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1월 17일 (수)요일 [신약성경통독 마21~마27] 무화과 그리고 열매와 재림 18 새벽에 성 안으로 들어오시는데,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01.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스 미디어(mass media)의 공신력(공적인 신뢰를 받을 만한 능력)을 믿어 왔습니다. TV, 신문, 라디오 등의 대중매체에서 기사화 되고, 보도되고, 방송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암묵적인 신뢰를 하였습니다. 아무 것이나 기사화 되고, 보도되고, 방송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02.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수, 의사, 변호사, 정치인이란 직업을 선망의 대상으로 품었습니다. 그들이 내는 의견과 칼럼에 공감하고, 다름 사람들의 말보다도 더 그들의 말을 신뢰했습니다. 아무나 교수, 의사, 변호사, 정치인이 되겠느냐 싶어서였습니다. 03. 하지만 언젠가부터 매스 미디어도 변질 되었고, 선망의 대상으로 품었던 그들의 말도 힘을 잃었습니다. 아무리 TV 방송에 나온 음식점이라 해도 TV 전파를 탈 때와 그후는 사뭇 많이 변해있어 실망했다는 말들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좋은 머리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선망의 대상들이 더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이고 사회를 기만한 기사들을 접하게 됩니다. 04.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때는 유대력으로 니산월(태양력으로 3-4월), 유월절 기간이다. 3월 초순이 되면 무화과나무에는 작은 잎이 나오는데 이때에 아주 작은 열매들이 열린다. 이 열매를 ‘타크시’(아랍어)라고 부른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나무에서 시장기를 면하시려고 무화과를 찾으셨던 것이었다. 그런데 타크시는 진정한 의미에서는 무화과라고 볼 수 없다. 타크시는 4-5월경에는 떨어지며 6주 정도가 지나서 새로운 열매가 열리게 되는데 이것이 진짜 무화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3월 중 열리는 무화과는 진짜 무화과의 전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타크시를 찾으려고 무화과를 보았으나 열매를 볼 수 없었다는 것은 그 해 가을에도 진짜 열매를 얻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과일나무는 쓸모없는 나무로 땅의 양분만 축내고 땅만 차지하는 무익한 나무인 것이었다.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열매없는 무화과나무가 저주받은 것처럼 예수님에 대한 참 신앙을 갖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심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또한 무화과나무는 열매만이 유용한 나무라는 사실을 알 때 예수님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열매있는 모습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무화과나무를 통해 예수님은 무화과나무 잎이 무성해지면 여름이 되는 것이 사실이듯이 예수님의 모든 말씀들이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을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분명한 교훈의 말씀이기도 하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국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무화과나무가 무성해지듯 이스라엘 국가의 재탄생과 회복은 예수님 재림이 임박함을 보여 준다. [성경사전] 05. 무화과나무의 특징은 잎보다 열매가 먼저 열립니다. 그래서 잎사귀가 나면 다른 나무와는 달리 이미 열매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잎이 있는 무화과나무에게는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예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06.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이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대신하여 대속물이 되시사 우리를 거룩한 성전 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죄사함의 구원만 기뻐하고 성전으로서의 열매 맺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외식적인 신앙이 되고 맙니다. 몇 년이 지나도 열매 없이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으면 주인의 마음은 아플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무화과 나무가 열매 없는 것을 보시고 저주하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에 대한 경계의 말씀을 주시려는 교훈입니다. 그때 당시 외적 모습만 훌륭한 경건주의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영적 열매가 없었습니다. 경건한 모습은 있었으나 영향력도 없고, 열매도 없었습니다. 형식은 있었으나 내용이 없었습니다.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09.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지 하루만에 무화과 나무가 뿌리째 말랐습니다. 잘못 자란 나무에 대한 심판의 신속성에 제자들은 놀랐습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의 모습, 예루살렘의 모습,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형식적인 종교 의식, 종교 습관으로만 예배를 드리던 이스라엘의 민낯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 저주 사건을 통하여 이를 드러내보이셨습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어떤가요? 아니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앙의 뿌리 상태는 지금 어떤가요? 뿌리부터 말라 있지 않은지요?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는 예수님의 저주를 받고 결국 뿌리째 말라 곧 죽게 되었습니다. 위기는 눈에 보이는 무엇이 없고,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위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뿌리가 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이 영적 뿌리를 살리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 - 삶의 한가운데... 01. 빛을 비출 수 없는 등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화려한 예배의식은 있지만 그 안에 진정한 하나님 경외가 있었는가? 세련된 음악은 있지만 전심의 찬양이었는가? 수 많은 종류의 헌신과 봉사는 있지만 진정한 사랑이었는가? 여러 종교적인 행사는 있었는데 열매가 있었는가? 헌신과 갈망은 있는데 끝까지 진실했는가? 변질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로 변화 되자.
열매 없는 성경공부, 기도, 열심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단지 영적 경력, 영적 이력을 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모든 것이 열매를 위함이어야 합니다. 지금 나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내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있습니까? 신앙에 외식이 있으면 안됩니다. 분명한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의 신앙에 있어 위선적이고 외식적인 것은 없었는지 말씀과 성령의 조명에 비추어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사랑하는 사랑을 위하여]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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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Coram Deo 작성시간 18.01.17 공부 잘 하는 아이에게 굳이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라고 말한 것은 분명 제자들이 믿음 없이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를 따르면서 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을 성경은 잘 말해주지 않았던가?
오늘날 예수를 따르는 제자된 우리에게 던지시는 말씀, 그리고 믿음 없는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
예수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제자들이 해야 할 믿음의 기도는 무엇이며,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를 기다리며 우리가 드려야 할 믿음의 기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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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사랑하는사랑을위하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01.17 당연히 해야 할 것
당연히 있어야 할 것
당연히 갖춰져야 할 것을 또 그 사람에게 요구합니다.
그 사람에게
갖다 대는 기준의 잣대는 철저하고 엄격합니다.
그 사람에게
나타난 어떤 결과는 철저한 평가를 합니다.
관계보다 일 중심
과정보다 결과 중심적 사람이 되가고 있지 않은지...
일 잘하고 결과는 좋을 지 몰라도
하나님의 마음이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바램은 하나됨입니다.
그 사람이 실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과
사람이 할 일을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사랑으로 오래참고 하나됨을 힘써 지킵시다.