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다리우스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04.08.30
무본이란 즉 본질없는 존재덩어리(정해지지 않은 우연적 존재) 그자체를 말함이며 무주란 곧 그것을 파악하는 주체인 나의 허황함을 말함인데 사르트르에 이어 라캉은 한발 더 나아갔(진일보했)음을 아수 있는 대목.(뭐 나가봐야 인간의 구원에까지 다다른 건 아니겠지만서두...)
작성자mara작성시간04.08.30
노자로 넘어 가심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나타남은 有와 無로 둘(두 개념, 두 이름)이지만 이름(明)의 세계, 개념의 영역을 벗어남을 말합니다. 그것이 허虛이기도 하며 세상의 이름이기도 하며 천지의 뿌리이기도 하며... 아~우, 있고 없음 결국 꼬이고 있지만, 谷神不死 죽음도 없는 초 시간적인 존재로 돌아가시지요.
작성자mara작성시간04.08.31
뭐 그렇게 무시하지도 않던데요. 유마힐을 아신다면 그 바다의 깊이 있는 물결을 노니실 줄도 아실 것 같은데요. 저도 깊이는 자맥질 하지 못하였습니다. 아직 호흡이 길지 못하고 저를 너무 믿는 경향이 있어 이거면 다 안다 뭐 그런 짓도 합니다. 자크라깡의 실제계적인 사유는 결국 노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작성자다리우스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04.08.31
바다저편에서 난 노자의 얼굴을 보려한다. 노자, 그는 누구인가? 동서양이 이렇게 만나면 세계는 어찌 되는 건가? 해체주의의 끝에서 난 무얼 보게될까. 그 피안에서 철학은 어떤 종지부를 찍게되는 걸까.서양의 각진 사유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