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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026년 6월 13일 (토) 말라기 3:10-12

작성자정승화|작성시간26.06.13|조회수31 목록 댓글 1

https://youtu.be/pG9VV3gZXxE?si=FhuEysU3ryZqHcjs

 

* 찬송  49

 

<말라기 3:10-12>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어제에 이어서 십일조에 대한 내용이 계속 이어집니다. 먼저 10절 말씀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을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은 십일조를 강조하는 목사님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씀이지요. 십일조 잘하면 이렇게 더 풍성한 물질의 복을 받는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도 41년 전에 교육전도사부터 목회를 시작했고 처음으로 사례비를 받은 때부터 지금까지 41년 동안 단 한번도 십일조를 빼먹은 적이 없었지요. 지금 이 말씀대로라면 저희 집에는 쌓을 곳이 없을만큼 돈이 흘러 넘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그럴까요? 여러 성도님들도 본격적으로 믿음의 길을 가면서부터 십일조를 성실하게 하신 분들도 계실텐데 그래서 지금은 얼마나 풍성한 부자로 살아가시는지요? 요즘 삼성전자가 작년 한해만 수십조원에 이르는 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십일조 잘해서 받은 복일까요?

아직도 많은 성도들이 복과 재물을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 돈만큼 좋은 게 어디있겠습니까만 돈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의 욕심이지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지금 이 말씀에서의 복도 재물만을 의미하는 복은 아닌 거죠. 신약까지 갈 것도 없이 구약시대만 해도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다 재물과 권세의 복을 누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구약 성경 중에 선지서를 읽어가고 있는데 이렇게 하나님께 충성된 선지자들이 그 시대에는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하고 권력자들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이유 때문에 많은 시련과 위기와 가난함을 겪기도 했지요.

일단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 자체가 우리가 기대하는 부자가 아니셨습니다. 목수 집안에서 평범하게 사셨고, 공생애 기간에도 후원금을 많이 받아서 풍성해진 적도 없지요. 오히려 먹을 것이 떨어져서 남의 밀밭에 들어가 밀을 부벼먹으며 끼니를 이어갈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복을 가장 잘 정리해 준 곳이 바로 시편이 시작되는 시편 1편의 말씀이지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이 말씀 그대로입니다. 복 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씀하지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믿음과 신뢰와 사랑과 생명의 관계 속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바르고 좋은 관계가 성경이 말하는 복인 거죠.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주신다는 것은 재물이나 세상 권세 같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의미하는 거죠. 그로 인해 일용할 양식,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주님 안에서의 참된 평안, 그리고 내가 믿음의 사람답게 아름답고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해 소중하고 의미있는 결실들을 맺어갈 수 있는 것, 이런 것들이 주님께로부터 받는 귀한 복이며 은혜이며 사랑인 것입니다.

11절에서는 이런 말씀도 있지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너희 수고가 헛된 수고가 되지 않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세상에서는 헛된 수고가 많지만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에는 그 어떤 것도 헛된 것이 없이 그 이상의 풍성하고 의미있는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겁니다.

기독교 역사에는 순교자들이 많은데 그 순교자들은 예수 믿다가 헛되게 죽은 걸까요? 아닙니다. 세상 관점으로는 불행하게 헛되게 죽었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분들이야말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진실함을 버리지 않았고, 신앙의 양심을 포기하지 않았지요. 그 누구보다 참된 믿음으로 산 분들입니다. 사도행전 7장 마지막 부분에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당할 때처럼 눈 앞의 현실은 돌에 맞아 죽는 것이지만 스데반은 오히려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께서 보좌 우편에 앉으신 광경을 보면서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해 오히려 기도해 주고,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잠들 듯이 세상을 떠났지요. 편안하게 죽는 사람은 겪어보지 못한 참된 영광 가운데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12절을 보면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참된 십일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주님을 향한 믿음이 진실하다는 것이고, 그 진실한 믿음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너희는 복되다라고 말하게 되는 겁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감으로 인해 우리가 복된 사람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다면 뿌듯하지 않겠습니까?

십일조에 대한 말씀으로 어제와 오늘 함께 생각해 보았는데 결론은 예수 잘 믿는 겁니다. 잘 믿으면 십일조의 문제는 고민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기쁨으로 드리게 되는 거죠. 실제로는 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인데 십일조 밖에 못드리니까 드리면서도 나 십일조 한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겸손해지는 겁니다. 십일조 뿐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드릴 수 있는 그 참된 믿음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선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거죠.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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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유난영 | 작성시간 26.06.14 십일조에 대한 말씀으로 어제와 오늘 함께 생각해 보았는데 결론은 예수 잘 믿는 겁니다. 잘 믿으면 십일조의 문제는 고민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기쁨으로 드리게 되는 거죠. 실제로는 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인데 십일조 밖에 못드리니까 드리면서도 나 십일조 한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겸손해지는 겁니다. 십일조 뿐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드릴 수 있는 그 참된 믿음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선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거죠.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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