 사태 전개방향 등을 ’추측‘하는 능력입니다.
***감각
7) 호신 : 자기 자신을 물리적으로 보호하고 운신하는 능력입니다.
8) 의지 : 자기 자신을 정신적으로 보호하고 상대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입니다.
9) 선전 :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대상을 비이성적으로 설득하거나 무언가를 따르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기술
10) 경영 : 어떤 방법으로든, 경제행위를 통하여 수익을 창출하거나 그 외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입니다.
11) 위조 : 공문서인지 사문서인지, 매체의 종류에 관계없이, 어떠한 매체를 위조하는 능력입니다.
12) 공작 :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인원으로, 상대에게 피해를 줄 목적의 행동을 실행하는 능력입니다.
경험치는 상기 4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 지급되며, 각 이벤트 종료 후 지급됩니다. 이벤트가 시작하기 전에만 경험치를 투자할 수 있지만, 불시에 시작했을 경우는 예외로 합니다.
3. 트레잇
트레잇은 각 캐릭터가 1개 이상씩 가지고 있는 고유적 특성을 뜻합니다. 보너스가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페널티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트레잇은 진행자인 제가 캐릭터의 배경 이야기와 해당 캐릭터가 각종 이벤트에서 취하는 행동에 따라 임의로 부여합니다. 비공개이거나 일회용이거나, 트레잇의 설명 일부만 비밀일 수 있습니다.
4. 판정
리제로에서 모든 판정은 6면체 주사위 3개(3d6)를 사용하여 이루어집니다. 최소 3(1,1,1)에서 18(6,6,6)까지의 값이 나올 수 있고, 전자를 펌블, 후자를 크리티컬이라 부릅니다. 세부적으로는 이렇게 분류됩니다.
순수 3 : 대실패
페널티에 의한 3 : 대실패에 준함
4-5 : 심각한 실패
6-7 : 실패
8-12 : 부분적 성공
13-15 : 성공
16-17 : 상당한 성공
보너스에 의한 18 : 대성공에 준함
순수 18 : 대성공
캐릭터가 가진 능력치, 트레잇에 따른 보정치(보너스, 페널티)가 주사위 값에 붙을 것입니다. 다만, “판정상 성공”이 꼭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으며, 현실적으로 어려운 난이도의 행동일 경우 결과의 고점이 높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령 ”혼자 말을 달려 수천의 근위대에 의해 보호받는 적장의 수급을 베겠다“는 선언을 판정할 경우, 대성공이 나오지 않는 한 정말로 적장에게 위해를 미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값이 좋으면 근위병 몇몇은 저승길로 데리고 갈 수는 있습니다.)
5. 캐릭터를 만들어봅시다
- 이름 : 피에트로 로디 디아만테
- 플레이어 : E.E.샤츠슈나이더
- 성별 : 남성
- 생년월일 : 1782년 12월 6일
- 모국어 : 이탈리아어(나폴리 방언)
- 구사가능언어 : 프랑스어, 스페인어
- 능력치 :
지휘( )/조직( )/운영( ) ; 논변( )/저술( )/고찰( ) ; 호신( )/의지( )/선전( ) ; 경영( )/위조( )/공작( )
- 트레잇 :
- 잔여 경험치 :
통솔( ) / 지식( ) / 감각( ) / 기술( )
- 배경 :
나폴리에 매우 짧게 존재했던 파르테노페 공화국의 지도자들 중 하나인 자코모 디아만테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피에트로는 조실부모하고 외젠 드 보아르네의 이탈리아 왕국군에 입대하여…
참가를 원하시는 분들은 댓글로 참가 의사를 알려주시고, 위 캐릭터 시트 예시에서 색깔 처리된 부분만 작성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캐릭터 메이킹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여러분의 캐릭터는 성장기에 공화국의 이상을 경험하였습니다. 즉, 유년기나 청소년기를 1792-1799년 사이에 보냈어야 합니다. 생년 기준, 1774-1786년생에 해당합니다.
2. 여러분은 공화주의 세력의 일부이며, 인민이 주권자가 되는 정부를 지지합니다. 이미 혁명기와 나폴레옹 전쟁기의 참혹함을 경험했기 때문에, 여러분의 캐릭터는 아주 극단적인 사상을 가지지는 않았으며, 기본적으로 신분제를 거부합니다. (예: 능력없는 놈은 굶어죽어야지!)
3.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기반은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설정에 수정 요청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4. 캐릭터의 설계가 RPG의 목표(공화국 재건 및 유지)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면 수정해야 할 수 있으며, 일부 수정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반려 처리될 수 있다는 점 미리 고지드리며, 양해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5. 시작 날짜는 1815년 3월,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해 파리로 진격하는 와중입니다.
CANON - 약간은 어긋난 혁명의 역사
Canon 1. 테르미도르
공화력 2년 봄(1794년), 공화국은 언제나 그랬듯 혼란스러웠습니다. 혁명전쟁이 시작된 지 약 1년, 국내 각지는 반란으로 들끓고 물가는 치솟았으며 교회가 소유하던 토지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 부유 시민들에게 차등 분배(매각)되며 상퀼로트들의 불만도 차올랐습니다. 당통의 매국행위를 처치하고 “반역자 재산 분배법”을 가결해 재산 재분배를 통해 에베르의 좌파와 연합하려던 로베스피에르의 계획은 그 에베르가 얼마 전 옥중 자살한 자크 루 신부의 세력을 규합해 국민공회를 점거, 호민관에 의한 독재정을 수립하려던 시도에 의해 좌절되었습니다. 결국 에베르와 당통이 모두 제거되면서, 공화국을 재건하려는 모든 급진적 시도의 후과는 로베스피에르와 그 일파들이 홀로 감당해야 했죠.
로베스피에르의 선택은 간단했습니다. ’프레리알 22일법‘을 통해 반혁명분자들을 사실상 재판 없이 처벌 및 재산을 몰수할 수 있게 하고, ‘제르미날 27일법‘을 통해 공안위원 11인이 모든 행정권한을 독점케 하고, 반혁명분자에 한한 무상몰수-분배를 통해 국가를 단결시켜 혁명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계획이었죠. 그러나 자크니콜라 비요바렌, 장마리 콜로데르부아, 조제프 푸셰 등 로베스피에르파에 속했던 인사들마저 이 독재자에게 등을 돌리는 결과는 치명적이었습니다. 로베스피에르 특유의 청교도적 윤리와 “누구든 내일 단두대에 목이 걸릴 수 있다”는 식의 공포를 조성하는 화법 등은 모든 이들을 겁에 질리게 했고,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었으니까요.
테르미도르 5일(7월 23일), 공안위원회 회의에서 비요바렌이 로베스피에르에게 공개적으로 충성을 맹세했을 때만 해도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3일 뒤 로베스피에르는 여느 때처럼 반역자들을 단두대로 보낼 것이라 힘차게 연설했고, 결정적으로 그 반역자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반대파의 공포를 극대화, 다음 날인 테르미도르 9일 그 자신을 몰락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공포에 질린 인간’ 중에는 물론 극좌파에 속했던 몽포르 후작도 있었습니다. 정세판단 능력이 전무한 에베르파가 자멸하는 동안 어떻게든 좌익을 규합하여 비요바렌, 데르부아 등을 독재자와 맞서게 했던 그 역시 생존전략을 마련해야 했고, 그가 찾아갔던 것은 암약가 조제프 푸셰였습니다. 푸셰는 두달째 국민공회에 출석하지 않으며 인적 네트워크의 구축에만 몰두하고 있었죠.
탈리앵, 바라스, 브루동 등 ‘우파’와 좌파를 규합해 로베스피에르에 대적하기 위한 계획이었습니다. 물론 이 계획은 테르미도르 9일 로베스피에르가 국민공회에서 연설 중 다수 의원들에 의해 체포되면서, 그리고 감옥을 습격해 그를 파리시청으로 호송한 파리코뮌 민병대들이 국민위병에게 진압당하면서 완벽히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가 몰락했다는 것은, 곧 그가 기획하던 경제 혁명과 국가단결, 신국가계획이 파산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몽포르와 좌파 동료들이 이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Canon 2. 플로레알
체포되어 끌려나가며 “이제 공화국은 끝났다”던 로베스피에르의 말이 단순한 저주가 아니었음은 명백했습니다. 평원파의 부르주아들이 장악한 정국은 로베스피에르와 관련된 모든 것, 지난 2년간 쌓아올린 모든 것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베스피에르로부터 살아남으려 발악했던 산악파의 일원들은 이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자코뱅적 신념을 부정하고,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고, 자신의 행적을 부정해야 했습니다.
탈리앵, 바라스, 시에예스, 티보도, 당글라 등의 평원파, 또는 일명 “테르미도르파”는 전제군주의 복귀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서민에 의한 민주주의의 파멸”을 두려워했습니다. 바레르, 비요바렌, 콜로데르부아, 바디에 등이 체포되어 처형되거나 유배당했고, 몽포르와 푸셰 역시 수감되었다가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시대는 이상주의자 몽포르와 카멜레온 음모가 푸셰의 연합을 불러왔죠.
로베스피에르와의 목숨을 건 전투에서 살아남은 조제프 푸셰는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고, 지난 2년간 반혁명이 대죄sin였던 것처럼 이제는 혁명이 대죄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익히 알았습니다. 콜로데르부아와 함께 리옹의 파견의원으로서 “대량 처형”의 총책임자(물론 국민공회의 명령에 따른 행위였습니다)였던 푸셰가 살아남을 길은 요원해보였죠. 유일한 방법은 몰락한 극좌파를 도와 상퀼로트의 폭동을 조직, 테르미도르파가 장악한 국민공회에 맞서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혁명력 3년 플로레알 26일(1795년 5월 15일)의 상황은 그러한 봉기에 최적화되어 있었습니다. 최고임금제와 최고가격제의 폐지로 물가는 치솟았고 아시냐의 실질가격은 명목가치의 3%까지 떨어졌으며, 결정적으로 파리에 “빵이 없었습니다”. 몽포르와 푸셰라는 거물 정치인의 후원을 감격스럽게 생각하던 프랑수아노엘 “그라쿠스” 바뵈프는 사람을 모아 “호헌(1793년 헌법), 인권, 정의, 그리고 빵!“을 구호로 1792년 9월의 대봉기를 재현하려 했습니다. 실제로 그 시도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무산자들이 튈르리 궁을 점령해 바라스와 시에예스가 걸인으로 변장해 파리를 빠져나가야 했을 정도였죠.
물론 몽포르를 호민관protectorat으로 하는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정권은 단 일주일만에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로베스피에르 정권과 연관되어 궁지에 몰렸던 젊은 지휘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바라스와 접촉해 “1개 연대만 주면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고 장담했고, 이는 실제로 거리에서 대포를 쏴대던 그의 병력이 튈르리와 오뗄드빌을 점령하고 코뮌 대의원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면서 실현되었습니다. 푸셰는 모든 연관을 부정하고 은거했고 몽포르는 가까스로 도망쳐 스페인으로 망명하는 결말을 맞았으나, 적어도 병사들에게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고 세느강에 던져진 바뵈프보단 나았습니다.
그리고… 이 극좌파 반란과 이후 아르투아 백작의 왕당파 반란을 모두 진압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점점 권력의 중추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Canon 3. 브뤼메르
자코뱅 반란과 왕당파 반란이 모두 진압되고 난 뒤 세워진 총재정부는 몹시 혼란했습니다. 왕당파, 평원파, 산악파의 세 정파는 각자를 지지하는 군부 인사들을 동원해 끊임없이 서로를 향한 쿠데타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일부 ‘정치군인’들의 영향력은 점점 높아졌습니다. 제2차 대불동맹이 결성되고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셰니에, 린데, 더브리, 뤼시앵 보나파르트 등 산악파 자코뱅 의원들은 국방장관이자 투철한 공화주의자로 보이던 베르나도트를 5인 총재 중 하나로 옹립하고 오스트리아 국경 방위 총책임자이던 주르당 장군을 의회에 출석시켜 “조국이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게끔 해 원로원과 500인회를 자진 해산하고 마세나, 모로 등 비정치적인 장군들의 지지를 받아 새 헌법을 도입하려는 계획을 진행했습니다.
공화력 8년 방데미에르 28일(1799년 10월 20일) 베르나도트가 계획대로 총재에 ‘옹립’되고 다음날 주르당이 위기에 빠진 공화국을 비상한 방법을 통해 수호하자는 열정적인 연설을 할 때까지만 해도 로베스피에르 체제를 되살리려는 자코뱅의 계획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코뱅들을 학살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집트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나서 이들의 발은 더욱 다급해지고 빨라졌죠. 그러나 시에예스와 탈레랑으로 대표되는 평원파는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계획의 중심인물인 베르나도트를 포섭, 신헌법 제정을 위한 산악파의 계획을 진행시키면서 “전쟁영웅” 보나파르트를 전면에 내세울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운명의 날인 브뤼메르 18일(11월 9일), 양원 합동회의에서 500인회 의장이자 산악파의 대변인인 뤼시앵 보나파르트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공화국 수호를 위한 양원 해산과 신헌법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베르나도트가 ”공화국에는 강력한 호국경이 필요하다”며 다름아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연단에 호명한 것입니다. 칼을 찬 척탄병들에 둘러싸여 입이 떡 벌어진 의원들 사이를 가르며 위풍당당하게 입성한 나폴레옹은 그간 산악파들이 외치던 구호들을 익숙하게 외치며 자신이 공화국을 위해 “희생”하겠노라고 선언했습니다. 분노하고 망연자실한 뤼시앵은 길길이 날뛰며 자신의 형을 지금 당장 죽여 인민에게 속죄하겠노라고 칼을 뽑아들다가 체포당했죠.
자코뱅의 안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신헌법은 간결했습니다. 1년 이상 일정한 주거를 가진 21세 이상 남성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3년 임기의 통령consul이 상원 개념의 참의원Conseil d’etat에 의해 매 3년마다 임기 연장 또는 탄핵심판의 대상이 되고, 하원인 입법원Corps legislatif이 법안을 발의 및 심사하며, 내각은 오직 통령에 의해서만 임명되고 해임될 수 있었습니다. 본래는 친자코뱅 무력에 의해 참의원을 (마치 공안위원회처럼) 자코뱅이 장악한 뒤 (기타 정파가 뒤섞일) 입법원의 권한을 제한할 계획으로 입안된 체제였지만, 이제는 나폴레옹의 무제한적 독재를 위한 도구였죠. “불편부당한 공화국의 수호자” 나폴레옹은 “본인과 같은 불행한 군인이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며 출신과 배경을 묻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자코뱅 출신인 푸셰와 캉바세레스가 요직에 선임되고 베르나도트가 국방장관에 유임되었으며 우파 탈레랑, 주르당, 오주로 등 역시 내각에 이름을 올린 것입니다…
Canon 4. 황제와 망명객
나폴레옹이 의회를 장악하여 제 수족으로 만들고 망명귀족 10만명 중 절반을 사면해 왕당파의 구심점을 제거하여 전제권력을 굳히는 동안, 몽포르 후작은 여전히 스페인에 머물며 저술활동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국왕 카를로스 4세와 왕비의 총애를 받는(사실은 왕비의 기둥서방 노릇을 했던) 마누엘 고도이가 수상으로서 사실상 전권을 행사했고, 고도이 정권은 1796년 프랑스 공화국과 산 일데폰소 조약을 체결해 자율권을 대가로 군사적 충성을 바치는 형태의 현실주의 외교를 펼쳤었죠.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동안 고도이는 아메리카 식민지의 제도를 개선하고 경제체제를 손보아 점진적인 개혁의 길로 들어설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803년 제3차 대불동맹전쟁이 발발하고 나폴레옹이 영국 정벌을 천명하며 스페인 함대를 ‘징발’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이 함대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고, 아메리카에 대한 마드리드의 영향력도 함께 증발해버렸습니다. 더 이상 고도이의 정책노선은 유지될 수 없었기에 남은 것은 그의 부정부패와 부도덕한 사생활 뿐이었고, 고도이를 혐오하던 페르난도 왕태자가 아버지에 대항한 쿠데타를 일으키며 스페인 정국은 파국으로 향했습니다. 더욱 상황을 최악으로 만들었던 것은 단연 나폴레옹의 선택이었는데, 그는 아버지(카를로스)냐 아들(페르난도)이냐의 선택에서 [나폴리 국왕이던 자신의 형 조제프를 스페인 국왕에 옹립하고 강제로 입헌주의 헌법을 이식한다]는 제3의 선택을 해 많은 이들의 뒷목을 잡게 했습니다. 나폴레옹 최악의 실책 중 하나인 반도전쟁의 시작이었죠.
이베리아 반도 전체가 전쟁터로 변하고 프랑스군과 스페인군, 스페인인 민병대와 영국군이 한데 뒤엉켜 서로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생지옥이 벌어지자, 스페인 자유주의자들은 카디스에서 의회를 결성해 “카디스 헌법”을 입안하고 보나파르트 정권에 대항한 스페인 입헌왕국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카디스 의회의 동지로서 활동하던 몽포르 후작 포쿠이는 먼 대양 건너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고, 1812년 뉴욕행 배편에 올랐습니다..
Canon 5. 아메리칸 자코뱅
몽포르 후작 포쿠이를 홀연히 뉴욕으로 떠나게 만든 편지의 주인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동생이자 프랑스의 사상범, 로베스피에르주의자 [뤼시앵 보나파르트]였습니다. 황제가 80만의 대군을 동원해 러시아 원정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은 이미 1811년 말부터 빠르게 퍼져, 출구전략을 고심하던 탈레랑과 푸셰를 거쳐 미국의 ”망명자 집단“에게까지 전달된 상황이었죠. 당통의 비서였던 로베르, 로베스피에르의 심복 쥘리앵, 공안위원으로서 테르미도르 반동에 참여하였다가 투옥된 바레르, 원칙주의자로 당통 숙청과 테르미도르 반동 모두에 반대한 린데 등, 나폴레옹에 의해 ‘추방’당한 자코뱅들은 뉴욕에 모여 황제의 몰락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입을 모아, 황제가 몰락하고 나서 혁명공화국을 재건해야 한다는 데에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미 십수년간 정계에서 자취를 감춘 “왕년의 자코뱅”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혁명이 낳은 첫 세대이자, 그러면서도 황제의 폭정에 반대하는 젊은 세대]를 모을 수 있다면? 그러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황제는 전 유럽의 군대와 맞서싸우다가 종국에는 자기 자신과도 맞서게 될 것이고, 결국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들을 하나씩 검토하며, 곧 오게 될 자유의 물결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혁명의 불씨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dear0904 작성시간 24.08.04 E.E.샤츠슈나이더 권력 분쟁을 하는게 맞았다 같은 수준이죠 ㅋㅋㅋㅋ
+ 아. 근데... 틸지트 조약 말고도 하나 더 있습니다 ㅋㅋㅋ 몰락시기 군대 규모가 쪼그라든 수준에서 오히려 더 잘 싸운걸 생각해보면, 그정도의 대군 지휘는 사실 그 시기엔 불가능한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구요 ㅋㅋㅋ
++ 그러고보니 뤼시앵 보나파르트가 1831년에 뜬금없이 이탈리아 황제였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더라구요 ㅋㅋ 영어위키도 뒤져봐야하나... -
답댓글 작성자E.E.샤츠슈나이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8.04 dear0904 거의 다 썼습니다.
위 비밀 다이스에 대한 결정적 힌트도 본문에서 찾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dear0904 작성시간 24.08.05 E.E.샤츠슈나이더 권력 투쟁 or 정치 공작의 다자 주사위... 느낌이네요 ㅋㅋㅋ
3/18은 상호 배제적이고, 4-8은 자코뱅 및 바라스의 성공. 9-12는 중립, 13-17은 제롬/뤼시앵...의 우세...? 아. 보나파르트파의 주도권 싸움...? 포섭 싸움? -
답댓글 작성자E.E.샤츠슈나이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8.05 dear0904 대부분 아닙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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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dear0904 작성시간 24.08.05 E.E.샤츠슈나이더 아닠ㅋㅋㅋㅋ 대부분이면 그래도 저중 하나는 맞다는건데.... 하필 중립이 있으니 그거겠네요 ㅋㅋ 일단 문제는 나중에 풀고(...) 프리 이벤트 선망부터 해야겠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